최근 수정 시각 : 2024-03-14 14:30:47

서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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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환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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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등번호 61번
황덕균
(2002~2004)
서동환
(2005~2008)
박정배
(2009~2011)
두산 베어스 등번호 59번
이혜천
(1998~2008)
<colbgcolor=#ed1c24><colcolor=#fff> 서동환
(2010~2011)
이혜천
(2012~2013)
두산 베어스 등번호 29번
김성배
(2010~2011)
서동환
(2012)
유희관
(2013~2021)
두산 베어스 등번호 61번
박정배
(2009~2011)
서동환
(2013)
함덕주
(2014~2017)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4번
신명철
(2007~2013)
서동환
(2014)
김경모
(201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9번
모상기
(2014.6.24.~2014)
서동환
(2015)
정광운
(2016)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2번
이용욱
(2015)
서동환
(2016)
최영진
(2017~2022.8.29.)
}}} ||
파일:image_1601098514154_500.jpg
서동환
徐銅煥
출생 1986년 3월 27일 ([age(1986-03-27)]세)
부산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초량초 - 개성중 - 신일고
신체 185cm, 86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05년 2차 1라운드 (전체 2번, 두산)
소속팀 두산 베어스 (2005~2013)[1]
삼성 라이온즈 (2014~2016)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두산 베어스 시절
2.2.1. 2011년2.2.2. 2012년2.2.3. 2013년
2.3. 삼성 라이온즈 시절
2.3.1. 2014년2.3.2. 2015년2.3.3. 2016년
2.4. 마지막 도전?
3. 은퇴 이후
3.1. 사건 사고
4. 연도별 성적5. 기타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두산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 소속 우완 투수이자 현재 3steps 대표코치.(서 원 으로 개명한 상태. 3steps, 야구블박TV, 풀어야구TV 등)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2003년 경남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 야구부 내에서 집단 갈등이 벌어지자, 전격적으로 신일고로 전학하여 상경했다. 많은 야구부원들이 경남고등학교를 떠났지만, 150km/h의 구속을 자랑하던 서동환이 가장 유명했다.[2] 신일고등학교 장호연 감독의 조련 속에서 기량을 한층 더 성장시켰다. 한편 장호연은 2002년 한 선수가 입단하면서 받은 계약금 일부를 받기로 한 공증서가 2년 뒤인 2004년에 문제가 되어 대한야구협회로부터 무기한 자격 정지의 중징계를 받았다. 이전에는 서동환을 메이저리그 스카우트에게 소개하고, 메이저리그 팀 입단 시 커미션을 받는다는 비밀 계약을 맺었다가 이것이 발각되면서 징계를 받았었단 내용이었는데 이건 표면적인거고 진짜 이유는 계약금 건이었다고 한다.

여하간 2005년 드래프트에서 최대어였지만, 전학생 금지 규정[3] 때문에 2차 지명으로 밀린 상황. 2차 1번 지명권을 가진 롯데 자이언츠가 뽑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롯데는 2년 연속 1차지명 유력후보가 2차 드래프트에 나와 지목 했다가 재미를 보지 못했고,서동환의 전학 과정에서 나타난 잡음과 더 강인하고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용마고등학교 에이스 조정훈을 2차 1순위로 지명한다. 당연히 롯데가 서동환을 지명할 줄 알고 다른 선수를 눈여겨 보던 두산 베어스가 "이게 웬 떡이냐 싶어서" 재빨리 2번으로 지명, 5억 원의 계약금으로 메이저리그 진출 대신 팀에 입단시키는데 성공했다.[4]

2.2. 두산 베어스 시절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201106020402778215_1.jpg
두산 베어스 시절.

2005년 개막 당시 계약금 6억의 김명제와 함께 11억 듀오로 기대를 많이 걸었다. 김명제는 선발, 서동환은 마무리로 팀에서 생각했는데 서동환은 결과적으로 그 기대를 완벽하게 저버렸다. 첫 경기에서 5점차 앞선 상황에서 만루홈런을 맞으면서 불쇼를 벌인 것. 결국 마무리 자리는 이 날 불쇼를 수습한 정재훈에게 돌아갔고, 2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빠른 공 외에는 이렇다할 장기가 없었고, 팔꿈치도 좋지 않았다는 점이 이 때 드러났다.

2.2.1. 2011년

신일고등학교 대선배인 조성민이 부임하면서 그를 혹독하게 조련했고, 그 결과로 퓨처스리그에서 괜찮은 성적을 남겼다. 급기야 5월 31일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5이닝 1실점 호투하면서 데뷔 첫 선발승을 기록했다. 그리고 2006년 이후 처음 거둔 통산 2승째.

2.2.2. 2012년

1군에서 불펜 투수로 시작하였다. 4월 14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2:3으로 지던 8회말 1사 1, 3루의 위기에서 등판하여 손아섭을 유격수 병살타로 잡고 이닝을 끝냈다. 서동환은 이날 12회까지 던지며 4⅔이닝 61투구수 1피안타 1사사구 7탈삼진 무실점을 호투하면서 두산 팬들의 기대를 이끌어내는 피칭을 선보였다. 팀은 9회초에 스코어 3:3 동점을 만들었지만 연장전에서 한 점도 못내면서 롯데와 3:3으로 비겼다.

그러나 5월 15일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했으나 1⅔이닝 55투구수 4피안타 4사사구 6실점 6자책점[5]의 최악의 피칭으로 조기강판되었다. 팀이 8:11로 승리하여 패전은 면했지만 2군행이 결정되었다.

2.2.3. 2013년

내내 2군에만 있다가, 5월 1일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KIA 타이거즈전에서 간만에 1군 등판을 했지만, 팀이 4:1로 지고 있던 5회초에 패전처리 투수로 나온 것이었다. 5이닝 동안 108개의 공을 던졌지만 제구고 구위고 좋은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6] 6피안타 6사사구 2탈삼진 4실점 4자책점을 기록한 채 다음날 바로 2군행.

그리고 한동안 2군에서만 있다가 8월 15일 김선우가 발목 부상으로 1군에서 제외되자 반대급부로 1군에 다시 콜업되었다. 그리고 3일 뒤인 8월 18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7:0으로 지고 있던 5회초에 패전처리 투수로 나와서 3이닝 동안 2피안타 2볼넷을 기록했으나 무실점으로 막아내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팀은 9:0으로 패배했다.

8월 24일 한화전에서는 송주호원 포인트 릴리프로 잡아냈으나 팀은 9회말에 반격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패하고 말았다.

9월 7일 목동 넥센전에서 선발 등판해 2⅓이닝 동안 3실점을 하며 부진했다.

2.3. 삼성 라이온즈 시절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5030201661_0.jpg

2013년 11월 22일 2차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삼성에 지명되었다. 두산 팬들의 반응은 거의 무덤덤한 수준. 가서 성공하라고 건투를 비는 것 외에 그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2.3.1. 2014년

시즌 중반까지는 이수민, 최원제 등과 함께 BB아크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2군 11경기에 등판해 1패 2홀드 7.00의 평균자책을 기록했다. 삼진/볼넷 비율 역시 나쁜 편으로, 1시즌만 두고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두산 시절 2군 기록과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10월 1일 심창민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10월 13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에서 팀이 스코어 22:1로 우세한 상황에서 장원삼에 이어 2번째 투수로 등판했으나 선두 타자 장운호를 상대로 초구에 머리에 맞는 속구를 던지는 바람에 곧바로 퇴장당하고 마운드를 김기태에게 넘겼다. 장운호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일어나지 못한 채 대기 중인 구급차에 실려 나갔다. 검사 결과 장운호는 큰 이상 없이 퇴원했지만, 병원에서 재검을 한 번 더 받아야 한다고. 나중에 류중일 감독이 밝히기를, 원인은 디딤발을 잘못 내딛는 바람에 공이 손에서 빠졌다고 한다.

10월 14일 권오준이 복귀하면서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2.3.2. 2015년

우완 계투가 필요한 팀 사정상 1군 스프링캠프에 합류하였으나, 2014년부터 문제가 되던 우타자 머리쪽으로 형성되는 투구가 개선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시범경기에서도 이런 모습은 여전했고, 그나마도 정규시즌에는 4월 말부터 출장했으나 5월 중순 이후로는 부상이 있는지 출장 못하다가 8월 27일에야 2군 경기에 등판했다.

1군 경기는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고, 퓨처스 리그에서 17경기 18⅔이닝 30피안타 3피홈런 8탈삼진 9볼넷, 평균자점책 6.75를 기록했다. 2014시즌 후반기 안정화되나 싶었던 볼넷이 다시 늘고 삼진이 급감했다.

시즌 후 팔꿈치 뼛조각 제거수술을 받았는데, 뼛조각이 무려 12개나 나왔다고.

2.3.3. 2016년

재활 과정은 순탄했는지 2016년 2군 괌 캠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1군 안착에 실패했으며, 5월달에는 한 달간 1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으나, 6월 이후로는 다시 부진에 빠졌고 7월 12일 경기를 마지막으로 등판하지 못했다. 2015년과 마찬가지로 1군에서는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고, 퓨처스 리그에서도 27경기 31⅔이닝 1승 3패 2세이브 1홀드, 평균자책점 7.96을 기록하며 깔끔하게 망했다.

결국 시즌 후 삼성의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고 그대로 은퇴했다.

2.4. 마지막 도전?

2016년 말 삼성에서 방출되어 이대로 은퇴하는 듯했으나, 12월 14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스프링캠프 초청선수 자격으로 미국 무대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야구를 하면서 꼭 해 보고 싶은 게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것이었다고 한다. 트라이아웃 일자는 현지시간 기준으로 3월 25일로 서동환 한 명만을 위한 특별 트라이아웃이라고 한다. 이 자리를 마련해 준건 남궁훈 샌디에이고 극동 스카우터로 두산 시절 친분을 쌓은 사이라고 한다. # 그러나 이후로 아무런 소식이 없고 마이너리그 로스터에도 등재되지 않았다. 뒤늦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싶었다기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아래 문단 두 번째 링크 참고) 그 트라이아웃으로 미국에 있던 3주 동안이 인생을 통째로 바꾸게 되었다고.[7]

3. 은퇴 이후

귀국해 '올 어바웃 베이스볼 아카데미'라는 야구 교습 및 재활 관련 센터를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센터 위치는 강남구 개포동 , 성동구 성수동 , 강동구 둔촌동,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을 거쳐 현재는 송파구 잠실이라고 한다. 현재는 '서동환야구사관학교' 유튜브를 운영중이며 이와 연계된 센터를 동시에 운영중이다. 엘리트야구, 사회인야구, 재활, 스티븐블래스 증후군 개선 등 전문성을 갖춘 지도자로 활동중이다. 프로야구선수협-올어바웃베이스볼아카데미, 저연봉·퓨처스·육성선수 재활지원 업무협약

[김은진의 다이아몬드+]‘고졸특급’에서 ‘서선생님’으로…새 길 걷는 서동환 “너희는 나처럼 아프지 말길”

독립야구단 시흥 울브스(현 가평 웨일스)의 구단주도 겸하고 있었으나 아래에서 설명하는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에 손을 뗀 것으로 알려졌다.

3.1. 사건 사고

https://www.youtube.com/watch?v=L3qql_NyJ4w
2022년 1월 8일 방송하는 MBC 실화탐사대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졌다.[8] KBO 리그 입단이 힘든 몇몇 선수들에게 일본 독립리그 구단 및 KBO리그 입단을 주선하겠다며 여러 명목으로 돈을 받아냈고 김성근 전 감독 을 비롯하여 스카우터 로 활동중인 야구계 대선배들 이름까지 팔아가면서 해당 선수 를 비롯하여 그들의 부모 까지도 이용했다는 것이다. 서동환은 이에 대해 코로나19 핑계를 대며 얼토당토 않은 주장 을 하였고 분노한 피해자 부모들이 집단 소송 움직임을 보이자 그제서야 대부분 환불을 해줬다 하였고.

서동환 본인이 운영하던 아카데미 직원들의 임금체불 문제도 방송에 나왔었는데 2021년 12월 31일까지 변제를 하겠다고 하였지만 지금까지도 변제를 안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무혐의 처분 상태라 주장하며 다음 글을 올렸다.
안녕하세요.
***야구사관학교 대표 ***입니다.
2022년 1월 8일 방영된 MBC실화탐사대 관련으로 시작된 법적절차가 지난 4월 12일부로 모두 '종결'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는 그동안에 조사를 통해 '혐의없음' 결정을 받아 저의 결백을 증명하였습니다.
조사기간 동안 정말 다시는 돌아가기 싫을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방송내용은 완벽하게 저를 비방하기 위한 악의적인 내용들이었고
저의 그동안의 시간들은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저와 저의 가족은 너무나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저로서 이 일을 끝내고자 생각했으나 힘든 시간을 보낸 가족들을 보니 그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이렇게 일을 만든 관련자들에게 그 책임을 모두 물을 것입니다.

끝으로 제가 '혐의없음' 결정을 받기까지 한결같이 저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아직 젊기에 새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올림-

하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는 내용은 그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어디에서도 관련된 소식을 찾을 수 없다.

현재 본인의 SNS에 마치 자신이 피해를 본 양 피해자들을 공격하며 올리고 있는 시리즈 글들이 또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5 두산 6 5⅔ 0 0 0 0 - 12.71 6 0 12 4 8 8 3.00
2006 20 23⅔ 1 1 0 0 0.500 5.32 22 3 14 9 16 14 1.48
2007 3 3 0 0 0 0 - 6.00 4 0 0 1 2 2 1.33
2008 3 3 0 0 0 0 - 9.00 4 1 1 3 3 3 2.33
2009 임의탈퇴
2010 두산 1군 기록 없음
2011 11 22 1 2 0 0 0.333 4.50 25 2 15 13 11 11 1.64
2012 10 14⅔ 0 0 1 0 - 8.59 17 0 13 17 14 14 1.98
2013 8 16⅔ 0 1 0 0 0.000 4.32 15 0 15 4 8 8 1.74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4 삼성 2 1 0 0 0 0 0.000 - 1 0 1 1 0 0 1.00
2015 1군 기록 없음
2016
KBO 통산
(8시즌)
63 89⅔ 2 4 1 0 0.333 6.02 94 6 73 50 62 60 1.76

5. 기타

  • 2018년 3월 31일 쇼트트랙 국가대표 최민정 선수의 시구 지도를 맡기도 했다. 이외에도 시구지도 레슨을 맡기도 하며 야구 관련 글도 많이 올리는 편인데, 이수민의 시구를 보고 상체회전이 완벽하다는 평가를 한 적도 있다.
  • 2005년 드래프트 2차 1라운드 지명자가 워낙 화려한 탓에[9] 비교적 까일 법도 했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까이진 않았다. 이유는 고교시절 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서동환은 당시 1번으로 지명 받을 정도로 기록이 좋았고 오히려 롯데가 서동환 거르고 조정훈이라며 팬들 층에선 당시 뭐하는 거냐고 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결과론으로 남게 되었고 두산 팬들에겐 애증의 선수로 남아있다.

6. 관련 문서


[1] 부상 및 재활을 이유로 2008 시즌 직후부터 2010 시즌 직전까지 임의탈퇴 신분이었다.[2] 서동환, 김현우, 조승수는 신일고로 전학했고 정연회에서 이종운으로 감독이 교체됐다.[3] 이 당시는 단순히 '전학생은 1차지명 대상에서 제외'라고만 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타 구단 연고 지역 출신 전학생의 1차지명 금지는 관례상으로만 내려 오다가 뒤늦게 '중3 이후의 유급생, 타 구단 연고 지역 학교로 진학 또는 전학한 선수는 1차지명 대상에서 제외한다'로 명문화되었다가 전면 드래프트 도입과 함께 폐지되었다. 2014년 드래프트부터 부활해 2022 드래프트까지 이어진 1차 지명 규정은 1차 지명 부활 전인 2009~2012년의 전학은 소급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다.(이에 따라 임병욱이정후가 넥센(현 키움)의 1차 지명을 받았으며, 박효준도 미국 진출 전 SK(현 SSG)의 1차 지명 대상이었다.)[4] 이때만 해도 롯데의 안목이 좋았다고들 하나 1년뒤에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빠지는데...[5] 단, 1실점 1자책점은 정대현분식회계.[6] 여기서 벌투 논란이 일기도 했다.[7] 링크된 기사에서 마이너리그에서는 태블릿PC를 통한 맞춤 지도가 이뤄지고 있다고 언급했는데, 두산에서는 미국 마이너리그 연수 경험이 있던 고토 코지 코치가 이를 도입했다.[8] 기사에 '과거 ‘5억짜리 팔’로 불리며 두산, 삼성에서 투수로 활약했던 서 대표'라고 나온 것을 봐서 서동환임을 알 수 있다.[9] 오승환, 윤석민, 정근우가 지명받은 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