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08 23:24:34

T-34

파일:나무위키+유도.png   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아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파일:T34_85.jpg 파일:T-34.jpg
T-34-85

1. 개요
1.1. 개발1.2. 표기법
2. 생산 공장
2.1. 부품2.2. 전차
3. 양산형4. 연도별 형식
4.1. 1940년형4.2. 1941년형4.3. 1942년형4.4. 1943년형
5. 개량형
5.1. T-34-575.2. T-34-85
5.2.1. 1943년형 (D-5T 장착형)5.2.2. 1944년형
6. 파생형
6.1. T-34-100
7. 현대화 개량형
7.1. T-34-85M7.2. T-34-1007.3. T-34-122
8. 생산9. 조선인민군 육군
9.1. 대한민국 국군 노획
10. 현재11. 평가
11.1. 장점11.2. 단점11.3. 종합
12. 파생형13. 독일14. 대중매체
14.1. 영화, 드라마14.2. 게임14.3. 모형화14.4. 애니메이션, 웹툰14.5. 뮤직비디오
15. 관련 문서16. 둘러보기

1. 개요

소련러시아의 1세대 전차[1]를 대표하는 전차이자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소련에서 생산되어 기갑부대의 주력으로 운용된 중형전차다. 소련이 만든 걸작 전차로 알려졌으며, 성능도 준수하지만 트랙터 공장이나 기관차 공장에서 찍어낼 정도로 생산하기 쉬운 구조 덕분에 많은 수를 확보할 수 있게되어 독일의 전차들이 할 수 없는 전략기동을 가능케 했고 숙련도에서 앞서는 독일의 기갑전력에 맞설 수 있게 해주었다. 이후 한국전쟁에서 북한군의 주력 전차로 활용되기도 했다.

소련군이 붙인 별명은 로지나(Родина: 조국, 모국)이라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많이 쓰인 말이 아니었으므로 현지에서 찾을 때는 그냥 Т-34[2]라고 해야 알아듣는다. 독일군이 붙인 별명은 미키 마우스인데, 여기에 관해서는 후술된 1942년형을 참조할 것.

1.1. 개발

스페인 내전에 투입된 T-26, BT 전차는 그럭저럭 쓸만했고 화력도 괜찮았다.[3] 하지만 장갑이 너무 약해서 37mm 대전차포에도 속절없이 뚫렸고, 더 좋은 전차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 과정에서 A-20과 A-32가 경합했는데, A-20은 기존의 45mm 구경 포에 20mm 경사장갑을 갖춘 쾌속전차였고, 코시킨[4] 기사가 A-20에 76mm 포와 30mm 두께 경사장갑과 광폭 궤도를 더해서 설계한 A-32를 제출한다. 이 경합에서 A-32가 승리했고, A-32는 T-34의 기원이 된다.

하지만 T-34가 채용되기까지의 과정은 매우 험난했다. 1940년 T-34 전차의 채용이 사실상 확정되어 제183호 공장에서 500대,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에서 100대를 생산하기로 계획되었던 차에 독일로부터 3호 전차 2대가 수입되는 난항을 겪게 되었다. 소음은 97식 전차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요란하기 그지없었던 T-34에 비해서 비교적으로 소음이 적은 3호 전차는 소련 기술진을 경악하게 만들었고 안정된 서스펜션과 넓은 포탑 내부 공간, 그리고 전차병 개개인에게 지급되는 차내 인터폰 및 우수한 성능의 무전기 등 T-34가 3호 전차에 비해 유리한 것은 공격력과 방어력뿐이었다. 하지만 당장 T-34가 못쓸 물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포병 병과원수 그리고리 쿨리크(Григо́рий Кули́к, Grigory Kulik)는 이를 빌미로 계속 시비를 걸면서 T-34의 설계 및 생산 자체를 원천 봉쇄하려 한다.
파일:external/www.generals.dk/Kulik_Grigorii_Ivanovich.jpg
그리고리 쿨리크

쿨리크는 1890년생으로 스탈린의 최측근으로 막강한 권력을 보유한데다가 보수적인 육군 장성이었다. 게다가 코시킨 기사의 상관인 리하초프가 자신의 라이벌이라는 이유까지 있었으니 어떻게든 T-34의 채용을 막기 위해 애를 썼다. "T-34에 탑재될 76.2mm 주포는 너무 약하니 107mm 주포를 탑재하라", "이런 전차보다는 BT 계열의 쾌속전차를 생산하는 것이 낫다!"는 식으로 사사건건 훼방을 놨던 것이다. 이런 상부의 방해와 과로가 겹쳐, 코시킨은 결국 1940년 9월 26일, 42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그 이후 수석 기술자가 된 모로조프가 재설계했지만 쿨리크는 끈질기게 훼방을 놓았는데, 심지어 T-34M(A-43)의 개발이 완료될 때까지 기존 T-34의 생산을 중지할 것을 제의하는 판국이었다.[5]

이렇게 온힘을 다해서 방해하는 쿨리크에다가 여러가지 악재까지 더 겹쳐서 1940년 제183 공장과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에서 생산될 약 600대의 T-34/76은 겨우 117대만이 생산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쿨리크의 만행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는데, 실탄을 낭비한다며 기관단총 도입을 막았고 지뢰도 쓸모없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결국 바르바로사 작전부터 시작된 동부전선에서 소련군이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는 커다란 원인이 되었다. 그 책임을 물어 육군 소장으로 강등된다.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는 전화로 스탈린에 대한 험담을 하다가 도청에 걸려서 반역죄로 총살당한다. 그리고 쿨리크가 그렇게 밀던 A-43은 독소전쟁이 발발한 뒤 T-34의 생산라인에 차질을 주는 것을 피하기 위해 폐기된다.

1.2. 표기법

흔히 T-34/76, T-34/85 등의 주포별 분류법은 독일에서 사용한 것이다. 영어권에서는 / 대신 - 하이픈을 사용하여 T-34-85와 같이 표기했다. 독일은 T-34-76을 세분화해서 분류하였으나, T-34-85 1943년형(D-5T 장착형)과 1944년형(ZiS-S-53 장착형)은 동일하다고 여겼는지 분류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본국 소련에서는 형태에 따라서 특별히 분류하지 않았다. 서방에서도 독일 자료를 의존했으나, 1960년대부터 동구권 국가에서 발행된 책자를 입수한 서방에서는 T-34에 대해서 비교적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2. 생산 공장

비교적 타국 전차에 비해 생산라인이 간단해 트랙터 공장부터 기관차 공장까지 나름 인지도 있는 곳에서 생산되었다. KhPZ와 UTZ의 공장번호는 183으로 공유했다.

2.1. 부품

  • 제9호 야포 공장
    당대 소련의 모든 화포의 생산을 책임지는 공장으로 생산된 화포를 필요에 따라서 각 지역 공장에 조달했다.
  • 야로슬라블 타이어 공장
    충격 흡수를 위해 보기륜에 필요한 고무 타이어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1942년 겨울부터 43년초 봄까지 야로슬라블 강이 얼면서 고무 조달에 차질이 생기자 철제 보기륜을 사용했다.
  • 무전기 생산 공장
    초기 항공기용 무전기를 개수한 무전기를 생산하여 T-34 생산 공장에 납품하였으나, 공장이 소개되면서 한동안 무전기도 없이 생산되었다. 전쟁 중반에 공장이 다시 재가동되면서 영국에서 랜드리스를 받은 부품으로 신형 무전기를 생산해 조달했다.

2.2. 전차

  • 제183호 스탈린 전차 공장
    우랄 연방관구 스베르들롭스크 주 니즈니 타길에 위치한 우랄바곤자보드와 1941년 말 이곳으로 피난온 KhPZ가 병합되어 1941년 말부터 1944년 초까지 1만 5천여 대의 T-34-76을 생산하고, 1944년 중반부터 1951년 초까지 3만여 대의 T-34-85를 생산했다.
    • 코민테른 증기기관차 183번 공장(KhPZ)
      나름 T-34 프로젝트를 진행한 본 설계국과 T-34를 최초로 생산한 공장이었으나, 하리고프 공방전의 여파로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자, 1941년 9월 12일부터 니즈니 타길의 우랄 열차공장으로 장비를 이전하기 시작했다.
    • 우랄열차공장(UTZ)
      KhPZ가 이전하기 전인 1941년까지만 해도 기관차를 생산하던 공장이었지만 2차 세계대전 동안 T-34 계열 전차를 가장 많이 생산한 곳으로 종전 후에도 T-34-85가 소수 생산되었고 이곳이 바로 러시아의 최대 기업 우랄바곤자보드의 전신이다. 아직도 전차와 열차, 트랙터 등을 주력으로 생산한다.
  • 우랄마쉬(UZTM)[6]
    예카테린부르크에 위치한 중장비 공장으로 1942년부터 43년까지 T-34 6천 대를 생산했다. 이후에는 SU-85 같은 자주포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변경됐다.
  • 제르진스키 기념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STZ)
    스탈린그라드에 위치한 트랙터 공장으로 1941년부터42년 사이 3천 8백 대의 T-34를 생산했다. 그러나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여파로 1942년 10월 말 공장 노동자들에게 최종 탈출 명령이 내려지면서 전차 생산은 중지되었다. 공장 설비 대다수는 폭격으로 공장 건물 잔해에 매몰되어 설비를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없었다. 종전 후 복구되어 PT-76 등 수륙양용전차 개발에 전념하다가 1961년 볼고그라드 트랙터 공장으로 개명했다. 소련 해체 이후 부도로 2005년 파산해 인수기업이 없어 코마 상태로 있다가 최근인 2017년 국영 방산기업 로스텍의 일원이 됐다.
  • 첼랴빈스크 트랙터 공장(ChTZ)
    1941년부터 43년 사이 T-34를 양산했다. 이후부터는 레닌그라드에서 피난온 키로프 공장와 병합되어 중전차 및 중자주포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변경되었다.
  • 붉은 소르모프 공장(112번 공장)
    니즈니 노브고로드에 위치한 조선소 및 기관차 공장으로 정식명칭은 Завод «Кра́сное Со́рмово»(자보드 끄라스노예 소르모프)이다. 1941년부터 44년까지 T-34 6천 3백 대를 양산했고, T-34-85의 포탑을 설계하고 1946년까지 2만 대를 생산하는 등 주요 공장 역할을 전담하다가 전후 복구로 다시 조선업에 중시하면서 설계국과 전차 공장이 문을 닫았다.
  • 옴스크트란스마쉬(174번 공장)
    옴스크에 위치한 증기기관차 수리공장이었으나, 1942년 3월부터 레닌그라드 키로프 185번 공장[7]이 옴스크로 피난을 오면서 174번 공장으로 개명된다. 이때부터 1946년까지 T-34(OT-34)와 T-34-85(OT-34-85) 7천 대가량을 양산했다.

3. 양산형

이 분류법은 독일식 분류법으로 정작 소련에서는 특별히 구분하지 않았다. 독일에서는 크게 주포의 구경에 따라 분류한다. 76mm L-11 또는 F-34 전차포를 주포로 탑재한 T-34-76, 57mm ZiS-2 또는 ZiS-4M 대전차포를 주포로 탑재한 T-34-57, 85mm D-5T 또는 ZiS-S-53 전차포를 주포로 탑재한 T-34-85로 분류한다.

3.1. T-34-76

파일:attachment/T-34/ee.jpg 파일:attachment/T-34/t3.jpg 파일:external/c0f7c8cebed39daa24e934e529d95c9bb1ea15f47681a6a179bd62cef7272b98.jpg
T-34-76 1940년형[8]
파일:attachment/T-34/T-34-76_1941_001.jpg 파일:attachment/T-34/T-34-76_1941_002.jpg
파일:attachment/T-34/gl.jpg 파일:attachment/T-34/75.jpg
T-34-76 1941년형[9]
파일:attachment/T-34/T-34-76_001.jpg 파일:attachment/T-34/T-34-76_002.jpg 파일:attachment/T-34/88.jpg
T-34-76 1942년형[10]
파일:external/www.cybermodeler.com/dml_6614_title.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34_-_TankBiathlon2013-06.jpg
화염방사 전차로 개조된 T-34-76(OT-34) 탱크 바이애슬론 대회 시작 전 나온 러시아 육군 소속 퍼레이드용 T-34-76


T-34는 스페인 내전에서 기존의 고속/경장갑 중심의 전차들이 37mm PaK 36 같은 견인식 소구경 대전차포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경험에 대한 반성에서 탄생한 중전차이다. 동맹국 생산을 포함하여 1940년에서 1948년까지 약 8만 4천여 대가 생산된 것으로 추산되어 대전 중 생산된 전차로서는 최다 숫자를 자랑한다.

초기에는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한 대구경인 76.2mm포를 주포로 장비하였으며, 미국크리스티 현가장치는 경쾌한 기동력을, 넓은 캐터필러는 극한지에서의 기동력을 보장하였다. 차체와 포탑의 전/측면 장갑부에 크게 60도급 피탄경사설계를 도입하였다.

독소전 극초기에는 주력 대전차포의 구경이 대부분 37mm에 그쳤기에 전면에서 T-34에게 유효한 타격을 입힐 수 없었고, 이는 방심하던 독일군에게 큰 충격을 불러왔다. 기존에 독일의 주력 대전차포인 37mm Pak 36은 T-34의 장갑앞에서 무력했기 때문이며 결국 PaK 36이 "도어 노커"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 된다. 물론 105mm 야포나 8,8cm FlaK를 사용하면 격파할 수 있었으나 그 이외에는 대응 수단이 마땅하지 않았다. 그후 독일군은 5cm PaK 38과 이를 선회포탑에 장착한 3호 전차 J형을 투입해서 어느정도 T-34를 상대할 수 있게 되었으나 5cm 포도 귀한 APCR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확실하진 못했고 결국 7.5cm포를 배치하여 동등한 전력으로 사용 할 수 있었다.

이 형식을 보통 T-34-76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생산 시기에 따라 꾸준히 개량이 가해졌기에 주포가 같은 T-34-76이라고 하더라도 1943년형처럼 연도에 따라 별도로 구분하는 게 옳다.

경쾌한 기동성과 상당한 화력, BT 고속전차로부터 물려받은 경사장갑 설계로 당시 3/4호 전차가 주력이던 독일군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이후 독일군은 T-34의 장점을 적극 도입한 5호 전차 판터를 새 주력으로 개발하는 등 기갑전력 개선에 박차를 가하지만 이미 서서히 수세에 돌입한 상황에서 독일의 국력은 소련을 따라가기에 역부족이었다.[출처필요]

독일은 제2차 세계 대전 중기에 유럽 대부분의 자원과 공업력을 장악했기에 잘만 운용했다면 풍족한 자원과 함께 엄청난 공업 생산력을 갖출 수도 있었으나 전통적인 장인 위주 공업 시스템 때문에 품질은 매우 우수한 반면 생산성은 낮았는데, 인력난으로 이 숙련공들까지 하나둘씩 징집되면서 그 자리를 전쟁 포로들이나 동유럽에서 징집된 노동력으로 때울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들은 직접 싸우는 대신 마지못해 만드는 물건의 기본적인 품질도 저하시키는 식으로 저항했다[12]. 많은 사람들의 인식과는 달리 독일은 1941년 즈음엔 이미 총력전 체제에 들어섰으나, 기업들의 낭비와 비효율적인 전시경제체제의 운영으로 인해 공업 효율이 극도로 나빴다. 프리츠 토트 - 알베르트 슈페어 등의 생산개선을 거쳐 독일의 생산력은 1944년 즈음에는 소련과 맞먹는 수준까지 올라갔지만 이미 전세의 주도권이 뒤집힌 상태였다.

반면 소련은 독소전 초기에 주요 공업 지대를 죄다 빼앗겼고 대전 중기까지 미국이나 영국으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도 받지 못했음에도[13] 빠른 총력전 돌입과 저품질 대량 생산에 의해 여전히 독일에 뒤지지 않는 생산력을 발휘했다. 초기에 소련군 병기의 품질은 독일에 비해 훨씬 떨어졌지만 공장의 규모가 커지고 갈수록 경험이 쌓이면서 생산 속도는 더 빨라지고 품질도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고로 전쟁 초반에는 품질이 높고 하나 하나가 강한 병기를 가진 독일군이 매우 우세했으나 숙련공의 느린 양성 속도 때문에 생산량도 답보 상태였고, 전쟁에서 밀리면서 갈수록 연합군의 집요한 폭격으로 공업력과 자원줄도 떨어져 가니 뒤늦게 총력전에 돌입해서 비숙련공을 돌리기 시작해도 이들이 쓸 여유 자원도 공업력도 부족해진 독일에 비해 경험과 규모에 의해 갈수록 더 많이, 쓸만한 품질의 병기가 튀어나오는 데다 랜드리스에 의한 추가적인 자원과 영토 해방에 의한 공업력과 인력까지 추가된 소련의 생산시스템은 대전후기의 생산력 차이를 엄청나게 벌려버렸다.

독소전쟁 발발 시점에서 소련군이 배치한 T-34는 960대(생산은 1,220대)였고 이는 독일군이 동원한 전차 3,000여 대 중에 3호 전차4호 전차의 수량이 약 2천 대 정도였음을 감안해 보면 그렇게까지 모자르지는 않을 정도의 숫자였다. 그러나 막 새로이 배치된 신형 전차다보니 제대로 운용할 줄 아는 승무원 및 정비 인력이 거의 없을 정도였고, 대숙청으로 인해 지휘체계에 심각한 혼란이 발생한 데다 예비 부품과 탄약비축량마저도 극히 부족해[14] 거의 힘을 쓸 수 없었다.[15] 심지어 한 소련 육군 전차병은 '파시스트 놈들 땅크는 펄펄 날아다니는데 이 쌍놈의 T-34는 조금만 달려도 퍼져버린다. 변속기도 독일 놈들이 더 좋았고, 우리 건 엿이나 바꿔먹으면 딱 맞는다.'고 했다.[16] 물론 소련도 독일처럼 중전차를 가지고 있었지만 소련의 중전차는 독일의 중전차와 다르게 대전차전보다는 전선 돌파나 보병 지원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소련의 교리상 대전차전은 T-34와 SU-85/100이 우선 투입되었고 IS-2와 ISU-152는 필요하다면 대전차전에 투입되는 정도였다.

이는 전훈의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된 바가 컸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전투가 이어진 스페인 내전에서 운용된 소련제 전차는 본질적으로 장갑이 얇은 경전차인 데다가, 호위 보병없이 단독으로 운영되는 대실수를 저지르는 등의 삽질이 겹쳐져서 그다지 활약을 못하고 보병에 큰 피해를 입었는데, 공화국군의 군사고문으로 갔던 소련 육군 장교들이 이것을 보고 한 목소리로 "대규모 전차운용은 별로 효과없고, 역시 전차는 보병에 딸린 보조역을 맡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소련 육군은 스페인 내전 이후 사단급 이상의 기갑부대를 모두 해체하고 기껏해야 보병사단에 부족한 여단이나 연대급으로만 기갑부대를 운용했다.

그러다가 독일군이 폴란드 침공, 프랑스 침공에서 대규모 전차운용으로 성공을 거두고 겨울전쟁에서 소련이 참패하면서 다시 예전대로 전차부대를 대규모로 편성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독소전쟁이 발발하고 신편되거나 재편중이었던 소련 육군 기갑부대는 아직 제대로 전투를 벌일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실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모스크바 방어전 이후에는 생산량도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하고 소련 육군 지휘관들이 전차의 집중운용 개념을 어느 정도 습득하고 활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서 1944년부터는 본격적인 개량형인 T-34/85에게 바통을 넘기고, 남은 T-34/76은 새로 보충되지 않고 전장에서 격파될 때까지 사용하다가 박살나면 T-34/85로 교체고, 박살난 전차는 쓸만한 부품은 다 뜯긴 후 방치되거나 고철로 변했다. 그래서 의외로 생산량에 비해 21세기 시점까지 남아있는 양은 매우 적고 대부분은 박물관에 전시된 상태다.

소련 육군의 드미트리 표도르비치 라브리넨코(Дмитрий Фёдорович Лавриненко, Dmitry Fyodorovich Lavrinenko) 근위상위는 T-34/76을 타고 두 달 반 동안 56대의 독일 전차를 격파했으나, 1941년 모스크바 전투 중 전사했다. 연합군 최고의 전차 에이스임에도 서방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으며, 소련에서도 묻혀 있다가 소련이 망하기 직전인 1990년에야 소련 영웅훈장을 받았다.

파일:external/director.io/Lavrinenko%20www.wio.ru.jpg

4. 연도별 형식

흔히 T-34가 만들기 시작해서 그냥 많이 만들었다고 알려진 것과 다르게 생산연도 및 공장에 따라 제각각 전차 모습이 달랐다. 대표적으로 포탑이나 포방패, 보기륜 모양 등을 달리했다.

육각형 포탑의 경우 기존 T-34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성능이 향상된 경우지만, 철제 보기륜 마냥 성능이 이전 생산형보다 오히려 더 떨어지는 경우가 존재했다. 이 경우 고무 타이어 공급에 차질이 빚어졌고, 상황이 워낙 급박한 상태에서 생산을 지속해야 했기에 발생한 문제다.

4.1. 1940년형

{{{#!folding 제원 펼치기/접기<table bordercolor=#556B2F><table bgcolor=white>소련 육군
T-34/76 1940년형 (L-11 장착형)
파일:attachment/T-34/ee.jpg 파일:attachment/T-34/t3.jpg
파일:external/c0f7c8cebed39daa24e934e529d95c9bb1ea15f47681a6a179bd62cef7272b98.jpg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 근방 베르흐냐야피시마 박물관에 전시중인 T-34 초기형.[17]
개발 및 생산
개발 설계국하리코프 설계국
생산공장코민테른 기관차 공장(KhPZ)
개발연도1939~40년
생산연도1940년
운용연도1940~41년
생산댓수117대[18]
운용국가소련
제원
전장5.92 / 5.98m (차체 / 포신 포함)
전폭3m
전고2.41m
전투 중량29.2t
탑승 인원4명 (전차장 겸 포수, 조종수, 탄약수, 기총사수[19])
공격력
주무장30.5구경장 76.2mm L-11 강선포 1문 (77발)
주포조준장치
상하 부각−~+°
좌우 회전각360°
부무장7.62mm DT 동축기관총 2정 (2,898발)
승무원 무장
기동력
변속기수동 5단 변속기
엔진V-2 12기통 4행정 수냉식 디젤 엔진
최고 출력500ps
출력비ps/t
현가 장치크리스티 현가장치
최고 속도45 / 15km/h (평지 / 야지 주행)
항속 거리300 / 200km (평지 / 야지 주행 시)
접지길이, 접지압력m, kg/cm²
초호능력m
초월능력m
등판능력°
잠수도하능력 / m (기본 / 잠수도하장비 장착 시)
방어력
장갑압연 균질 강철 장갑 및 주조 압연 장갑
장갑 두께 / 경사각도차체 전면 상단: 45mm / 60°
차체 전면 하단: 45mm / 53°
차체 측면 상단: 45mm / 40°
차체 측면 하단: 45mm / 0°
차체 후면 상단: 40mm / 47°
차체 후면 하단: 42mm / 45°
차체 상부: 16 ~ 20mm
차체 하부: 13 ~ 20mm
포방패: 45mm
포탑 전면: 45mm / 30°
포탑 측면: 45mm / 30°
포탑 후면: 45mm / 30°
포탑 상부: 16 ~ 20mm
}}} ||
T-34/76과 같은 분류법은 소련이 아닌, 독일에서 표기한 것으로 서방권에서는 /대신 -로 표기하여 T-34-76으로 표기했다. 1960년대 이후 동구권에서 발행한 T-34 관련 서적이나 잡지를 서방에서 입수한 이후부터는 더 세분화 된 분류가 가능하게 되었다. A-32가 1939년 정식 채택된 이후 1939년부터 40년까지 대략 소수만 생산되어 붉은 군대에 납품된 T-34 1940년형은 독소전쟁 발발 이전까지 기밀전차로 분류하여 전차병들은 훈련소에서만 볼 수 있었고, 방수포 등으로 씌어진 채 전국 각지의 훈련소로 배치되었다가 독소전쟁 초반에 급히 투입되었다. 대다수의 차량에 무전기가 장착되어 있지 않아서 협동 작전이 힘들었다고 한다. 주포 구경장이 짧아서 포 관통력도 낮았다.

4.2. 1941년형

{{{#!folding 제원 펼치기/접기<table bordercolor=#556B2F><table bgcolor=white> 파일:attachment/T-34/T-34-76_1941_001.jpg 파일:attachment/T-34/T-34-76_1941_002.jpg
파일:attachment/T-34/gl.jpg 파일:attachment/T-34/75.jpg
T-34/76 Obr. 1941
소련 육군
T-34/76 1941년형 (F-34 장착형)
개발 및 생산
개발 설계국하리코프 설계국
생산공장코민테른 기관차 공장(KhPZ)
우랄열차공장(UVZ)
니즈니 고브고로드 기계 공장(제112호)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STZ)
개발연도1941년
생산연도1941~42년
운용연도1940~42년[20]
생산댓수약 3,014 여 대
운용국가소련
제원
전장5.92 / 6.62m (차체 / 포신 포함)
전폭3m
전고2.41m
전투 중량25.6t
탑승 인원4명 (전차장 겸 포수, 조종수, 탄약수, 기총사수 겸 무전수)
공격력
주무장42구경장 76.2mm F-34 강선포 1문 (77발)
주포조준장치
상하 부각−5~+32°
좌우 회전각360°
부무장7.62mm DT 동축기관총 2정 (2,898발)
승무원 무장
기동력
변속기수동 5단 변속기
엔진V-2 12기통 4행정 수냉식 디젤 엔진
최고 출력500ps
출력비ps/t
현가 장치크리스티 현가장치
최고 속도45 / 15km/h (평지 / 야지 주행)
항속 거리300 / 200km (평지 / 야지 주행 시)
접지길이, 접지압력m, kg/cm²
초호능력m
초월능력m
등판능력°
잠수도하능력 / m (기본 / 잠수도하장비 장착 시)
방어력
장갑압연 균질 강철 장갑 및 주조 압연 장갑
장갑 두께 / 경사각도차체 전면 상단: 45mm / 60°
차체 전면 하단: 45mm / 53°
차체 측면 상단: 45mm / 40°
차체 측면 하단: 45mm / 0°
차체 후면 상단: 40mm / 47°
차체 후면 하단: 42mm / 45°
차체 상부: 16 ~ 20mm
차체 하부: 13 ~ 20mm
포방패: 45mm
포탑 전면: 45mm / 30°
포탑 측면: 45mm / 30°
포탑 후면: 45mm / 30°
포탑 상부: 16 ~ 20mm
}}} ||
붉은 군대는 1940년형과 1941년형을 전차병용과 지휘용으로 병행 생산할 예정이었으나, 독소전쟁 발발 이후 1941년형이 양산형으로 채택된다. 장포신의 42구경장 76.2mm F-34 강선포를 탑재하였으며, 1942년형과 43년형 역시 무장은 동일하다.[21]
2,800여 대가량이 생산될 예정이었으나 3,014대가량이 생산되었다. 하르코프에서 1,560대 이상, 니즈니 타길에서는 25대, 112번 공장에서는 173대, 스탈린그라드에서는 1,256대가량이 생산되었다.

또한, 생산 공장마다 약간씩 형태가 달랐다. 이는 당시 각 공장마다의 방식으로 스스로 문제점을 해결하여 생산했기 때문이다. 레드 소르모프 작업장은 76.2mm 포탄의 탄피를 이용해서 엔진시동에 필요한 압축공기탱크를 제작했다.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은 포탑이나 차체를 주조방식으로 제조하여 번거로운 압연방식과 오랜 시간이 드는 용접방식을 대체했다. 공장의 주력인 주물 시설을 이용한 것이다. 또한 보기륜을 감싸는 고무의 공급이 부족해지자 철제 보기륜을 제작하기도 한다. 여기서 생산된 보기륜은 후에 T-34-85의 신형 경량화 보기륜으로 이어진다. 특히 스탈린그라드에서 생산된 전차는 생긴 직사각형의 엔진룸 덮개와 특유의 육각형 포탑으로 단박에 구분할 수 있다. 독일군들이 스탈린그라드 코 앞까지 와도 밤낮으로 트랙터 공장 노동자들은 쉬거나 대피하지 않고 전차를 생산했다. 생산하는 즉시 도색도 안 한 상태로 바로 투입되었을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기에 불필요한 부분의 공정을 최소화시켜 생산력을 올렸다.

4.3. 1942년형

1942년형은 공장마다 형태의 차이가 컸다. 그 이유는 UTZ와 우랄마쉬, ChTZ의 경우 공장이 위치한 지역이 매우 안전하였기에 6각형 포탑 등 개량형을 설계하고, 생산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전선 코 앞의 STZ의 경우는 개량은 무슨... 공장도 언제 폭격당할 지 모르는 상태였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포탑은 용접으로 제작됐고 보기륜은 통짜 철제, 불필요한 부품은 빼서 도색도 안한 상태로 바로 투입되었다.
  • 용접 포탑
  • 주조 포탑
파일:external/www.the-blueprints.com/t_34_76_1942-06691.jpg

무겁고 열기도 힘든 탓에 러시아식 만두인 피로조크라고 불리기까지 한 대형 해치가 가벼우면서도 방탄성이 있는 2인승 해치로 재설계되어 탈출시에는 전차병이 더 빨리 탈출할 수 있게 되었고, 포탑 또한 약간 대형화되었다. 두 개의 둥그런 해치를 수직으로 활짝 열어제낀 상태의 T-34를 정면에서 보면 영락없는 생쥐 얼굴로 보여서 독일군은 이떄부터 T-34를 미키 마우스라는 애칭(?)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43년형이 본격적으로 실전에 투입된 1943년부터 T-34의 비공식적인 별명이 된다. 노잼민족으로 정평이 있는 독일인이 붙인 별명치고는 센스있다는게 중평.

문제는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에서 생산된 전차인데... 당시 고무 부족으로 통짜 철제 보기륜을 제작하여 달았다. 이는 정말로 끔찍한 소음을 유발했으며, 전차병들은 이 소리를 참고 다녔다. 포탑 역시 주조형으로 1941년형보다도 오히려 비좁았다.

4.4. 1943년형

기존의 1942년형 육각형 포탑에서 전차장 큐폴라가 추가된 형태로 1943년 후반부터 1944년 초반까지 생산되었다. 흔히 1942년형과 혼동된다. T-43 개발 소식을 들은 독일은 이 형식이 T-43이라고 착각했고, 이후 T-34-85가 나오자 또 T-43으로 착각했으나 알다시피 둘 다 틀렸다.

5. 개량형

5.1. T-34-57

{{{#!folding 제원 펼치기/접기<table bordercolor=#556B2F><table bgcolor=white> 파일:external/upload2.inven.co.kr/i11470293359.png 파일:attachment/T-34/do.jpg
단 한 대만 남은 T-34-57 생존 차량으로 똑같이 한 대만이 남은 T-34 1940년형의 생존 차량이 바로 앞에 전시되어 있다. T-34-57 1943년형의 프로토타입으로 단 한 대만이 존재했다.
소련 T-34/57 중전차
<1941년형 제원>
전장 6.68m
전폭 3.00m
전고 2.45m
전비 중량 26.5t
탑승 인원 4명 (전차장[22], 조종수, 탄약수[23], 무전수[24])
엔진 V-2 12기통 4행정 수냉식 디젤엔진
최고 출력 500hp
현가 장치 크리스티 현가장치
최고 속도 55km/h
항속 거리 400km
주무장 73구경장 57mm ZiS-4 강선포[25] 1문 (77발)
부무장 7.62mm DT 동축기관총 2정[26] (2,898발)[27]
생산 댓수 '''51대"'[28]
}}} ||
왼쪽이 T-34-57, 오른쪽이 T-34-57 1943형 프로토타입이다.
T-34와 KV-1에 탑재될 예정이었던 76mm F-34 전차포의 생산량이 딸려 조달에 차질이 빚어지자 소련군은 대체할 주포가 필요했다. 때마침 1941년에 제식 채용된 57mm ZiS-2 대전차포는 기존 76mm L-11보다 관통력이 월등했고, ZiS-2를 ZiS-4로 개선시킨 뒤 T-34에 탑재시킨다. 따라서 T-34-57은 T-34와 비슷한 시기에 개발되었기 때문에 주포를 빼고 모든 면에서 동일했다. 이는 개발계획의 통합에 따른 것이다.

주포인 57mm 대전차포는 73구경장의 장포신으로 관통력에서는 76mm 전차포보다 엄청난 성능을 자랑했다.[29] 하지만 철저하게 대전차전만 감안한 나머지 고폭탄의 개발이 지지부진했고[30], 양산된 양도 적었으며, 57mm 고폭탄의 성능도 거의 수류탄 수준이라서 의외로 대보병전이나 대참호전 같은 곳에서는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중대한 약점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소수가 양산된 T-34/57은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T-34/76과 함께 제대로 된 부품 및 탄약지원없이 전장에 투입되었으며, 안그래도 신형전차인 T-34라서 유지보수 능력이 기본적으로 모자란데다가, 전용 주포는 76mm와 호환되지 않기에, 별도로 제조된 탄까지 필요한 관계로 T-34/76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투입된 다수의 전차가 제대로 활약도 못 해보고 격파당했으며, 살아남은 소수는 간헐적으로 보급되는 약간의 탄약과 물자에만 의지해서 주로 대전차전 전용으로 쓰이다가 소모돼서 사라진다. 이후 독일의 티거가 등장하자 티거를 상대하기 위해 양산이 고려되어 신형 T-34-57이 테스트되었으나, 독일이 판터까지 들고 나오자 작은 탄자를 매우 빠른 탄속으로 관통력을 얻는 방식은 비슷한 수직 관통력을 보이는 대구경, 중포신포보다 경사장갑에 더 취약함이 드러나 실전에 투입되진 않는다. 결국 이 개량형 T-34-57이 원래 추구했던 대전차 성능 개량은 85mm형으로 해결된다.

소련의 기술력이 후달려서 ZiS-2 포신을 대량으로 조달하지 못했느니 하는 소리가 있는데 포신 제작에 물론 고도의 금속 가공 기술이 필요하긴 하지만 산업화된 현대 군대에서 없어선 안될 필수품 중 필수품이고 독일 제2 제국의 파리 건, 독일 독일의 88/71, 15인치 이상의 전함/해안포 주포 등 극단적인 성능과 형상을 갖는 게 아닌 한 구경이나 길이가 달라진다고 제작 난이도가 크게 높아지진 않는다. 정밀도, 내구성 등에서 경쟁 국가 대비 열세였을지는 몰라도 이런 걸 못 만들 정도로 소련의 공업력이 후달리지는 않았다. ZiS-2는 종전까지 대전차포로써 9600대가 생산되었다는 것을 보면 완전한 유언비어.(참고로 ZiS-4와 ZiS-2는 같은 포를 의미한다. 단지 ZiS-4는 ZiS-2를 전차에 설치한 것을 뜻함.)

5.2. T-34-85

{{{#!folding 제원 펼치기/접기<table bordercolor=#556B2F><table bgcolor=white>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34-85_-_TankBiathlon2013-08.jpg
탱크 바이애슬론에 참가 중인 러시아군 소속 퍼레이드용 T-34-85
소련 T-34/85 중(中)전차
<1944년형 제원>
개발연도 1943년
생산연도 1943 ~ 1951년[31], 1952 ~ 1958년[32], 1953 ~ 1955년[33]
생산 댓수 약 65,800여 대[34]
운용 연도 1944 ~ 1958년[35]
운용 국가 소련,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북한[36], 그 외 여러 국가.
전장 6.10m / 8.10m (차체 전장 / 포신 포함 시)
전폭 3.00m
전고 2.70m / 0.40m (차체 전고 / 포탑 전고)
전비 중량 32.2t
차체 전면 상단 장갑 / 경사 각도 45mm / 60°
차체 전면 하단 장갑 / 경사 각도 45mm / 60°
차체 측면 상단 장갑 / 경사 각도 45mm / 45°
차체 측면 하단 장갑 / 경사 각도 45mm / 0°
차체 후면 상단 장갑 / 경사 각도 45mm[37] / 45°
차체 후면 하단 장갑 / 경사 각도 45mm / 45°
차체 바닥 장갑 20mm
차체 상면 장갑 20mm
포방패 장갑 90mm
포탑 전면 장갑 90mm /
포탑 측면 장갑 / 경사 각도 75mm / 75°
포탑 후면 장갑 / 경사 각도 52mm / 52°
포탑 상면 장갑 25mm
탑승 인원 5명 (전차장[38], 조종수, 포수, 탄약수[39], 무전수[40])
엔진 V-2 12기통 4행정 수냉식 디젤엔진
최고 출력 500hp
출력비 15.6hp/t
현가 장치 크리스티 현가장치
최고 속도 55km/h / 25km/h (평지 주행 시 / 야지 주행 시)
항속 거리 250km / 220km (내장 연료 탱크 적재 시 평지 / 야지),
340km / 310km (외장 연료 탱크 추가 적재 시 평지 / 야지)
주무장 52구경장 85mm D-5T 강선포 1문[41]
54.6구경장 85mm ZIS-S-53 강선포 1문[42] (58 ~ 60발)
부무장 7.62mm DT 동축기관총 2정[43] (2,898발)[44]
}}} ||

초기형 T-34들이 불리한 조건에서 독일군의 전차들을 상대로 분전하며 활약했지만, 반면 한계도 분명했다. 특히 단순 스펙상으로는 우세했으나 관측 및 통신장비가 부실하고 포탑이 너무 작아 전차장이 포수를 겸해야 하는 등, 종합적인 전투 효율에서는 단점도 많았다. 이 문제는 꾸준한 개량으로 포탑을 대형화 시키고 전차장석을 독립시키며 큐폴라를 장비하는 등의 성능 향상으로 부분적으로 해결했으나, 본질적으로 2인용 포탑이라는 것을 개선하지 않은 데다가 1942년 이후 독일군이 4호 전차의 주포를 개량(단포신 7.5cm에서 장포신 7.5cm로 재장착.)하면서 관통력에서 약간 밀리고 티거, 판터 등의 신형 전차들을 개발하기 시작하자 근본적인 공격력이 답보 상태라 질적으로 압도적인 열세에 처하기 시작했다.

결국 대대적으로 화력을 개선한 것이 T-34/85. 외관상으로도 3인용 대형포탑과 장포신 주포로 인해 T-34/76과 비교하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차체 전면 장갑은 여전히 60도 정도의 45mm 경사 장갑이었고 포탑도 사방이 균등하게 52mm에 불과했으나, 1944년 채용된 신형 포탑의 전면 장갑은 90mm로, 측면 장갑은 75mm로 강화되어 기존 생산형보다 방어력이 대폭 향상되었다.

주포로 채택한 54구경장 85mm 포는 구경에 비해서 관통력이 떨어졌지만 APCR을 사용할 경우 이론상으로는 1km 이내의 표준교전거리에서도 티거의 정면장갑을 관통할 수 있었다.

기존의 76mm 주포는 본래 ZiS-3 계열의 경야포를 개수한 것이라 고폭탄의 위력은 그렇다해도 구경에 비해 실질적인 장갑 관통능력이 약하여 독일의 50mm급 대전차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아직 장갑이 50mm 수준에 머물렀던 초기형 3호, 4호 전차를 상대로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티거 상대로는 사실상 측후면조차 거의 관통이 불가능했다. 티거야 일종의 중장갑 기병 개념으로 운용되는 중전차계의 괴물이니 그렇다 쳐도, 1943년부터는 그동안 만만했던 4호 전차조차 전면장갑을 80밀리로 강화하며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화력이 크게 부족해졌다. 그럼에도 4호 전차는 76mm 주포로 어느정도 계속 상대가 가능했지만 새로 쏟아져 나오는 티거나 판터에게는 답이 없었다.[45]

이를 해결하기 위해 85 mm 포로 교체한 결과, 기존의 76 mm 주포탑재형에 비해 독일 전차와 충분한 교전 능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수치상의 결과이고, 이론상은 관통력과 실전에서 발휘되는 관통력은 상당히 달랐다. 한때 독일군은 실제로 85 mm를 자군의 88 mm와 동급으로 분류했으나, 1944년 겨울의 독일 병기국 보고서는 소련군의 85 mm 철갑탄은 티거의 전면 장갑을 상대로 500~600 m 정도에서나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으로 기록했다. 물론, 1,000 m이상의 거리에서 명중을 못 하는 것은 아니며, 실제 관통할 수 있는 거리상으로 그런다는 말이다. 이것은 독일보다 러시아의 포탄 제조기술이 성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전후의 기록을 연구한 후대의 연구자들도 85 mm를 88 mm가 아닌 75 mm PaK 40과 거의 동급으로 보고 있을 정도이다.[46] 결론은 제한적이지만 개별적으로는 85 mm포로 4호부터 판터까지 기존보다 수월하게 적을 상대로 싸울 수 있게 되었다고 보면 된다. 물론 위의 수치가 항상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독일군도 예전처럼 T-34를 만만하게 볼 입장은 못 되었다. 그 사실은 야전 지휘관들과 전차병들이 실전을 겪으면서 금방 알았다.

다만 85 mm 전차포가 활약할 수 있는 정도가 제한적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티거, 판터를 상대한 때이고, 다른 독일 전차 상대로는 85 mm의 화력은 충분함을 넘어 오버파워 그 자체였다. 이전까지의 T-34는 독일의 4호 전차를 상대할 때조차도 화력이 충분치 않았지만, 그때는 나름의 효과적인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표적획득 및 정밀조준능력, 그리고 조직적인 전투에 필요한 각종 부가적 요소들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4호 전차가 더 우세한 부분이 있었으나, 전차전에 대한 숙련도가 슬슬 향상되고 점차적으로 그런 문제가 개선되어가는 소련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해볼 만한 상황이 되었으며, 티거나 판터에도 숫적 우세가 확보되면서 충분히 위협할 수준이 되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T-34/85전차가 대량으로 투입되었다는 사실은 티거나 판터 입장에서도 절대로 좋은 소식이 아닌 것이다. 76 mm 탑재형 T-34 상대로는 정면에서는 중단거리에서도 견딜 수 있는 티거전차와 판터전차였지만 T-34/85가 출현하면서 티거는 500 m~600 m 정도의 중단거리에서는 정면장갑이 관통당할 수도 있는 위험에 처했고, 판터는 정면은 80 mm 경사장갑이라 실제는 140 mm의 수직장갑 수준의 방어력을 가져서 정면은 안전하다 해도 약점인 측면은 더 쉽게 관통당할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다. 개별적으로야 훨씬 우세한 티거와 판터였지만, 생산물량이 독일보다 크게 우세한 소련 군대의 입장에서는 예전의 76 mm 탑재형의 숫자만큼 85 mm 탑재형 T-34/85를 엄청난 물량으로 밀고올 것인데 중단거리에서 위험에 안 노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독일군 지휘관들과 전차장들도 금방 알아챘다. 거기에 더해 티거와 판터는 단가나 자원과 제작시간이 T-34/85보다 많이 드는 전차라 부대의 전력 손실이나 보충에 불리했다. 이런 문제들이 IS-2의 존재와 같이 티거2를 개발하게 된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실질적인 주력 전차였던 4호 전차 입장에서는 사형선고나 같았다. 이미 T-34/76과 싸움에서도 숫자를 T-34보다 압도적인 주포와 기계 설계의 우월성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포만 보자 하면 75 mm 48구경장과 거의 동급인 85 mm를 가진 전차가 오로지 숫자로 밀고 나왔으니, 물량에 지쳐서 우세를 점하기 힘들게 된 것이다. 44년부터는 4호 전차도 3호 전차처럼 끝없는 소모전에 휘말려 들어가서, 나중에서는 포탑 회전 모터 제거를 비롯한 염가형 버전인 4호 전차 J형이 나오게 됐다.
포(탄종) 100 m 500 m 1000 m
76 mm M1A1 (APCBC M62) 125 mm 116 mm 106 mm
76 mm M1A1 (HVAP M93) 239 mm 208 mm 175 mm
7.5 cm KwK 40 L/48 (APCBC Pzgr.39) 135 mm 123 mm 109 mm
7.5 cm KwK 40 L/48 (APCR Pzgr.40) 176 mm 154 mm 130 mm
85 mm D-5T (APBC) 139 mm 123 mm 105 mm
85 mm D-5T (APCR) 175 mm 136 mm 100 mm

소련제 85mm 주포는 동 시기 미국의 3인치 포인 76mm M1 계열이나 독일의 7.5cm KwK 40 L/48과 비교했을 때, 구경이 크기 때문에 고폭탄의 성능과 주력탄 관통력이 뛰어났다.[47] 다만 정말 운빨을 받았을 때나 어쩌다가 한 발쯤 받을 수 있는 APCR을 굳이 가져와서 비교하자면 비교적 떨어지는 성능을 보이는데 76mm M1A1과 비교하면, 고속철갑탄의 관통력은 약 "70mm"가량 뒤쳐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7.5cm KwK 40 L/48과의 비교에서도 500m까지는 비슷하지만 그 후부터는 관통력 차이가 크게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이는 당시 소련의 금속가공능력으로도 일선에서 요구하는 엄청난 숫자의 경심철갑탄을 찍어내기 위해 기준을 좀더 널널하게 잡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전쟁 후기에는 오직 소련군만이 APCR을 각 전차 한 대당 4발을 지급할 정도[48]가 됐다.

이 전차의 기동력과 생산성을 높이 평가한 소련군은 T-34의 하부 차체를 그대로 이용하여 SU-85, SU-100, SU-122 같은 자주포들을 대량으로 만들기도 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Oskin_A_P_2.jpg
알렉산드르 오스킨[49]
여담으로 티거 2는 첫 실전 투입에서 T-34/85 한 대에게 3대가 격파되는 굴욕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당시 해당 전차병들 간의 숙련도 차이를 생각해도 전설로 남을 업적이다. 참고로 이때 해당 T-34/85의 전차장이 알렉산더 오스킨 중위였다. 이 일화는 고바야시 모토후미의 만화 도로 위의 괴물의 이야기들 중에도 들어있다. 다만 T-26부터 몰았던 오스킨 중위의 경력에서 보듯이 1944년 경에 소련군 기갑부대도 세계최강 독일기갑부대를 3-4년간 상대하느라 숙련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야전 기동은 독일군에 딱히 뒤쳐지지 않았다. 1944년 바그라티온 작전쯤에 소련군도 나름대로 독일군 못지 않은 기갑전력을 보유하게 되었다.[50][51]
파일:external/5a8fcb59f3fedea55e4566d6eb3f5502a5f28cc0c77c8c28c0f75320400bf96f.jpg 파일:external/32925a923279e437303139a36a15f8b2744d7398d93ca6963e76bb68cee583c2.jpg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의 T-34들[52]

제2차 세계 대전 중종반에는 독일군의 기갑전력이 상당히 감소한 대신, 판처파우스트 등의 보병용 대전차화기의 위협이 증가하였다. 이로인해 사진처럼 철망을 가져다가 4호 전차의 쉬르첸처럼 증가장갑을 부착하고 운용한 사례도 많았다.[53] 원시적인 슬랫아머의 시초이다. 사진은 1945년 4월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 앞의 소련군 T-34/85이다.

5.2.1. 1943년형 (D-5T 장착형)

거의 T-34-85의 프로토타입 차량의 생산형으로 보는 것이 옳다. 85 mm KS-12 대공포를 전차포로 개수한 53구경장 85 mm D-5T 전차포를 주포로 탑재하였다. 아직 승무원은 기존 T-34와 같이 4인이 탑승했으며, 포탑 형태가 1944년형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5.2.2. 1944년형

T-34-76 1943년형이 1944년 초반에 생산 중지되고 같은 해 중반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초기형이다. 주포가 54.6구경장 ZiS-S-53 전차포로 변경되었으며, 승무원은 대형화 된 3인승 포탑으로 5명이 탑승하였다.

니즈니타길의 제183호, 니즈니 노브고로드의 제112호, 옴스크의 제174호 공장에서 생산되었으며, 공장 생산분마다 포탑의 용접선이나 환풍기, 큐폴라의 배치나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초기형은 설계 문제로 사격 후 장약 연소 가스의 역류를 방지하지 못해 포탑 내부에 가스가 머물렀는데, 이를 배출하기 위하기는 오로지 환풍기에 의지해야만 했다. 종전 후는 생산형에서부터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

6. 파생형

6.1. T-34-100

파일:external/www.tankinfo.ru/T-34-100_lb-1.jpg
1946~47년 사이에 등장된 프로토타입으로 신형 T-54가 장비하고 있던 100 mm D-10과 비슷한 주포인 100 mm LB-1 전차포를 장착하였으나, 차체 신뢰성 부족으로 생산되지 않고 T-54가 더 많이 생산됐다.

7. 현대화 개량형

생산량이 많은 만큼 동구권 국가에서 현대화 개량형으로 개수되거나 일부 중동 국가에서는 포탑에 곡사포를 장착한 고정포로 개수되었다.

7.1. T-34-85M

파일:external/ftr.wot-news.com/untitled.jpg
T-34-85의 보기륜을 T-55/62의 보기륜으로 교체한 현대화 개수형으로 기존의 포탑 권총구와 차체 동축 기관총이 폐지되었고, 포탑과 차대에 짐걸이나 손잡이를 새로 설치하였으며, 엔진 역시 T-54의 엔진으로 교체된 형태도 있다. 소련 말고도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비슷하게 개조가 시행되었다. 심지어 북한에서도 개조한 형태로 퍼레이드에 등장한다.

7.2. T-34-100

파일:external/serkoff.narod.ru/t-34-100-002.jpg
이 T-34-100은 소련이 아닌 이스라엘에서 100 mm 주포를 장착한 마개조 포탑이다.

7.3. T-34-122

파일:external/i231.photobucket.com/T12220REAR1.jpg

8. 생산

파일:external/kotenikkote.files.wordpress.com/1107.jpg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파일:external/img11.nnm.me/d628a2534694c19abbb765c6145.jpg
승전 직후 모스크바에서.[54] 뒤에 있는 저 점들도 다 T-34이다.
파일:external/892315ba7027fb6e7949498e6b86b081aa9d5da724edcb3186d20bf9a86b80ed.jpg
생산량에 관련된 유명한 이미지[원문][56]

1941년 당시 소련의 전투/전투근무 지원능력은 매우 열악해서 많은 T-34들이 퍼진 채로 줄줄이 노획되거나 자폭했다. 원수같은 쿨리크 원수의 방해 때문에 예비 부품과 구난전차가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1942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사실 독일군의 진격을 피해서 원래 있던 공장부지에서 생산시설만 간신히 빼돌렸다가 황무지에 대충 건물 세워서 총력전명목으로 비숙련공까지 동원하여 가동시킨 공장에서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T-34는 비교적은 복잡했고, 주력으로 양산을 하려고는 했으나 설비가 뒤떨어져 41년 당시에는 경전차들을 더 많이 생산했고, 42년에도 경전차가 거의 중형전차만큼 양산되었다. 이 시기에는 터져나간 수보다 훨씬 많은 T-60 경전차와 T-34를 만들어내서 버틴 거나 같다.[57] 이 찍어낸 전차에 탑승할 승무원들은 바로 스탈린의 강제적인 농업 집단화로 만들어졌다고 과언이 아니다. 집단농장에 수용한 농민들에게 집단기계화 영농을 위해 대대적으로 트랙터, 콤바인의 운전교육을 시켰는데, 이때 교육받은 트랙터 및 콤바인 운전사들을 바로 전차운전병으로 징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집단농장화가 농업의 생산성은 극도로 떨어뜨렸지만 전차병 양산에는 도움을 주었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개별 부품의 신뢰성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1940~1941년형이 1942년 이후 형식보다 더 우수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겨우겨우 시베리아로 뜯어옮긴 공장에서 여성, 노인, 소년 같은 비숙련공들이 완성도가 어떻든 일단 닥치는 대로 뽑아대던 1942년도에 생산된 T-34/76는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Studies 28-1호에 실렸던 보리스 카발레르칙의 Once Again About the T-34에서 설계상 보장시간이 100시간밖에 안 되었으며, 이마저도 야전에서는 고작 70시간 정도뿐이라는 매우 뒤떨어진 신뢰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까였다.

하지만 소련 기술자들이 바보였기에 부품의 내구성을 깎아먹은 것은 아니다. 이는 제1차 5개년 계획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계획적 구식화(Planned Obsolescence)의 개념을 미국 기술자들[58]에게서 배워와서 써먹었기 때문이다.[59] 한창 독일이 침공하고 공장을 철도로 옮기던 1942년에 T-34의 기대 수명은 공장에서 생산된 후 약 6개월 미만이었고, 생존 기간에 전략 기동 거리는 약 1,500 km에 불과했으며, 전투에 돌입하면 평균 생존 시간은 14시간에 그친다는 연구 결과가 도출되었다.[60] 즉, 개별 전차가 평균적으로 1,500 km 가량을 기동하고 격파당하는 상황에서 개별 부품의 설계 수명을 그 이상으로 늘리는 데 투자하는 것은 오히려 자산과 인력의 낭비라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부품의 설계 수명은 야지에서 시속 20 km의 기동을 70시간 정도를 버틸 수만 있게 저렴한 재료를 투입하고, 품질 관리를 최소화하고, 조금이라도 복잡한 부품은 최대한 생략하거나 간략화하였으며, 그리 아낀 생산 역량으로 악착같이 더 많은 T-34와 살아남은 T-34에게 배급할 예비 부품을 생산했다. 그 결과로 1943년에 T-34의 대당 생산 비용은 14만 루블로 1941년 27만 루블의 절반으로 줄었다.

하지만 숫자로 메꾸는 것에도 문제가 있었던 위기상황이 닥친 적도 있는데, 폭증하는 손실에 비해 생산된 전차의 전선 배치 속도, 승무원 훈련의 적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76 mm형의 구식화와 85 mm형의 개발로 인한 차종 변경 문제 및 재고 차량 처리 때문에 1943년 12월 시점에는 1만 8천 대가 넘는 재고 전차를 후방에 안은 상태에서, 독일군과의 가용 전차 비율이 역대 최저 수준인 1.7:1까지 떨어지는 참사를 겪기도 했다.[61]

물론 소련군이 그냥 구식 전차에 승무원이 바보라고 해도 닥치는 대로 그냥 밀어넣었으면 이제 독일군은 끝장이나 마찬가지였을 테지만, 형벌 부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시점에 이르면 독일 독일의 슬라브인 민간인 학살 정책[62]과 전사자들로 소련에서 병사가 될 남자가 바닥나기 시작한 때이다. 따라서 위의 상황이 닥치자 그야말로 승승장구로 잘나가는 전선에만 전차를 몰아주는 극약처방을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당장 T-34의 생산량을 감안하면 단순계산만으로도 전차병이 336,000명이 필요하게 되는데,[63] 아무리 격파된 전차에서 승무원이 살아남아서 다른 전차를 올라타는 경우가 많다고 해도 100% 승무원이 생존하는 경우보다는 보통 1명 이상이 죽고, 1명 이상은 심각한 부상을 입어서 전투능력을 영구적으로 상실하는 경우가 많으며, 전차가 폭발해서 승무원이 몰살당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전차를 몰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이 좋은 인원을 함부로 소모하는 것은 당시 소련의 인적자원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64]

이런 위기상황은 1944년 중반쯤에 완전히 극복되었는데, 총력전에 동원된 비숙련공들이 숙련공[65]이 되어 품질도 생산성도 모두 증가했고 미국의 원조로 기술적으로 부족했던 부분에 대한 보강도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무전기 등 부품의 신뢰성이 좋아진 덕분에 물량과 품질 양면에서 독일군에게 본격적인 지옥을 보여주게 된다. 당장 위의 위기상황도 한 달 남짓한 사이에 4:1 수준으로 전력격차를 벌렸다.

41년 당시 초기형 T-34/76의 가격은 270,000루블 수준이었으나 이 가격은 급격히 떨어져 44년, 초기형보다 훨씬 더 튼튼하고 거대한 포탑과 더 큰 주포, 더 뛰어난 부품을 장착하여 그 전보다 30%가량 가격이 상승했다는 비싼 신형 T-34/85조차 고작 160,000루블에 불과했고, 45년에 이게 또 140,000루블 수준으로 떨어졌다. 생산시간 또한 초기형보다 절반의 시간만 요구되었으며, 완성도까지 더 높았다. 45년 3월 시점, 독일군이 동부전선 전체를 통틀어 고작 300대의 판터를 굴린 때 소련은 T-34를 한 달에만 1200대씩 찍어내고 있었다.

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read?articleId=15868287&bbsId=G005&itemId=143[66]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RC_T-34_1950.jpg
1950년 자금성 앞에서 퍼레이드를 한 중국 인민해방군 육군의 T-34/85.

전후에도 대량 생산되었으며, 대전 후에는 소련 영향 아래에 들어간 동유럽 공산 위성국들이나 세계 각국의 친소 국가들에 대량으로 공여되었다. 56년 형가리 혁명에 투입되었다가 박살난 소련 T-34/85도 있고 베트남 전쟁 때도 T-54/55/59식에 비하면 구식이긴 하지만 소수의 SU-76, SU-100과 함께 T-34들이 투입되었다. 그리스 군사정권이 쿠데타를 일으킨 때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 T-34들은 74년 키프로스 전쟁에도 참가했다. 중동전쟁에서도 역시 SU-100 같은 구형 소련 차량들과 함께 T-34가 사용되었다. 중동권에서는 현지 개수를 가해 1980~1990년대까지도 굴러다녔고, 아프리카 일부 빈국에서는 아직도 현역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셔먼 전차와 T-34 중 어느 쪽이 먼저 현역에서 사라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상태이다.

이 기적의 생산량은 종전 25년 뒤,볼가 강에 세워진 공장에서 나온 또 다른 자국 내 자동차가 이어가게 된다.

9. 조선인민군 육군

공산권 대량 공여의 결과로 한국전쟁 당시 북한 육군이 운용했던 전차이기도 하다.

파일:external/kcm.kr/39de75328bfa517563555a8d1e8c9149.jpg
T-34-85 중형전차, 서울시청 앞의 조선인민군 육군 215번 전차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34_knocked_out_September_1950.jpg
미군에게 격파된 북한 육군 소속 T-34/85

파일:external/41.media.tumblr.com/tumblr_nb6the7Qdt1rcoy9ro1_1280.jpg
한국전쟁 발발 당시 서울에 진주한 북한 육군의 모터찌클 부대와 T-34/85

T-34/85는 북한군에게 개전 전까지 242대가 공여되었고 이후 북진 직전까지 150대가량이 추가로 공여되었음이 소련 문서로 확인되고 있다. 소련의 군정이 시작되고 소련은 미국과 달리 북한군의 전력을 강화시키는 데 상당히 투자했고 기갑전력 또한 강화시켰다. 208전차 훈련연대를 창설해 전차병들을 양성하기 시작한 것과 더불어 T-34 전차와 SU-76 대전차자주포를 견학시키며 전차 운용법을 가르친다. 1948년 소련은 미군정을 철수시키기 위해 소련군을 철수시키고 북한에 잔류하던 10전차사단 또한 철수했다. 하지만 북한군의 기갑세력의 확대개편을 위해서 한인2세인 표들 중좌와 300명의 전차병을 군사고문단으로 남겨두고 150대의 T-34/85 전차를 인계했다. 208전차 훈련연대가 10월말 수료했고 최초 208전차 훈련연대의 인원을 주측으로 15전차연대를 창설했다. 15전차연대는 최초 10대의 T-34/85를 인계받고 표들 중좌 연대가 철수하면서 T-34/85 전차 60대와 SU-76 대전차자주포를 30대, 모터사이클 60대를 인계받은 뒤 기갑전력을 강화시켰다. 6.25 전쟁이 일어나기 전 김일성은 소련에 T-34 전차 500대 분량을 2개 전차사단을 편성하기 위해 판매 요청했다. 이때 T-34 전차를 구매할 대금으로 철광석과 금괴, 은을 비롯한 각종광물을 보내기로 합의했다. 500대의 T-34 전차는 2개전차사단을 편성할 수 있는 수량이지만 소련 군사고문단이 미 군사고문단과 마찬가지로 한반도는 전차기동이 유럽과는 달리 불편하다고 판단해 항공기 지원으로 바꾸고 절반가량인 총 242대의 T-34 전차를 인수해 제9 전차여단이 창설되었다.

당시 한국 육군이 가지고 있던 대전차화기는 무반동총, 2.36인치(66mm) 바주카, 6파운더의 미국 라이센스 57mm 대전차포였는데 무반동총과 바주카는 측면에서 트랙을 끊어 전투불능을 시키는 격파[68] 전과를 얻는게 최선인 수준이었고 57mm 대전차포는 철갑탄도 충분히 보급되지 않았으며[69] 철갑탄을 쓰더라도 500m 밖에서는 그 어떤 피해도 줄 수 없고 300m 근처까지 끌어들여야 관통이 가능한 매우 부족한 화력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해당 대전차화기들은 이미 독일군의 전차를 전면에서 사격할 경우 6호 전차 티거같은 중전차도 정면에서 격파할 수 있었으나 대부분은 66밀리 로켓탄의 저질 위력 때문에 파괴력 부족이라는 점이 입증된 상태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실제 성능을 따지자면 2선급 대전차화기였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당시의 한국 육군의 보병용 대전차화기는 이미 능력부족인 상태였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한강대교한강철교를 너무 일찍 날려버린 탓에 전선에서 후퇴하던 대부분의 57mm 대전차포는 한강을 건너지 못했고 이 대전차포들이 북한군에게 노획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육군 대전차병들은 공이를 분해하고 포신과 기관부는 수류탄이나 폭약을 이용하여 파괴해야 했다.

개전 당시 국군의 유일한 기갑차량이었던 M8 그레이하운드 장갑의 37mm 포로 T-34를 저지해보려는 시도가 있었고 철갑탄을 발사하여 T-34의 궤도를 파괴하여 소수의 T-34를 격파(궤도파괴=기동불능=전투력 상실=격파)할 수 있었으나 37mm 포도 통상사격으로는 전차의 무한궤도나 파괴할 정도로 절대적으로 위력부족이며, 그나마 철갑탄까지 부족한데다가, 매복 후에 1대가 무한궤도를 사격한 후 전차의 조종수가 전차 전면에 있는 조종수 해치를 여는 순간 그 곳에 핀포인트 사격을 가하는 특이한 사항이 아니면 실질적인 파괴가 불가능하므로 결국 적 전차의 반격으로 엄청난 손해만 입고 말았다.

문제는 당시 한반도에 초기에 투입된 미 육군도 보병용 대전차화기는 한국군의 것과 거의 동일했다는 점이다. 다른곳에 갈 필요도 없이 이 문서에서도 많이 증거 자료를 찾아 볼 수 있듯 미군은 이미 2차대전 당시 소련에게서 T-34를 받아와서 그 스펙을 알고 있었고 그 T-34로 T-34의 이런저런 장단점에 대해 충분히 테스트도 해보았다. 당시 미군 지휘부도 T-34 전차에 대해 엔진필터가 안 좋으니 소련 공업기술력과 장갑재 관련 사항들을 다 알고 있었으며 여기에 한국 특유의 산악지형까지 합쳐져 미국은 한국 같은 산악지형에 전차는 필요없고 T-34 같은 전차는 바주카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전력으로 오판하고 있었다. 한국군이 수없이 바주카로는 도저히 T-34 전차를 상대할 수 없다고 보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이를 무기의 능력부족이 아닌 한국군의 낮은 훈련도 때문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미 육군 중 최초로 전투에 돌입한 스미스 특임대대가 대혼란에 빠진 것도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미국은 일단 스미스 특임대를 파견하면서 미군이 출동했으니 북한군이 공세를 멈추기를 기대했으나 그런 것은 없었고 곧 전투에 투입된 스미스 특임대는 용감히 바주카와 무반동총을 가지고 T-34와 맞섰으나 그들 역시 T-34의 측면에서 궤도를 끊는 것과 후면에서 엔진을 멈춰서 총 4대의 전투력을 일시적으로 상실시켜 격파한 것 외에는 아무런 전과를 내지 못했는데 특히 정면에서는 T-34에게 그 어떤 피해도 주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T-34를 상대로 대패하고야 말았다.

이 전투로 미국은 미군이 사용해도 바주카로는 도저히 T-34를 상대로 실질적인 전과를 내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스펙상으로는 바주카로도 T-34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지만 바주카의 집중사격에도 T-34가 버텨내는 결과가 나왔으니 스탈린이 북한에 장갑을 더 두껍게 한 T-34를 보냈다는 소문[70]이 퍼졌고, 이후로도 탄두가 오래된 불량품이었다는 등의 설이 존재한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다소간의 미스터리지만 어쨌건 미국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T-34를 상대할만 하면서도 좀 더 배치하기 용이한 병기를 찾게 되는데 이것이 일본에 있던 75mm포 전차 M24 채피 경전차로 일단 저렴한데다가 가까운 일본에 이미 배치되어 있어 재배치가 용이했고 구형 셔먼과 동등한 수준의 75mm포를 갖춰서 75mm 장착형 셔먼전차가 독일의 3, 4호 전차를 상대할 수 있었던 것처럼 T-34 역시 상대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으며 경전차라 가볍고 빠르기 때문에 산지에서 운용하기도 적절하다고 판단되어 50년 7월 4일 빠르게 배치된다.

채피가 배치되자 땅에 떨어져 있던 한국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듯 다시 솟아올랐고 미군 채피 전차병들은 기세좋게 T-34와 전차전을 벌였다. 그러나 충격적이게도 채피 부대는 T-34와의 모든 전투에서 처참한 패배를 겪게 된다. 심지어 T-34 1대가 반파되는 동안 채피 7대가 몰살당하는 등 압도적인 열세에 시달리게 되었다. 결국 채피의 75mm포는 T-34를 실질적으로 전혀 관통하지 못했으며 기것해야 T-34 한두대의 궤도를 끊어서 잠시 진격을 멈추는 격파 전과를 얻기 위해 한 번의 교전에서 수 대의 채피가 끔찍하게 완파당했다. 이 75mm포 전차 채피는 이후 대전차전에 부적합한 병기로 판정되어 정찰이나 보병지원용으로 쓰이게 되는데, 이 시기에도 대전차소총이나 대전차포에 비교적 쉽게 파괴된다는 단점으로 사용에 애로사항이 있었다.

예상과 달리 채피가 처참한 교전비로 T-34에게 아주 간단하게 털려나가자 이를 예상하지 못한 미국은 당황하며 뒤늦게야 한국 지형은 쓸모가 없니, T-34의 성능이 어떠니 하는 주장을 완전히 버리고 가능한 빨리 대량의 전차를 쏟아붙는데 열중하게 되는데 이 사건 이후 배치되는 것이 M26 퍼싱과 M4A3E8 셔먼 전차로 이 전차들은 대거 부산항으로 들어왔다. 이로 인해 M26를 필두로 한 미국 기갑부대는 T-34를 완전히 압도할 수 있었고 T-34와 같은 체급인 이지에잇 셔먼도 T-34/85를 상대로 우월한 전적을 내는 등 개전 초기 채피의 참극을 완전히 씻어낼 수 있었다. 이후 인천상륙작전이 벌어지며 T-34에 비해 확고히 더 강력한 센츄리온 Mk.III, M46 패튼 같은 전차들이 배치되자 T-34는 초반의 기세를 완전히 잃고 UN군 전차에게 압도적으로 패퇴하고 만다.

개전 초기 한국 육군은 대대급 훈련을 받은 부대가 최정예였던 시절이었을 만큼 훈련도가 부족했고 전차에 대한 무지도 겹쳐 일방적으로 격파당했다. 갓 태어난지 얼마 안된 한국 육군은 사기도 낮고 준비도 부족했던 만큼 많은 걸 바랄 수 없었다. 당장 전차를 격파했다고 알려진 사례의 상당수가 SU-76 같은 상부개방형 대전차자주포였을 정도로 당시의 한국 육군은 전차와 대전차자주포도 구분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한국군은 몰려 오는 T-34에 맨몸으로 화염병이나 수류탄을 들고 뛰어 올라 안에다 던져 넣는, 이른바 육탄돌격'로 알려진 처절한 전술로 대항해야 했다. 말이 육탄돌격이지 전차의 기관총 사격 화망을 무릅쓰고 접근해야 하는 위험천만한 전술로, 사실상 자살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다. 실제 전과를 확인해 봐도 실질적인 피해는 줄 수 없었던 것 같다. 1952년에 집계된 256대 파괴전과 중 전차포 97(37.9%), 북한군 유기 63(24.6%), 로켓포 및 무반동총 35(13.7%), 항공기 29(11.3%), 포병 28(10.9%), 수류탄 3(1.2%), 미군 지뢰 1(0.4%)다.

다만 춘천-홍천 전투의 말고개 전투 사례와 같이 이러한 육탄돌격으로 인해 전차의 기동을 방해하거나 돈좌시킨 사례도 있으며, 개전초기 혼란에 빠진 국군이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데 미미하게나마 도움이 될 약간의 시간을 끌 수는 있었을 것이다. 또한 미약하나마 L-4, L-5, T-6같은 연락기나 훈련기도 간이 무장을 달거나 후방석 승무원이 폭탄 등을 던져 T-34를 몇대 해치웠다.[71]

물론 육탄특공에서 크게 성공한 경우들도 있는데 이때는 T-34의 약점부위를 정확하게 알고 공략하여 전차를 무력화시켰다. 일단 해치가 열려있을 경우 안에 수류탄이나 화염병을 던져넣는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었고, 해치가 잠겼을 경우엔 궤도에 박격포탄을 밀어넣어 파괴해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포탄이 불발이 날 경우는 취약한 엔진 상판부위를 노리기도 했고, 연막 등을 이용해 관측을 방해하여 강제로 해치를 열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도로정비가 되지 않아 거칠고 울퉁불퉁하며 좁은 길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 앞을 보지 못하고 마구 운전하다가 전차가 돈좌 또는 전복되서 기동력을 상실하면 치명적이었다. 국방부 전쟁사 관련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T-34의 또 다른 취약부위는 관측용 잠망경이었는데, 여기에 진흙을 발라 앞을 가리는 방식으로 무력화한 사례도 있다. 수기 잠망경 부분이 의외로 마무리와 내구도가 허술해 전차에 달려있는 보수용 망치나 돌 등으로 강하게 때리면 비틀려서 공간이 생기는데, 이 약점을 이용해서 공격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기타 참고자료 다른 취약점은 통풍구 부분이었는데 이곳을 노려 안에다 수류탄이나 화염병 등을 집어넣는 방식의 공격도 행해졌다.

그러나 북한 육군의 전차운용 방식과 훈련미숙 등의 병크 덕분에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소모되던 중 미 육군이 M4A3E8에 이어서 본격적으로 M26 퍼싱이나 M46 패튼 등의 고성능 전차를 투입한 이후엔 풍비박산이 났다. 만약 북한 육군이 개전 초의 절대우세에 전차를 집중적으로(일명 기갑웨이브) 운용했다면 낙동강 전선이란 말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한국군에게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북한 육군의 전차운용은 능숙하지 못했다. 한국전쟁 초기의 탱크 쇼크 효과에 맛을 들인 북한 육군은 전선 강행돌파시에 전차를 자주 동원했다. 이는 소련군의 작전기동군 교리에서 많은 점을 참조한 것이나 문제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 충분한 화력지원과 후속 증원부대의 신속한 투입이라는 점은 빼먹고 기습과 탱크 쇼크의 시너지만을 고집하여 충분한 화력지원 없이 전차와 자주포, 보병만 일회성으로 덜렁 보내곤 했다. 전사를 살펴보면 야간에 전차나 자주포가 뜬금없이 갑툭튀하여 국군과 UN군이 필사적인 항전을 펼치는 사례가 많이 발견되지만 포격이 동반되거나 돌파구를 후속부대가 확장하여 전선 깊숙히 침입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이에 반해 한국전쟁 초기의 혼란을 수습한 국군은 낙동강 전선이라는 천혜의 방어막과 UN군의 막강한 지원화력을 십분 활용, 강행돌파 예상지점에 화망을 미리 구축해놓고 T-34가 걸려들기만 하면 문자 그대로 있는 화력을 모두 끼얹어 버렸다. 특히 낙동강 방어전 당시 북한 육군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광복절까지 낙동강 전선을 돌파하여 적화통일을 이루고자 초조하게 서두르고 있었기에 이는 큰 효과를 불러 일으킬 수 있었다. 다부동 전투에서 이러한 양상이 잘 나타나고 있다. 전차병들의 숙련도도 낮은 편이어서, 미군이 투입한 이지에잇은 제원상으로는 T-34/85에 열세였으나 승무원들이 2차 대전에서 온갖 험한 꼴을 다 겪어본 베테랑들인데다 조준장치도 더 좋아서 T-34/85를 상대로 우세를 점했다.

이후 인천상륙작전으로 미군이 본격적으로 개입한 이후 북한 육군의 전차는 미 육군의 M26 퍼싱이나 M46 패튼 등의 고성능 전차들에게 다 터져나갔다. 북한군의 전차는 1950년 겨울 즈음엔 거의 전부 소모된 상태였으나, 중공군이 개입시 전차도 갖고 왔기에 T-34/85는 전선에는 계속 나타났다.

참고로 3.5인치(89mm) 슈퍼 바주카의 보급에 힘입어 바주카포로도 전차의 전면에서 충분한 타격을 줄 수는 있게 되었다. 물론 미 육군의 퍼싱이나 영국 육군의 센츄리온 같은 신형 전차들이 왔으니 T-34/85는 더이상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T-34는 현재 한국 육군의 전략, 전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전차로 K-1 전차의 개발과 배치를 위시한 국군 전차전력의 강화엔 이 T-34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한국전쟁 초기 T-34를 앞세운 북한 육군의 빠른 공세에 아무 것도 못하고 밀려난 경험은 지금까지 국군에 트라우마로 남아 있고, 그것이 각종 신형 전차와 대전차무기의 개발과 배치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리고 경기도나 강원도에서 볼 수 있는 대전차 방호벽 또한 이때의 경험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으로 북한 육군 기갑부대의 진격을 늦추기 위해 있는 것이다.

T-34/76은 오랫동안 북한 육군에 없었다고 알려져 왔다.[72] MBC 드라마에서 T-34/76을 사용하는 장면이 방영되어 고증오류라고 까이기도 했다. MBC 드라마의 등장 장면 그런데 BBC의 다큐멘터리의 한국전쟁에 투입된 T-34 중 76형 모습을 발견했다. 북한 매체에서 북한 육군이 T-34/76으로 추정되는 전차를 사용하는 모습이 방송되었다. 현재 평양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T-34/76 1대 전시되어있다.

화염방사기를 장착한 전차인 OT-34는 T-34/76을 개조해서 차체전면 기관총자리에 화염방사기를 부착하는 동시에 76mm 주포는 사용이 가능한 상태로 유지한 전차이다. 소련군에는 T-34/85 사양의 화염방사전차도 존재했지만 T-44와 T-54의 화염방사 차량이 당장 없는 상황[73]에서 이 전차들은 소련군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남겨둬야 했다. 그래서 소련군이 공격용으로 화염방사전차를 줄 경우에는 OT-34/76을 줄 수 밖에 없으므로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9.1. 대한민국 국군 노획

파일:attachment/IMG_20140711_151914.jpg
전쟁기념관 실내에 전시된 T-34-85. 실내 공간 부족으로 포탑이 뒤로 돌아가 있다.

파일:20160803_131757[1].jpg
전쟁기념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T-34-85 (우측은 M4A3E8 셔먼 이지에잇과 AAV-7A이다.)

전쟁 중 제6보병사단에서 열차 안에 있던 T-34를 노획한 적이 있다. 이후 마지막으로 한국 육군은 6.25 전쟁 동안 총 3대의 T-34/85를 노획했으며 미 육군식 위장에 태극기를 그려 피아식별을 하였다. 다만 노획전차의 특성상 부품과 탄약공급문제 등으로 인해 오래 사용하기 힘들었고, 여기에 전황 변화 등이 겹쳐서 마지막에는 이 중 단 한 대만이 남았다.

이후 전쟁기념관에 총 2대의 T-34 전차가 전시되어 있는데 야외에 한 대가 전시되어 있는 T-34-85의 경우 외형 상으로 봐도 평범하지만 실내에 전시된 T-34-85의 경우 공간 문제로 포탑을 후방으로 돌린 상태로 내부 청소를 제대로 안하는지 먼지가 지독하게 많이 쌓여있다.

10. 현재

현재 러시아에서는 퍼레이드용으로 일부 남아있다. 2010년 이후 승리의 날에 모스크바에서 대규모 퍼레이드를 할 때 보병들이 지나가고 기갑 차량들이 등장할 때 항상 기갑차량 행렬 앞머리에 한 대가 등장한다.[74] 그 외에도 아마 시베리아나 동유럽, 비무장지대 평원에 상당수가 버려져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키프로스 전쟁 때 그리스계 키프로스군에 32대의 T-34/85S가 투입되어 200대의 터키군 M47/48 패튼과 맞붙었다. 파괴와 유기 등을 포함하여 T-34 12대가 손실되었고 패튼은 19대가 파괴되었다. 무슨 짓을 하면 퍼싱도 아니고 패튼으로 더 많이 피해보는 지는 묻지말자

파일:attachment/T-34/T-34_Tank_Yugoslavia.jpg
태어난지 환갑이 다된 1990년대의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도 꽤 널리 사용되었다. 유고 연방군은 소련과 라이센스 계약을 통해 T-34를 수천대 보유하고 있었고, 할리우드 영화 철십자 훈장(영화)에 나오는 T-34는 모두 유고슬라비아에서 로케이션을 한 것일 정도로 관리도 잘하고 있었는데, 유고 연방이 붕괴되면서, 대다수의 T-34는 세르비아 민병대 손에 넘어갔고, 내전에 사용되었다. 내전의 성격상 중화기가 쓰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병들을 상대로 의외로 큰 위력을 발휘하였다. 유고 내전에 동원된 T-34의 가장 큰 특징은 포탑 큐폴라의 뒷쪽에 M2 브라우닝 중기관총 장착 마운트가 달려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파일:the-big-wind-fire-tank.jpg3_.jpg
걸프전 때도 맹활약했다. 유전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차로 마개조되었는데, '빅윈드'라고 불리는 이 T-34는 MiG-21엔진 2개를 장착해 만든 소방차량으로 분당 3만 6천리터의 물을 분사 할 수 있다. 감이 잘 안잡히면, 로젠바우어 버팔로 익스트림의 물을 최대로 적재한걸 1분안에 소비한다는 소리다.[75]

파일:external/pds.exblog.jp/e0162050_60345.jpg
T-34를 공여받은 국가중 일부는 개조를 강행하기도 했는데 윗 사진의 T-34 전차는 쿠바군 소속으로 포탑 앞부분을 잘라내고 D-30 Soviet 122mm 곡사포를 달아놓은 사양이다.

북한에서도 T-34를 보유하고 있다. 일선에는 배치하지 않고 러시아처럼 창고에 박아둔 채 퍼레이드 등에서 꺼내 쓰는 정도이다. 그뿐만 아니라 85mm 주포는 북한 해군에서는 연안 고속정 전용 함포로도 쓴다. 이쪽은 제2연평해전에서 악명을 떨치며 국군에게 T-34 Re-쇼크를 먹여주었다. 85mm는 대공포로 태어나 때때로 야포와 대전차포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전차포로 전용되어 독일을 쳐부수고 결국 노년에 북한에서 함포로 쓰이게 된 기구한 운명의 포다.

파일:external/pgr21.com/1365212776_t_34.jpg
영상에서 북한군이 T-34/76을 아직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나타났다. T-34/76 1943년식 후기형 버전이다.
파일:76북1.png 파일:76북.png
1990년대 북한 드라마 민족과 운명 최현덕편의 한국전쟁씬에서 76형 2대가 기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로써 북한이 적어도 1990년대 초반까지는 기동가능한 상태의 T-34/76을 최소 2대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파일:external/portal.jobbik.net/z3699702X.jpg
2006년 10월 23일에 헝가리에서 일어난 시위에서[76] 마침 전시용으로 나와 있던 T-34를 시위대가 시동 걸고 움직이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흔히 아무 관리도 되어 있지 않던 T-34에 기름을 넣었더니 움직이는 경이적인 신뢰성을 보였다는 잘못된 정보가 많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고, 박물관에서 관리 다 해놓고 기름까지 채워 정비해놓아서 가동 준비가 되어 있는 차량이었다. 다만 아무나 움직일 수 없게 배터리를 빼놨을 뿐.만든지 60년된 전시물이 가동 가능하다는게 경이롭기는하다 그런데 시위대에 전직 헝가리군 T-34 운전병이셨던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이 할아버지가 배터리 없이 시동거는 방법을 알고 계섰던 것. T-34에는 비상시에 공기압으로 시동을 걸수있는 장치가 있었던 것이다. 시위대는 마침 시위도 한창이겠다 싶었는지 타고 나와서 다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전시물이었기에 엔진은 있었더라도 포탄이나 기관총탄은 없었으므로 사격은 불가능한 상태였으며, 동영상을 보면 인명 피해가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운전자의 실력이 수준급인데 위의 운전병 출신 할아버지가 직접 몰으셨기 때문이다. 이 탱크는 수백 미터를 시위대와 함께 행진했다고 하며,고무탄과 최루탄을 막는둥 시위대에게 유용하게 쓰였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흥분한 시위대들이 너무 많이 올라타고 몰려드는 바람에 누군가가 다칠수도 있다는 할아버지 판단하에 전차는 버려졌고, 후에 경찰들은 이 빈 전차에다 수 많은 최루탄을 쏟아부은 다음에 이 전차를 회수했으며 전차는 엔진을 제거한 후 다시 박물관에 돌아갔다고 한다. 한편 할아버지는 다음날 체포되었다가 조사뒤에 무혐의로 풀려났다고 한다.

파일:external/2static1.fjcdn.com/There+are+also+t+34s+and+su+100s+being+used+in+yemen+_547c6cf02df441133ec5f9eb6d6ba0b7.jpg
2015년 예멘 내전에서도 후티 반군 소속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하디 정부군도 일부를 운용하고 있다.

라오스군은 아직도 31대의 T-34/85 1944년형을 운용하고있다.러시아방송사 즈베즈다에서 촬영 그러다 행사용 T-34가 필요했던 러시아가 T-72를 대신 주고(!) 가져갔다. ???: ㅂㄷㅂㄷ

11. 평가

요약하자면, 군수공장도 아닌 곳에서 문맹 노동자들이 제작하고, 트랙터를 몰던 농민들이 운전하며 전장으로 나아가, 당대 최고의 군인들이 조종하는 정교한 전쟁기계들을 짓밟아버리고 베를린을 정복한 전차라 할 것이다.
보통 독소전 초기에는 훌륭한 단차의 공수주 스펙 등의 전술적인 부분이, 독소전 후기에는 신뢰성과 항속거리, 물량과 교육 용이성 등의 전략적 부분이 장점으로 꼽힌다.

11.1. 장점

  • 대구경 장포신 주포
    상대인 독일은 대전차용 주포를 3호 전차에 장착하고, 대보병용 주포를 4호 전차에 장착하여 역할을 분리하였지만, T-34는 처음부터 다용도를 상정하고 76.2mm의 장포신 주포를 장착하여 2차대전 초기 중형전차 중 가장 큰 구경의 주포를 가지게 되면서 대전차 용도와 대보병 용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다. 이후 독일에서 티거와 판터를 등장시키며 방호력을 증가시키고 마찬가지로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8,8cm와 장포신 7,5cm 주포를 전차에 장비하면서, 더 이상 T-34의 76.2mm 주포는 이점을 잃어버렸지만 85mm 장포신 주포로 업건하며 다시한번 중형전차 중 가장 큰 구경을 통하여 타국의 중형전차보다 균형잡힌 대전차, 대보병 화력을 가지게 되었다. 관통력에서 독일 4호 전차의 장포신 7,5cm와 비슷하단 평가를 받기는 하지만 이는 85mm에게는 조금 억울한 단순한 비교로, 구경에 의한 경사장갑 저항성, 고폭탄화력, 원거리 관통력 등의 장점들이 무시된 것이며, 소련이 관통력만 생각했다면 57mm를 채용하면 그만이였을 것이다. 또한 타국보다 APCR의 양산에 더 집중하여서 대량의 물량(=차량당 4발)으로 관통력의 향상도 꾀하였다.
  • 경사장갑.
    T-34는 이전 모델인 BT-7부터 이어진 전면전체 경사장갑이 적용되어 있으며 여기에 더해 타국 전차들과 달리 정면 뿐 아니라 측면과 후면까지 상당한 각도와 두께의 경사장갑이 도입되어 있어서 장갑두께에 비해서 방어 효율이 더 높았다. 세간에는 소련의 공업기술로는 장갑재가 이러니 저러니 하며 실제 스펙의 반으로 봐야되니 어쩌니 하는 말이 떠돌지만 실전에서는 그런건 없었고 T-34는 구형 셔먼과 동등한 성능을 지녔다는 채피의 75mm포를 튕겨내면서 채피를 학살하고 다녔다.[77][78]
  • 300km가 넘는 탁월한 항속거리
    T-34의 경쾌한 주행 능력과 함께 최대 300km가 넘는 항속거리(서울-부산 직선거리정도)는 독일군에게 상상도 못할 속도의 대규모 포위기동을 가능하게 했다. 사실상 43년 가을부터 45년 2월까지의 독소전쟁은 소련군의 대규모 포위기동이 성공하느냐와 독일군이 이를 저지하거나 성공적으로 탈출하느냐의 싸움으로 점철됐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T-34로 편성된 전차군들이었다. 독일 전차들은 항속거리가 100~150km 수준인데다가 그 거리를 T-34처럼 쉬지않고 기동하다가는 주행계통이 고장나며 퍼져버렸다.[79] 1943년 7월 쿠르스크 전투중 프로호로프스카 전투는 T-34의 주행력을 여지없이 보여준 전투였다. 약 500여대의 T-34를 주력으로 하는 소련군 제5전차군은 자체기동으로 약 400km를 주파하여 프로호프스카에 전개하여 돌출부를 따러 전진하는 제 2 SS 기갑군단을 저지했다. 소련군은 전술적인 참패(전차 손실교환비는 10:1)를 했지만, 독일군은 이 전투에서의 소모로 더 이상의 전진이 불가능했고, 소련군은 결과적으로 돌출부를 방어하는데 성공하였다. 결국 히틀러는 치타델작전을 취소했고, 동부전선의 균형추는 소련군에 기운다.
  • 가격이 저렴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며, 생산시에 숙련된 노동자나 기술자가 별로 필요하지 않다.
    가격이 상당히 저렴한데, 독소전 중기 이후에는 압도적인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여 값이 더 떨어졌다. 이 가격은 전쟁 초반에 26만 루블에서 19만 루블까지 떨어졌는데, 당시 티거 1의 가격이 25만 마르크였다고 한다. 당시의 환율을 제대로 평가하기는 힘들지만, 외국 밀덕들의 가격 평가에 의하면 가격비가 1:4~5 정도이며, 4호 전차와의 가격비는 1:1.5~2, 판터와의 가격비는 1:2.5~3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까 같은 가격을 써서 티거 1대에 T-34 4~5대가 달려드는 셈이니 왜 T-34가 전장에서 떼로 몰려올 수 있는지를 설명해준다.[80] 게다가 독일 군수업체들은 끝까지 중간에서 이윤을 최대한 떼먹었지만, 소련 공산주의 체제에선 이윤같은건 없고 투입=산출인 점도 있다.
    당장 T-34의 궤도와 독일제 Sdkfz.251의 궤도를 비교해 보자. T-34는 그냥 궤도 한 조각이 철판 하나고 거기에 핀 몇 개 꽂아서 연결하면 끝이지만 독일제의 경우는 볼베어링과 충격흡수패드 및 온갖 부품이 다 들어간다. 심지어 T-34의 경우 궤도들을 연결하는 핀이 좌우로 미끄러져 빠지지 않도록 고정하는 장치도 없다! 차체 안쪽에 작은 돌출부위가 있어서 안쪽으로 빠지지는 않게 도로 쳐넣는 기능을 했고 안쪽은 그냥 못대가리 형태로 해서 바깥쪽으로는 빠지지 않게 했다. 이렇게 구조를 극단적으로 단순화시켜서 생산성을 높였던 것이다. 그만큼 마무리가 거칠거나 성능이 부족한 부분도 있었지만 이는 전차의 예상 수명을 개별 부품이 넘어서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설계의 복잡도, 마무리 및 품질 관리(QC) 과정을 간략화한 결과물이었고, 개별 차량의 신뢰성은 감소되었지만 그만큼 더욱 많은 물량을 쏟아낼 수 있었다.
    또, 전차전의 경우와 달리 대보병전에선 T-34도 위력이 충분한 만큼 여러 상황을 종합해서 따지면 T-34 5대가 티거 1대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며, 게임과 달리 실제 전장에서 대보병전에 비하면 대전차전은 매우 드물게[81] 발생했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이는 굉장한 장점이다. 간단한 예로 티거 1대가 T-34 5대와 붙어서 이길 수 있다 쳐도[82], 보병 전력이 동일하고 주요 거점 5곳을 점령해야 한다는 상황이라면 T-34는 1대씩 보병들에게 딸려 보낼 수 있어 전차 지원을 등에 업은 병력이 4군데를 점령할 수 있는데, 티거는 T-34 1대를 격파하고 1곳밖에 점령하지 못한다. 그 뒤에 티거는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전략적으론 포위당해서 후퇴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더해 독일의 중전차들은 전략적인 자력 후퇴를 할 수 없는 한심한 구동계 신뢰성을 가지고 있기에 기록상으로는 자폭 또는 고장으로 인한 비전투 손실로 기록되나 실질적으로는 T-34가 독일의 중전차들을 전투없이 박살내버린게 되어 교전비만 봐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숨어있는 엄청난 전과를 만들게 된다.
  • 그 당시 소련의 평균적 기술수준을 능가하는 신뢰성이 높고 연비가 좋은 V-2 디젤 엔진과 크리스티 현가장치로 험지에서 장거리를 고속으로 주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V-2 12기통 디젤 엔진은 헤드와 블록 모두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었고[83] 디젤엔진의 특성상 소음과 진동이 심했지만, 휘발유 엔진과 다르게 겨울철 낮은 온도에서도 시동이 잘 걸렸고 연비도 우수해 300km대 항속거리 달성에 매우 큰 공을 세운 엔진이다. 그래서 독일도 V-2 엔진의 카피와 더불어 자체적인 디젤엔진을 도입할려고 했지만. 당시 전차에 쓸만한 디젤 엔진을 생산할수 있었던 벤츠에서 개발에 실패하는 바람에 독일군의 기갑부대는 끝까지 가솔린 엔진으로 움직였는데, 이는 석유자원이 부족한 독일에게 큰 부담을 주었다. 반대로 소련은 정유기술은 부족해서 항공유는 미국의 원조를 받고 있었지만, 디젤엔진에 쓰이는 경유는 그다지 정유기술이 필요하지 않아서, 소련 기갑부대는 연료가 부족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
  • 훈련을 부실하게 받은 병사도 쉽게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조작이 간단하다.
    소련군은 직전의 농업집단화때문에 농민으로부터 수십만의 트랙터 운전사들을 양성했는데 이들을 모두 전차병으로 징집하여 적어도 전차의 운전병으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 구동계가 모두 전차의 후방에 있다.
    이는 BT 고속전차 시리즈부터 내려오는 일종의 소련 전차의 특징으로, 당시 독일군도 전차의 구동계를 최대한 후방에 설치하려 각종 기술적 시도를 해보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것이 장점인 이유는 당시 전차들은 엔진이나 변속기의 고장이 잦아 잦은 수리를 해야했는데 변속기가 전면에 있는 경우 일단 변속기가 들어갈 공간까지 고려해서 전면장갑을 붙여야 하기때문에 T-34같은 경사장갑을 쉽게 도입하기 어렵다. 도입하더라도 승무원의 공간을 많이 희생해야 했었고. 게다가 수리를 하려면 정면장갑 일체를 들어내야 했기 때문에 야전에서는 수리가 사실상 불가능해서 단지 크레인으로 엔진룸 상부장갑을 연뒤 손상부위만 교체하면 되던 T-34와의 정비 편의성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물론 정면에 변속기가 있어서 일종의 이중방호는 가능하다고는 할 수 있을진 몰라도 굳이 그것때문에 관통시 기동력이 무력화되게 설계해봤자 그 상황은 이미 준격파 수준으로 전차를 포기해야 한다. 일반적인 총력전 상황에서라면 어지간히 인구가 부족해서 승무원 한명 한명을 아껴야 되는 상황이 아닌 이상 당연히 후자가 유리하다. 그리고 소련은 그렇게 멸망위기 수준으로 인구가 모자란 적은 없었다. 반대로 전차 차량 수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지만 인구가 절대적으로 모자란데다 제대로 된 적 전차란걸 마주할 일이 드문 현대 이스라엘의 메르카바는 엔진이 앞에 있다.

11.2. 단점

보통 독소전 초기에는 훌륭한 공수주 스펙에 비해 뒤떨어지는 소프트 스펙이, 독소전 후기에는 단차시점에서 독일의 중전차들에 비해 뒤떨어지는 스펙이나 서방제 전차와 비교되어 신뢰성 부분, 그리고 그런 신뢰성 부족의 원인이 된 인명경시사상에 기반한 설계가 까인다.

모든 소련제 병기에 해당되지만, 특히 부품자체의 정밀도가 낮거나 마무리가 거칠어 잔고장이 심했다. 흔히 2차 세계대전기 소련군 무기는 단순하고 고장안나는 튼튼한 신뢰성을 가진것으로 적, 아군 모두에게 평가를 받았다. 이는 소총이나 화포등 일부 장비에 관하여는 사실인데, T-34의 경우 크게 다음과 같은 상황들이 있었다.
  • 트랜스미션, 조준용 광학 장비 같이 고도의 정밀성이나 기술력을 요하는 부위에 대한 기술력이 모자르다. 해당 부분 기술은 다른나라에서는 민간 기업들끼리의 판매 경쟁으로 기술력이 발전 하였으나 소련은 이런 체제가 아니었다.[84]
  • 그나마 소련에서 상태 양호한 공장과 산업기반은 전쟁 초반에 죄다 독일에게 점령당했다. 독일군의 점령을 피하기 위해 급하게 후방으로 옮긴 열악한 공장에서 제작되었다.
  • 만드는 사람들도 원래 이 일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이 대거 투입 되었다.
  • 전장에서의 소모가 극심했던 까닭에, 소련군은 개별 단차의 마무리나 성능 개선에 신경쓸 상황도 거의 없었다. 실제로 개전이후 T-34의 개선점은 대부분이 생산성 개선을 위한 단순화에 집중되어 있을 정도다. 다르게 말하면 고장나기 전에 적 포탄에 터져나가니 한대라도 더 많이, 빨리 만드는게 중요해진 것이다.
이후 전황이 조금 나아지자 또 당황스러운 사태가 벌어진다. 이번에는 탱크는 있는데 사람은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 41~42년간에 남자 군인이 수백만명씩 희생된 소련은 슬슬 후방에서 징집해 전방으로 보낼 병사 숫자가 모자라지는 상황이 온 것이다. 게다가 전장에서 싸울 전투병의 숫자가 모자른다고 군수, 지원분야 병과를 전부 해체해버리고 죄다 전투병으로 밀어넣는 조치가 취해졌다. 그럼에도 전쟁후반기로 가면 보병부대 전투원 숫자보다 포병과 기갑병과 숫자가 더 많은 부대도 흔한 지경이 된다. 결국 T-34가 고장나도 정비지원을 해줄 정비부대나 군수지원대 같은게 사실상 없다.

이 상황에서 소련군이 선택할 해결책은 하나밖에 없다. 전차가 고장나면 그대로 버리고 새 전차를 받거나, 전차병을 보병부대로 보내 버리는것. 엔진이나 트랜스미션 같이 복잡한 부품을 정비교육도 제대로 받은적 없는 징집병들이 쉽게 교체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나마 예비부품이 있으면 브레이크 라이닝 등 툭하면 고장나는 부품은 아예 고장날 것이라고 간주하고 해당 부위 전체나 예비부품을 전차에 탑재한 상태로 출격했다. 그나마 후방에 과생산 해놓은 전차는 많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조치였던 셈.[85]
  • 설계상의 문제
    • 불편한 구조

      • 승무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구조와 승무원의 배치. 실제로 T-34의 내부는 온갖 장비들이 꽉차서 지독일게 비좁았고, 승무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서 포탄 피격 및 관통시, 최소한 3명은 중상 또는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 전차장과 포수의 역할 통합

      • 2인용 포탑을 사용하므로 전차장이 포수의 역할도 해야하기 때문에 사격시에는 주변관찰이 안되고, 주변관찰시에는 사격이 안되므로 독일의 전차보다 반응속도가 엄청나게 떨어진다. 이점 때문에 T-34는 카탈로그 스펙상으로는 동등한 4호 전차는 물론, 카탈로그 스펙상으로는 T-34가 우위인 3호 전차에게도 맥없이 무너졌다. 이 문제는 T-34의 개량형인 T-43에서 3인용 포탑을 채용하여 해결되었으나, T-34보다 기동성이 나빠서 생산되지 못했으므로 결국 T-34/85에서 3인용 포탑을 채용해서 해결한다.(소련 전차의 1인 2역의 역할은 PT-76에서 드디어 끝난다.)
        파일:external/c.foto.radikal.ru/4c53ac0fa518.jpg
        (왼쪽이 전차장 겸 포수 자리,오른쪽은 탄약수 겸 동축기관총 사수)
    • 승무원간 간섭되는 구조

      • 트랜스미션 레버가 옆의 무전수(및 전방 기총 사수)의 탄약고(기관총 탄약을 넣어두는 곳)와 가까워서, 레버가 앞으로 가 있으면 기총수가 기관총 재장전을 할 때 애로사항이 꽃피었다. 또한 이 전방기총사수용 관측창은 오로지 손가락만한 기총 조준구밖에 없었다.
    • 장갑강화 불가

      • 포탑이 전방에 치우쳐 있으므로 전면장갑을 강화할 경우 차체 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장갑강화가 힘들다. 이런 이유로 인해 1942년 이후에 등장한 대전차 화기 상대로는 방어력의 우수성이 퇴색했다.
        파일:external/907f3b05940ff0b5aefff334bce9df68de84567339b3e30be39bc2e50bc6fd23.jpg
        영화 서부전선 예고편의 한 장면. 참고로 해당 영화에서는 T-34 내부 모습을 판터를 능가할 정도로 매우 크게 묘사했다.(승무원들이 정좌세로 앉아있고, 안에서 일어서기까지 한다.)]
    • 전면의 약점 노출

      • 포탑이 너무 앞으로 치우친 관계로 전차 상면에 조종수 해치를 못 만들기 때문에 전면장갑에 조종수용 출입구를 만들었다. 게다가 조종수용 관측창도 작아서 시야 확보가 힘들기 때문에 일반적인 이동시에는 위사진과 개요의 영상처럼 출입구를 열고 다니는 일도 많았다. 이렇게 되면 차체 전면에 큼직한 약점이 생기는 셈이라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심지어 한국전쟁때는 이 약점을 노린 M8 그레이하운드 장갑차의 37mm포에 당하기도 했다.[86]
    • 생존성 부족

      • 해치의 수량이 모자라고 위치가 빠른 탈출에 적합하지 않다. 포탑의 전차장 해치와 조종수/보조 조종수겸 기관총수 바로 위의 해치를 합쳐서 총 3개의 해치를 설치한 M4 셔먼과 다르게, 이쪽은 해치가 2개밖에 없으므로 탈출을 제 때 못하다가 승무원이 유폭으로 사망했다. 특히 전면 조종수 해치는 구조적인 약점이었으므로 일반적인 해치보다 작게 만들 수 밖에 없었는데, 키가 큰 현대인들은 전면 해치를 열어두어도 탈출하기 버거울 정도다. 바닥에는 조종수용 탈출구가 있었지만 크기가 워낙 작았으므로 실효성은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서방연합군에서 T-34에 대비되는 M4 셔먼에 비해 압도적으로 승무원들의 생존율이 낮았는데 특히 조종수는 거의 90% 확률로 사망하였고 전방기총사수도 조종수보다는 낫지만 어차피 피차일반으로 생존율이 낮았다. T-34가 격파될 때마다 생존하는 승무원은 평균 2~3명밖에 되지 않았다.
    • 비좁은 내부구조

      • 전차 내부가 비좁아 내부에서 이동이 상당히 제약되었다. 전술한 것과 같이 조종수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는 것처럼 있어야 조종이 가능했다. 3인용 포탑을 채용했지만 전차장은 좌석에 앉을 경우 무릎이 포수의 등에 닿아 방해가 되었고, 탄약수는 딱히 앉을 공간도 없이 탄약 상자 위에 서서 허리를 숙여 탄을 장전하는 생고생을 해야 했다. 이 같은 내부공간 협소로 인해 체구가 평균적으로 작은 동양계를 선호했다.[87]
    • 크리스티 현가장치의 내부공간 차지

      • 크리스티 서스펜션은 고속이동과 장거리 주행에 적합하여 소련의 상황에 맞았지만 내부공간을 서스펜션이 차지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영국은 옆면에 공간장갑을 만들어 서스펜션을 넣었지만 수리시 옆면의 바퀴를 모두 때어내야한다는 단점을 가져버렸다.
    • 환풍기 부족

      • 전면에 해치가 달린 문제점과 겹쳐서 운전수들이 전투 중 문을 열어놓아 격파되는 경우가 다른 전차보다 많은데, 환풍기가 부족하여 포연이 빠져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 장비의 문제
    • 부실한 조준장치

      • 렌즈의 시야가 왜곡되고 상이 흐리게 나오며 사격시 충격으로 깨지는 등 전반적인 품질이 뒤떨어져 조준에 크나큰 지장이 있었다. 렌즈는 고난도의 재료 및 가공기술을 요하는 물건으로 조금만 삐뚤게 깎아도 상이 왜곡되거나 희미해지는 문제가 생기므로 숙련된 기술자가 반드시 필요하며 대량생산에는 이런 품질을 유지할 노하우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또한 광투과율에도 큰 문제가 있어 광량이 부족한 새벽, 해질녂은 물론이고 기상이 나쁠때에도 조준기를 통한 상 획득이 쉽지 않았다. 미국과 더불어 2차 산업혁명을 주도한 독일은 이미 충분한 기술적 노하우를 쌓은 후여서 전쟁시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후발주자였던 소련은 이런 기술적 토대가 부실했다. 더욱이 렌즈를 제작한다고 해서 좋은 조준경을 만드는 건 또다른 문제인 것이 조준경은 포 발사에서의 엄청난 충격을 견뎌낼 내구성 및 조준 정밀성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기술적 노하우를 요구하는 건 똑같았다. 미 병기국이 공여받은 T-34를 테스트하며 "미국제 조준기에 비하여 선진적이다"라고 극찬했다는 이야기를 인용하며 2차대전의 잘못 알려진 오류 10가지라며 영어권 인터넷에 떠도는 글이 있는데 이는 전간기 교환장교들이 독일전차를 탑승해보고 자이스사의 슈트리히 조준법을 기억해 소련 기술자들에게 리버스엔지니어링 시킨 부분에 대한 칭찬이었다. T-34의 조준기는 광학적으로는 명백한 실패작이었다.
    • 저품질 잠망경

      • 조준장치의 문제와 겹쳐 관측용 잠망경의 품질과 시야확보가 상당히 부실했다. 넓은 시야와 주변 관측은 전차전이건 대보병전이건 생존성과 방어, 선제공격 등 여러가지와 직결되는 부분인데, 잠망경의 시야가 20~30도 정도만 확보 가능할 정도로 끔찍하게 좁았고 진흙 등의 이물질이 묻는 것에 매우 취약했다. 게다가 보이는 영상의 품질까지 엉망이라 기동중에 흔들거리면 잠망경을 통한 주변 관측은 더더욱 힘들었다. 그로 인해 평상시는 물론 전투중에도 해치를 열고 운전하거나 시야를 확보하려 하는 막장사태가 벌어졌고 이는 전차장갑에 보호받지 못하는 취약점까지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은 물론 한국전쟁 당시에도 이 부분을 공격받아 파괴당한 사례들이 상당히 많다. 참고자료와 잠망경 사진포함
    • 조약한 구동계의 신뢰성

      • 트랜스미션 자체가 소련의 저열한 금속가공 기술 덕분에 수명이 매우 짧았고 조작하기가 힘들어 어떤 때엔 기어 자체가 안 들어가 망치로....때려 넣어야 했다. 따라서 운전수는 망치를 필수품으로 가지고 있어야 했다. 이런 점이 비좁은 운전석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기동력을 저하시켰다.
      • 한국에서는 독소전에서의 이겼던 상대인 독일전차들의 구동계 신뢰성이 훨씬 더 심각했었고 T-34가 판터나 티거 같은 중전차에 비하면 훨씬 우월한 구동계 신뢰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알려졌지만, 이세환 기자에 의하면 거짓말이라고 한다.# 실제로는 잔고장이 많았고 독소전 초기에 공장지대를 빼앗겨서 저열한 금속가공 기술로도 해결할 수 없는 수준[88]이었다며, 단순히 독소전에서 전략기동으로 승리했다는 사실만으로 부품의 신뢰성이 비교적 좋다고 할 수 없다한다. 이에 대해 소련식 신뢰성 개념을 완벽히 충족되었기 때문으로 신뢰성이 높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정확히 말해서 이 당시 소련쪽의 신뢰성 개념은 서구쪽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라 장점으로서 신뢰성이 좋다는 논리로 언급되나, 사실 철도에 의존해야 했던 독일의 탱크들에 비해 탁월한 항속거리와 자력으로 전략기동이 가능함은 신뢰성이 아닌 스펙성능으로 봐야할뿐 부품의 신뢰성이라 할 수는 없다. 심지어, 잦은 잔고장과 망치로 고치는 해괴한 수리 등도 교체/수리가 쉽게 가능한 것을 의미할 뿐이지 이를 전차의 신뢰도로 보지는 않는다.[89]
      • 잦은 엔진 고장의 원인은 초기형에 사용하던 공기 필터가 대기중 부유물을 걸러내기는 커녕 공기의 흐름만 차단하는 불량품이었기 때문이다.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니 출력 자체가 낮아지고, 걸러지지 않은 모래는 실린더 내부로 끼어들어가 엔진 자체를 망가뜨리기 일쑤였다. 애버딘 시험장에서 평가를 받은 보고서에서는 미군이 '스파이가 방해 공작의 일환으로 설계를 엉망으로 한 것 같다'고 혹평했다는 언급까지 있다. 이 문제는 1943년형 등 후기형에서 일명 사이클론 필터로 교체하고서야 해결되었다.[90][91]
      • T-34와 반대로 셔먼은 고장이 적어 호평이었는데, 본국이 대서양 건너편에 있었던 탓에 공장으로 돌려보내서 수리를 받을 수 없는 여건에서 싸우는 것을 감안하고 소련이 생산 비용을 악착같이 줄인 것처럼 신뢰성을 악착같이 강화했기 때문이었다. T-34가 T-34/85로 전환되는 과정에 수천대의 구형 T-34/76 재고를 안고도 전선에는 전차가 부족한 공급문제가 생겼을 때가 있는데 이때 랜드리스로 들어온 2000여대의 M4 셔먼을 부족한 T-34 대신 정예부대에 집중적으로 몰아주었으며 전차병들은 셔먼을 무고장 전차라며 사랑했다. 1944년 이후 들여온 76mm M4A2 셔먼은 제1근위기갑사단, 제9근위기갑사단 등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T-34/85 대신 집중적으로 배치되었다. 물론 75mm 셔먼이나 발렌타인같은 전차는 T-34/85에 비해서 화력이 떨어지므로, 지휘부 입장에서는 다른 T-34/85가 있을 때는 비교적 쉬운 임무에 투입하는 경향이 있었다. 전차병 입장에서는 어찌 되었든 잘 고장이 안나면서도 어차피 어려운 임무는 강력한 T-34가 먼저 투입되고 화력이 떨어지는 랜드리스 차량들은 비교적 쉬운 임무에 투입되니 싫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92] 전차 자체의 전투력과는 별개로 개별 부품의 품질은 워낙 우수했기에 수직안정기를 비롯한 여러 부품이 카피되어 T-54를 비롯한 후기형 전차에 사용되었다.
    • 무전기의 부재

      • T-34는 중기형 까지 무전기가 없어서 각 전차들에게 무전을 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전차장은 해치를 열어 다른 전차에게 손짓이나 작은 깃발로 지휘를 해야만 했다. 무전기가 장착된 차량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는 상부의 지시를 수신받을 지휘차량만 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즉, 차량간 긴밀한 전술 이행을 위한 용도가 아니었으므로 차량간 통신은 수신호에 의존해야 했다. 게다가 주변을 관측할수 있는 관측장비가 부족했다.[93] T-34에 무전기가 일찍이 장착되었더라면 적어도 손실율은 많이 줄었을 것이다. 사실상 초기 모델에도 전 무전기를 장착하려 했으나 당시 상황이 상황이었는지라(우랄 산맥 너머로 공장 이전중이었다.) 다수를 투입할 수가 없었기에 지휘 차량에만 보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보급 상황이 나아진 이후에는 전 차량에 설치하게 되었고(대략 43년 중반) 1944년에 나온 85모델은 차체에 있던 장비를 포탑으로 옮겼다. 무전기가 없거나 있어도 도움 안되고 숙련자 외엔 협동플레이가 되지 않으며 자신의 상황이나 잇점을 살피지 못하고 있다 정도로 정리된다. 오토 카리우스가 말한 소련 전차병들 최대의 약점이 무전기였다.

11.3. 종합

물론 T-34가 2차대전 최고의 전차는 아니었지만 주어진 임무는 확실하게 수행해냈고, 그 엄청난 물량은 전쟁의 전세를 뒤집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중략) 그러나 T-34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중요한 것은 크기가 아니다.
-크롬웰 프로덕션 <2차대전사>, <독일 전차의 완성, 타이거>
전장에서 최강은 아니지만 최적의 전차라고 할 수 있다. 티거나 판터와 비교해서 "물량으로 승부하는 싸구려 무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55톤의 티거나 44톤의 판터는 26톤 T-34보다 중량이 1.5에서 2배 차이나는 중(重)전차이며, 제작단가나 사용자원, 그리고 노동력은 T-34에 비해 서너배에 달한다. 오히려 T-34는 같은 체급의 4호 전차 등과 비교해야 옳으며, 이렇게 보면 무게 대비로는 대단히 좋은 전차에 속한다. 이렇게 개별 전차의 성능으로 치면 확실히 최고는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무기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전쟁무기로써 우수한 전차란 전차 자체의 기계적 능력뿐 아니라 생산성, 운용편이성, 유지보수능력 등 제반사항까지 포함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제아무리 기술적으로 우수한 무기라도 생산 및 운용비용이 너무 비싸거나 고장이 잘 나면 결국은 전투에서는 이기지만 전쟁에서는 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거기에 T-34의 대량생산에 무기대여법을 통한 서방연합국의 지원이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는것도 이야기도 반만 맞는 이야기이다. 무전기등 부속설비의 장비에는 서방연합국의 지원물자가 요긴하게 쓰였고, 또 다른 장비의 생산에 투입될 노력이 T-34에 집중되며 생산량 증폭에 크게 일조한 것도 사실이다.

우선적 장점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T-34 자체가 생산성이 높은 전차였다는 점이다. 일례로 T-34가 첫 생산된 1940년 9월부터 독소전쟁 발발 직전까지 랜드리스는 꿈도 못꾸고, 전시체제도 아닌 평시상황에서, 쿨리크 원수의 지속적인 방해 속에서, 단 2곳의 전차공장에서 9개월간 생산된 T-34의 수량이 1,220대였는데, 독소전이 가열되던 1943년 한해 동안 독일이 생산한 (숫적 주력인) 4호 전차의 총 생산 수량이 3,013대였던 것을 비교해보아도 알 수 있다.

단지 단일모델 일변도의 대량생산을 통한 최고 효율의 규모의 경제[94]를 유지하기 위해 소련군은 독일 독일에 비해 개량사항이 상당히 늦게 반영되는 편[95]이라 화력강화가 상당히 늦은 시점에서 결정되었으므로 불필요한 희생이 컸으며, 독소전쟁 후반기의 소련의 진격속도를 느리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방법을 쓰던 간에 적시에 전장에 적정수준 이상의 능력을 가진 전차를 대량으로 쏟아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인데, T-34는 이 기준에 거의 완벽히 적합하며, 소련 정부가 여성과 노인, 소년으로 이루어진 노동자들로도 이 전차를 대량 생산 및 대단위로 전선투입을 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영국 전차기술학교에서 1944년 작성한 T-34에 대한 보고서에서도 잘 나타나있으며, 적절한 때 적절한 장소에 있었던 점이 T-34가 단점에도 불구하고 유명세를 떨치게 된 가장 큰 이유라고 볼 수 있다.

12. 파생형

(위에도 설명된 T-34/57, T-34/76과 T-34/85의 년도별 바리에이션은 제외)
  • 소련
    • T-34M: A-43
    • T-43: KV-1과 T-34를 통합하는 주력전차 계획에서 T-34를 개량하여 발전시킨 모델 차량. 채택되지 않고 T-34/85에게 포탑을 건네준다.
    • OT-34/76(85): 화염방사전차.
    • SU-122: T-34 차체를 이용하여 122mm M-30 곡사포를 장착한 다용도 중형 자주포 모델.
    • SU-85: T-34 차체를 이용하여 85mm 대공포를 전용한 전차포를 장착한 대전차 특화 중형 자주포.
    • SU-100: SU-85에서 장갑등을 개량하고 100mm D-10을 올린 대전차 특화 중형 자주포.
    • SU-100M-1: 우랄 중기계공장에서 T-34/85의 차체를 기반으로 개발되었다. 전투실은 전차 후면에 있었다. 양산에는 들어가지 못했는데 이는 T-44의 차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프로젝트 SU-100M-2가 더 선호되었기 때문이다. 대전차 특화 중형 자주포.
    • T-34/100: 2종류가 만들어졌었는데 183번공장에서는 T-34/85에다가 100mm ZiS-100/D-10T을 올린 시제 T-34를 만들어 보았으나 별로라는 취급을 받고 탈락하였고 92번공장에서는 T-34/85에다가100mm LB-1(D-10T의 친척)을 올려서 만들었는데 이쪽은 그럭저럭 평은 좋았으나 아예 새로설계된 전차( T-44 , T-54)를 뽑는게 좋겠다는 판정을 받고 대량생산은 되지 못했다.

파일:external/en.academic.ru/Sovietic_T34_battle_of_kursk.jpg
포탑을 제거하고 구난전차로도 개조되었다. 사진은 쿠르스크 전투에서 T-34/76을 견인 중인 모습. 34/76이 포탑 날아간 전차를 끌고가는 게 아니다
  • 중국
    • 58식: T-34/85의 중국 복제판. 전차장 해치와 큐폴라를 개량하고 더한 58식-I와 58식-II이 있다. 양산되지 않았다.
    • 63식: 58식을 베이스로 63식 대공자동포를 쌍열로 사용하는 대공자주포. 베트남 전쟁 당시 월맹군 장비로 사용되었다.
  • 이집트
    • T-100(T-34/100): 이집트에서 T-34에 포탑을 마개조하고 100mm BS-3 대전차포를 올린 버전. 오픈탑이며 목돌이다.
    • T-122(T-34/122): 이집트에서 T-34에 포탑을 마개조하고 122mm D-30 곡사포를 올린 버전. 오픈탑이며 목돌이다.
  • 독일
    • Flakpanzer T-34: 노획한 T-34에 2cm 대공포를 올린 자주대공포. 시제차량만 만들어졌다.1944년 중반에 653 중구축전차대대에 배치되었다고 한다.
  • 폴란드
    • T-34-85M1/M2: 폴란드에서 개량한 T-34, 각각 소련의 T-34 Mod.60과 Mod.69과 흡사한 개량이 되었다.
  • 시리아
    • T-34/55: 현대화 사양.
    • T-34/122: 시리아에서 T-34에 122mm D-30 곡사포를 올린 자주포. 이집트 버전과는 달리 포탑이 없고 포와 포방패만 있다.
지휘용, 구난전차, 소방전차(Big Wind, 지옥의 소방수포탑을 제거하고 MIG-21의 엔진 2개를 장착해서 대량의 물과 진화용 약품을 쏟아낸다. 걸프 전쟁 당시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의 유전에 불을 지르고 튀었을 때 투입되었다.)의 (상대적으로) 비전투 모델은 제외했다.

13. 독일

파일:external/www.armchairgeneral.com/t_34_early_00.jpg
독일군이 노획한 T-34 1940년형[96]

파일:external/www.tanks-encyclopedia.com/T34_85_Beutepanzer.jpg
독일군이 노획해 운용한 T-34-85[97]

파일:external/beutepanzer.ru/t-34_85_27.jpg
독일식 위장무늬까지 칠해서 운용중인 독일군의 T-34-85

파일:external/beutepanzer.ru/flak_t-3400.jpg
Flakpanzer T-34 대공전차[98]

독소전쟁 발발 1년전에 히틀러는 독일의 3, 4호 전차 생산공장에 소련 기술진 방문을 허가해 주었는데, 소련 기술진과 무관들은 당시 독일군의 주력이었던 이 전차를 보고 "이것은 T-34나 KV-1으로 해볼만하다"는 평가를 내렸고, 도리어 "독일놈들이 페이크로 한물간 놈을 우리에게 보여준게 아닐까?"는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는 독일측에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고, 장래를 위해 3호 전차에 장포신 60구경장 5cm 전차포를 빨리 장착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으나, 소련의 신형 전차로 실제 어떤 물건이 튀어나올 지는 예측하지 못했고, 그래서 앞서 언급한 충격을 받게 된다.

독일군의 기갑부대 지휘관들이나 일선 전차병들도 대부분 T-34를 꽤 위협적으로 평가했다. 독일 기갑부대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하인츠 구데리안 장군은 "몇 가지 기계적인 문제가 있지만, 여태까지의 독일전차보다 훨씬 우수하다."며 이 전차를 위협적인 존재로 인정했다. 회고록 "기계화 부대장"의 모스크바 전투를 기록한 부분에서도 T-34 때문에 독일 기갑부대가 큰 피해를 입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또한 "판처 클라이스트"라고 불린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 원수 또한 "지금까지 나온 전차 중에서 가장 좋은 전차"라고 인정했다. 또한 독소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전역에서 영미군 기갑부대와 싸워본 프리드리히 폰 멜란틴 중장은 후에 저서에서 "우리에겐 T-34에 맞설만한 것이 없었다."고 호평을 했다. 심지어 전설적인 티거 에이스인 오토 카리우스조차 동부전선에서 가장 위협적인 상대는 T-34라고 기록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초반 독일군에게 T-34보다 더 큰 충격을 준 것은 KV-1 전차였다. 하지만 KV 전차는 구식 방식으로 바른 떡장갑만 빼고는 독일의 기술진들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의 전차였고, 오히려 부작용으로 느린 속도와 둔중한 반응속도, 게다가 중전차 주제에 T-34와 동급의 주포를 장착해서 화력이 빈약하다는 약점까지 있었기에 일단 초기의 충격을 이겨낸 독일군에게는 T-34와 비슷하거나 약간 처진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단, KV 전차 때문에 독일 전차의 중장갑, 중무장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사실이다.(KV-1 한대가 8.8cm 대공포까지 동원한 독일군의 공격에도 며칠간 버틴 사례가 있다. 이것이 독일 육군에게 4호 전차의 후속 차 설계 사상을 확립하는 데 계기가 되었다.)

그렇지만 국가 사정이 도통 전쟁을 치룰 상황이 아니었던 소련군은 초기 생산분의 기계적 결함과 숙련병 부족, 전황의 악화로 인해 멀쩡한 T-34를 비롯한 자군의 장비를 대량으로 유기했고 독일군은 이렇게 득템한 T-34중 상당량을 'Panzerkampfwagen T-34 747(r)' (r은 러시아라는 뜻)이라는 제식명을 붙이고 열심히 운용했으며, 독일식 큐폴라를 설치한 T-34 747(r)도 있다.

파일:external/www.achtungpanzer.com/t34ct.jpg
제23장갑사단 소속 T-34 747(r)

하지만 독일이 물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사용했다는 것은 반만 맞는 이야기인데, 대전 말기 독일군은 서부전선의 연합군 차량도 노획한 적이 있지만 적성장비 시험용이나 단순 치안유지용으로만 사용했기 때문에 독일군이 노획한 다음에 전선에 투입한 적군 전차는 T-34 전차뿐이다.[99] 독일에도 T-34 전차 에이스가 있는데 스위스 태생의 에밀 자이볼트란 사람으로 제2SS기갑사단 다스 라이히에 입대하여 종전 때까지 노획한 T-34 전차를 타고 적 전차 65대를 격파하여 세계 최고의 T-34 에이스 전차장이 되었다. 그 밖에도 1941년 여름에는 노획한 T-34 전차 중 3대를 핀란드에 판매한 적도 있다.

14. 대중매체

영화, 애니메이션, 웹툰, 게임, 프라모델 등등, 2차 대전의 소련군과 냉전기 공산국가 군대가 등장하는 매체라면 거의 등장한다. 편의상 가나다순으로 기재한다.

14.1. 영화, 드라마

제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미국, 소련, 러시아 영화들에서는 아직도 주행이 가능한 T-34가 그대로 등장한다. 한편 라이언 일병 구하기켈리의 영웅들에서는 외형이 적당히 개조된 T-34가 독일군티거 역을 맡았는데, 포탑이 약간 앞으로 달려 있어서 VK 45.01(P)와 비슷하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대한민국의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종종 등장하는데 보통, M48 패튼이 대역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 로드 넘버 원
    파일:lnotk.jpg 파일:lnotk1.jpg

    76mm포 탑재형의 레플리카를 만들어서 촬영을 하였다. 문제의 고증오류라고 까였던 그 전차 맞다. 허나 위에 써있듯이 현대 매체에서 북한이 76mm형을 쓴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서부전선에서는 몇몇의 오류를 제외하고는 제대로된 T-34/85가 등장하였다.
  • 인천상륙작전(영화)
    파일:IncheonT-341.png 파일:IncheonT-342.png 파일:IncheonT-343.png

    영화 후반 상륙작전에서 림계진이 타고 나온다. 하지만 무리하게 언덕을 올라가다가 주인공 장학수가 노획했던 SU-76ISU-152를 섞어둔것 같은 자주포에 의해서 차체 하단이 뚫리면서 격파된다.
이하는 기타 작품.
  • 번개맨(영화)
    파일:Screenshot_2016-02-09-18-43-04.png
    위의 서부전선에 나온 T-34-85 레플리카가 공식 예고편에서 작 중 악당인 잘난마왕이 해치를 열고 그 안에서 튀어나오는 씬으로 등장한다. 개봉 이후 추가바람. 번개맨:너 이 자식 퍼싱맛을 못봤구나
  • 앤트맨(영화)
    파일:external/www.comicbookmovie.com/127547.jpg 파일:external/www.gannett-cdn.com/B9318109266Z.1_20150717173944_000_GNHBCL299.1-0.jpg

    대런 크로스가 과거 냉전 시절 행크 핌의 활약상이 담긴 흑백 영상을 보여줄 때 배경에 153번 T-34/85가 등장하며 승무원을 던져버리고 그 전차를 탈취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에는 행크 핌 박사의 열쇠고리에 달려있는 자그마한 전차 모형으로 등장하는데...후반부에 시한폭탄이 장치된 핌 테크놀로지 밀실 안에 갇히게 될때 그 전차모형을 에게 보여준다. 그것은 행크 핌이 과거에 탈취해서 축소시킨 진짜 T-34/85였고, 이후 그걸 원래 크기로 돌려놓은 후 안에 탑승하고 조종하여 그 밀실을 탈출한다.[100] 레플리카가 아닌 오슈코시 군사 베테랑 박물관에서 가져온 진짜 T-34이다!
  • 제네레이션 킬
    1해병수색대 브라보 중대가 점거한 이라크 군 비행장에 방치된 T-34/85가 등장한다.
  • T-34
    2018년 연말에 개봉한 러시아 영화. 아예 제목 자체가 T-34다. 예고편 영상
    영화 평점은 그저 그럭저럭하지만, 러시아 내에서는 국뽕이 터져 흥행 대박을 터뜨리고 러시아 국내 T-34의 인기가 대폭 상승하는 결과를 낳았다.

14.2. 게임

  • 도미네이션즈
    글로벌 시대의 두 번째 중장갑 기병 및 연맹 병력으로 등장한다.
  • 레드 오케스트라 2
    T-34/76형이 등장하긴 하는데...1942년형 고증에 따라서 전차장의 관측용 큐폴라가 없다...비슷한 포지션의 독일군측 4호전차에 비해 크나큰 단점. 따라서 주변을 살펴보기 위해선 해치를 열고 봐야하는데 이럴경우 저격수한테도 죽고. 숨어있는 독일군 보병에게도 소총맞고 죽을수가 있다. 다만 경사장갑 버프인지 4호전차에 비해 약점이 그다지 많지는 않다.
  • 문명 5
    '전차'의 기본 모델로 T-34/85가 등장한다. 참고로 독일은 '팬저'라는 괴상한 이름으로 티거의 외형이다.[101] 게임 특성상 동급 보병과 기동성 말고는 아무런 보너스가 없기 때문에 도시 막타용으로나 쓰지 잘 안쓴다. 석유는 다른 필수 유닛들이 많이 사용하기도 하고..
T34를 진짜 물량으로 운용해보고 싶으면 러시아 문명을 고르고 체제를 택하고 크렘린 궁전을 지으면 된다. 크렘린 궁전의 기갑유닛 생산력 증가와 러시아 종특인 석유 두 배가 맞물려 엄청난 물량이 쏟아진다.
  • 워게임 시리즈
    워게임: 에어랜드 배틀에서 동독군과 폴란드군이 끌고다닌다. 스팸용 전차라서 수도 엄청나다. 후속작 워게임: 레드 드래곤에서는 북한군과 소련군도 T-34-85를 끌고 나와, 이론상 T-34만 운용할 경우 160대라는 미친 물량을 보여줄 수 있다.
    또한, 워게임: 유러피안 에스컬레이션에선 폴란드군 소속 유일한 폴란드군 전차로 나온다.(당시 시대배경이 60-70년대 사이에다가 폴란드는 1980년대 바웬사 정권도입전까지 공산정권이었으니 당연하다. 그외의 체코같은 나라들은 탱크도 없다.)
    일반적인 이미지에 비해 주포가 매우 강력하며 2차대전 버전이든 60년대 후반의 개량형이든 상관없이 85mm 주포의 관통력이 1575m에서 무려 8이나 된다. 채피의 75mm포가 관통력 4, 판터의 75/70 주포를 개량하여 사용하는 AMX-13/75의 75mm가 관통력이 6이며 보통 소련제 85mm와 자주 비교되는 미제 76mm를 장착한 헬켓의 관통력도 6에 불과하여 소련의 85mm에 밀린다. 앞의 전차들은 심지어 사정거리도 T-34와 동일하다. 사정거리 문제로 실제 관통력은 T-34에 비해 조금 더 높지만 단순하게 사정거리를 고려하지 않고 T-34와 관통력이 동일한 차량을 찾아보면 가관인데 일반적으로 확실히 85mm보다 상급으로 평가받는 미제 90mm 주포를 장착한 잭슨이나 초기형 M48, 일본의 61식 전차, 기타 서방제 90mm포를 가진 카노넨야크트판터 등도 역시 T-34와 동일한 관통력 8이며[102] 심지어 센츄리온 mk5의 20파운더도 85mm와 동일한 8의 관통력을 지닌다.[103] 즉 이 게임에서 T-34의 85mm 주포는 일반적으로 밀덕들에게 박힌 이미지와는 달리 화력에 한정하면 1세대급 주력전차들에 준하는 실로 어마어마한 관통력과 화력을 자랑한다. 역시 이 강력한 주포는 레오파르트 같은 물장은 물론이고 초기형 T-55나 M48 같은 방어에 신경 쓴 전차들의 전면도 뚫어낸다. 심지어 M1IP 같은 3세대 전차들도 T-34에게 측면을 보여주게 되면 T-34의 최대사정거리인 1575m에서 뚫리기 때문에 이에 몇몇 유저들은 T-34가 T-72와 동일한 거리에서 M1IP 에이브람스를 격파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증언하기도 한다.
}}} ||
천조국의 셔먼산맥과는 다르게 하나도 거를 타선없는 완벽한 T-34산맥
이 수 많은 바리에이션의 T-34들의 장점은 모두 다 다르지만 딱 하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물장갑이라는것.[104] 다만 경사장갑의 효율이 상당히 좋은 게임에 포탄의 경사장갑 착탄각에 따른 관통력 감소가 APCBC기준으로 60% 가까이 감소되는지라 킹타이거의 88mm Kwk43의 APCBC도 방심하고 쏘면 도탄이 날 수도 있다. 1942년형 이전의 형들은 차체 전면 상단 우측의 조중수 해치를 맞으면 한 방에 갈 수 있다.[105] 또한, 절대로 측면을 내주면 안 되는 이유가 공구상자와 예비장비가 있는 차체 전면 쪽에 가까운 상부 양쪽에는 연료탱크가 있는데, 이걸 맞으면 활활 불탄다(...). 소화기로 진압을 못하면 유폭하거나 소화기를 쓸 틈도 없이 바로 유폭이 되기도 한다.
다만 T-34/57이후로 독일군 못지않은 탄속과 관통력을 가지게 되지만, 대신 작약량이 줄어 살상량이 영국철갑탄 상향판이란 느낌이 드는 정도로 줄어든다. 85mm부터는 확실히 펀치력이 88mm가 부럽지 않을 정도.

결국 경사장갑의 도탄 매커니즘이 대폭 너프먹으면서 대원수의 가호를 받은 스탈리늄 장갑 논란이 끝나고 그냥 그저그런 45,60mm 경사장갑이 되었다. 그리고 수치상으로 정면에서 뚫지 못할 동티어 독일 전차는 없기 때문에 결국엔 서로 맞으면 뚫리는 싸움이 되었다.
  • 월드 오브 탱크월드 오브 탱크 블리츠

    파일:external/wiki.gcdn.co/%D0%A2-34_scr_2.jpg파일:external/wiki.gcdn.co/%D0%A2-34-85_scr_2.jpg

    T-34/76T-34/85

    파일:external/wiki.gcdn.co/%D0%A2-34-85%D0%9C_scr_2.jpg파일:external/wiki.gcdn.co/%D0%A2-34-85_Rudy_scr_3.jpg

    T-34/85MT-34/85 루디

    파일:external/wiki.gcdn.co/Blitz_T-34-85_Victory_screen.png

    T-34/85 Victory

    }}} ||
    소련 테크트리의 5,6티어 중형전차로 등장한다. 5티어는 76밀리 탑재형이지만 사람들은 거의 57밀리를 쓴다. 6티어는 85밀리 형태. 다른 나라의 5티어 탱크, 특히 같은 중형인 셔먼이나 4호 전차에 비해서 앵벌머신이라는 이름은 듣지 못하지만 크레딧 벌이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특유의 경사장갑때문에 장거리 포격시 도탄 확률이 좋다. 57미리 속사포로 꾸준하게 데미지를 줄수도 있고, 76미리로 한방을 노릴수도 있다.(보병을 상대할 일이 없어 고폭탄 사용 여부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게임 특성상 속사 화력이 좋게 설정된 57mm의 평가가 원본 76mm보다 더 좋다. 응? 근데 T-34는 애초에 대전차전을 하라고 만든거에 가까울텐데) 다만 장갑은 그렇게 좋지 않은 편이며 동 티어 전차들중에서는 고티어방에 끌려갔을 시 화력부족으로 가장 약해지는 전차이기도 하다.[106] 중국산 T-34도 있는데 거의 동급이라고 보면 된다.
    6티어의 T-34-85는 동 티어 중에서도 가장 좋은 중형전차에 속한다. 준수한 기동성과 높은 화력이 합쳐져서 36,01이 중전차가 된 이후 6티어 최고의 중형전차로 꼽힌다. 물론 포탑장갑만 5티어에서 강화되어 장갑은 약하지만 중형전차에 장갑을 요구하는 것이 모순이다.
    원판 T-34는 엔진 마력 수치와 추중비에 비해 가속력이 그다지 좋지 않다. 이는 원본이 지녔던 기계적인 결함으로 인한 기동성의 악화를 약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슷하게 조금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전차로는 독일의 판터가 있다.
    기프트샵 전용 골드탱크로 T-34/85M도 있는데 포는 T-34/85보다 약하지만 전면 장갑이 강화된 형태다.
    T-34의 후속작으로 거론되던 A-43과 A-44 등은 2차 중형 트리로 갈라져나왔다. A-44의 성능 평가는 좋지 못하다.

    파일:external/wiki.gcdn.co/Type_T-34_scr_2.jpg파일:external/wiki.gcdn.co/Type_58_scr_2.jpg

    Type T-34Type 58 (58식 중형전차)


    파일:external/wiki.gcdn.co/T-34-1_scr_2.jpg파일:external/wiki.gcdn.co/T-34-2_scr_2.jpg파일:external/wiki.gcdn.co/T-34-3_scr_2.jpg

    T-34-1T-34-2T-34-3

    }}} ||
    중국은 T-34의 중국 버전인 Type T-34를 5티어부터 운용하게 되며, 6티어인 Type 58 역시 소련 T-34-85의 모양까지 똑같은 중국 버전이다.[107] 오만가지 마개조를 하여 원판과 연관성을 찾아보기 힘든 7, 8티어 T-34-1/T-34-2/T-34-3까지 T-34의 이름을 쓴다.
  •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
    T-34/76이 등장하며 지휘관에 따라서 T-34/85를 호출하는것이 가능하다. 76 버전은 장갑차보다 좀 비싼 수준의 싼 가격을 자랑하며 탑재된 기관총들과 주포로 보병을 굉장히 잘 잡는다. 대신 대전차 성능은 다른 진영의 주력 미디엄급 전차들에 비하면 없는 것보단 나은 정도. 85 버전은 꽤 높은 화력과 체력으로 진정한 주력 전차 역할을 한다. 특이한 점으로 '돌진' 스킬을 사용할수 있는데, 말 그대로 적 전차에게 최고 속력으로 돌진해 들이받아 버린다! 적 전차는 최소 승무원들이 스턴되거나 최대 부위 파괴가 일어나고 T-34도 무조건 주포 아니면 엔진이 파괴된다. 85 버전은 비싼 편이라 쉽게 쓰지 못하지만 76 버전은 동급 전차 중에선 가장 싸기 때문에 돌진 만을 노리고 운영할 수도 있다.
  • 트로피코 5
    T-34/76형이 등장한다. 세계대전 때부터 지을 수 있는 군사기지를 지으면 1개 분대, 총 3대가 지원된다. 공격력과 체력이 높지만 이동속도가 느리다. 냉전 때 반응장갑 업그레이드를 통해 체력을 높일 수 있다.
  • GTA 5
    파일:external/d2oah9q9xdinv5.cloudfront.net/t34.1.jpg
    라 푸에르타에 있는 한 고철상에 가면 T-34/85형 고철이 있다.출처
  • SD 세계대전
    소련군 지대지 기갑유닛으로 등장하며, 응급수리라는 특수능력이 있다. 다만 도색은 소련군 자체의 베이스 도색이 주황색인지라 고증 도색이 나오진 못했다.

14.3. 모형화

2차 대전의 대표적인 전차다보니 왠만한 모형 회사에서는 다 내봤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 드래곤 모델
    티거와 마찬가지로 가장 많은 T-34 바리에이션을 낸 메이커이다. 심지어 '1940년형' 극초기형도 발매하였으며, 각 형식과 공장생산 차량을 충실히 발매하였다. 그래서 다양한 T-34를 수집하고 싶은 사람들은 드래곤을 선호하는 편. 매직 트랙과 에칭 등 내용물도 충실했다, 그러나 DS 궤도(...)와 에칭을 뺀 채(!) 재발매된 킷의 수준은 충격과 공포 수준. 또한 T-34/85 독일군 노획형은 박스아트의 형태를 재현할 수 없는 황당한 오류마저 있다. 블랙 레이블 시리즈와 더불어 이해할 수 없는 드래곤의 병크 중 하나.
  • 아카데미과학
    2015년에 1/35 스케일의 T-34/85 1944/45년형 112공장제와 한정판으로 183공장제의 베를린 전투버전을 발매했다. 문제는 112공장제와 183공장제 둘 다 꽤 많은 오류들이 있다(...) 특히 포탑과 용접선 또한 전면의 조종석 해치와 포탑의 환기구 등의 주조질감 재현이 너무 과장되어 많은 모델러들이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실차와 비교해 보았을때 실제로도 상당히 주조질감이 거친 모델들도 있어 논란이 되는 부분. 여하간 많은 모델러들이 고대하던 아카데미제 T-34임에도 불구하고 포탑 문제로 인하여 상당히 논란이 되었던 키트이기도 하다. 특히 183공장제는 포탑 프로포션도 뭔가 어색해서 더 비판받는 부분이 있다. 가격은 3만원 미만으로 아카데미답게 국내에서는 싼 편이라, 오류를 감수하더라도 저렴한 가격에 T-34/85를 장만하고 싶은 초보자라면 하나쯤은 구매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트랙은 반 연결식으로 재현되어 있으며, 에칭도 들어있다. 183공장형은 베를린 전투 버전으로 베드스프링도 에칭으로 함께 들어있으니 나름 가치가 있다. 특이하게 여분 부품중 우랄 공장형 곡면 펜더가 들어있어 다른 바리에이션 확장을 염두하고 있나 예측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2016년 2/4분기 신제품 예고에서 T-34/76(1943년형) 독일군 노획 개량 버전(큐폴라가 4호 전차 전차장 큐폴라.)을 발매했다. 이번 T-34는 평가가 좋은 편이다.
  • 즈베즈다
    다양한 스케일로 40년형(1/100),42년형, 43년형, 43년형 마인롤러 장착형, T-34/85이 발매되었다. 1/100 1940년형은 5개(...)의 부품으로 1940년형 T-34를 그럭저럭 재현했으나, 공축기관총이 없어서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 최근 신금형으로 반연결식 궤도가 든 T-34/85를 내놨다.
  • 에이스모형
    1/72 T-34-85를 발매했다.
  • 타미야
    1/35 스케일의 T-34/76과 85[108]의 여러 버전이 있다. 타미야답게 품질이 준수하지만 가격 대비는(...) 구난용 목제와 애칭을 포함한 1/24 스케일의 T-34/85 한정판[109]을 최근 발매했는데 가격이 후덜덜하다.[110]
  • 트럼페터
    무려 1/16 스케일에 내부를 완벽 제현(!)한 T-34/76 1942년형과 1943년형, T-34/85 1944년형 174공장, 183공장제 등 총 4가지가 있다. 크리스티 현가장치 구현과 금속 애칭 세트, 준수한 품질 등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답지 않게 괜찮다. 대신 12만원대라는 비싼 가격과 생각 이상의 많은 양의 도색 필요, 김치통만한 작지 않은 크기, 예비 부품마저 없어서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멘탈이 깨질 수 있으므로 매우 주의를 요한다
  • AFV클럽
    대만 메이커인 AFV클럽에서도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발매하였으며, 전 라인업이 내부 재현에 일부 제품에서는 클리어 외장까지 제공하는 등 생각보다 구성이 충실한 키트다. 일단 타사 T-34 킷들의 경우 오류가 많은 아카데미 정도를 제외하면 의외로 최신 금형이 거의 없는데 반해 T-34/76은 2009년, T-34-85은 2013년에 판 따끈따끈한 금형을 쓰며 재현도나 품질도 우수하다. 2017년 4월 현재까지 나온 라인업은 내부재현 부품을 볼 수 있도록 포탑/차체에 클리어 부품을 쓴 제품이 T-34/76 42년형 112 공장제, T-34/76 42/43년형 183 공장제, T-34/85 44/45년형 174 공장제 세 종류 있으며 내부가 가려지는 통상적인 킷은 T-34/76 42년형 112 공장제, T-34/76 42/43년형 183 공장제, T-34/85 44년형 각각 174와 183 공장제까지 네 종류가 있다.
  • Revell
    독일 메이커 레벨에서도 T-34를 발매했는데 동구권 메이커 재포장인지는 확인 바람.
  • ICM
    동구권 메이커 ICM에서도 1943년형 T-34/76을 초기 후기형의 2가지 바리에이션으로 발매하였다. 자세한 정보는 추가 바람.
  • 옥스포드 완구
    2차대전 라인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독일의 티거, 판터, 그리고 미군의 반궤도장갑차 다음으로 공개되었다. 티거 출시 당시의 아쉬운 점이었던 포탑의 각도제한이 수정되어 수직은 물론 목 뒤까지 젖힐 정도로 포신이 가동하며, 마침 지난 분기에 출시한 제품이 한국전쟁 사양 이지에잇 셔먼이라서 한국전쟁 구성도 가능해졌다. 한국에서 블록으로서 구할 수 있는 최초의 소련제, 그리고 공산권 전차라는 큰 의의가 있다.

14.4. 애니메이션, 웹툰

  • 걸즈 앤 판처
    파일:external/yaranakya.files.wordpress.com/vlcsnap-2012-12-05-22h45m25s192.png 파일:external/www.imcdb.org/i583734.jpg 파일:external/rightwingotaku.files.wordpress.com/gup006m.jpg 파일:0_12ff88_43a36099_orig.jpg

    프라우다 고교소속으로 등장한다.
    76 버전은 워낙 떼거지로 나와서인지 별 활약은 없다. 오아라이 VS 프라우다 전에서는 프라우다 측 플래그를 맡았다. 문제는 일정한 경로를 계속 빙빙 돌고 있던 데다 플래그 차량에 화력은 죽여주지만 기동성과 장전시간은 꽝인 KV-2를 호위로 붙여 놓은 탓에 KV-2가 격파된 후 플래그 차량의 이동 패턴을 파악한 하마팀3돌에 간단히 격파당한다. 이후 극장판 익시비전 매치에서도 엑스트라로 등장한다.
    85 버전은 TVA에서는 카츄샤논나[111]의 차량으로 등장한다. 극장판 익시비전 매치 때는 클라라의 T-34/85는 아귀팀의 4호 전차를 쫓다가 TVA 3화에서 마틸다 전차가 들이박은 적 있는 여관 앞에 안전하게 정지했는데 뒤에서 로즈힙크루세이더 전차가 박아 버리는 바람에[112] 유폭을 일으켜 탈락하고 그 후 대학 선발전 때는 600mm 자주박격포 칼의 습격에 프라우다와 쿠로모리미네 고스펙 전차떼의 후위를 맡다가 칼의 포탄에 명중당해 탈락. 카츄샤의 T-34/85는 익시비전 매치에서 다사마의 처칠 전차가 아귀팀의 4호에 유효타를 먹일 수 있게 프렌드 실드 역할을 해 주었다. 대학 선발전 때는 논나, 클라라, 카베땅 패밀리가 자신을 위해 후위를 맡아 전부 탈락하고 프라우다 소속으로는 혼자만 남았을 때 서부극 세트장에서 퍼싱 하나를 격파하고 레오폰팀의 슬립스트림에 힘입은 충각으로 버뮤다 3인방 중 하나인 루미의 퍼싱에 충각을 먹여 이츠미 에리카티거 2가 그 퍼싱을 격파할 수 있게 도와 주었다.
  • 알파캣의 역사웹툰
    76/85형 가리지 않고 거의 전편 등장한다. 2차대전 그중에서도 독소전을 주로 다루다보니 4호 전차보다 더 많이 등장하는 것 같다. 일단 물량빨을 보여주지만 가끔 각성(?)하면 판터티거도 잡는다.
  • 유희왕
    파일:external/vignette1.wikia.nocookie.net/OniTankT34-PSV-EN-C-UE.png
    도깨비 탱크 T-34라는 이름으로 나오긴 하는데 T-34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거 치고는 생김새도 전혀 다른 모양이라 연관성은 불명하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 카니발 판타즘
    2화에 등장하는 토오노 시키 쟁탈 두근두근 비치발리볼 대회에서 나이스어택 상품으로 귀전차(鬼戰車) T-34가 경품 목록에 등장한다. 물론 MVP상인 '시키씨와 둘만의 개인실 숙박권'에 그냥 넘어간다.

14.5. 뮤직비디오

T-34: 저...저기요...?
포신에 쇼핑백(...)을 걸고 블링블링하게 등장한다. 생각외로 고증에 매우 충실한 것이 더욱 괴상한 느낌을 준다.??? - 자네들은 왜 전차에다 백화점을 차리려고 하나! 아무래도 위의 영화 촬영할 때 제작한 레플리카를 활용한듯.

15. 관련 문서

16. 둘러보기

제2차 세계 대전의 소련군 기갑차량
{{{#!folding전차경전차MS-1, T-26, T-27, T-37, T-38, T-40,
BT 전차, T-50, T-60, T-70, T-80, NI 전차
중형전차 T-24, T-28, T-34, T-44
중전차T-35, KV-1, KV-85, KV-2,
IS-1, IS-2, IS-3
장갑차D-8/12, BA-3/6, BA-10, BA-11, BA-20, BA-27, BAL/BAL-M, FAI/FAI-M, BA-64, 이조르스크 장갑차
자주포BT-7 KT-28 76밀리 곡사포 장착형, ZiS-30, SU-122, SU-76, SU-152, SU-85, ISU-152, ISU-122, SU-100
다연장로켓카츄샤 다연장로켓
차량T-20, GAZ-64, GAZ-AA, GAZ-MM, GAZ-M1, GAZ-03-30, ZiS-5, ZiS-6, YAS-6, 코민테른 포병용 트랙터, 보로실로베츠 중 포병 트랙터
모터사이클 M-72
렌드리스 차량M3/M5 스튜어트, M3 리 / 그랜트, M4 셔먼, 발렌타인, 처칠, 마틸다, SU-57, 브렌건 캐리어, CCKW, 윌리스 MB, 포드 GPA
노획 및 개조차량T-III, 3호 돌격포, T-IV, T-V, T-VI ТИГРS, 티거 2S, 마우스S, 페르디난트S, 야크트티거S
프로토타입S-51, SU-14, KV-220, KV-3, KV-13, A-20, A-32, A-34, A-40, A-43, A-44, T-22 그로테, T-29, T-43, T-46, T-100, T-111, T-150, SMK, SU-100Y, IT-45, IT-76, SU-122-44, T-54C, IS-4C, IS-6
페이퍼 플랜KV-4, KV-5, 소련의 기갑병기 설계안 중 일부, LTP, MT-25, LTG, LTTB, 오비옉트 212
그 외KV 전차, 스탈린 전차, 소련군/차량, 무선전차, KhTz-16 트랙터 전차
※ 윗첨자S: 노획하였으나, 운용하지 않음
※ 윗첨자C: 프로토타입 상태로 종전 후 양산 됨
}}} ||


제2차 세계 대전의 나치 독일군 기갑 장비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letter-spacing: -0.75px"
장갑차 Sd.Kfz. 250, Sd.Kfz. 251, 마울티어
M35 Mittlere Panzerwagen (ADGZ) 파일:오스트리아 국기.png, Sd.Kfz. 221, Sd.Kfz. 231, Sd.Kfz. 234
전차 Pz.Kpfw. I, Pz.Kpfw. II
Pz.Kpfw. III, Pz.Kpfw. IV, Pz.Kpfw. V Panther
Pz.Kpfw. VI Ausf.H1/E Tiger I, Pz.Kpfw. VI Ausf.B Tiger II
구축전차Jg.Pz. 38(t) Hetzer, Jg.Pz. IV, Jagdpanther, Tiger (P) Ferdinand / Elefant, Jagdtiger
대전차 자주포Panzerjäger I, Marder, Nashorn
돌격포StuG.III, StuG.IV, Sturmpanzer IV, Sturmtiger, 돌격보병전차 33B
자주포1호 자주포, 2호 자주포, 베스페, Grille, Hummel, Karl, 105mm leFH18(Sf) LrS, 150mm sFH13/1(Sf) LrS, 판처베르퍼, 부르프라멘 40
자주대공포4호 대공전차(뫼벨바겐, 비르벨빈트, 오스트빈트, 쿠겔블리츠), 38(t) 대공전차
노획차량 및
개조품
파일:체코 국기.png Pz.Kpfw. 35(t), Pz.Kpfw. 38(t)
파일:폴란드 국기.png le.Pz.Kpfw. TK(p), le.Pz.Kpfw. TKS(p), Pz.Kpfw. 7TP 731(p)
파일:벨기에 국기.png Pz.Sp.Wg. VCL 701(b)
파일:프랑스 국기.png UE 630(f), Pz.Sp.Wg. ZT 702(f), Pz.Kpfw. 35R 731(f), Pz.Kpfw. 35H 734(f), Pz.Kpfw. 38H 735(f), Pz.Kpfw. 737 FCM(f), Pz.Kpfw. S35 739(f), Pz.Kpfw. B-2 740(f)
파일:소련 국기.png Pz.Sp.Wg. BA 202(r), Pz.Kpfw. T-34 747(r), Pz.Kpfw. T-28 746(r), Pz.Kpfw. T-35 751(r), Pz.Kpfw. KV-1 756(r), Pz.Kpfw. KV-2 754(r)
파일:영국 국기.png Pz.Kpfw. Mk.II 748(e), Pz.Kpfw. Mk.II 748(e) mit 5cm KwK 38 L/42 'Oswald', Pz.Kpfw. Mk.III 749(e)
파일:미국 국기.png Pz.Kpfw. M3 744(a), Pz.Kpfw. M4 748(a)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png Pz.Sp.Wg. Lince 202(i), P40 737(i), Pz M42 772(i), StuG M43 mit 75/46 852(i)
프로토타입 T-25 파일:체코 국기.png, L.tr, G.tr, Neubaufahrzeug, 호이슈레케 10, D.W. 1 / 2, Pz.Kpfw V/IV, VK 시리즈, 기갑 자주포, VK 30.01 / 02, VK 36.01, VK 45.01(P), VK 45.02(P), VK 65.01, Panther ll, Pz.Kpfw VIII Maus, E-100, Geschützwagen Tiger, Räumer S, 8,8cm waffenträger
페이퍼 플랜 Pz.Kpfw.III/IV,VK 16.02 Leopard, Pz.Kpfw VII Löwe, Pz.Kpfw IX/X, E 시리즈, 돌격전차 Bär, Strumpanther, Landkreuzer P-1000 Ratte/라테, P-1500(몬스터)
차량퀴벨바겐, 슈빔바겐, 오펠 블리츠, 메르세데스 벤츠 G5, 메르세데스 벤츠 LG3000, 독일국방군/차량
모터사이클 R-75, Sd.Kfz. 2 (케텐크라프라트, 케텐크라트)
그 외동부용 궤도식 트랙터, 골리아트, 보르크바르트 4호, VsKfz 617, 판처베르퍼, 쿠겔판처
기타독일 기갑 병기의 역사와 루머 }}}}}}}}}

겨울전쟁을 포함한 제2차 세계대전기의 핀란드군 기갑장비
{{{#!folding전차경전차르노 FT-17 "Koiras"/"Naaras", 카든 로이드 Mk.VI, 카든 로이드 M1933, 비커스 Mk. E/T-26E, BT-5SO, BT-7SO, T-26A/B/CSO, T-50SO, T-37SO, T-38SO
중형전차T-28SO, T-34/76SO, T-34/85 "Sotka"SO, 4호 전차 J형 "Ravistin"
중(重)전차KV-1E "Klimi"SO
화염방사전차OT-26SO, OT-130SO, OT-133SO
장갑차L-182, FAISO, D-8SO, BA-3SO, BA-6SO, BA-10SO, BA-20SO, BT-43
돌격포3호 돌격포 G형 "Sturmi", BT-42
자주포SU-76SO, SU-152SO, ISU-152SO
자주대공포40 ItK/38
화포견인차T-20 콤소몰리예츠SO
※ 윗첨자SO: 소련군에게서 노획(운용 수량이 1, 2대 수준에 불과한 차량이 많으니 제식여부는 별도로 알아보자)
}}} ||


제2차 세계 대전의 일본군 기갑장비
장갑차차륜 장갑차93식 장갑차
궤도 장갑차98식 장갑운반차 소다, 1식 장갑병차 호키
경장갑차카식 기총차, 92식 중장갑차, 94식 경장갑차, 97식 경장갑차 테케
반궤도차량1식 양장궤장갑병차 호하
전차경전차갑형 전차, 을형 전차, 95식 경전차 하고, 98식 경전차 케니, 2식 경전차 케토, 4식 경전차 케누
수륙양용전차특 2식 내화정 카미, 특 3식 내화정 카치, 특 4식 내화정 카츠
중형전차89식 중전차 이고, 97식 중전차 치하, 1식 중전차 치헤,
3식 중전차 치누, 4식 중전차 치토, 5호 중전차*, 3호 전차 J형*, 3호 전차 N형*
중전차95식 중전차, 100식 초중전차 오이, 6호 중전차*
노획전차 M3 스튜어트, 1호 전차, T-34^
공병전차장갑작업기
자주포1식 포전차 호니, 1식 포전차 호니2, 2식 포전차 호이, 3식 포전차 호니3,
4식 포전차 호로, 12리 자주포, 5식 포전차 나토
차량95식 4륜 자동차, 94식 6륜 트럭
오토바이93식 측차결합 자동이륜차, 97식 측차결합 자동이륜차
프로토타입 /
페이퍼 플랜
5식 경전차 케호, 특 3호 전차 쿠로, 97식 중전차 치니, 98식 중전차 치호, 특 5식 내화정 토쿠,
시제 4식 중박격포 하토, 4식 자주포 호토, 5식 구축전차 호루, 치세, 5식 중전차 치리, 5식 포전차 호리
그 외쿠겔판처*, 나가야마 전차, 98식 소형 공병전차 야이고, F B, S A, 이시카와지마 수륙양용 전차
^ : 탈취한 그 전투서 바로 소모됨.
* : 독일에서 구매한 품목. 쿠겔판처를 제외하면 본토에서 사용되지는 않음.

냉전기의 소련군 기갑장비/소련식 분류
{{{#!folding [ 펼치기 · 감추기 ]전차
시대별 세대 구분
1세대 전차中전차T-34-85M, T-44M
重전차IS-2M, IS-3M
2세대 전차中전차K-91, T-54, T-55, T-62(A/M), T-64
重전차IS-4M, ST-1, IS-7, T-10(M), 오비옉트 257, 오비옉트 277, 오비옉트 278, 오비옉트 279, 오비옉트 777
경(부향)전차PT-76(B), PT-85, T-100
미사일 전차IT-1, 오비옉트 287, 오비옉트 775, 오비옉트 780, 오비옉트 906B
3세대 전차1세대 주 전차T-64A
2세대 주 전차T-72
3세대 주 전차T-80
MBT 기준 세대 구분1세대 MBTT-62B, T-64(A/R), T-72A
2세대 MBTT-64B/B1/BV, T-72(B/B1), T-80(B/BV/A/U)
장갑차장륜장갑차 BTR 시리즈
궤도장갑차 BTR-50, MT-LB, BMD-1, BMD-2, BMD-3, BMD-4, BMP-1, BMP-2, BMP-3
차량소형 UAZ-469, GAZ-64 · 69, UAZ-452
트럭MAZ-7310, ATS-59, GAZ-66, ZiS-151 · 157, ZiL-131
자주포자주곡사포 2A3 콘덴사토르, 2S1 그보즈디카, 2S3 아카치야, 2S5 기아친트-S, 2S7 파이온, 2S19 무스타-S
자주박격포 2B1 오카, 2S4 튤판, 2S9 노나-S
자주 평사포 SU-100, ISU-122, ISU-152, SU-122-54, ASU-57, ASU-85, SU-100P, SU-152 타란, SU-100M, 2S2
대공 차량자주대공포 ZSU-57-2, ZSU-37-2 예니세이, ZSU-23-4 쉴카, 2S6 퉁구스카
단거리 대공미사일 2K22 퉁구스카, 9K33 오사, 9K35 스트렐라-10, 9K330 토르
다연장로켓 카츄샤 다연장로켓 시리즈, BM-21, BM-27, BM-30
기타 GRAU 코드명, GABTU 코드명
※ T-64A(오비옉트 434)부터 주력전차로 분류
취소선: 계획되었으나, 취소된 차량
}}}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기.png 냉전기 유고슬라비아 인민군 기갑차량 둘러보기
{{{#!folding [ 펼치기 · 감추기 ]유고슬라비아 인민군 (1951~1992)
Jugoslovenska Narodna Armija
기타전차 경전차 M3 스튜어트, PT-76
중형전차 4호 전차C, T-34/85, M4 셔먼
MBT 1세대 T-54A, T-55(A/AI), M-47 패튼
3세대 T-72M, M-84(A/AB/ABN), M-90참조
장갑차 장륜장갑차 M-8, BTR-152, BTR-60, BRDM-2, TAB-72, BOV
궤도장갑차 하노마크, OT M-5, MT-LB, OT M-60(P/PB), BTR-50, BVP M-80(A/A1)
차량 소형 피아트 1101 · 1107, 핀츠가우어
트럭 TAM-110 · 150 · 260 · 4500 · 5000,
FAP 2026 · 2832, ZiL-131 · 157, MAZ-537
자주포 자주곡사포 SO-105, M8 HMC, SO-122
대전차 자주포 3호 돌격포C, SO-100, SO-76, SO-90
대공차량 자주대공포 M15 CGMC, ZSU-57-2, M53/59, BOV-30, SPAT Foka
단거리 대공미사일 9K31 스트렐라-1, M-90 Sava,
RL-2 프락카M
다연장로켓 M-63 Plamen, M-77 Oganj, M-87 Orkan
※ 윗첨자C: 노획 차량
※ 윗첨자M: 개조 차량
취소선: 계획되었으나, 취소된 차량
}}}



파일:체코 국기.png 냉전기 체코슬로바키아 인민군 기갑차량 둘러보기
{{{#!folding [ 틀 펼치기 · 감추기 ]냉전기의 체코슬로바키아 인민군(1954~1990) 기갑차량
기타 전차T-34, IS-2, T-40
MBT1세대 T-54(A/AM/AR Reika), TVP,
T-55(A/AM1 · M1B/AM2 Dyna-1 · M2B/AMB)
2세대T-50/51,T-62, T-72(M1/M1CZ · M2CZ)
장갑차장륜장갑차OT-64(A/C), OT-65, BRDM-2
궤도장갑차OT-810, BPzV, OT-62(A/B/Vydra), BVP-1 · OT-90, BVP-2
차량소형 스코다 1101 VO, UAZ-469
트럭 타트라 148 · T-813 · T-815, 스코다 6L · RSO · 706, 프라가 V3S
자주포 자주곡사포 ShKH vz.77 Dana, 2S1 Karafiát, 2S7 Pivonka
자주박격포 2S4
대전차 자주포 SU-100, ISU-152
대공 차량 자주대공포 Vz.53/59 PLDvK, STROP-(1/2)
단거리 대공미사일 PLRK S-1M2, PLRK S-10M, 9K33(M2/M3) 오사
다연장로켓 BM-24, RM vz. 70
이텔릭체: 외산차량
취소선: 계획되었으나, 취소된 차량
}}}



냉전기의 이라크군(1958~2003) 기갑차량
{{{#!folding [ 펼치기 · 감추기 ]기타전차T-34/85, M4(-105) 셔먼, 처칠~1958
MBT1세대센추리온~1958, T-54, T-55(QM · M1 · M2/이니그마)M,
59식 전차, M47 패튼C, M48 패튼C
2세대빅커스 MBT Mk.1C, FV4201 치프틴C, M60 패튼C
69-(2/QM · M1 · M2*/이니그마)식 전차M,T-62
3세대 T-72M1 · 아사드 바빌, M-84(AB · BN · BK)C
경전차M24 채피~1958, PT-76, FV101 스콜피온C
장갑차장륜장갑차OT-64-(C/2A), BRDM-1, BRDM-2, BTR-60,
BTR-152, BTR-40, AMX-10(P · SAO), FV601 살라딘, LAV300,
EE-9, EE-11, 파나르 M3, PSzH-IV, PSzH D-442 FÚG, AT105C 색슨,
V-150S, Fhad, AML-(60/90)
궤도장갑차BMP-1 · 사담, BMP-2, BMD-1, BTR-50, MT-LB
M113, AMX-VCI, YW531 · YW750, OT-M60, PTS-2
자주포자주곡사포 2S1 그보즈디카, 2S3 아카시아, M109A5, M110, M-1978 곡산C, AU-F1
대전차 자주포 M36(B1) 잭슨, SU-85M, ISU-152
대공 차량자주대공포 ZSU-23-4 쉴카, ZSU-57-2, M53/59 프라가
대공미사일 9K31, 9K35, 9K33M, AMX-30 롤랜드2/FRR 롤랜드
다연장로켓 BM-11, BM-13, BM-16, BM-21, BM-27, BM-30,
63식 기반 MRL, M-87 Orkan, ASTROS II · Sajeel, 아바빌-100,
APR-40, 9K55 GRAD-1, 81 mm 테크니컬 MRL(GAZ-66 트럭 기반)
※ 윗첨자C: 노획 차량
※ 윗첨자M: 개조 차량
※ 윗첨자~1958: 1958년 이전까지 이라크 왕국(Kingdom of Iraq)에서 운용한 차량
* 125mm 장착형 69식
}}}



한국전 북한군 공산군 기갑차량
{{{#!folding 전차 중형전차 T-34/76, T-34/85
중전차 IS-2
장갑차 BA-64, BA-3/6
자주포 SU-76, SU-85, SU-100, SU-122
다연장로켓 카츄샤 다연장로켓
차량 GAZ-64, GAZ-AA, ZiS-5, ZiS-6
모터사이클 M-72
노획 병기 M5A1 스튜어트, M4A2 셔먼, A27M 크롬웰, 95식 경전차 하고, 97식 전차 치하
취소선: 사용되었다는 증거가 없는 병기.
}}} ||


베트남전기의 베트남 인민군(월맹군) 기갑장비
{{{#!folding 【펼치기 · 감추기】전차경전차PT-76, 62식 전차
중형전차T-34/85
MBT T-54, T-55, 59식 전차
APCBTR-60, BTR-50, BMP-1, 63식 장갑차
자주대공포ZSU-57-2, ZSU-23-4 쉴카
기타SU-100, IS-2}}}



파일:핀란드 국기.png 현대 핀란드 방위군 기갑차량 둘러보기
{{{#!folding 【틀 펼치기/감추기】'''핀란드 방위군 (1945~현재)
Puolustusvoimat
'''
기타전차 4호전차 J형 "Ravistin"R, T-34R, T-26R, 코멧 Mk. I 모델 BR
MBT 1세대T-54S, T-55M
3세대T-72M1(K1)R, 레오파르트2A4
3.5세대레오파르트2A6
경전차PT-76BR
장갑차장륜장갑차 XA-180 · 185, XA-202 · 203 OWA "Pasi",
XA-360 AMV, RG-32M, BTR-60PBR
궤도장갑차CV9030 FIN, BTR-50YVI, BMP-1TJ*, BMP-2MD FIN,
MT-LBV, Bv 206(S/D6N), Bv 202R, NA-120GT
차량소형 랜드로버 디펜더 110, 겔란데바겐 300/270 CDI,
토요타 하이럭스, UAZ-469R · 452R, GAZ-69R
트럭 Sisu E13TP · SM312 · SA-150 · SA-240,
스카니아 4시리즈 · P · R · G 시리즈, 벤츠 악트로스 · 아테고
GAZ-66R, ZiL-131R · 157R
자주포 자주곡사포 122 PsH 74, K-9 FIN "Moukari", 152 TelaK 91R
자주박격포 XA-203 AMOS, XA-361 AMOS-FIN
대전차 자주포 3호 돌격포 G형 "Sturmi"R, 채리어티어 Mk. VII 모델 BR
대공 차량 자주대공포 ItPsv SU-57-2R, ItPsv 90 막스맨R, ItPsv 레오파르트2 막스맨
단거리 대공미사일 XA-181 ItO 90M, ItO 2005 우니모크 기반
다연장로켓122 RakH 76R, 122 RakH 89 M1, 298 RsRakH 06
※ 윗첨자R: 퇴역 차량
※ 윗첨자S: 비축 차량
※ {중괄호}: 도입 예정 차량
*: 포병 관측용 장갑차로만 사용
}}}



파일:북한 국기.png 현대 북한군 기갑차량 둘러보기
{{{#!folding 【틀 펼치기/감추기】현대의 조선인민군 기갑차량]]
기타전차T-34-76/85WPRG
MBT1세대 T-54, T-55, 59식
2세대 T-62, 천마호 (가 ~ 바)형M
2.5세대 폭풍호, 선군호
경전차PT-76, PT-85M, 62식 전차, 63식 전차
장갑차장륜장갑차BTR-152, BTR-60PB, BTR-80A/Y, BRDM-2, M-1992 WAPC, M-2010 WAPC
궤도장갑차BTR-50P/PK, 63식, BMP-1, VTT-323, M-2010 준마
차량소형GAZ 보드닉, GAZ-69, UAZ-469/승리-415, BZ-2020SJ, 갱생-68/85, 신형 장갑 4륜구동차
트럭ZiL-130 · 131 · 135 · 151 · 157,
MAZ-7310, Ural-4320, 로만, 승리-58/61WPRG
자주포 자주곡사포 M1978 · 1989 곡산, M1977 100mm, M1992 122mm, M-1975 · 1981 · 1991 122mm,
M-1977 · 1992 130mm, M-1974 · 1985 152mm, M-2018 155mm또는 152mm
자주박격포 M-1992 120mm
대전차 자주포 SU-76WPRG, SU-100WPRG, M-1974 85mm, M-1972 100mm
대공 차량 자주대공포 ZSU-57-2, ZSU-23-4 쉴카, M-1985 37/57mm, M-1992 30mm
단거리 대공미사일 9K31, 번개-3
다연장로켓 63식, 75식 MRL 여맹호, M1977 107/122mm, M-1977 · M1985 · M1993 122mm,
BM-11, BMD-20, BM-24, M-1989 · 1991, KN-09, KN-16, 신형 방사포
※ 윗첨자M: 개조 차량
※ 윗첨자WPRG: 준군사조직인 로농적위군 (Worker-Peasant Red Guard)에서 사용하는 차량들
}}}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현대 대한민국 국군 기갑차량 둘러보기
{{{#!folding [ 펼치기 · 감추기 ]<tablealign=center> 대한민국 국군 (1948~현재)
大韓民國 國軍
기타전차경전차M24 채피R, M551 셰리든, 63식 전차X/R
중형전차 M4A3E8 셔먼R, M26 퍼싱R, 크롬웰 전차X/R, T-34-85X/R
MBT1세대 M46 패튼R, M47 패튼R, M48(A1/A2C) 패튼R, M48(A3K / A5K · K2 · KW) 패튼, 59식 전차X/R
2세대 Tiran-6X/R, M60 전차, 레오파르트1 개량형
3세대K1 전차, K1A1 전차, T-80(U/UK), T-72M1X/R
3.5세대K1E1 전차, {K1E2 전차}, K1A2 전차, K2 흑표
장갑차장륜장갑차M8 그레이하운드R, KM900R, 바라쿠다, K806/808, BTR-80AX/R
궤도장갑차M3 하프트랙R, M113A1R, M577A1R, LVTP-7R, KAAV7A1,
{KAAV-II}, K200(A1), K277, BMP-3, K-21({PIP}),
K533 · 534, K-77, K-10, K-56, K-66, K255, KAFV 시리즈
차량
소형K151, K131, K111, 국군 산악용 ATV,
M38(A1)R, M606R, J601R, M151R, 윌리스 MBR, K-100R
트럭{K351}, K300R, K301R, K311(A1), K511, K711, K800R, K911,
M37R, M715R, J602R, M602R, M211R, J603R, CCKWR, MRAP, 민수용트럭
자주포 자주곡사포 M107R, M110R, K-55(A1), K-9(A1/{A2}), {K105A1}, 170mm 곡산 자주포X/R
자주박격포 K242(A1), K281(A1), K532, {한화테크원 120mm 자주박격포}
대전차 자주포 M36 잭슨R, M56 스콜피온R, SU-76X/R
대공 차량 자주대공포 M16 승공포R, K263(A1/A3), K-30 비호, K30 SAM 비호복합, {차륜형 대공포}, ZSU-23-4 쉴카X/R
단거리 대공미사일 K-31 천마
다연장로켓 M270(A1) MLRS, K-136 구룡 I/II, K-239 천무
공병 차량구난차량 K288A1, K1 구난전차, K-912 10톤 구난차량, 경구난차량, KAAVR7A1
AEV KM9 ACE, {K-600 장애물개척전차}
교량 차량K1 AVLB 교량전차, K-719 부교 운반차, {차기전술교량}
기타 K-313, K-512, {K-35X 정비샵}
프로토타입 중형표준차량
※ 윗첨자R: 퇴역 차량
※ 윗첨자X: 연구 목적 도입 / 노획 차량
취소선: 계획되었으나, 취소된 차량
※ {중괄호}: 도입 예정 차량
}}}





[1] 서방식 세대구분법과는 다르다.[2] тэ-три четыре(테-트리 체티레)[3] 독일의 37mm와 50mm 포의 중간정도 되는 위력이었다.[4] 레닌그라드 전차공장 지대에서 수석 설계자로 근무하다가 쾌속전차를 개발하던 하리코프 기관차 공장으로 전속되었다.[5] 사실 A-43은 T-34 초기형에서 단점으로 거론되었던 2인용 포탑 대신 3인용 포탑을 사용하고 여러 가지 설계상의 문제점을 개선할 목적으로 개발되던 것이라 완전히 잘못된 판단은 아니었다.(Zaloga, S., Sarson, P., T-34/76 Medium Tank 1941-1945, 1997, 13) 개발이 T-34의 생산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쿨리크 본인이 사사로운 취향 때문에 T-34의 생산을 완전히 중단시키라고 압력을 넣은 것이었다.[6] 같은 도시에 위치한 우랄트란스마쉬와는 다르다.[7] 같은 도시에 있던 중전차 설계국 키로프 공장과는 다르다.[8] L-11 전차포를 장착한 초기형으로 쿨리크 원수의 방해공작 때문에 1940년에는 117대만 생산되었다. 이전 내용에는 현재까지 살아남은 1940년형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라고 했으나, 러시아의 예카테린부르크의 한 지역인 Verkhnyaya Pyshma의 군사/역사박물관에 한대가 전시되어있다.[9] F-34 전차포를 장착한 사양으로 1941~42년에 생산되었다.[10] 1942~1943년까지 생산되었으며 포탑이 육각형으로 변경된 후 방어력이 올라가고 내부 공간이 조금 넓어졌다.[출처필요] 하술할 군수장관 알베르트 슈페어의 언급대로, 독일의 생산력은 오히려 1944년 정점을 찍었다. 연합군 폭격은 유효했으나 비효율적이었고, 중요거점지대를 피해간 덕에 독일 군수생산 체계는 점점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1943년 내지 1944년 초중반까지는 호각지세를 유지하고 있었고, 이는 스탈린이 연합국간 정상회담에서 서부전선의 개전, 즉 상륙작전을 계속 종용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12] 상관없어보이는 말이지만,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한 알렌 M. 섬너급 구축함 USS 래피가 독일군 해안포에 한 발을 맞았는데 이것이 체코의 공장에서 만들어진 불발탄이었다.[13] 이란 방면을 통한 랜드리스는 42년이 되어야 운영되기 시작하며 랜드리스의 혜택은 이미 소련이 우세해진 43년이 되어서야 재대로 누리게 된다. 그리고 43년이면 이미 스탈린그라드 전투까지 막 끝나고 독일이 수세에 몰린 상황이었다.[14] 철갑탄을 아예 지급받지 못해서 대전차전에서 별 소용이 없는 고폭탄만 쏘거나, 심하면 포탄이 아예 없어 동축 기관총만 쏘다가 산화되기 일쑤였다. 이 역시 쿨리크가 포탄 생산을 방해해서 벌어진 사태이다.[15] Zaloga, 10-11[16] 사실 이 전차의 신뢰성이라는 부분에서 소련과 독일 모두 문제가 있었고 점차 개선되던 소련군과는 달리 상대방인 독일 육군은 오히려 더 개악이 되는 형편에 남의 떡이 커보이는 현상도 발생하는지라 인터넷에선 맨날 필터 문제로 까이는 소련제 디젤엔진이 상대인 독일 전차병들에겐 '우리껀 심심하면 고장나는데 이는 소련제 디젤엔진이 엄청나게 튼튼한 것과 실로 대조적.'이라며 실전에선 찬양을 받기도 했다. 여기에 독일군은 운전수를 전차장 다음가는 고참이 맡아야 할만큼 조금만 잘못 몰면 전차가 망가져버리지만(특히 판터) 소련 전차는 트랙터나 몰던 사람들을 끌고와서 운전 맡겨도 일단 돌아는 가는 수준은 되었다. 사실 소련 전차병들은 T-34가 티거나 판터한테 한방에 훅 간다는 점에는 불만을 품고 있었으나 입밖에 냈다가는 너 숙청 신게세되기 딱 좋긴 했다. 다만 서부전선의 영국과 미국과는 달리 소련은 판터와 티거를 안정적으로 잡을 수 있는 85mm탑재 T-34가 있었기 때문에 무리해서 셔먼을 투입할 필요까진 없었고, 딱 그 체급에 맞는 역할을 기대했으며 셔먼은 그 기대를 충족시키고도 남았다.[17] 주석에 "현재까지 살아남은 1940년형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있다."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는 틀린 말. 당장 밑의 T-34-57도 이 차량 바로 뒤에 1량이 생존, 전시되어있다.[18] 500대가량이 생산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리고리 쿨리크 원수의 방해 공작으로 프로토타입을 포함한 117대만 생산되었다.[19] 초기엔 무전기가 장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손님이라 불릴 정도로 차체 전방기총을 발사하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보통은 뻑뻑한 5단 변속기를 조중수와 함께 변경하거나 전차장에 조수 역할을 했다.[20] 독소전쟁 초기에 대다수가 투입되어 소모됐을 것으로 추정되며, 정확한 운용기간을 알 수 없다.[21] 독소전 발발 당시 독일군 주력전차가 3호전차였는데, 전차 성능으로만 보면 T-34가 더 좋았으나, 대규모 숙청으로 인하여서 유능한 지휘관들이 제거되고, 무능한 인간들이 지휘하면서 안습적으로 패배...[22] 2인용 포탑이기 때문에 포수다.[23] 포방패 동축기관총 사수 역할을 한다.[24] 무전과 차체 전면 동축기관총 사수 역할을 한다.[25] ZiS-2 대전차포를 전차포로 개조한 것이다.[26] 차체 전면 동축기관총 사수석과 포탑 탄약수석에 각각 1정씩 있다.[27] 3,087발까지도 적재되었다는 얘기가 있으나 정확한 것은 아니다.[28] T-34-57은 단 50대만 생산되어졌다. 1943년형 프로토타입까지 포함하면 51대.[29] 어느 정도냐 하면 BR-271P 포탄 기준으로 100m 거리의 관통력이 88mm 전차포와 맞먹는다.[30] T-34/57 의 주포는 원래 대전차전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ZiS-2 대전차포였기 때문. 기술이 모자랐던 2차 대전 당시에는 일반적인 고폭탄을 탄속이 빠른 장포신 포에 넣고 쏘면 포탄이 포신 안에서 자폭할 위험성이 있었으므로 단포신 곡사포를 쓰거나 포탄의 벽을 두껍게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포탄 벽의 두께를 늘리면 그만큼 들어가는 작약의 양은 줄어들어 위력도 감소한다. 영국 역시 비슷한 문제점을 겪어서 2파운더용 고폭탄은 포 자체가 도태되기 전까지 제대로 개발되지 못했고 6파운더17파운더용 고폭탄 역시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다.[31] 소련에서 생산한 기간이다.[32]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면허 생산한 기간이다.[33] 유고슬라비아에서 면허 생산한 기간이다.[34] 소련에서 25,000여 대 정도가 생산되고, 나머지는 체코슬로바키아와 유고슬라비아에서 면허 생산된 것을 포함한 것이다.[35] 단 이것은 소련의 운용기간으로 현재도 여러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는 아직도 M4 셔먼과 함께 현역으로 사용 중이다.[36] 현재도 예비용으로 T-34/76과 함께 운용 중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북한군 병사들을 T-34/76 위에 태운 채로 운용하는 영상이 찍혔다.[37] 차량에 따라 다르지만 후면장갑은 40mm 혹은 45mm였다.[38] 3인용 포탑이기 때문에 더이상 포수의 역할을 병행하지는 않지만, 포수 또는 탄약수가 전투 불능 시에 포수 또는 탄약수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39] 포방패 동축기관총 사수 역할을 한다.[40] 무전과 차체 전면 동축기관총 사수 역할을 한다.[41] 1943년 초부터 1944년 3월까지 생산된 전차에 장착되었다.[42] 1944년 3월부터 1951년 초까지(소련에서 생산 종료된 시기) 생산된 전차에 장착되었다.[43] 차체 전면 동축기관총 사수석과 포탑 탄약수석에 각각 1정씩 있다.[44] 3,087발까지도 적제한다는 소리가 있으나 정확한 것은 아니다.[45] 독소전에서 대규모 기갑전인 쿠르스크 전투에서조차 독일군은 티거를 중대급으로 겨우 운영할 정도로 6호 티거 생산이 어려웠다.(전ㄴ차 자체의 성능으로는 당시 전차 중에서 거의 최강이지만, 기름소모량이나, 제작시 들어가는 자재 소모량이 너무 컸다.) 주력전차로 사용하기 위해서 생산한 5호 전차 판터는 대규모로 운영되었으나, 잦은 고장에 이미 당시에 우주방어 진지를 구축하는 소련군에게는 무뎌딘 칼날이었다. 심지어 지뢰매설 장소로 들어가서 적 야포에 포격목표나 되었다. 이에 비하면 T-34는 수백 대가 박살나가면서도 독일군 전차들을 소모시킴으로써 소련에 비록 전투에서는 패배하였지만, 전쟁에서 승리하는 결과를 만들어 주었다.[46] 실제로 85 mm의 APCR 관통력은 175 mm 내외였고, Pak 40의 APCR 관통력은 180 mm 수준이었다.[47] 또한 큰 차이가 있지는 않으나 T-34-85는초기형의 D-5T보다 약간 더 길고 전체적으로 약간 더 뛰어난 ZiS-S-53 포를 주력으로 사용했다.[48] 사실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 APCR 관통력 비교는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2차대전 시점에서는 연합군이든 추축국이든 게임처럼 돈만 있으면 막 쟁여놓고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APCR(=HVAP) 같은 특수탄은 만들기도 어렵고 (당연히) 값비싼 초레어템이었기 때문에 단 한 발도 없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니 어쩌다가 보급받으면 아끼고 또 아껴줬다가 중(重)전차 상대로나 쓸 수 있었는데 이 상황은 희귀금속이 부족해서 언제나 충분히 보급할 수 없었던 독일군은 물론이고 비교적 자원이 풍족했던 미군도 마찬가지라서, 미군 M4의 전체적인 탄약구성은 HE(고폭탄) 70%, AP(철갑탄) 20% 연막탄10%으로 HVAP탄은 임무내용에 따라서 프로토타입 한두발을 운좋게 받을 수 있던 수준이었다. 결국 미군의 제식 HVAP는 유럽의 전쟁이 다 끝나가던 1945년 3월부터 보급되기 시작했고, 6.25가 발발했을 때가 되어서야 예상 외로 튼튼한 T-34를 상대하기 위해 정식으로 지급되었다. Steven Zaloga, M4 (76mm) 1943-1965[49] 1920~2010. 1939년에 대학을 마치고 세무공무원으로 일하다가 1940년에 장교로 징집되었다(당시의 소련도 임박한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군을 확장하고 있었으나, 장교부족 사태 때문에 대학생 재학생이나 졸업생들에게 속성교육을 시키고 학사장교로 임관시켰다. 전쟁이 터진 후에는 아예 조금이라도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은 모조리 장교로 임관시켜 소대장이나 중대장을 맡겼지만, 이렇게 군사훈련을 전혀 안 받은 전술적 무학자들이 소대나 중대를 지휘하다가 소련군은 큰 해를 입었다. 그러나 종반기에는 이들도 짬밥이 생기면서 베테랑이 되고 소련군의 전력은 급상승했다). 기갑병과로 배치된 그는 1941년에 독소전쟁이 터지자 T-26을 몰다가 나중에 T-34/76을 거쳐 T-34/85를 몰게 됐다. 1942년에 큰 부상을 당해 후방으로 이송된 그는 회복되자 기갑학교를 졸업하고 1943년에 다시 전선으로 복귀했다. 1944년 바그라티온 작전 시인 8월 12일은 그는 독일군 티거2 전차 3대를 격파하고 1대를 나포해서 소비에트연방영웅이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 군에 남아서 중령까지 올랐고, 1971년 퇴역 후는 전차설계에 종사했다.[50] 게다가 이때는 소련이 공격, 독일이 방어하는 입장이며 방어자가 더 유리한데도 대등한 손실비를 보였음을 고려하면 그만큼 소련군의 기갑부대가 발전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51] 단, 1:1 설에 과장의 여지가 있다. 독일군의 병력 가용규모는 글랜츠, 오렌스타인 저서에 따르면 전차와 돌격포를 다 합쳐도 1330여 대 규모 정도이나, 당시의 소련군이 동원한 전차의 규모는 글랜츠와 하우스 저서에서는 5,818대, 프레이저 저서에서도 대략 4,000여 대 수준이며, 당시 소련군 전차와 돌격포 손실량은 크리보쉐프 저서(Soviet Casualties and Combat Losses in the Twentieth Century. London: Greenhill Books. ISBN 1-85367-280-7.)에 따르면 2,957대. 당시 참전한 독일군 전차가 전부 터졌다고 쳐도 교환비는 애초에 1:1이 될 수 없다.[52] 각 전차는 제11전차군단 소속이고, 전차번호는 k230, k238이다.[53] 독일의 쉬르첸처럼 만들어진 때부터 있는 게 아니고 현지에서 임기응변으로 농가의 닭장 등을 뜯어서 개조한 것이다.[54] 이 사진의 전차병의 군장의 변화에 주목할 만하다. 원래 소련군 전차병은 헬멧을 제외한 피복이 보병과 다를 바 없었으나(그래도 추가로 정비병처럼 검정색 커버롤(coverall)이 지급되기는 했다.), 소련이 승기를 잡아가고 군복이 대폭으로 개편되면서 전차병은 흑색 가죽제복을 받았다. 독일군과 마찬가지로 소련군도 전차병은 엘리트병이라는 인식이 강했기에 독일군처럼 보병과 차별화된 제복을 입게 된 것이다. 전쟁 전부터 전쟁 초기까지는 전차병과 장교는 일반병과 장교와 다른 오픈카라 회색 제복을 받았다. 역시 전차병과의 차별화된 위상의 증거다.[원문] "T-34 is an ugly tank, but the T-34 is an easy tank to make. And when the Soviet Union is fighting Hitler, they start to make T-34s, and they just make a lot of them." (T-34는 볼품없을지는 몰라도 만들기는 쉬운 전차였습니다. 소련이 히틀러를 상대하게 되자 그들은 T-34를 생산하기 시작하였고, 단순히 많이 만들었습니다.) 출처: 디스커버리 채널 Top Ten - Tanks (43:19)[56] 다소 어색하게 번역되었지만 해당 다큐멘터리에 나온 이 자막이 T-34의 미칠 듯한 생산력과 묘하게 잘 어울려서 국내에서 대량생산 또는 물량공세의 밈으로 쓰였다.[57] 실제로 41년 소련의 전차 손실은 약 2만 대인데, 42년까지 모든 전차를 합쳐 2만 5천 대를 생산해서 버텼다.[58] 미국 기술자들 사이에서 서열이 가장 높았던 건축가인 앨버트 칸(Albert Khan)은 1929년~1932년 사이에 521개소에 달하는 공장의 설계를 제공했고, 4000명이 넘은 건축가와 엔지니어를 미국인 공학자 수준으로 훈련시켰다. 10년 뒤의 M4 셔먼이 쏟아져나온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공장도 앨버트 칸의 작품이다.[59] Jonathan Parshall, 2013 International Conference on WWII - Kursk The Epic Armored Engagement[60]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한창일 때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현 볼고그라드 트랙터 공장, VgTZ)에서 생산된 차량은 페인트를 칠할 여유도 없이 즉시 전선으로 투입되어야 할 정도로 전황이 급박했다(Zaloga, Steven J., Peter Sarson (1994). T-34 Medium Tank 1941–45 (New Vanguard 9), p.23).[61] 이 상황에서 소련은 렌드리스로 받은 75 mm 셔먼을 T-34 대신 전방 주요 부대들에 투입했으나, 셔먼을 받았던 이 부대들은 곧 T-34/85로 다시 교체됐다.[62] 가장 큰 이유다. 독소전은 물론 양측의 병력 손실 규모도 어마어마한 전쟁이었으나 그 막대한 병력손실에도 어떻게 하면 저 슬라브인 민간인들을 더 저렴하고 간단하게 더 잘, 더 많이 죽일 수 있을까에 엄청나게 대해 연구하던 독일 정부의 적극적이고 계획적이며 체계적인 슬라브 민간인 학살로 인한 피해가 더 심각했다.[63] 독소 전쟁 중 인원수에 비하면 적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보병계열은 무식하게 가르쳐줘도 수만이든 수백만이든 보병으로 징집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전차를 운용해야 할 전차병을 보병에게 가르치듯 가르쳐주고 투입하면 팀킬은 물론 각종 사고가 벌어질 가능성이 안 봐도 뻔한 경우가 많다. 그나마 T-34는 전차 운용을 배우기가 아주 쉽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게 전차병 수요 충당할 수 있던 것.[64] 불과 1차대전 때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자동차를 모는 사람은 지금의 전용기 조종사 정도의 고급인력이었으며, 이 정도는 아니어도 2차 대전 때 자동차, 전차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상당한 고급인력이었다. 그 당시 자동차들은 지금 차량과 달리 주행을 보조해주는 전자 장비 같은 게 거의 전무했기 때문에 대부분이 수동, 기계식이라 운전 난이도가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65] 심지어 숙련공들이 징집되어 전선으로 나가고 여자와 노인, 소년들이 맡아서 일을 했음에도 시간이 지나자 생산시간과 가격이 초기의 50% 수준으로 떨어지고 여기에 완성도까지 올랐다![66] 저 T-34는 독일군이 노획해서 운용하다 방기된 전차다. 3컷에서 철십자가 보인다. 자세한 사항은 후술하였다.[67] 최근의 야인시대 합성물에서 자주 봤을 견고한 무쇠 덩어리이석재나, 의사양반이 드는 쇠몽둥이를 지칭한다.[68] 격파라는 용어를 듣고나서 이를 마치 적의 완전한 파괴를 의미한다는 식으로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는 격파라는 것은 적의 전투력 상실을 의미할 뿐이며 적을 완전히 파괴하든 당장 전투력만 상실시키든 똑같이 격파라 할 수 있다. 6.25 초기 바주카로 측면에서 T-34를 격파했다는 전과를 찾아보면 어김없이 바주카로 측면에서 T-34를 격파했으나 곧 북한군이 회수해갔다는 내용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어있는데 이 경우 실제로 T-34를 파괴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으며 북한군에 회수되었다면 수리하여 재배치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실질적으로는 사실상 파괴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봐야한다.[69] 백선엽 장군의 회고에는 철갑탄 자체가 없었다고 하지만 정작 대전차포 운용병들의 회고에는 철갑탄을 써서 격파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철갑탄보다 고폭탄을 더 많이 받았다고 이야기하는걸로 봐서 충분한 수량은 아니었던듯.[70] 이후 노획해서 재봤는데 똑같았다.[71] 항공기에 의한 기갑 차량 격파 전과는 국가를 가리지 않고 과장이 많을 수밖에 없었으니 감안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빠른 속도로 한번 공격 후 지나가는 공습의 특성상 피해 평가와 적 장비 식별을 정확히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폭탄과 로켓탄 덕에 밑에는 연기와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적은 십중팔구 공황에 빠져 흩어지니 격파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단단한 장갑으로 보호받는 전차는 직격탄이 아니면 의외로 쉽게 완파당하지 않았고 전차가 아닌 차량(6.25 발발 전 북한은 T-34 뿐만 아니라 SU-76도 공여 받았고 전차처럼 전선에서 보병을 지원하는 용도로 운용했는데, 이는 적 장비 식별에 혼란을 더했을 것이다.), 심지어 이미 파괴된 차량을 가동 중인 적 전차로 오인하는 경우도 흔했다. 2차 대전 중 동부 전선에서 특히 대전차 확산탄, 37mm/40mm 기관포, 심지어 50mm 대전차포나 75mm 야포 등 각종 항공기 탑재용 대전차 무기가 사용된 것이 이러한 교훈을 통한 각종 연구 때문이었고, 6.25 전쟁 중에는 의외로 네이팜으로 엔진룸부터 승무원 탑승 공간까지 싹 태워버리는 게 효과가 좋았다고 한다. 기갑에 대한 공습이 이러한 문제를 딛고 지상군의 전과를 넘어설 정도로 높은 치명도와 정확도 높은 피해 평가가 같이 이뤄지기 시작한 시점은 LGB, 매버릭, TOW 등 효과적인 유도 무장과 타게팅 포드, 레이더 등을 활용한 표적 및 전과 확인이 실전에서 널리 쓰인 걸프전부터라 보는 것이 합당하다. 이럼에도 코소보 사태 때는 작정하고 숨어 다니며 각종 기만용 더미(통나무, 판자, 풍선 등을 갖고 만든 가짜부터 이미 전력으로써의 가치는 없는 구형 기갑 차량 등)를 뿌려대는 세르비아군과 세르비아계 민병대에게 제대로 낚여 전과를 실제보다 몇 배 이상 오판하였다.[72] 위 내용을 봐도 알 수 있겠지만 T-34/85가 개발된 이후 76mm 장착형은 생산이 중지되고 이미 있는 재고들은 전선에서 소모되면 상태에 따라서 그대로 폐기하거나 쓸만한 부품을 몽땅 떼내어 유용한 다음 폐기하곤 했기 때문에 1945년 종전 시점에서 76mm 장착형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73] T-54가 47년부터 양산되기 시작하여 1950년에는 두가지 형식을 합하여 2천여대가 뽑혀나온 상황임에 반해 T-54의 화염방사 차량인 Object 481(OT-54 또는 TO-54)은 55년부터 양산되기 시작했으며 주포를 완전히 화염방사무기로 변경한 완전한 화염방사전차인 Object 483은 당연히 취소되었고 T-55사양의 화염방사 전차인 TO-55, Object 482는 60년 또는 61년에 양산하기 시작하여 10대 정도가 생산되었다. 전부 합쳐서 100대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전체 T-54계열 생산량에 비하면 한줌 수준이며 한국전 당시에는 양산되지 않아서 의미도 없다.[74] 2015년 승전 70주년 행사 때는 일곱 대가 동시에 나왔고 SU-100도 등장했다.[75] 궤도와 보기륜의 간격을 보아 T-54T-55다.[76] 당시 사회당이 선거에서 총선에서 승리한 뒤로 공약과 다르게 복지정책의 축소를 감행하면서 반발을 샀고, 거기에 스캔들까지 터지면서 시위가 거하게 터졌고, 결국 지방선거에서 사회당이 대패하고 말았다. 시위가 잠잠해진 뒤로도 결국 사회당은 지지율이 낮은 상황이었고 2008년 금웅위기까지 터져서 2010년 선거에서 대패하고 그 과실을 오르반 빅토르가 땄다.[77] 단순히 환산만 해봐도 T-34의 정면장갑인 45mm 60도는 90mm수준의 수직장갑의 효과를 낼 수 있다.(실제로는 여러가지 이유로 80mm대 수준이었다곤 하나) 채피의 M6 75mm포가 M72탄을 사용 할 경우 500m에서 수직 장갑(균질압연장갑기준) 92mm를 관통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채피가 T-34 상대로 힘을 못쓰는 것은 당연하다.[78] 다만 독일군의 대표적인 전차포인 7,5 cm KwK 40 48구경장포가 500mm에서 123mm를 관통 가능하다는 것도 생각해보면 주로 상대 할 적을 상대로는 충분한 방호력을 갖지는 못했다.[79] 대전 중반부터 불거진 치명적인 문제로 사실상 독일 기갑부대가 거덜난 가장 결정적인 이유로 손꼽힌다. 티거나 판터나 기동계통이 약해 장거리를 이동할 때에는 반드시 철도수송을 해야 했는데 갈수록 악화되는 전장 상황에 그럴 여유는 전혀 없었고 결국 이런 중전차들은 포위망을 여는데에 소모되거나 퇴각하는 아군을 따라 같이 가지 못하고 뒤에 남겨져 소련군의 진격을 최대한 막는데 사용되었고 그것으로 끝났다. 바그라티온 작전이 개시되고 7월 한 달 동안에만 티거가 무려 130여대가 손실되었는데, 티거 총 생산 대수의 10%에 달하는 숫자이다.(당시 동부전선에 전개된 중전차대대 6개 대대 중 전멸 1, 장비전손 및 탈출 2, 심각한 손실 1, 반도 고립 1)[80] 참고로 T-34의 대량 생산 경험이 나중에 T-54/55의 기계적 신뢰성을 담보하는데 유용한 피드백이 되었다.[81] 추축국은 연합군에 비하면 전차의 보유량이 매우 적었고 이 부족한 숫자의 전차들로 전과를 내기 위해 이 전차들을 집중적으로 모아서 사용했다. 이 때문에 개별 연합군 전차가 추축국 전차를 만날 확률은 매우 낮았다. 그래서 심지어는 대전차전을 상정하고 운용된 미국의 대전차 자주포들도 고폭탄을 철갑탄만큼 넣고 다녔으며 소련 전차들은 티거2나 야크트티거가 존재하던 대전 후기에도 철갑탄보다 고폭탄을 훨씬 더 많이 싣고 다녔다. 애초에 전차부대를 상대한다고 해도 근처에 보병이 없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소련의 엄청난 전차물량을 소수의 전차로 방어해야하는 독일의 전차들도 AP와 HE의 비율이 5:5수준은 맞췄다. 물론 기행의 나라에서 만든 모 전차는 연합군 소속이지만 철갑탄만 가지고 다니는 기행을 펼치기도 했다... -이 부분의 출처:월탱붕미 공홈-얼망겜의 20가지 구라[82] 물론 대전차전에서도 티거1 1대가 T-34/85 4~5대를 상대로 이긴다는 것은 쉽지 않다. 17:1 같은 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일이다.[83] 2010년도에도 대배기량 디젤 엔진 블록은 주철로 만든다.[84] 다만 독일 전차도 전쟁 후반기로 가면 엔진이나 트랜스미션이 감당 가능한 무게를 넘어 중장갑과 화력을 갖추느라 구동계 신뢰성이 개판이 된다. 이쪽은 기술력은 있으나 그 이상을 바란게 문제. 타이거 1 정도까지만 되어도 운전병이 조심만 하면 기동성이 매우 뛰어났다고 베테랑들이 증언 했으니...[85] 미국도 B-29를 정비할때 비슷하게 비행시간 75시간마다 모든 엔진 교체로 고장을 해결하기도 했는데, 이경우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당시 B-29가 장착하던 엔진들은 피스톤 엔진 기술의 절정을 찍은, 무려 18기통 2200마력짜리 엔진들로, 실제 수명은 수천시간마다 오버홀 받으면 되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쪽은 엔진 카울링과의 설계가 안 맞아 엔진 온도가 수천도까지 달아오르는게 문제였던것. 단 시간 안에 설계를 고칠 방법은 없는데, 반대로 정비인력과 군수능력은 수백대에 달하는 이 B-29들의 각 4개씩의 엔진을 75시간마다 교체 가능한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요약하면 T-34는 사람도 군수력도 없는데 후방에서 기형적으로 탱크만 많이 만들어서 벌어진 사태, 그리고 B-29는 시간이 없는데 사람과 군수력은 빵빵해서 벌어진 일이다.[86] 제대로 된 전면전에선 생각외로 큰 약점이 아닌데, 해치만 노리고 쏘기가 쉬운 것도 아니었고 후기형의 경우 해치의 두께가 전면 장갑보다 더욱 두껍도록 개조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무거운 해치를 여는걸 돕기 위해 전용 스프링 장치가 달려있어서 해치를 열 때는 스프링의 힘으로 밀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전면 장갑에 저렇게 큰 구멍을 뚫을 경우 전면 장갑의 강성과 내구성이 전체적으로 약해지고, 당연히 전차의 전체적인 생존성에 악영향을 끼친다. 후기형 전차인 IS-3T-44에서 전면 해치를 없앤 결정적인 이유이다.[87] 그래서 월탱에서 연재되던 웹툰인 붉은 마녀에서 동양인 병사들이 승무원으로 나오며, 영화 화이트 타이거: 최강전차군단에서도 T-34의 탄약수로 동양계 병사가 등장한다.[88] 장점에 속하는 생산시에 숙련된 노동자나 기술자가 별로 필요하지 않는 특징에 의해서 비숙련자들의 가공력에 정밀한 금속부품이 나올래야 나올수 없었기 떄문인 것으로 밝힌다.[89] 애초에 소련식 신뢰도라 해도 굳이 현대의 관점에서 이를 신뢰도로 인정하거나 평가할 이유가 없다.[90] 소련이 미국에 운반을 위해 유조식 여과기에 오일을 제거한 것을 미국인들이 건식 여과기로 착각하여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미국의 기술자들이 바보도 아니고 시험평가 때는 실물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설명서 및 제원표도 같이 보내어서 평가받도록 한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신빙성이 낮다. 6.25 전쟁 당시 노획한 T-34/85를 미국이 애버딘에서 재평가한 테스트에서도 앞선 테스트에 비해서 나아진게 없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차량 상태도 괜찮은 편이었다고.[91] 이 필터문제는 사이클론 필터로 교체하고도 완벽히 해결된 것은 아니고 IS-2부터 적용된 신형 필터에서 최종 해결된다.[92] 과거 한국군 전차병들의 선호전차는 M47 > M48 > K1 순이었다. 뒤로 갈수록 성능이 훨씬 좋지만 갈수록 좁아져서 전차병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일본 육상자위대 소속 전차부대원들도 90mm포를 장착했지만 결함이 많은 61식 전차보다 포는 작지만 조종성이 훨씬 뛰어난 M41 워커 불독을 선호했다.[93] 중기형인 T-34/76까지 이랬고 T-34/85부터는 관측장비를 늘렸다. 하지만 여전히 기총사수는 손가락만한 기관총 조준구밖에 관측장비가 없었다.[94] 전시의 전차생산은 일반적으로 규모의 경제의 효율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고 알려진 자동차 산업보다도 훨신 규모의 경제가 잘 먹히는 분야다. 반대로 독일 독일은 잦은 형식 변경이 있었으며 용도가 상당히 겹치는 다양한 종류의 병기들을 생산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압도적으로 떨어지는 생산성을 선보이게 된다. 똑같이 100의 공업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1년에 한번씩 개선사항이 적용되는 단일 모델을 뽑으면 규모의 경제로 150만큼 뽑겠지만 몇달에 한번씩 있는 잦은 개량과 함께 여러 모델을 동시에 뽑으면 같은 공업력으로도 생산량이 총 50도 나오기 힘들며 소련과 독일의 생산 시스템을 비교하면 딱 이러하다고 볼 수 있다.[95] 심지어 그 개량들도 상당수는 성능이 아닌 생산성을 더 높이기 위해 도입되었다.[96] 단포신 L-11 전차포를 장착한 극초기형이다.[97] T-34의 경우 독소전쟁 초반에 소련군이 패주했을 때 많이 노획해 사용한 예가 많으나 소련군이 본격적으로 맞붙기 시작한 이후에 나온 T-34-85는 노획 사용 예가 거의 없다.[98] 기존 T-34의 포탑을 제거하고 4연장 기관포를 장착한 형태로 총 3대가 제작되었다.[99] 체코제 35/38t도 있긴 하지만 이건 공장 점령 후 생산라인을 갈아엎기 싫어 그대로 양산까지 한 전차라 예외다.[100] 게다가 원래 크기로 돌아왔을때 자세히 보면 열쇠고리의 고리까지 통째로 커져서 전차에 달려있다.그런데 유지보수 같은건 어떻게 하고, 열쇠고리를 한 번이라도 떨어뜨리면 전차가 망가지지 않을까 크기가 줄어들면 무게도 줄어드는 핌 입자 특성상 떨어진 열쇠고리 정도 타격이라면 별 문제 없을것이고, 거의 50년 가까이 방치된 박물관 전시용 T-34가 무사히 굴러다니는걸 봐서는 운전 정도는 그렇게 방치해도 충분히 가능할 듯 싶다.[101] 팬저는 Panzer를 영어식으로 읽은 것으로 뜻은 전차. 끝(...). 근데 애초에 팬저는 영어권에서 흔히 쓰이는 독일군 전차들을 칭하는 고유명사기에 문제는 없다. 괴상할 것도 없고.[102] 국군이 사용하는 M48A3등 개량형들은 같은 M41포라도 사정거리가 약간 더 길고 관통력도 85mm보다 1 높은 9다.[103] 당연히 이 전차들은 최대 사정거리가 T-34보다 길기 때문에 T-34와 동일한 1575m에서는 1~2정도의 추가 관통력을 갖게 되어 T-34보다 실질 관통력은 더 높다.[104] 2랭크부터 시작되는 T-34 트리는 2랭크에서는 KV-1을 능가하는 중전차마냥 다닌다. 그냥 룰루랄라 다녀도 맞아도 뚫릴 확률이 낮다. 따라서 국뽕이라 욕먹는중. 물론 T-34-85가 서식하는 4랭크에서는 각종 판터, 티거2 따위가 판을치니 물장으로 느껴지겠지만 이게 물장이면 독일 유저들은 여태까지 질소장갑을 들고다녔다고 봐도 된다.[105] 고증대로 차체는 후기형인 T-34/85까지 거의 변화가 없지만 포탑 장갑은 두꺼워진다.[106] 물론 골탄을 쏘기 시작하면 7티어도 못뚫을게 없고 정신나간 DPM을 살릴 수만 있다면 의외로 할만하긴 하다. 어차피 105mm 곡사포 쓰는 다른 5티어 중형도 고 티어에 의미있는 데미지를 주지는 못한다.[107] 다만 Type T-34나 Type 58이나 소련제와 모양과 스펙은 똑같은데 다만 한가지, 대륙의 기상 때문인지 소련제 원조와는 달리 포를 숙이지 못한다. 중국 특유의 특성인 부각이 극악이라 소련제보다 언덕전에서 다소 불리하다고 할 수 있다.[108] 최근 재판되었다. 76버전은 꾸준히 나왔는데 85버전은 구금형 한정판인지 좀 품절되는 경우가 많다.[109] 사실은 30년을 훌쩍 넘은 구제품의 재판이지만, 키트의 퀄리티 자체는 최초 발매 시기를 생각하면 상당히 훌륭하다.[110] 타미야의 XF-61 다크 그린은 냉전시기 영국군 차량에 맞는 짙은 녹색이고, 자사 컬러 기준으로 올리브 드랍(XF-62)보다는 올리브 그린(XF-58)이 낫다. XF-62는 1940년대 미군 전차에 사용된 갈색 기운 짙은 녹색이며, XF-58은 1943년 이후부터 사용된 황색기가 도는 짙은 녹색(모형계에서는 그 이전에 쓰던 밝은 녹색과 구분하는 의미에서 전자를 러시안그린1, 후자를 러시안그린2라고 부른다.)과 색감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적절한 대체제가 된다.[111] 후반부에 IS-2로 갈아탔다.[112] 하필 충돌한 곳이 두 전차 모두 외장 연료 탱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