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24~2006년까지 존속한 일본의 완구회사. 토미카, 프라레일, 조이드, 라데오 레이서 등으로 유명하며, 존속 당시 슬로건은 'Dream Energy', 홈페이지 도메인은 'www.tomy.co.jp'였다.
본사는 도쿄도 카츠시카구 타테이시 7-9-10에 소재했다.
2006년에 같은 완구 제조업체인 타카라와의 합병으로 인하여 타카라토미가 되었다.
2. 합병 이전의 역사
1924년에 토미야마 에이이치로(1903~1978) 창업주가 도쿄도 니시스가모에 토미야마 완구 제작소(富山玩具製作所)를 창업하고, 처음에는 주로 모형 비행기를 제조하는 회사였다. 1927년 '합자회사 토미야마 공장'으로 법인전환 후 1952년 산요 완구 제작소로 사명을 바꾸고 이듬해 '산요 공업(주)'로 법인전환했다. 1959년에 영업부문을 '토미야마 상사'로 분할하고 1963년에 산요 공업을 '토미 공업'으로, 토미야마 상사를 '토미'로 각각 변경했다. 1966년 '토미 디플롭먼트 센터'를 열고 1970년 영국령 홍콩에 첫 해외법인을 세웠으며, 1989년에 토미공업과 토미가 합병해 '(주)토미'가 됐다.주력 상품으로는 미니카 브랜드인 토미카 시리즈[1], 프라레일[2], TOMIX[3], 조이드, 라데오 레이서, 서바이버 샷, 성전사 단바인[4], 엘드란 시리즈, SCITEX[5], 배틀 스키퍼 등이 있다. 일본 내 디즈니 관련 상품의 제조, 판매도 하고 있으며, 1998년부터 일본법인 해즈브로 재팬(구 노무라 토이)으로부터 해즈브로 일본영업권도 양수했다가 2001년부터 타카라로 넘겼다. 한국에서는 영실업이 이 회사 제품의 일부를 계약생산/수입한 적이 있으며, 프라모델의 경우는 아카데미과학에서 계약생산/수입한 적이 있다.
이외에도 포켓메이트라고 태엽식 등으로 작동하던 아날로그 게임기(?)시리즈를 내놓기도 했다. 그중 F1 레이싱이나 야구게임은 한국 업체에서 카피하기도 하였다. 레이싱의 경우 태엽으로 미리 트랙을 감은뒤(?) 태엽을 놓으면 고정된 트랙이 진행되는데 좌하단의 러더로 플레이어 자동차를 움직이는 방식의 게임인데 이것의 원본이다.
도매상으로부터 시작한 반다이나 타카라와는 달리 제조 업체로 시작한 토미였기에 유통면에서는 다른 회사들에 비해 불리했지만 완구 업계 최대의 상품개발진을 갖고 있어서 기술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얻어 1970년대까지는 「기술의 토미」라고 불렸다. 다만 개발자의 발언력이 너무 강해 마케팅이나 경영까지 영향을 미치는 체제가 되어버리자 결국 토미의 3대 사장인 토미야마 간타로는 반다이같은 가벼운 조직을 만들기 위해 개발진을 해체했다.
토미는 1970년대 들어서야 텔레비전 스폰서를 시작한다. 당시 회사 내에서 "토미는 다른 회사들과 비해서 상품개발에 많은 수고를 들이기 때문에 상품개발 시간이 오래 걸리는 텔레비전 마케팅은 무리다."라며 많은 반대를 받았지만 반다이나 타카라에 비해서 텔레비전 마케팅이 늦어졌다고 생각한 토야마 사장의 결의로 강행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토미의 첫 스폰서 작품은 1976년 공룡탐험대 본프리이며, 1981년 조이드 시리즈를 런칭한다.
의외로 컴퓨터 하드웨어도 만든 적이 있다. 퓨우타(ぴゅう太)라는 이름의 컴퓨터인데 1980년대 초에 나온 것이다. 북미에는 TOMY Tutor라는 이름으로 수출되기도 하였으나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나 워낙 마이너해서 묻힌 것 같다.
1990년, 토야마 사장은 아들에게 "토미의 장난감은 멋이 없으니 나는 크면 반다이에 들어가고 싶어"라는 소리를 듣고 심대한 충격을 먹고 이를 소비자의 의견으로 간주, 절대무적 라이징오를 출범시키며 엘드란 시리즈를 런칭시킨다. 엘드란 시리즈는 경쟁사인 타카라의 용자 시리즈보다 시청률에서 2배를 앞서나갈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라이징오 이후 완구 판매량이 크게 감소하여 결국 고자우라를 끝으로 엘드란 시리즈는 종료되어버린다.[6] 그 덕에 업계에서는 역시 토미에게 캐릭터는 무리다 소리를 들었다.
엘드란 시리즈가 막을 내린 후, 토미는 소비자가 텔레비전보다 출판을 통해서 상품의 정보를 얻는다는 걸 알게 되고 애천사전설 웨딩피치를 통해 발전시킨 소학관과의 관계를 통해서 폭주형제 렛츠고(우리는 챔피언)의 상품화권을 획득, 미니 게임기나 캐릭터 상품을 독점하여 상당한 성공을 거둔다. 이후 포켓몬스터의 상품화권을 취득하여 대히트. 반다이도 일부 판권을 획득하긴 했으나 다마고치의 대박으로 인해 포켓몬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의 대히트에 의해서 1980년대부터 완구 업계 3위의 지위에 있던 토미는 1997년도에 타카라를 앞지르고 2위로 부상한다. 닌텐도 플랫폼으로 나루토 격투닌자대전 시리즈를 발매하기도 했는데 나름 인기도 많았고 판매량도 괜찮았었다. 토미가 만든 나루토 격투닌자대전 시리즈는 대한민국 문방구 게임기에서 시간제로 가동되기도 했었다.
1970년대까지는 「기술의 토미」라 불릴 정도로 기술력이 좋은 회사였지만 개발팀이 해체된 이후 발매한 제품들은 막장인 퀄리티를 가진 제품들이 많았다. 만드는 게임(주로 애니/만화의 캐릭터 게임 위주였다. e.g. 유유백서 등)은 하나같이 B급스러워서 팬들에게 혹평을 받았고[7], 만드는 키트 역시 건프라 등과 비교하면 떨어지는 퀄리티면서도 반다이보다 더 한 상술을 부려 악명이 자자했다.[8] 사실 게임이나 키트의 퀄리티만 이러면 다행이고, 이미 전설이 된 만악의 근원 토미 마케팅부부터 시작해서 마케팅의 핵심이 되어야 할 애니메이션마저도 B급의 극한을 달리는 경우가 꽤 된다. 매화가 최종회 연출을 하는 것으로 악명높은 인조곤충 카부토보그가 토미에서 만든 작품이니 더 말해 뭣하랴...
3. 타카라 인수
2001년, 타카라가 베이블레이드(탑블레이드)를 히트시킨 것과 동시에 토미가 스폰서였던 포켓몬스터의 부진이 겹치며 타카라는 토미로부터 2위를 뺏겼다. 그러나 2002년부터는 상황이 다시 역전되는데 타카라가 트랜스포머와 베이블레이드로 번 돈으로 베리베리 뮤우뮤우와 머메이드 멜로디 피치피치핏치에 엄청난 대투자를 했고, 사업 다변화를 위해 본 사업인 장난감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전기자동차 사업에 참여했다. 하지만 결과는 경영 악화라는 대참패로 끝났으며, 이에 영향을 받아 경영부진에 빠진 타카라를 토미가 존속 합병하여 타카라토미로 거듭났다.경영진은 대부분 토미쪽이 유임된 데다 일본 회사명과는 달리 영문회사명도 타카라를 버리고 토미쪽을 유지했기에 사실상 토미가 타카라를 인수합병한 셈이다.
다만, 반다이가 다각 경영 체제이기 때문에 규모면에서는 2위. 완구사업만 비교하면 반다이와 호각이다.
현재는 반다이의 게임에도 토미가 스폰서를 했던 작품이 나오는 상황. 그렇게 치고박던 셋이 이런 관계가 된 걸 보면 세월이란 참 대단하구나 싶다.[9]
[1] 이 제품군을 기반으로 토미카 하이퍼 시리즈가 파생된다.[2] 일본 독자의 철도 모형 규격...이라기 보다는 아동 대상 장난감 기차다.[3] 1996년, 토미에서 분사해 설립한 TOMYTEC가 계승해서 절찬리 발매중이다.[4] 완구 발매원이였던 클로버가 본 방송 중에 파산했기 때문에 빌바인의 금형을 계승해 출시했다.[5] 한글로 읽으면 사이텍스, 조이드의 파생제품.[6] 특히나 라이징오 이후에 발매된 간바루가와 고자우라의 경우, 3대의 주역로봇을 무리하게 합체시킨 결과, 엄청난 양의 잉여 부품이 생기는 등 경쟁작인 용자 시리즈에 못 미치는 완구 퀄리티를 보였다.[7] 그런데 이걸 토미 탓만 해서는 안되는게 경쟁사 반다이와 마찬가지로 이런 류의 캐릭터 게임은 전문 개발사(e.g. 토세)에 하청을 줘서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8] 오죽하면 미국에서 조이드를 팔고 있는 해즈브로에서 자체 개발한 키트의 퀄리티가 훨씬 뛰어난 경우까지 있다. 게다가 조이드 사가 등의 캐릭터 게임은 계속 나오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팬들이 슈퍼로봇대전에 조이드가 나온다고 반프레스토가 제작해 준다고 기뻐할 정도면 답이 없다.(...)[9] 이런 경우가 없는 게 아닌데, 코토부키야가 슈로대 프라모델을 발매했을 때 검수를 반다이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