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조기현 시인의 대표시 중 하나이다.2. 전문
1.밥상에, 칼이 올랐다이제 더는 그 무엇도 자르지 못할한 도막 칼날"세네갈 산産이시더."
어물전 아낙 허리는 호미 같았지"눈알이 노랗네." 그래도 아직은
은빛 날이 선 장검 한 자루바다 물살을 헤집어 다니던
칼의 길들, 까마득히 잊은 저녁구워진 칼은 어찌 이리도
기름지고 부드럽나대서양에 해가 지고
파도가 블루스[1]를 밀어온다세네갈의 여윈 아이인가
내 쪽을 보고 있다팻시[2]의 눈매
물빛 글썽하다
세네갈 바다에 살던
네가 왔다물살 같고
빛살 같던, 네가
잡혀 죽어서 왔다꽁꽁 얼어붙어서
칼처럼 굳어서
뭔가를 베어버릴 듯하다가
그만 체념해버린 모습
눈알만 노랗고 동그랗게 뜬 채, 왔다포항 죽도시장 어물전
물음표처럼 구부러져 앉은, 아낙 앞에
얼음 깔고 비닐을 덮은
생선 좌판 위에칠성판 위에
네가, 왔다
젊은 날 숨겨 갈던, 칼끝내 그 무엇도 베지를 못하고 홀로 울던
비수, 장검이 되도록 날 푸르던 꿈남몰래 내버리고, 애써 잊어버리려 해도
돌이키면 어느새 다시 돋아 있던내 가슴 속, 칼지금에야 다시 백발 머리 숙여
너를 본다"한 마리, 만 원이라예."어물전 아낙 손에
도막 나고, 왕소금마저 둘러쓴내 젊은 날, 장검 한 자루
어물전 아낙그 손끝에 미늘로 붙은 초승달
오늘도 눈먼 바다의 배를 가른다무슨 한이 서려 그랬는가
어찌 배가 고파 그랬던가온 바다를 가르고 갈랐어도
막상 나서면 또 물음표로 가는 인생니는 또 우짜다가 이리 먼 데로 왔노!
하긴, 내도 우야다가 이리로 왔실꼬!세네갈이 어떤 덴지, 한번 가 보지 않았어도
이놈 눈깔 노래가지고 여태 우는 꼴을 보면 알제아가야, 세네갈 아가야
이건 칼이 아니라 달이란다어여, 눈 감고 자거래이!오늘은 멀리 세네갈서 왔다는
굵고 실한 갈치들을 도막 친다.웹진 『시인광장』 2022년 10월호 발표
[1] 17세기부터 미국으로 끌려와 남부지방, 특히 미시시피 델타의 목화밭에서 노동하던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아프리카 음악 전통을 유럽의 음악과 접목해 탄생시킨 음악 장르.[2] 미국 영화 노예 12년의 흑인 여성 노예(배역: 루피타 니옹)의 이름. 일을 잘해서 ‘목화밭의 여왕’이라 불리지만 백인 농장주의 집착에 표적이 되어 성적 노리개가 되고 잔혹하게 학대를 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