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통 바로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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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가스통 바로 (Gaston Barreau) |
출생 | 1883년 12월 7일 |
프랑스 제3공화국 르발루아 | |
사망 | 1958년 6월 11일 (향년 74세) |
국적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포지션 | 하프백 |
신체 | 173cm/ 64kg |
등번호 | -[1] |
소속팀 | 르발루아 (1898~1907) 클럽 프랑세 (1908~1909) 르발루아 (1909~1919) |
국가대표 | 12경기 0골 (프랑스 / 1911~1914) |
감독 | 프랑스 대표팀 (1919~1945) 프랑스 대표팀 (1949~19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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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1949년부터 1951년까지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2. 생애
2.1. 선수 생활
바로는 1898년부터 르발루아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1908년부터 1909년까지 클럽 프랑세에서 뛴 것을 제외하면 모든 커리어를 르발루아에서 보냈다. 바로는 하프백으로 활동하면서 국가대표팀에도 뽑힐 정도로 실력이 있는 선수였는데 1911년부터 1914년까지 총 12차례의 A매치를 치렀다.바로의 A매치 데뷔전은 악몽이었는데 브뤼셀에서 벨기에에게 7대1로 대패한 것. 부상으로 인해 30분간 필드를 비웠다가 후반전에서야 다시 들어왔고 결과는 참담했다. 마지막 경기이던 1914년 헝가리전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바로는 여기에서 어깨뼈 골절로 경기장을 나갔고 팀은 5대1로 대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