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1 04:49:41

갈리오/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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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경 스토리 #2. 깨어난 영웅 #3. 소녀와 석상 #4. 구 설정
4.1. 구 단문 배경4.2. 구 배경 14.3. 구 배경 24.4. 리그의 심판

1. 배경 스토리 #

갈리오의 전설은 룬 전쟁의 여파로 수많은 피난민이 마법의 힘을 피해 도망치면서 시작되었다. 발로란 서부, 고향을 잃은 피난민 무리 하나가 사악한 흑마법사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며칠에 걸친 추격을 피하느라 지친 피난민들은 고대 석화림에 숨어들었고, 그들을 쫓던 흑마법사들은 그곳에서 마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화석화된 나무들이 자연적으로 마력을 억제해 석화림 안에서는 마법이 무용지물이었다. 이를 알아챈 피난민들은 무기를 들고 그 숲에서 흑마법사들을 몰아냈다.

마법을 억제하는 그 숲을 두고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생각한 이들도 있었고, 힘든 여정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을 새 삶의 터전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 이견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착민들은 숲을 이용해 마법에 대항할 장비를 제작했고, 나중에는 나무에 재와 석회를 혼합해 페트리사이트라는 강력한 항마 물질을 만들어냈다. 새로 태어날 문명의 기반이자 데마시아 왕국의 성벽이 될 신물질의 탄생이었다.

이후 수년간 데마시아인들은 왕국의 영토를 둘러싼 페트리사이트 성벽 덕분에 마법의 위험으로부터 안심할 수 있었다. 종종 국경 외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면 용맹한 데마시아군이 활약했지만, 마법을 사용하는 적을 상대로는 속수무책이었다. 어떻게든 항마석 성벽의 마법 차단 능력을 전투에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조각가 듀란드는 페트리사이트를 이용해 데마시아군을 위한 마법 방어 장치를 만드는 임무를 맡았다. 그리고 2년 뒤 자신의 걸작을 공개했다. 그것은 갈리오라는 이름의 날개 달린 동상이었다. 사람들이 기대했던 바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지만, 갈리오는 왕국 방위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발로란 대륙 전역에서 데마시아의 상징으로 자리 잡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갈리오를 전장에 끌고 가려면 도르래와 강철 썰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황소가 필요했다. 거대한 페트리사이트 석상은 경외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침략의 기회를 엿보던 많은 적은 갈리오를 보는 순간 얼어붙었다. '마법을 먹어치우는' 거석상 갈리오 덕분에 데마시아인들은 용기를 얻었고 적들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석상이 다량의 마력에 노출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던 중 데마시아군은 푸른 송곳니 산맥에서 '비전 주먹'이라고 알려진 전투마법사들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려 13일 동안이나 데마시아군을 향해 강력하고 초자연적인 마법 화살을 퍼부었다. 마법 공격에서 살아남은 데마시아군 병사들은 사기가 꺾인 채 갈리오 주위로 몰려들었다. 전의를 완전히 상실할 때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큰 울림이 계곡을 천천히 뒤흔들었다. 마치 두 개의 산맥이 서로 부딪히는 듯한 소리였다. 뒤이어 거대한 그림자가 머리 위로 드리우자 데마시아군 병사들은 죽음을 예감했다.

순간 병사들의 머리 위에서 굵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마시아군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들의 뒤에 서 있던 거석상이 스스로 움직이면서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흡수한 마법이 축적되어 갈리오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었다. 갈리오는 데마시아군 앞에 우뚝 서서 자신의 거대한 몸으로 마법 화살 공격을 연이어 흡수해 막아냈다.

그리고 갈리오는 몸을 돌리더니, 산비탈로 뛰어올라 비전 주먹 마법사들을 남김없이 격파했다.

데마시아군은 환호했다. 하지만 자신들을 구해준 페트리사이트 석상에 감사의 뜻을 표하려던 그 순간, 갈리오는 다시 석상 받침대 위로 돌아가더니 움직임을 멈추었다. 석상이 생명력을 얻고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만큼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이 기이한 이야기는 푸른 송곳니 전투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의 입을 통해 위대한 도시에서 조용히 퍼져 나갔지만, 누구도 쉽사리 믿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날의 일화는 전설이 되었으며, 사람들이 고난의 시기를 견디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 정도로 치부되었다.

누구도 믿지 못했겠지만, 거석상은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목격했다. 심지어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의식이 깨어있었으며, 전투의 희열을 다시 맛보고 싶어 했다.

오랫동안 갈리오는 자신의 발밑에서 경의를 표하는 인간들을 지켜봤다. 인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었다. 갈리오는 의아했다. 사라진 인간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전투를 마친 뒤에 자신이 그러하듯이 인간들도 수리를 받으러 가는 것일까?

얼마 후 갈리오는 그 해답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데마시아의 인간들은 자신과 다르게 도장을 새로이 하거나 쉽게 고쳐질 수 없다는 슬픈 사실이었다. 인간들은 연약한 필멸의 존재이기 때문에 갈리오의 보호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동안 갈리오의 피를 끓게 만든 건 전투의 희열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전투에 데마시아인의 보호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하지만 이후 수백 년간 갈리오가 참전한 전투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옛날처럼 마법사의 숫자가 많지 않았고, 데마시아도 내치에 더 신경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페트리사이트 거석상은 흐릿한 백일몽에 잠긴 채 세상을 바라봤다. 강력한 마법의 힘을 받아 다시는 잠들지 않아도 될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그렇게 되어야만 영원토록 데마시아의 수호자로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으리라.

2. 깨어난 영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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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다가오고 있었다. 갈리오는 데마시아 군인들의 전쟁 준비를 지켜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마법의 힘을 느낀 게 언제인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출정은 여러 번 했지만 한 번 더 생명력을 느낄 기회는 얻지 못한 채 돌아왔다. 그러나 그의 몸이 굳어 있을 때도 그의 마음은 항상 요동쳤다.

전투의 긴장감을 온몸으로 느끼며 싸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갈리오는 그저 저 멀리에서 북방의 야만인 무리가 어수선하게 행진하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데마시아 군대와의 일전을 위해 울레줄레 행진하는 군인들은 꿈처럼 흐릿한 감각으로 보기에도 오합지졸이었다. 갈리오는 프렐요드의 야만인들이 최근 점령지에서 저지른 만행을 수차례 들었다. 불안에 떠는 데마시아 사람들은 프렐요드인들은 누구도 살려두는 법이 없고 적의 머리를 베어 기이한 짐승들의 상아 위에 산처럼 쌓아 놓는다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야만인들은 갈리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는 더 큰 대상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뒤로 선 언덕만큼이나 거대한 어떤 것. 풀려나길 기다리며 성난 파도처럼 온몸을 들썩이는 요란한 움직임이 심히 기괴했다.

저게 대체 뭐지? 갈리오는 약간 들뜬 기분이었다. 저게 뭐든 간에 한 판 싸울 수 있으면 좋겠군.

그의 발아래로 완벽한 정렬을 유지한 데마시아 군인들이 승리를 다짐하는 구호를 외치며 전의를 다지고 있었다. 그들이 부르는 군가는 서로에게는 승리에 대한 자신감으로 들렸지만 이미 많은 군가를 들어 온 갈리오에게는 확신 없는 망설임으로 느껴졌다.

우리 군인들은 저 거대한 짐승과 싸우는 걸 두려워하고 있어. 내가 대신 싸워줄 수 있다면!

갈리오는 데마시아의 모든 군인을 그의 튼튼한 팔로 안아 올려 말해주고 싶었다. 괜찮을 거라고. 그가 나가 모든 적을 국경 밖으로 쫓아낼 거라고. 그러나 그 상태로는 불가능했다. 팔, 다리, 발톱, 모두 그의 모태인 돌처럼 차갑게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를 움직이게 해 줄 기폭제가 필요했다. 눈 뜬 채 꾸는 꿈에서 그를 깨워 줄 강력한 마법이 필요했다.

이번엔 마법사가 있으면 좋겠군. 보통은 없지. 마법사가 없는 전투는 별로인데. 갈리오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를 끄는 소들이 탈진한 듯 콧김을 뿜어내자 그의 우려는 점점 커졌다. 모두 수십 마리나 되는 소들이 1마일마다 교대로 그를 끌고 있었다. 잠깐 동안 갈리오는 인간들이 싸움을 즐기는 사이 소가 모두 쓰러져 데마시아 외곽의 숲속에 혼자 남겨지는 상상을 했다.

그 때 마침내 그를 실은 수레가 전장의 가장자리에 도착했다. 그는 프렐요드의 야만인들이 절대 물러서지도, 협상하지도 않을 것임을 알았다. 갈리오는 조그마한 군인들이 서로의 방패를 걸어 단단한 강철 보호벽을 만드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소용없다. 저 야만인들이 데려온 정체 모를 짐승이 데마시아 군인들이 촘촘히 짠 무기를 단숨에 깔아뭉갤 것이 분명했다.

두 진영이 무기를 높이 들고 서로를 향해 돌진했다. 검이 부딪히는 소리, 도끼가 내리찍고 방패가 막는 소리가 들렸다. 군인들은 서로의 적을 베어 진창 속으로 처박았다. 갈리오가 익히 알던 씩씩한 목소리들이 엄마를 부르는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거대한 석상의 여린 마음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꼼짝할 수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눈부신 보랏빛 충격파가 전장을 휩쓸었고 많은 데마시아 군인들이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였다. 갈리오는 느낄 수 있었다. 손가락 끝으로 전해지는 익숙한 감각을. 차가운 석고상을 녹이는 따뜻한 정오의 햇살 같은 그 느낌을.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섬광이 한 번 더 번쩍이더니 더 많은 데마시아 군인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다시 생기를 얻은 갈리오의 감각은 놀랄 만큼 예민하게 반응했고 덕분에 무섭고 끔찍한 전투의 참상이 낱낱이 보였다. 찌그러진 갑옷 속 인간의 육신은 기괴한 모습으로 여기저기에 널려있었다. 많은 야만인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전열 뒤쪽에서 비열한 마법사가 다음 공격을 위해 마법의 구체를 굴리며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거기 있었군. 네놈 덕분에 내가 깨어났어. 네놈을 먼저 없애주지! 갈리오는 처음엔 고마움을, 그다음엔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다시 전장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괴물 같은 형상에게 쏠렸다. 이제야 그 모습이 뚜렷하게 보였다. 두껍고 덥수룩한 털로 덮인 거대한 짐승. 그것은 강철 사슬에 묶인 채 몸부림치며 눈을 가린 커다란 두건을 떼어내려 머리를 맹렬히 흔들어대고 있었다.

갈리오는 씨익 웃었다. 내 주먹을 상대하려면 저 정도는 돼야지.

눈을 덮고 있던 가리개를 걷어내자 번들거리는 까만 눈 아래 으르렁거리는 납작한 주둥이가 드러났다. 앞을 보게 된 짐승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파괴할 거라고 선언하듯 무시무시한 포효를 내뱉었다. 조련사가 사슬을 풀자 커다란 짐승은 데마시안 보병들을 향해 달려와 잘 벼린 칼처럼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러 열 명이 넘는 데마시안 군인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갈리오는 충격에 휩싸였다. 쓰러진 군인들은 조그만 아이였을 때부터 그가 지켜온 이들이었다. 갈리오는 인간들이 애도하고 슬퍼하듯 그들을 위해 울고 싶었다. 하지만 냉정해야 한다. 그의 존재 이유는 애도가 아니다. 갈리오는 자신의 목표와 애타게 기다려온 싸움이 줄 스릴에 집중했다. 저 거대하고 역겨운 짐승에게 한 방 날리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했다. 생명의 기운이 그의 몸속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그래! 바로 이 느낌이야!

놀라운 생기의 감각은 그의 팔과 머리를 지나 다리를 훑고 지나갔다. 백 년 만에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사람들이 처음 듣는 소리가 계곡 구석구석에 울려 퍼졌다.

바로 석상 거인의 웃음소리였다.

전장으로 뛰어든 갈리오는 조잡하게 만들어진 적의 공성 무기들을 한 방에 저 멀리 날려버렸다. 최전방을 향해 돌진하며 길을 막는 건 모두 박살 내는 거인의 모습에 아군, 적군 가릴 것 없이 모두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쳐다보았다. 갈리오는 군인들이 싸우는 아수라장을 벗어나 광분해 날뛰는 괴물에게 달려갔다. “반가워, 큰 짐승” 깊게 울리는 소리로 그가 말했다. “내가 널 박살 내도 되겠지?”

괴물은 마치 도전을 받아들이겠다는 듯 커다란 머리를 뒤로 젖히며 울부짖었다. 두 거인은 땅이 흔들릴 정도로 맹렬히 서로에게 덤벼들었다. 짐승은 어깨로 갈리오의 복부를 향해 돌격했다. 하지만 곧 쇄골을 움켜잡은 채 땅으로 쓰러져 고통에 찬 신음을 내질렀다. 갈리오는 바닥에 뻗은 상대를 밟고 섰으나 벌써 놈의 숨을 끊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자, 너무 기분 나빠 하진 말고. 시도는 좋았어. 이제 한 번 더 날 쳐봐.” 간절한 손짓과 함께 갈리오가 말했다.

천천히 일어난 짐승의 두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짐승은 모든 힘을 그러모아 갈리오를 쳤지만 발톱으로 갈리오의 머리 부분을 할퀴는데 그쳤다.

“내 왕관을 깨뜨렸군." 갈리오는 제대로 된 싸움을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들떠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갈리오는 주먹을 곤봉처럼 흔들며 온 힘을 실어 짐승을 향해 날렸다. 페트리사이트로 만들어진 주먹이 짐승의 살에 부딪히자 짐승의 뼈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짐승은 눈을 감은 채 울부짖으며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갈리오는 짐승의 척추를 부러뜨리려 거대한 돌덩어리 팔로 짐승의 허리께를 잡고 몸통을 비틀었다. 하지만 짐승은 몸을 구부리며 갈리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주위를 빙빙 돌며 서서히 뒤로 물러섰다.

“기다려! 우리 싸움의 끝은 봐야지” 갈리오가 고함쳤다. 그는 짐승이 다시 돌아오길 기대하며 놈을 쫓아 육중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때, 멀리서 데마시아 형제들의 희미한 울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들려왔다. 갈리오는 수백 피트나 짐승을 쫓아가는 바람에 어느새 전장에서 멀어져 있었다. 짐승과 싸움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데마시아 군에겐 그가 필요했다.

갈리오는 아쉬움을 담은 눈빛으로 커다란 짐승이 절뚝거리며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헤어져야겠군. 큰 짐승.”

몸을 돌린 갈리오는 쏜살같이 전우들에게 달려갔다. 절반도 넘는 군인들이 바닥에 쓰러져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한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갈리오는 즉시 그 힘의 정체가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마법과 같은 것임을 알았다.

갈리오는 사악한 마법사를 처리하러 가기 전, 군인들의 얼굴에 어린 공포를 보았다. 그는 자신이 할 일과 그것이 불러올 결과를 잘 알고 있었다.

높이 뛰어 올라 마법사에게 돌진해 그의 주문을 멈추고 놈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남은 적들은 공포에 질려 무기를 버리고 이리저리 도망갔다.

마법의 힘이 사라지면서 갈리오의 마음속에 여러 감정이 오갔다.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던 생명의 힘이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도 언제 끝날지 모를 잠 속으로 다시 끌려가고 있었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살아있는 것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생명의 힘은 왜 자신에게만 없는 걸까? 어째서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걸까? 그의 창조주가 의도한 결과일까? 온몸을 마비시키는 차가운 어둠의 포옹이 그를 다시 덮치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비록 짧은 경험이었지만 생명은 그 자체로 신비로운 것이며 위대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이 깨달음은 그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지킬 것이다. 마지막 날까지. 그의 단단한 주먹으로 세계의 모든 마법사를 없애버리는 날까지. 그래서 데마시아의 석상 파수꾼이 더 이상 깨어날 필요가 없을 때까지.

3. 소녀와 석상 #

럭스(리그 오브 레전드)/배경 참조.

4. 구 설정

4.1. 구 단문 배경[A]

아스라한 빛의 도시 데마시아의 성문 밖, 거대한 석상 갈리오가 경계의 눈을 늦추지 않고 서 있다. 마법사의 공격으로부터 데마시아를 수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갈리오는 강력한 마법의 힘이 그를 깨울 때까지 수십 년, 때로는 수백 년 동안 한자리에 미동도 없이 서 있다. 일단 깨어나면 전투의 아찔한 스릴과 데마시아인들을 구한다는 자부심을 음미하며 1분 1초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다. 그러나 그가 쟁취한 승리의 향기는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물리친 마법의 힘이 그에게 생명을 준 원천이기에 전쟁을 승리로 장식한 후에는 다시 깊은 잠으로 빠져든다.

4.2. 구 배경 1[2]

"구원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속죄만이 가능할 뿐이지."

갈리오는 녹서스 암살자들의 손에 아버지를 잃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엄밀히 말해 그를 낳은 사람이 아니라 만들어낸 사람이었다. 갈리오는 아버지인 데마시아의 인공 생명체 기술자 듀란드를 애도하며 망부석처럼 가만히 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금은 마법사들이 인공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리그의 이름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과거에는 마법 생명체를 창조하는 실험이 종종 있었다. 게다가 숙련된 마법공학자들 사이에서 골렘에게 사고력과 이성을 불어넣는 건 꽤 흔한 소일거리였다. 그리고 이러한 선구자 중의 으뜸이 바로 데마시아 출신의 기술자 듀란드로서 그가 보유한 기술은 가히 최고의 수준이었다. 듀란드가 만든 인공 생명체들은 절대로 지치는 일이 없었고, 조국의 국경 마을에 배치되어 주민들을 녹서스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왔다. 하지만 그는 자기 최고의 작품이었던 갈리오만은 자신의 경호용으로 아껴두었다. 가고일의 형상을 한 이 강력한 피조물은 듀란드가 조국을 위협하는 세력들을 신경 쓰지 않고 중요한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안전하게 보호했다. 따라서 녹서스 군 사령부의 눈에는 듀란드가 만들어낸 피조물들이 그야말로 눈엣가시였다.

녹서스의 암살자들은 듀란드가 갈리오와 함께 울부짖는 늪을 건널 때를 노려 기습을 감행했다. 수적인 열세에 몰려 제대로 힘을 써보지도 못했던 갈리오는 살인자들이 주인을 처참하게 난도질하고 안개 속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광경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갈리오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상실했다. 그는 깊은 절망 속에서 자신이 지켜내지 못한 주인의 뼈를 앞에 두고 몇 년 동안이나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의 나약함을 영원히 괴로워하는 조형물이나 비석처럼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갈리오는 참을 수 없는 슬픔을 꾹 참아가며 단호한 표정으로 걸어가고 있는 요들 소녀를 발견했다. 소녀는 데마시아 왕관을 손에 쥔 채 석상처럼 우뚝 선 갈리오의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려 멈춰 섰다.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요들 소녀를 찬찬히 지켜보던 갈리오는 그 마음속에 깃든 쓸쓸함을 알아챘다. 소녀 역시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고 있는 듯했다. 소녀는 그늘 밑으로 왔을 때처럼 조용하고 의연한 모습으로 데마시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 잠깐의 조우에서 갈리오는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주인이 지키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는 침묵을 깨고 일어나 용맹한 소녀의 뒤를 따랐다. 이제 그에게는 살아야 할 새로운 이유가 생겼다. 바로 리그 오브 레전드에 합류하여 데마시아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4.3. 구 배경 2[A]

아스라한 빛의 도시 데마시아의 성문 밖, 거대한 석상 갈리오가 경계의 눈을 늦추지 않고 서 있다. 마법사의 공격으로부터 데마시아를 수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갈리오는 강력한 마법의 힘이 그를 깨울 때까지 수십 년, 때로는 수백 년 동안 한자리에 미동도 없이 서 있다. 일단 깨어나면 전투의 아찔한 스릴과 데마시아인들을 구한다는 자부심을 음미하며 1분 1초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다. 그러나 그가 쟁취한 승리의 향기는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물리친 마법의 힘이 그에게 생명을 준 원천이기에 전쟁을 승리로 장식한 후에는 다시 깊은 잠으로 빠져든다.

갈리오의 탄생 이야기는 룬 전쟁의 여파로 터전을 잃은 발로란 대륙의 난민들이 파괴적인 마법의 힘으로부터 달아나면서 시작한다. 혹은 발로란 서쪽에서 잔인한 어둠의 마법사들에게 쫓기던 사람들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무엇이 사실이든 쉴 곳을 찾아 헤매느라 지칠 대로 지친 난민들은 고대 석화림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들을 추격하던 마법사들은 이 신비한 숲에서는 마력이 통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화석화된 나무들이 자연적으로 마법을 빨아들이는 듯 숲에서 사용된 마법은 모두 쉬이익 소리와 함께 힘을 잃었다. 그제야 해 볼 만하다는 희망이 생긴 난민들은 어둠의 마법사들을 향해 검을 빼 들었고 숲에서 그들을 몰아냈다.

마법을 무력하게 만드는 이 숲에 대해 어떤 이는 신의 선물이라며 감사했고 다른 이는 그동안의 지독한 여정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숲을 새로운 보금자리로 삼자는 데에는 모두 뜻을 같이했다.

오랜 연구를 통해 정착민들은 이 숲을 활용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여러 물건을 발명했고, 마침내 신비한 나무에 재와 석회를 섞어 마법이 통하지 않는 신물질 페트리사이트를 만들었다. 페트리사이트는 이들이 세운 문명의 토대가 되어 신흥 왕국 데마시아의 굳건한 성벽을 쌓는 데 쓰였다.

수년간, 페트리사이트 방어벽만으로도 데마시아 국경 내에서 발생한 마법의 위협을 처리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드물게 국경 밖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용맹한 데마시아 군이 출격해 가공할만한 위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마법사를 고용한 적의 공격에는 용감무쌍한 데마시아 군대라도 대응할 뾰족한 방도가 없었다. 왕국의 원로들은 마법을 무력화시키는 성벽의 힘을 전장으로 가져갈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그들은 조각가 듀란드에게 데마시아 군을 위해 페트리사이트를 사용한 보호 장비 제작을 의뢰했고 2년 후 듀란드는 역작을 공개했다. 사람들이 그리던 모습과는 조금 달랐지만, 큰 날개를 가진 거대한 석상 갈리오는 데마시아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룬테라 전체에 데마시아의 힘을 상징하는 존재가 될 것이 분명했다.

마법을 상대로 싸우기 위해 군대가 출격할 때마다 갈리오도 함께했다. 군인들은 여러 대의 도르래, 강철 썰매, 수많은 황소를 동원해 석상을 전장으로 옮겼다. 이 페트리사이트 석상은 그 존재만으로 거의 모든 마법 공격을 무력화시켰고, 덕분에 한때 마법이 두려워 도망쳤던 데마시아인들은 드넓은 전장에서 마법 공격에 당당히 맞설 수 있었다. 침략의 기회를 엿보던 많은 적은 웅대하게 솟아올라 경외감마저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석상의 모습에 사지가 마비된 듯 얼어붙었다. “마법을 먹는” 석상은 왕국에는 자신감을, 적들에게는 공포를 불어넣었다. 그러나 이 위대한 석상이 다량의 마력에 노출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신비로운 마법의 힘은 때로는 역사의 흐름을 바꾼다. 데마시아 군은 발로란 북쪽 푸른 송곳니 산맥에서 벌어진 녹서스 군과의 격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데마시아인들이 모르는 사이에 녹서스가 우수한 전투마법사들을 모아 5인조 정예 마법사 부대 ‘비전 주먹’을 조직한 것이다. 녹서스의 지상군이 데마시아 군을 깊은 계곡으로 몰아가면 ‘비전 주먹’이 마력을 담은 번개 공격을 데마시아 군에 퍼부었다. 게다가 충격적이게도 이 공격으로 인해 갈리오의 마법 보호막이 깨져버렸다.

13일 동안 데마시아 군은 적의 맹공격을 받았고 살아남은 이들조차 시간이 갈수록 기력이 떨어졌다. 사기가 바닥을 쳤다고 느낀 그 순간, 아주 익숙하고도 신비한 폭발음이 우레와 같이 군인들의 귓전을 때렸다. 하지만 이번 폭발음은 마법사들의 공격과는 달랐다. 뒤이어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두 산맥이 서로 부딪히는 듯, 느리면서도 귀청이 터질 듯한 커다란 울림이 온 계곡을 흔들었다. 머리 위로 서서히 드리워지는 거대한 그림자에 잔뜩 겁을 먹은 데마시아 군은 곧 다가올 죽음을 예감하며 벌벌 떨었다.

“나와 함께 싸워 볼 텐가?” 저 위에서부터 동굴 같은 굵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데마시아 군은 깜짝 놀랐다. 목소리의 출처는 그들 뒤에 서 있던 거대한 석상이었다. 갈리오가 스스로 움직이고 말하고 있었다. 그동안 전장에서 흡수한 마법이 쌓여 생명을 얻은 것이었다.

멍하게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하려 애쓰며 넋 놓고 거인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들이 채 이해하기도 전에 남은 데마시아 군인을 없애기 위한 불꽃 덩어리가 정확하게 데마시아 캠프를 향해 날아들었다. 갈리오는 군인들 앞으로 몸을 던져 그들을 보호하고 돌덩어리 몸으로 공격을 받아쳤다.

불꽃이 날아온 쪽을 향해 몸을 돌리자 근처 산비탈에 있는 5명의 인간이 보였다.

“적 마법사로군! 공격하겠다!” 갈리오가 소리쳤다.

갈리오가 산을 향해 다가가자 녹서스 마법사들은 발로란에서 온갖 돌을 녹이는 데 쓰였던 마법에 모든 마력을 집중했다. 그러나 공격이 끝난 후 마법사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마치 온몸으로 마법의 힘을 흡수한 듯, 눈을 감은 채 따뜻한 빛을 내뿜으며 그 자리에 우뚝 선 거인이었다. 갈리오는 곧장 맹렬한 기상으로 비탈을 올라가 비전 주먹 마법사들을 모두 바위투성이 땅으로 짓뭉개버렸다.

녹서스 군대가 꽁무니를 빼자 살아남은 데마시안 군은 승리의 함성을 내질렀다. 군인들은 목숨을 구해준 석상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려 했으나 석상은 어느새 움직임을 멈춘 채 늘 서 있던 그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후 생명을 얻은 석상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가 푸른 송곳니 전투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입을 통해 조용히 퍼져나갔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미치광이의 말을 들은 듯 아무런 대꾸 없는 불신의 눈빛뿐이었다. 결국 갈리오가 움직이는 것을 본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을까 두려워 입을 닫아 버렸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 이야기는 전설로 남았다. 옛날 옛적 힘든 시간을 견디기 위해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로 여겨졌다.

데마시아 왕국의 성벽을 지키는 석상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지켜보고 있을 거라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몸이 굳어 움직이는 못하는 동안에도 갈리오의 의식은 깨어있었고 다시 한번 전장의 흥분을 느끼고 싶은 욕망이 꿈틀댔다. 커다란 돌주먹을 적에게 날릴 때의 스릴을 잊지 못하는 갈리오에게 거대한 돌로 만든 육신에 갇혀 꼼짝 않고 서 있는 건 비극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의 발아래를 지나다니며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인간들을 조용히 지켜보는 일뿐이었다. 마치 아련한 꿈을 꾸는 듯했다. 사람들을 지켜볼수록 그들에 대해 아는 건 없어도 마치 잘 아는 사이처럼 친근함이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한 명씩 사라지는 모습에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들의 자리를 새로운 육체에 깃든 새로운 생명이 대신하는 것 같았다.

익숙한 얼굴들이 어디로 사라진 건지 궁금했다. 전투가 끝나고 자신이 수리를 받았던 것처럼 아마 인간들도 어딘가로 보내 수리를 하나보다고 짐작할 뿐이었다.

어느 날 갈리오는 프렐요드 야만인들과의 전투가 끝난 후 길게 줄지은 사람들이 천으로 덮은 들것을 들고 도시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았다. 행렬이 그를 지나칠 때 덮어둔 천이 떨어지면서 한 젊은 군인의 생기 잃은 창백한 얼굴이 드러났다. 갈리오가 본 적 있던 소년이었다. 석상은 왜 용감한 청년이 들것에 실려 돌아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곧 그에 대한 슬픈 답을 깨달았다. 자신과 달리 인간은 겉만 다시 칠할 수 없고 손상이 생겨도 쉽게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인간은 약하고 유한한 존재라 자신이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이전까지는 그저 싸움이 좋아 싸우고 싶었지만 이제 그의 싸움에 목적이 생겼다. 바로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 후 갈리오가 참전한 전투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때로는 움직이지 않고 수백 년이 흐르기도 했다. 마법을 쓰는 적은 줄었고 그래서 그도 어스름한 백일몽 사이로 세상을 지켜보며 휴면상태에 있었다. 갈리오의 가장 큰 소망은 강력한 마법의 힘으로 다시는 잠들지 않는 것이다.

오로지 그때에야 데마시아의 영원한 수호자로서 자신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으리라.

4.4. 리그의 심판

원문 링크

후보: 갈리오
날짜: CLE 20년 8월 10일

관찰

갈리오의 얼굴은 뭔가 딴 생각에 빠져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특유의 이런 표정 때문에 이 육중한 가고일이 멍청하다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이목구비, 특히 부정교합이 심하고 유난히 발달한 턱은 꼭 얼간이 같은 인상이다. 하지만 이건 갈리오가 생각이 굼뜨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적을 안심시키기 위해 일부러 마법으로 새겨 넣은 표정이다. 사실, 갈리오는 이런 표정으로 위장한 채 눈 앞의 상황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이 곳에서 중요한 건 두 짝으로 된 문, 그리고 그 위에 새겨진 문구뿐이다.

진정한 적은 그대 안에 있나니.

갈리오는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더 이상은 움직이질 않는다. 문자 그대로 석상 같이 굳어있는 것이다.

한참을 멈춰 있던 갈리오가 갑자기 몸을 움직여, 육중하게 문 쪽으로 다가간다. 넓고 튼튼한 날개를 쭉 펼쳐 고요히 정지해 있는 공기를 가르며 천천히 퍼덕이자, 그리 부드럽진 않은 쉬익 소리와 함께 가고일의 몸뚱이가 앞으로 튀어나간다. 바위와 금속으로 만들어진 존재로서는 최대한 우아한 동작이라고나 할까.

문이 활짝 열리며 실내에 깔린 칠흑 같은 어둠이 드러난다. 입구 양쪽 측면에 새겨진 흑요석 표범들이 마치 안쪽으로 안내하는 듯하다. 갈리오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돌로 만들어진 형제의 지시에 기꺼이 따른다.

회고

갑자기 빛이 쏟아져 들어오자, 갈리오는 바로 여기가 어딘지 알아챘다. 이 곳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과실수들로 빽빽이 둘러싸인 공터, 그 중앙에는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비바람에 시달리며 하얗게 바래버린 듀란드의 유골이 놓여 있었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복숭아와 버찌의 농익은 향이 진동했다.

갈리오는 이 냄새가 진저리나게 싫었다. 끝도 없이 자라나 익고 썩기를 반복하는 과일의 지독한 단내가 자신을 창조해냈던 듀란드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비통함을 자꾸 일깨웠기 때문이다. 그는 매복 중이던 녹서스 암살자들의 마수에서 주인을 보호하지 못했고, 그래서 이 곳에서 수년 간 속죄하는 마음으로 보초를 서 왔다.

대신 날 죽였다면 좋았을 것을. 갈리오의 마음은 그 때나 지금이나 한결 같았지만, 지금만큼은 뭔가 달랐다. 반갑지 않은 생각이 마치 자기 생각인 양 가면을 쓰고 그의 의식을 파고든 것이다.

아니, 그렇진 않지.

갈리오가 제 자리에서 자세를 바꾸며 머리 속에 파고드는 이 생각을 떨쳐버리려 애썼다. 자신이 실제론 이 곳에 있을 리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이 모든 게 너무나 생생했다. 끈적끈적한 과일의 단내 때문에 마음마저 초조해졌다. 이건 아직 심판을 받고 있는 건가?

“맞아, 데마시아의 갈리오.”

여성의 것으로 들리는 새되지만 힘 있는 요들의 음성이 그의 의문에 응답했다.

근처 그루터기에 낯익은 얼굴이 앉아있었다. 갈리오가 아는 여자 요들이었지만, 처음 바로 여기에서 만났을 때 그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 땐 데마시아의 전사가 입는 갑옷 차림이었다. 지금은 이름이 뽀삐라는 걸 알지만, 이 요들을 처음 만난 날은 이름조차 몰랐었다. 그 땐 뽀삐에게 말을 건네지도 않았고, 심지어 그녀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티도 내지 않았다. 뽀삐 역시 공터에 서 있는 갈리오를 봤지만, 단순한 석상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존재로 여기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넌 뽀삐지.”

갈리오가 신중하게 한 마디 한 마디 골라 말했다.

“난 널 안다. 리그에 합류하기 전이었지. 널 봤다. 여기서.”

요들 소녀가 미소를 지으며 약간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그래, 넌 여기서 뽀삐를 만났지. 그런데 안타깝지만 난 뽀삐가 아니야.”

요들 소녀가 몸을 일으켜 갈리오 쪽으로 다가오면서 한 손을 내밀었다.

“너도 그건 알고 있지.”

소녀가 다시금 미소 지었다.

“원한다면 날 계속 뽀삐라고 불러도 좋아.”

몇 년 동안이나 이 곳을 감시해 왔던 그였지만, 이번 단 한 번만큼은 매복 지점이나 방어 상의 취약점을 분석하지 않고 그저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러자 갑자기 산들바람이 불어와 나무에서 풍기는 냄새를 싣고 가 버렸다. 잎사귀들이 부드럽게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바람의 리듬을 타고 빙글빙글 춤추듯 떨어지는 꽃송이들도 눈에 들어왔다.

갈리오는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앞발을 내밀어 요들 소녀의 자그마한 손을 붙잡았다. 바위로 조각된 가죽 위로 피부의 온기가 느껴졌다.

“고맙구나, 뽀삐야.”

뽀삐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리그에 들어오려고 하는 거야, 갈리오?”

톡 쏘는 듯한 과일향이 다시 공터로 밀려들어오자 갈리오는 조금 초조해졌다.

“난 데마시아를 위해 싸워야 해. 내 창조자의 고향이니까.”

뽀삐가 가고일의 다른 손을 꽉 잡았다. 그리고 갈리오를 똑바로 마주보며 서서, 상냥하지만 진지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리그에 들어오려는 이유가 뭔가, 갈리오?”

갈리오는 뽀삐의 질문을 곰곰 생각해 봤다. 이 요들은 진짜 뽀삐가 아니었지만, 뽀삐의 형상을 빈 데엔 다 이유가 있으리라 짐작됐다. 그리고 자신을 유배에서 풀어준 것이 이 단호한 요들 소녀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소녀 역시 엄청나게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가능했었다. 갈리오 역시 어떻게든 극복하려 몸부림쳤던 똑 같은 마음의 짐, 바로 실패했다는 부담감이었다. 갈리오는 나중에 알아낸 바로는 뽀삐 역시 녹서스 암살자들이 자행한 매복 습격으로 아버지를 잃었었다.

그런 끔찍한 일을 똑같이 겪었지만, 둘이 대처한 방식은 사뭇 달랐다. 뽀삐는 아버지가 데마시아 장군을 위해 주조한 왕관을 전달해야 한다는 임무를 완수하려고 마음을 단단히 다잡았다. 하지만 갈리오가 택한 것은… 정반대의 길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선택이 그저 자신을 위한 것이었음을, 그가 지키고 있던 것은 창조자의 유해가 아니라, 오로지 상처 입은 그의 자만심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갈리오는 잠시 부끄러움에 뽀삐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이제 정답을 알 수 있었다.

“내 스스로 선택했기에 참여하려는 것이다. 이건 내 자유 의지다. 내 창조자와… 내 고향을 위해 싸우고 싶다.”

“속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니 기분이 어떤가?”

다시금 코를 찌르는 향내가 가셨다. 갈리오는 송곳니를 살짝 드러내 미소를 지으며 뽀삐를 내려다봤다.

“그건… 내겐 익숙한 일이야. 창조자와 마음을 나눴었으니까. 이젠 너와 마음을 나누고 있고. 앞으론 어떤 소환사와도 마음을 나누겠다.”

또 한 번 빛이 갈리오에게 쏟아져 내려왔다. 홀로 서 있는 그의 앞엔 이제 다른 문이 한 쌍 보였다. 이번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갈리오는 문을 활짝 열고 리그 오브 레전드에 발을 들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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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케일모르가나가 리메이크되기 이전의 배경이다.[2] 갈리오가 리워크되기 전 배경이다.[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