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06:51

강동은

지존파
김기환
(두목, 당시 26세)
강동은
(부두목, 당시 22세)
김현양
(행동대장, 당시 22세)
문상록
(당시 23세)
강문섭
(당시 20세)
백병옥
(당시 20세)
이경숙
(홍일점, 당시 23세)
송봉우
(일명 송봉은, 향년 18세)
나이는 1994년 검거될 당시 기준 (송봉우 제외)
이경숙은 석방 이후 병사, 송봉우는 살해, 나머지는 사형 집행
파일:강 동은.png
이름 강동은()
출생 1972년 10월 27일[1]
전라남도 영광군
사망 1995년 11월 2일 (향년 23세)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사형집행장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고등학교 중퇴
전과 특수절도 및 폭력 전과 2범
종교 무종교기독교(개신교)

1. 개요2. 생애
2.1. 유년기2.2. 지존파 가입2.3. 체포 및 사형

[clearfix]

1. 개요

1993년부터 1994년까지 활동한 대한민국의 범죄 조직 지존파부두목이다.

2. 생애

2.1. 유년기

파일:kangdongeun2.jpg

▲ 강동은의 불갑국민학교 졸업 사진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한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넉넉한 가정형편은 아니었고 양쪽 부모가 모두 생존해 있었으나 형제가 많아 부모의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학창 시절부터 폭력적인 성향이 짙어 급우들을 자주 폭행했고 학업에는 관심이 없었다. 생활기록부에는 “매사에 무관심한 성향”, “바른 생활이 요구됨”과 같은 내용이 적히기도 했다.

고등학교 재학 중에 선배이자 이후 지존파에 가입하여 같이 활동하게 되는 문상록과 함께 이웃집의 벼 두 가마니를 훔쳤다가 체포되어 절도 전과를 갖게 되었다. 밴드부에 가입해 음악에 취미를 가지려 했으나 선배들의 가혹행위가 심해 그만두었다. 그 후 방황하다가 결국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문상록과 가출해 상경한 후 막노동을 시작했다.

2.2. 지존파 가입

벼를 훔쳐 얻게 된 특수절도 전과 삭제를 위해 4년간 열심히 일해 모은 돈 1,500만 원을 변호사에게 주었다가 돈만 날렸을 뿐 여의치 않자 그때부터 부유층에 대한 적개심이 생겼고 경제적 여건이 나아지지 않자 귀향해 도박에 빠졌다가 고향 선배인 김기환을 만나 그가 결성한 조직 지존파에 합류했다. 김기환에게 충성을 보이며 문상록, 백병옥, 강문섭 등을 소개하는 등 초반에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두목인 김기환이 강간등상해치상죄광주교도소에 수감되자 부두목으로 임명되어 수감 중인 김기환을 수 차례 면회해 범행 지시를 받았다. 학창시절부터 폭력적인 성향이 짙었고 조직의 부두목이 되기도 하는 등 겉보기엔 범행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비춰지지만 사실 소심해 거의 김기환으로부터 범행을 지시받아 나머지 조직원들이 실행하도록 전달하는 역할만 하고 범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첫 피해자였던 최 씨 살해 후엔 죄책감에 시달려 다리 부상을 핑계로 잠시 혼자 지내기도 했으며[2] 소윤오 부부 살해 당시에도 지시만 하고 가담하지 않았다.

2.3. 체포 및 사형

지존파가 체포되기 며칠 전 잡일과 요리를 해 줄 사람이 필요하단 명목으로 자신의 여자친구 이경숙이 일하던 주점에 진 빚을 대신 갚아주고 이경숙을 지존파의 일원으로 들인다.[3] 그렇게 이경숙이 조직에 합류한 지 이틀째 되던 날 아침에 찬거리를 사러 트럭을 타고 아지트를 나섰다가 미행하고 있던 경찰과 1.5km 추격전을 벌인 후 조직원들 중 가장 먼저 체포되었다.

체포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범행 동기에 대해 "잘사는 자들이 못사는 사람, 빽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세상이 더럽고 싫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납치한 자를 죽인 것은 탄로나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피해자 중 소씨 부부를 돈을 받고도 죽인 것은 불쌍한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의 얼굴을 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방송사를 점령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것에 대해 말하며 '생방송으로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었다, 다시는 우리 같은 사람을 만들지 말라고 하고 자결할 작정이었다'고도 했다. 또 '돈 있는 자들, 빽 있는 자들, 돈 없다고 무시한 놈들, 압구정 야타족들을 모두 다 죽여야 하는데 시작도 못하고 죽는 것이 한스럽다'고도 외쳤다.

다시 세상에 나간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더러운 세상에 다시 나갈 생각이 없다. 만일 다시 나간다 하더라도 우리 일을 계속할 생각이며 저승에 가서라도 많은 사람들을 저주할 것이다"라고 했다.

재판을 받을 때는 최후 진술에서 "제가 지은 죄에 대한 어떠한 처벌을 내려도 달게 받겠습니다. 극형에 후회는 않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경숙은 죄가 전혀 없습니다...제발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서울구치소에서는 동료 김현양이 기독교에 귀의하여 전도하자 이에 따라 같이 귀의하였으며 기독교인 교도관들과 목사, 여성 교화위원들의 신앙지도를 받았다.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저 같은 죄인도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실까요"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사형 선고가 내려진 이후 1995년 11월 2일 서울구치소에서 그날 7번째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오전 10시 20분 사형장에 비교적 평온한 상태로 들어와 인정심문이 끝난 후 문장식 목사가 본인의 원에 의하여 예배를 인도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고 찬송가 405장 1,4절을 부른 후 강동은이 구약성경 시편 27편 9절[4]을 읽고 문 목사가 설교한 뒤 사죄를 구하는 기도를 해 주었다. 구원의 승리를 기도하고 이 세상에 꼭 전해야 할 말을 하라고 문 목사가 묻자 남긴 유언은 "가족 형제들이 예수 믿고 구원 얻기 바랍니다."였다. [5]

시체는 사형수 묘역에 안장됐다.

[1] 1994년 9월 23일자 MBC 뉴스데스크의 ‘지존파, 완전범죄 위해 냉동용 차량과 승용차 구입 계약’이라는 기사의 차량 구매 계약서에 주민등록번호가 나오는데, 1972년 10월 27일생이라고 나온다. 검거 당시 생일이 오지 않아 21세였다.[2] 강동은의 집은 아지트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3] 웃긴 것은 김기환이 정한 규칙 중 “여자를 만나지 않으며, 친구와 술을 멀리 한다”는 규칙도 있었다. 강동은은 아예 처음부터 이를 어긴 셈.[4]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말고 떠나지 마옵소서.[5] 출처: 문장식 목사, <아! 죽었구나 아! 살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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