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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성감옥에서 촬영된 사진. | |
출생 | 1899년 6월 5일[1] |
경상북도 상주군 내동면 성상리 (현 경상북도 상주시 인봉동 73번지)[2] | |
사망 | 1960년 5월 20일 (향년 60세) |
경상북도 상주시 | |
학력 | 상주공립보통학교 (졸업) |
가족 | 배우자 장노미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796호 |
상훈 |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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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2. 생애
1899년 6월 5일 경상북도 상주군 내동면 성상리(현 상주시 인봉동 73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상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이후 성필환, 한암회, 조월연, 석성기, 성해식 등과 함께 3월 23일 상주군 상주면 읍내 장날에 독립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계획하고 동지를 모으는 등 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23일 오후 5시에, 장터 한복판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며 동지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주도했으나, 장터를 경계하고 있던 일본 제국 육군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그가 검거된 후에도 시위는 지속되어 500여 명이 참여했으나 일본 제국 경찰에 의해 곧 해산되었다.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받아[3] 경성감옥에서 복역하였다. 1920년 4월 27일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4]
1960년 5월 20일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사망했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유해는 2008년 4월 30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에 이장되었다.
[1] 강용석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는 1898년(광무 2) 7월 16일생으로 기록되어 있다.[2]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청 수형인명부[3]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청 수형인명부[4] 강용석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