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강창훈 姜昌勳 | |
출생 | 1956년 |
경상남도 부산시(현 부산광역시) | |
사망 | 2023년 7월 17일 (향년 66세)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제일병원 | |
직업 | 기업인 |
학력 |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 / 학사) |
경력 | 나우콤 사장 |
가족 | 배우자 이금이, 슬하 2남 강유민·강다민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2. 생애
그는 1956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이후 부산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였고 1981년 선경건설 해외사업부를 거쳐 1985년 연합통신(현 연합뉴스) 텔리레이트부로 옮겼다. 그곳에서 연합통신이 AP다우존스와 국제금융정보 단말기 공급 계약을 체결한 뒤 영어에 능통한 사원을 뽑았을 때 처음으로 입사한 2명 중 1명이 되었다. 이어 1990년 초창기 PC통신 케텔을 운영하던 한국경제신문 뉴미디어국으로 옮긴 후 한경과 한국통신이 1991년 한국PC통신을 설립해 PC통신 ‘하이텔’을 선보이자 정보개발부장 등을 맡아 서비스 정착에 기여했다.그 후 한국통신 쪽 인사들이 중용되자 후배들과 함께 1994년 4월 새 PC통신 회사인 나우콤을 창업했다. 나우콤이 선보인 PC통신 ‘나우누리’는 기존 PC통신 서비스 속도가 2400~9600bps에 머물 때 이를 1만4400bps로 높이고, 한글 아이디를 허용하는 등 당시로써는 혁신적인 시도를 하며 하이텔·천리안과 함께 ‘PC통신 3강’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노태우 전 대통령 법정 진술을 음성 중계하고, 1997년 11월에는 이인제·권영길 후보를 초청해 대선 토론회를 여는 등 나우누리가 사실상 언론 역할을 하도록 방향을 틀었다. 한편 유료화에 성공해 아이네트의 인터넷서비스를 PC통신을 통해 제공하는 등 인터넷 시대 개막에도 기여했지만, 사업 자체를 인터넷 기반으로는 바꾸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2000년대에는 나우콤 사장에서 물러난 뒤엔 제주도에서 모터바이크 관련 사업을 하거나 대전에서 야학을 운영하였다. 그리고 그가 대표직에서 물러난 나우콤은 초고속 인터넷 보급으로 PC통신 수요가 줄어 2013년 서비스를 종료했다. 또한 그는 2018년경부터 가족이 있는 진주로 내려가 뇌졸중으로 투병하며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