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5 03:11:53

거스 포옛

구스 포예트에서 넘어옴
거스 포옛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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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파일: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41대
클럽
파일: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로고.svg

3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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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파일: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로고.svg

107대
파일:FC 지롱댕 드 보르도 로고.svg

4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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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의 축구 감독
파일:1000006939.jpg
<colbgcolor=#eeeeee><colcolor=#000000> 이름 거스 포옛[1]'구'스 포예트'가 맞는 발음이다.]
Gus Poyet
본명 구스타보 아우구스토 포예트 도밍게스
Gustavo Augusto Poyet Domínguez
출생 1967년 11월 15일 ([age(1967-11-15)]세)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국적
[[우루과이|]][[틀:국기|]][[틀:국기|]]
|
[[스페인|]][[틀:국기|]][[틀:국기|]][2]
신체 188cm
직업 축구 선수 (공격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colcolor=#000000> 선수 그르노블 푸트 38 (1988~1989)
리버 플레이트 몬테비데오 (1989~1990)
레알 사라고사 (1990~1997)
첼시 FC (1997~2001)
토트넘 홋스퍼 FC (2001~2004)
스윈던 타운 FC (2006)
감독 스윈던 타운 FC (2006 / 코치)
리즈 유나이티드 FC (2006~2007 / 코치)
토트넘 홋스퍼 FC (2007~2008 / 코치)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2009~2013)
선덜랜드 AFC (2013~2015)
AEK 아테네 FC (2015~2016)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2016)
상하이 선화 (2016~2017)
FC 지롱댕 드 보르도 (2018)
CD 우니베르시다드 카톨리카 (2021)
그리스 대표팀 (2022~2024)
국가대표 26경기 3골 (우루과이 / 1993~2000)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지도자 경력4. 여담

[clearfix]

1. 개요

우루과이 출신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프랑스의 그르노블 푸트 38에서 프로 데뷔를 했다. 첫 프로팀이었고, 프랑스어도 거의 못해서, 굉장히 고생했다고 한다. 1시즌 만에 자국 리그의 리버 플레이트 몬테비데오로 이적한다. 그리고 여기서 78경기 28골이라는 준수한 활약을 보이며 1990년에 레알 사라고사로 이적한다.

레알 사라고사에서 일곱 시즌을 뛰며 팀의 코파 델 레이, UEFA 컵위너스컵 우승에 기여하는 등 240경기 60골을 기록하며 사라고사에서 제일 오래 뛴 외국인 선수였다.

1997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자유 계약으로 첼시 FC로 이적했다. 영어는 인사말 정도만 할 수 있어서 적응이 힘들었다고 한다. 첫 시즌에 십자인대 부상을 당했으나, 결국 네 시즌 동안 145경기 49골을 기록하며 여기서도 활약했다. 하지만 당시 감독인 클라우디오 라니에리는 리빌딩을 하려 했고 여기서 33세로 나이가 많았던 포예트는 잉여 자원으로 분류되며 약 22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토트넘 홋스퍼 FC로 이적한다.

토트넘에서의 첫 시즌에 34세 노장이 14골을 넣으며 골 넣는 미드필더다운 모습을 보여 줬고 팀의 리그컵 결승 진출까지 기여했지만 블랙번 로버스 FC에게 2:1로 패배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다음 시즌에 또 십자인대 파열을 당하는 등 커리어는 점점 막바지를 향하고 있었고 결국 2004년에 은퇴한다. 세 시즌 동안 98경기 23골을 기록하며 확실한 득점 능력을 보여 줬지만 두 차례의 십자인대 부상이 포예트의 커리어에 발목을 붙잡았다.

2.2.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로는 1995 코파 아메리카에 차출되기도 했다.

3. 지도자 경력

2004년 현역에서 은퇴 후 스윈던 타운 FC의 수석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어 리즈 유나이티드 FC토트넘 홋스퍼 FC에서 수석 코치를 지내다 2009년 11월에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3.1.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감독

부임 후 네 시즌 동안 브라이튼을 이끌며 2010-11 시즌 EFL 리그 1 우승, 2012-13 시즌 EFL 챔피언십 4위를 달성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프리미어 리그 승격에 실패하며 2013년 6월 경질되었다.

3.2. 선덜랜드 AFC 감독

5경기에서 1무 4패를 기록하며 경질된 파올로 디 카니오의 뒤를 이어 2013년 10월 선덜랜드 AFC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강등권에 처져있던 선덜랜드의 반등을 이끌며 기적적으로 14위로 시즌을 마무리하며 강등을 피했으며 EFL컵에서 준우승[3]을 거두는 등 인상적인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직전 시즌 주축이던 기성용의 임대 복귀와 잭 콜백, 가드너의 이적으로 인한 전력 손실을 메꾸지 못했고 급기야 8라운드에선 사우스햄튼에게 0-8로 대패하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4] 29라운드까지 17위로 추락해 강등 위기에 놓이자 결국 2015년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으로 경질되었다.

3.3. 이후

2015년 10월 그리스 리그의 AEK 아테네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 시즌 리그에서 3위를 기록한 후 경질되었다.

2016년 5월 라리가 레알 베티스의 지휘봉을 잡았지만 11경기에서 3승 2무 6패로 14위를 기록하며 성적 부진으로 6개월 만에 경질됐다.

2016년 12월 중국 슈퍼 리그상하이 선화에 부임했다. 비록 2017년 9월 성적 부진으로 경질됐지만 팬들은 그의 팀에 대한 헌신을 높게 평가했다.

2018년 1월 FC 지롱댕 드 보르도에 부임했으나 가에탕 라보르드몽펠리에 HSC로 판매한 것에 대해 구단과 마찰을 빚어 해고되었다.

그 이후로 한 동안 감독 생활을 안하다가 2021년 칠레 리그 팀인 CD 우니베르시다드 카톨리카에서 감독 생활을 재기했으며 오자마자 칠레 슈퍼컵을 우승했다. 이후 2022년 2월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UEFA 유로 2024에서는 예선 B조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 플레이오프는 조지아 홈에서 단판으로 치렀고 승부차기로 아쉽게 패하며 본선 진출에는 실패하였다. 계약 만료로 그리스 대표팀을 떠났다.

이후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부임설이 있었고, 실제 어느 정도 근접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일랜드 측에서 포옛 사단을 코치로 임명하는 걸 거부하면서 최종 무산되었다.

2024년 7월 2일, 스포츠조선 기사에 의하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임을 위해 출국한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이사의 면담 후보 중 한명으로 거론되었다. # 그러나 홍명보 감독이 선임되면서 없었던 일이 되었으며 이 사실을 이임생 위원장의 기자 회견을 보고 알았다고 한다.

2024년 8월 11일, 본인 SNS[5]를 통해 한국의 축구 유튜버 이스타TV 멤버들과 인터뷰를 했음을 알렸고, 이후 8월 30일 이스타TV를 통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자신이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되기 위해 시도한 노력과 그럼에도 뒤따르지 못한 결과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자신이 분석한 한국 축구에 대한 상황과 문제점, 의견 등 상세하게 인터뷰한 영상이 공개되었다.

이 영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포옛감독은 한국 대표팀에 진심으로 관심이 있었고, 제시 마치와의 협상이 결렬되고 본인도 그리스와의 계약이 종료됐을 때 다시 지원을 넣고선 자신 휘하의 사단에게 한국으로 갈 준비를 하자고 기쁘게 말을 전했다.

그러나 대한축구협회는 최종적으로 대표팀 감독으로 홍명보 감독을 택했다. 이에 대해 포옛은 "만약 다른 팀이 그랬다면 괜찮았겠지만 한국이 거절했을 땐 약간 상처받았다. 그만큼 가슴이 뛰었었고 진심으로 기대했었기 때문이다"라고 아쉬움을 털어놨다.

또한 그는 "아시안컵에서 한국이 우승 후보라고 생각했다. 정말이다. 그래서 팀이 어떻게 퍼포먼스를 내는지 감독으로서 지켜봤을 때, 특히 요르단전을 봤을 때 화가 났다. 경기를 분석하려고 보고 있지만 열정을 가졌었기에 더더욱 아쉬웠다"[6]며 "U-23 경기 세 경기도 챙겨봤다"고 고백하며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기 위해 했던 노력을 전했다.

또 한국팀에는 다른 팀들과 달리 고정된 등번호 9번이 없이 이런저런 선수들이 9번을 맡았는데 자신이 한국팀 감독이 되면 이영준(2003)을 고정 9번으로 키워보고 싶었다는 야망도 밝혔다.

포옛은 인터뷰 후 좋은 예감이 들었다며 "나라고 생각했다. 분명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2~3일 뒤에 선임되지 않았다는 걸 들었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실망했지만 그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다.

포옛은 적은 보수에도 한국 상주 조건까지 수락하며 한국 감독직을 원했는지에 대해 "100% 한국에 거주했을 거다. 난 2년 반 동안 그리스에서 살았었다. 이건 일반적인 상식이다. 서울에 사는 건 100%"라며 국가대표 감독으로서의 당연한 책무임을 강조했다. 반면, 다른 유력 후보였던 바그너 감독은 일부 언론 보도와는 달리, 세금, 가족 문제 등으로 1년 183일 이상 상주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표팀은 클럽 팀과 다르다. 클럽 팀 감독은 매일 출근해야 하지만 대표팀 감독은 집에서도 일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사무실에 최소 2~3일 출근하길 원했다. 개인 사무실이 있다는 확답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어 감독 보수에 대해서는 "사실 조금 놀라긴 했다. 한국이 의심도 없이 더 높게 말할 거라 생각했지만 문제될 게 없었다. 감독으로서, 선수로서 커리어에 있어서 돈 때문에 결정을 내리진 않는다. 돈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7]

즉, 서울에 거주하고, 적은 연봉도 수락하고, 전력 분석까지 준비한 감독이 있는데도, 외국인 감독 면접은 쇼였고, 정몽규 뜻대로 홍명보 선임한 이임생은 더 까였다. 포옛 감독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며, 그의 선임 불발을 아쉬워하는 축구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9월 3차예선 1차전에서 홍명보 선임을 비판했던 사람들조차 경악할 정도로, 홍명보 감독은 한국 축구 전력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끔찍한 무전술, 심지어 클린스만 때보다 못한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줬다. 그것도 최약체 팔레스타인 상대로 홈에서 0:0 무승부라는 쇼크급 결과물을 내면서 진지하게 월드컵 탈락 가능성도 거론될 정도의 상황이 되자[8] 그나마 세계무대에서 경력이라도 쌓고 색깔이라도 확실했던 포옛을 그리워하는 축구팬들이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9]

4. 여담

  • 운동 선수 집안이다. 아버지 와싱톤 포옛은 1960년, 1964년에 올림픽을 나갔던 농구 선수였고 형제 마르셀로가 아버지의 일을 이었다. 구스가 선덜랜드 AFC 감독 시절 농구를 훈련에 도입시킨 것도 이 때문. 한편 그의 차남 디에고 포옛이 대를 이어 축구 선수인데 청소년 시절에는 잉글랜드 대표[10]로 뛰기도 했다. 현재는 은퇴하고 아버지가 감독으로 있는 팀에서 수석 코치로 보좌하고 있다.
  • 기성용이 2013-14 시즌 선덜랜드로 임대왔을 때 지도했던 감독이다. 기성용은 포옛 감독의 신뢰 아래 주전으로 활약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이 된다면, FC 서울 협조를 얻어서, 기성용을 어드바이저, 조언자로 기용하고 싶다고 했다.
  • 레알 마드리드 선수 못한 게 아직도 아쉽다고 한다.
  • 첼시에서 뛴 우루과이 국적의 선수는 의외로 포옛이 유일하다.


[1] 흔히 영어식으로 부르는 '거스 포옛' 내지 성만 스페인식으로 부르는 '거스 포예트'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ˈɡus poˈʝet/로 발음하므로[2] 스페인은 같은 스페인어를 쓰는 과거 식민지 국가의 시민이 스페인 거주 조건만 맞추면 국적을 부여한다. 포옛은 레알 사라고사에서 7년을 뛰었기 때문에 이 시기 국적을 취득한 것으로 보인다.[3] 첼시와 맨유를 연달아 격파하였고 결승에서도 맨시티에 선제골을 넣고 앞서갔으나 이후 3실점하며 패했다.[4] 심지어 8실점 중에 3골이 자책골일 정도로 수비가 완전히 붕괴되었다.[5] 아이폰 자동수정이 됐는지 Naver가 Never로 잘못 적혀있다.[6] 이때 포옛은 아시안컵을 보면서 전술 분석을 하려고 했으나 한국이 보여주려고 하는 전술이 무엇인지 도저히 파악할 수 없었다고 첨언했다.[7] 본인과 함께 하는 스텝들의 보수도 생각해야 해서 낮은 보수 제안에 걱정이 되었으나, 스텝들도 어느정도 보수에 동의하면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이 말은 포엣과 계속 함께 해오던 사단이 같이 대한민국에 올 수 있었다는 소리.[8] 실제로 이 경기 이후 홍명보의 조기교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엄청나게 높아졌다. 클린스만은 일을 안 해서 결과물이 나빴다면 이쪽은 진짜로 기본 자체가 전혀 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감독과 코치진의 자질과 관련된 거라서 이건 개선가능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9] ‘포엣이 감독으로 선임되는 것이 최선이었을까?’에 대한 질문에 팬들은 아직까지도 반반으로 대답이 갈리지만, ‘홍명보 보다 나은 선택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만장일치에 가깝게 더 나은 선택이라는 답이 나온다.[10] 아들은 우루과이-잉글랜드 이중국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