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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Godesberger Programm(독일어) |
1959년 고데스베르크[1] 전당대회에서 독일 사회민주당이 채택한 강령. 이 강령으로 사민당은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한 노동자계급 정당에서 개혁주의에 기반한 국민정당으로 변화했다.
이 강령은 정확히 30년 동안 적용되다가 1989년 새로 채택된 베를린 강령에 의해 대체되었다.
2. 배경
1930년 헤르만 뮐러 내각 이후 독일 사회민주당은 나치 시대와 기민/기사련 내각을 거치면서 거의 30년 가까이 야당 신세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독일 사회민주당은 당의 지향점과 노선에 대한 대개혁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자유사회주의를 주창하며 기존까지 거부해 온 기민련 주도의 친서방 외교노선과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며[2] 마르크스주의 대신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완전히 뿌리내리려는 모습을 보였다.[3]쿠르트 슈마허의 뒤를 이어 새로 당의 지도자가 된 에리히 올렌하워와 당시 서베를린 시장으로 사민당 정치인의 대표격이었던 빌리 브란트의 주도하에 1959년 11월 15일 바트 고데스베르크(Bad Godesberg)에서 개최된 사민당 전당대회에서 324대 16이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사민당은 '실용주의적 국민정당'으로의 전환을 선포했는데 이것이 바로 고데스베르크 강령이다.
3. 내용
고데스베르크 강령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마르크스주의라는 기존의 지향점을 '자본주의의 개혁'으로 변경.
- '노동자 계급의 정당'에서 '국민의 정당'으로의 변신을 추구.
- '중립국으로서 독일 통일 실현'이라는 목표에서 탈피해 (사실상) 친서방 외교노선을 지지.[4]
고데스베르크 강령 전문(독일어)
고데스베르크 강령 전문(영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