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0 21:21:27

고순(삼국지톡)

파일:고순.png

1. 개요2. 캐릭터 묘사3. 작중 행적
3.1. 시즌 3: 반동탁연합 ~ 시즌 5: 협천자3.2. 시즌 6: 관도대전
4. 인물 관계5. 기타

1. 개요

네이버 웹툰 삼국지톡에 등장하는 고순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

2. 캐릭터 묘사

<정사> 충직한 고순. 여포를 따르다. 도대체 왜, 언제부터 따랐는지는 불명.
시즌 5 협천자 5화 19번째 컷, 고순에 대한 작가의 설명문.
본래 한실 조정의 정예병 지휘관이었다는 설을 반영하여, 이각과 곽사의 난부터 여포군에 합류한 것으로 설정되었다.

외모부터 성격까지 철저한 군인 이미지로 나오는데, 여포군에 합류한 뒤로도 복장을 바꾸지 않아서 진궁과 함께 둘이서만 튀는 편이다. 정사의 기록대로 군기가 철저하며 강직한 성격으로 나온다.

지휘관답게 지휘 및 용인술, 개인 무력도 높으며, 거기다가 높은 지력과 상황판단, 통찰력을 갖추고 있는데다 충성심은 두 말 할 것도 없고 개인이 정한 신념은 절대 굽히지 않는 인물이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인재상임에도 하필이면 여포를 주군으로 선택하였고, 또한 용렬한 주군에게 구박받으면서도 그에게 충성을 바쳤다는 점에서 그 모든 장점이 빛을 발하지 못한 인물이다.

3. 작중 행적

3.1. 시즌 3: 반동탁연합 ~ 시즌 5: 협천자

시즌 3에서 조조의 암살 시도에 대한 동탁의 연설문을 읽다마는 것[1]으로 얼굴 일부만 등장했다가 시즌 4 군웅할거 30화, 동탁의 음흉한 미소 편에서 동탁의 동생 동민의 행패에 대처하는 모습으로 전신샷이 처음 등장했다. 동민이 죽인 병사를 추모하며,[2] 동탁이 나라를 망치고 있노라고 부처에게 탄원하며 정녕 그를 그대로 두겠다는 것인지 질문한다.

이각과 곽사가 반란을 일으켜 여포가 쫓겨나게 되자, 동탁을 죽여준 것에 감사를 표하면서 함진영 부대를 전부 끌고와 여포를 픽업한다.[3] 이때 여포는 고순을 의심했으나 고순은 오히려 선봉을 맡게되어 영광이라며 충성스런 면모를 보인다.그리고 알면서도 답답한 그 장면을 실제로 본 삼국지빠들은 일제히 뒷목을 잡았다

이 뒤로도 계속 여포를 따라 등장은 하지만 시즌 5까지는 별다른 활약은 없었다.

3.2. 시즌 6: 관도대전

관도대전 12화에서 여포에게 유비를 죽일 것을 권한다. 유비는 공손찬에게 붙었다가 도겸에게 옮겨붙어 서주를 집어삼킨 교활한 인물이라, 살려두면 언젠가 후환이 될 것이라는 게 이유.[4][5] 그러나 여포는 자기가 유비를 살려 놓겠다는데 딴 소리를 한다고 성질을 내며 쪼인트를 깐다.[6] 고순은 굴하지 않고 계속 간언했으나, 평소에도 자신을 아니꼽게 여기던 여포가 노발대발하는 바람에 사정없는 폭언과 폭행을 당하고 간언은 그대로 씹힌다.[7]

이 한심한 꼴을 보다 못한 함진영 부대원이 '잔인하고 비열한데다, 당신의 충성심도 알아 주지 않는 여포에게 왜 충성을 바치느냐'는 발언까지 하지만, 고순은 "군인은 복종할 뿐 질문하지 않는다."그래서 질문하는 대신 듣지도 않을 충언을 한다. 나는 너희 주인이고 내 주인은 여포이다. 주군이 장수를 버릴지언정 장수는 주군을 버릴 수 없다"며 기묘하리만치 꿋꿋한 충성심을 보인다. 이 속 터지는 말에 독자들은 일제히 "넌 질문을 좀 해라!" 라며 한탄했다.

이때 반란군에게 야습을 당한 여포가 겨우 도망쳐 와서 고순에게 도움을 청한다. 함진영 부대원들은 다들 '여포가 부하에게 배신당하고 제 몸 지킬 군사 하나 곁에 없는 지금이 기회, 지금이야말로 저 놈을 치고 바른 주인을 새로 찾으시라'고 기대하지만.... 고순은 되려 내 검은 본래 주군의 것이니 기꺼이 반란군의 목을 바치겠다고 대답.[8] 고순은 반란군이 '데덴찌'를 외쳤다는[9]는 여포의 증언을 토대로 진지한 표정으로 "데덴찌?"라고 하면서 하내 아이들이 놀 때 쓰는 말이므로 하내 출신의 학맹이 주모자임을 유추해, 학맹과 그의 일당을 순식간에 진압한다.

고순의 최대 공적이라 할 수 있는 유비와 하후돈 격퇴는 그냥 여포가 직접 명령하는 것으로 처리되었다. 그래도 고순의 부하들인 함진영이 시행한 것으로 처리되었으니 간접적으로 반영되기는 했다.

39화에서 여포의 명령으로 장비와 맞서 싸운다.

결국 하비성이 함락되고, 56화에서 조조군에 생포당해 진궁과 함께 조조에게 끌려온다. 이미 사형을 집행당한 여포의 시신 앞에 망연자실 꿇어앉아, 어떤 군인도 주군보다 오래 살아선 안 된다며 탄식한다.[10] 곧 고순은 "동탁을 죽인 영웅이 죽었으니 세상은 무간지옥이 됐고 조조 너는 피에 굶주린 마군일 뿐"이라 욕하고, 속으로는 '나의 주인이자 부처인 여포가 있는 곳이 나에게는 극락정토'라 독백하면서 덤덤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며 격노한 조조에게 그 자리에서 참수당해 생을 마감한다.[11]

정사의 서술대로 '뛰어난 군재, 올곧은 성품, 굳건한 충성심을 모두 갖췄지만 주인을 잘못 만난 비운의 인재'로 그려졌다. 그러나 마냥 긍정적인 인물상으로 묘사되지는 않으니, 올바른 주인을 찾으라는 부하들의 충언을 외면하고 섬길 가치가 없는 아둔한 자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한 것은 어디까지나 어리석은 충성, 즉 우충(愚忠)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의 충성이 올바른 것이 아님을 끝내 인정하지 못한 탓에 본인은 물론 부하들까지도 모조리 파멸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여러 모로 아까운 인재였지만 온전히 동정할 수는 없는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12]

4. 인물 관계

  • 여포
    동탁의 전횡을 미워하던 차에 여포가 그를 죽이자, 폭군을 죽여 세상을 구원한 여포가 곧 부처와 같다고 믿으며 자신의 주군으로 택하였다. 여포는 고순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겨 믿어 주지도, 그의 충정을 알아 주지도 않으며, 제멋대로 날뛰느라 간언조차 한 번을 받아 주지 않았지만, 고순은 온갖 천대를 다 받으면서도 묵묵히 충성을 다할 뿐이었다. 결국 여포가 조조에게 죽자 고순 자신도 삶의 의지를 버리고 뒤를 따른다. 함진영 부대원들조차 "고순이 여포 따위에게 천대를 받으면서도 충성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발언을 할 정도로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충심을 보이는데, 사실 여포에 대한 그의 충심은 '충성심'의 범주를 넘어 이미 종교와 신앙의 영역에 가깝다.
  • 유비
    유비가 공손찬을 저버린 행적을 이유로 '믿을 수 없는 간사한 뱀 같은 자'라 생각하며 여포에게 그를 죽이라 간언한다. 그런데 정작 그 비판은 일명 애비 셋 여포에게 더 적절하다는 게 참 기이하다. 결과적으로 유비가 조조와 손 잡고 관도대전에서 여포를 패배시키고 조조에게 간언하여 끝내 여포를 사형당하게 만들었긴 했지만, 그 이전에 여포가 자신을 받아들여준 유비를 배신하며 수많은 민폐를 끼친 걸 생각하면 여포 측은 유비를 비난할 일말의 자격도 없다.

5. 기타

삼국지연의에서 고순은 하후돈과 일기토를 하고 이 일기토 중에 고순이 등을 돌려 도망가자 고순을 추격하던 하후돈이 조성의 화살에 맞아 애꾸눈이 되기 때문에 팬들은 고순과 하후돈의 일기토를 기대했으나 아쉽게도 고순과 하후돈은 끝내 제대로 맞붙지도 않고 하후돈도 그냥 유시에 맞아서 장님이 되어서 고순과 하후돈의 일기토를 기대한 팬들을 아쉽게 했다. 고순을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이런 연의의 명장면을 작가가 왜 생략했는지 의아한 부분이다.

작중 내내 그릇된 모습을 보이더라도 주군에게 무조건 충성하는 모습 태도에 대해 독자들의 평가가 갈리는 인물이었다. 멋지다고 환호하는 쪽과 '댁은 질문을 좀 할 필요가 있다'고 비판적으로 보는 쪽으로 의견이 갈린다. 음모와 배신이 판치던 난세에 의리를 지키고자 하는 태도가 대쪽 같고 간지나는 건 맞는데, 여포라는 자가 도대체 충성할 만한 가치가 없는 인물상이고 고순 본인도 그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따른다는 게 문제.[13] 일단 고순이 여포를 무비판적으로 맹종하는 건 아니고, 아닌 건 확실히 아니라고 말하고 자기 목숨을 걸지언정 충언을 아끼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잘못된 길을 가는 주군을 바른 길로 인도하려 조언하는 사람인 건 맞다. 문제는 그러거나 말거나 결국엔 최종 결정권을 여포한테 쥐어준다는 점. 폭언과 구타를 당해 가며 간언을 해 놓고도 여포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국 여포의 뜻대로 따르니, 백 마디를 간언해도 한 마디도 보람이 없다. 그런 점에서 마냥 좋게만 볼 수는 없는 것이다.[14]

불교 신자라는 설정이 붙어있다. 정사에도 연의에도 그런 언급은 전혀 없는 오리지널 설정이다. 동탁의 전횡을 보며 부처에게 이 나라를 구원해 달라 독백하는 장면이 있으며, 여포를 따르는 이유도 그가 동탁을 죽여 세상을 구원했으므로 부처의 화신이나 다름없다는 논리다. 물론 여포는 "얘 뭔 소리 하는 거야"하는 반응.

다만 후한 말 중국에는 착융이 불교를 내걸고 날뛴 예가 있을 정도로 불교가 꽤 전파된 상태였기 때문에, 고순이 불교를 믿는 것 자체가 그렇게 무리한 각색은 아니다. 연의에도 관우의 오관육참 당시 도움을 주는 승려 보정대사가 나온다. 또한, 불교가 도입된 지 오래 되진 않은 시기이기도 하니, 남 일에 관심 없을 여포가 불교에 대해 잘 모르는 것 또한 자연스럽다.[15]

그리고 마치 삼국지톡에서 처음 나온것 같지만, 삼국지에 불교 신자를 비중있게 등장시킨 게 삼국지톡은 아니다. 일본 삼국지 창작물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기타카타 겐조의 영웅 삼국지가 원조다.[16]

게다가 애당초 불교는 무조건 살생을 금지하는 종교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살생을 금지하는 종교를 믿으면서 그릇된 주군을 위해 살생을 저지르는 고순의 모순적인 캐릭터성이 더더욱 돋보인다. 불교를 진심으로 믿는다면 그 어떤 살생도 용납하지 않고 군인이 되어서도 안 됐으나 고순은 불교를 저버리지도 못하고 계속 불교를 믿으면서도 불교에서 엄금하는 살생을 계속 저지른다. 게다라 부처는 살생을 기피한 성인인데 고순은 여포 같은 놈을 부처의 화신이라고 했으니 부처가 이 꼴을 봤다면 피가 거꾸로 솟았을 것이다. 그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모순된 삶을 살다가 간 것이다.[17]

작중 고순과 함진영 병사들은 모히칸(북두의 권) 같은 느낌의 다른 동탁/여포군과 달리 현대적인 헬멧과 조끼 등 복장에서 전반적으로 최정예 특수부대라는 인상이 강하다. 극 대신 기관단총을 들려줘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 소소한 차이는 있지만 고전적인 투구와 자신이 속한 세력의 수장 이름이 적히고 상징색이 입혀진 점퍼와 바지 차림이 기본인 다른 세력의 병사들과 디자인에서 차이가 매우 큰 편이다. 눈가가 가려지는 헬멧을 착용하다 보니 다른 병사들과 달리 이들의 감정도 보이지 않아 더욱 느낌을 살리고 있다.


[1] 동탁 암살 미수범인 조조의 수사 현황을 보고하는 것은 잘 읽다가 동탁을 황실을 구한 영웅이라고 칭송하는 대목에서 읽다말고 나가버린다.[2] 이때 하는 독백을 보면 이런 행패들 때문에 죽어나간 병사들이 한둘이 아니었던 모양.[3] 간혹 위의 한나라의 부대 지휘관 설을 근거로 고순이 국가를 배신해서 여포로 갈아 탄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세우는 사람도 있으나, 당시 동탁을 죽인 여포는 한나라의 장군이며 나라를 구한 영웅이었다. 고순은 삼톡에서 한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군인으로 묘사되며, 때문에 동탁의 행패에 불만을 가지다 못해 경멸하는 수준이엇으나 그가 한나라의 상국이라는 점 때문에 그를 대우해주는 것일 뿐이었다. 그런데 동탁 사후 도리어 나라를 구한 영웅이 위험에 빠지자 그를 구하고 따르기로 한 것, 사실상 본인이 직접 선택한 주인은 여포 한 사람이다.[4] 결과적으로 말하면 실제로 그렇게 되긴 했다. 그런데 애초에 여포가 유비를 배신때린 게 화근이었으니 그걸로 유비를 욕하기엔....[5] 다만, 고순 입장에서 말을 해보면 어디까지나 고순에게 1순위는 여포이기 때문에 여포가 아무리 유비를 배신했다 하더라도 주인의 뜻이기에 따르고, 여포군의 이익을 위해서는 당시 상황에서 유비가 후환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라 볼 수 있다.[6] 이때 고순은 군화를, 여포는 삼선 슬리퍼를 신고 있었는데 쪼인트를 까인 고순이 그 자리에 엎어졌다. 해당 컷(관도대전 12화 2번째 컷) 베댓: 슬리퍼와 군화의 대결이었는데 군화가 지는 불합리함[7] 동탁의 친인척인 동민의 장난아닌 장난으로 부하를 잃을 때도, 잘못된 점은 알고 있으나 국가에 충성하는 마음 때문에 한탄만 하고 동민에게는 어떠한 해코지도 하지 않았다. 즉, 고순이라는 사람은 사리분별과 잘잘못을 명확히 알고 있으나, 자신이 정한 신념과 충돌할 경우 목에 칼이 들어와도 신념을 우선시하는 부류다. 정사에서 여포가 고순의 충직함은 알고 있으나 꺼리는 모습이 있는데 고순이 무력은 물론이고 충직함에 지력까지 갖추고 있다보니 고순이 따르긴 하는데, 잘못된 점을 계속 이야기하니 바로 앞에 있는 것 밖에 보지 못하는 여포가 싫어하는 것, 여포와의 관계를 정리하면 지휘관보다 뛰어난 부하, 그런 부하가 자신에게 도전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지휘관이라고 보면 된다.[8] 그리고 아까 전까지 도와달라고 애걸복걸하던 여포는 고순의 대답을 듣자마자 태도가 돌변, "나 혼자서도 다 처리할 수 있는데 특별히 네게 기회를 준다"고 거만하게 으스댄다.[9] 정사에도 있는 기록인데, 정사에서 반란군이 하내 사투리를 썼다는것을 현대화했다. 어릴 때 친구들과 놀면서 특정한 구호를 외치며 편을 나눈 기억이 다들 있을 텐데, 이때 외치는 구호가 지역마다 다르다. 언급된 "데덴찌"는 서울, 부산은 "젠티", 전라도는 "알코르쎄요" 등. 하내는 후한의 수도권인 사례에 소속된 지역이었으므로, 그를 감안해 수도권에서 쓰는 구호로 맞춘 듯하다.[10] 당시 포로로 잡혀있던 그의 함진영 부대원들은 전원이 자살하여, 남은 포로라고는 고순 자신뿐이었다. 이에 고순은 둘째치고 함진영 부대원들은 무슨 죄로 죽어야 했느냐며 안쓰러워하는 독자들, 고순의 우충(愚忠)이 끝내 부하들을 죽게 한 것이라 비판적으로 보는 독자들이 많다. 가벼운 평가로는 '(주군을 이나 앞세운) 오나라 무관들 초광역 저격'이란 개드립도 있었다[11] 정작 고순이 부처라고 받들었던 여포는 조조에게 '아버지' 운운하며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했고 죽음이 결정된 순간에도 '세상의 그 어떤 죽음도 내 몫은 아니다'라며 절규했던 것과 대조된다.[12] 실존인물 고순의 경우 당시 고대중국에서 충이란 가치는 현대에서보다 훨씬 컸기 때문에 현대인의 시선으로 판단하기는 한계가 있다. 또한 여포가 인간쓰레기란 점은 현대인의 시선에서 명확하지만 당대를 같이 살아가는 입장에서 여포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에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고대중국의 고순은 본인이 가장 큰 가치로 삼았던 충을 끝까지 지켜냈지만 하필 주인이 천하의 쓰레기란 점에서 운이 없었던 인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삼국지톡에서는 여포의 쓰레기짓을 보면서도 "당신이 나의 부처이다"라고 스스로 눈을 가리고 맹목적인 충성을 하는 인물로 바뀌어 확실한 우충으로 그려졌다.[13] 주군에 대한 충을 지키기는 하나 그릇된 결정을 밀고 나갈 경우 병을 핑계로 자신의 신념에 대한 무언의 답을 하는 선택지가 있음에도 고순은 끝내 여포의 결정에 따르는 모습을 보이기에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14] 삼톡에서 고순과 가장 비슷한 건 전위인데, 완성 전투 당시 조조의 추태를 막으려는 조앙에게 주군의 명은 무엇이 되었든 간에 따르는 것이라며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조조가 자신에게 따귀까지 때려가며 술을 권하자, 처음에 거절하던 전위도 결국 심하게 취한 채, 장수 군으로부터 조조를 지키다 비참하게 죽고 만다.[15] 사실 위에서 지적된대로 현대적인 해석으론 (충이 가장 큰 유교적 가치 중 하나이던) 고순의 이유없는 충성을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다. 당시 숭상받던 충이란 가치가 극단적으로 발현된 케이스이지만, 현대적인 각색으론 이 점을 살리기가 힘들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종교적 가치를 넣어 고순의 (이해하기 힘든) 충성심을 설명하려고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16] 일본쪽 매체의 조조, 여포 묘사는 사실상 기타카타가 정립해 놓은걸 그대로 가져다 쓴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묘사가 조조전, 창천항로, 진삼국무쌍 시리즈 등을 통해 중국과 한국에 까지 건너와 큰 영향을 미쳤다.[17] 다만 이는 불교의 교리와 현실적인 문제의 괴리를 잘못 이해한 해석일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도 존재한 승병의 경우처럼 작게는 개인과 사찰, 크게는 나라의 범주까지 외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살생을 행한 경우도 있으며 현대에서도 군종승려같이 군에 속한 불교 신자들은 많다. 이들을 모두 모순적이라고 비난할 순 없듯이 작중의 고순 역시 개인의 신앙은 불교지만, 나라를 지키고 중생들을 지키기 위해 무력을 행사한다는 점으로 해석을 해야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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