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북한의 정치인.2. 생애
1896년 2월 18일, 평안북도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에 투신, 1920년에 조선독립신문에 근무하였으며 1926년에 투옥되어 1933년까지 복역하였다.해방 이후 1945년 8월부터 선천군 보안서장, 1946년 3월부터 평북 보안부 교통과장을 지냈으며 1946년 8월, 북조선민주당 평안북도위원장, 1946년 11월에 평안북도 인민위원회 부위원장까지 올랐다. 조만식이 숙청된 이후 최용건이 당을 장악하자 1946년 1월에 열린 조선민주당 평양시 확대인민위원회에서 월남을 거부하고 북에 잔류했으며 8월, 조선민주당 평안북도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48년, 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1955년 12월, 북조선민주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1957년 9월, 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 내각 체신상에 임명되었으나 1958년 4월 24일, 림업성이 설치됨에 따라 체신상에서 해임되어 최현에게 체신상 자리를 물려주고 초대 림업상에 임명되었다. 허나 곧 1958년 9월 11일, 고희만에게 림업상 자리를 물려주고 해임되었다. 1958년 10월 2일, 최고인민회의 2기 4차 회의에서 김원봉이 숙청당하고 현칠종이 은퇴함에 따라 한설야와 함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959년 5월, 김창준 장의위원장을 지냈다. 1959년 10월, 조국전선 의장이 되었으며 1962년, 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재선되었으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에서는 물러났다. 이후 조국전선 의장으로 장기간 일했고 1967년 12월, 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1963년 5월, 강진건 장의위원, 1965년 3월, 안재홍 장의위원, 1965년 5월, 한동백 장의위원, 1965년 7월, 정로식 장의위원, 1968년 3월, 홍명희 장의위원, 1971년 10월, 박문규 장의위원, 1974년 1월, 박열 장의위원을 지냈다. 1972년 12월, 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서는 탈락했으며 1977년 3월 6일 22시 45분에 8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조국전선 중앙위원회는 짤막한 부고를 발표하였다. 이후 애국렬사릉이 조성되자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 직함으로 안장되었다. 1990년 조국통일상이 추서되었다.
3. 참고문헌
- 김광운, 북한 정치사 연구 1: 건당, 건국, 건군의 역사(서울: 선인,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