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10-31 12:39:01

공려

1. 개요2. 상세3. 의의

1. 개요

공려(公厲)는 유교 경전인 《예기(禮記)》 〈제법(祭法)〉 편에 등장하는 고대 제사 제도의 개념으로, 제후(諸侯)가 다스리는 봉국(封國) 내에서 후사(後嗣)를 이을 자손이 없이 죽어 제사를 받지 못하는 고대 제후나 백성의 귀신, 혹은 그들을 달래기 위해 지내는 제사를 의미한다.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제후국(公)의 영역 안에서 발생한 원한을 품은 무후 귀신라는 뜻이다.

2. 상세

고대 종법(宗法) 사회에서는 조상의 제사를 계승하는 것이 가문과 국가의 중대사였다. 그러나 가문이 단절되거나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은 무후(無後)의 영혼들은 제사를 받들 사람이 없어 의지할 곳 없이 떠돌게 된다. 고대인들은 이처럼 방치된 영혼이 원한을 품어 역병이나 기근 등 흉사를 일으킨다고 믿었으며, 이러한 귀신을 '여(厲)'라고 불렀다. 이에 따라 유교 예법에서는 통치자가 자신의 관할 영역 내 무연고 귀신들을 공식적인 제사 체계 안으로 포섭하여 위로하도록 규정하였다.

《예기(禮記)》 〈제법(祭法)〉에 기록된 원문과 주석(정현(鄭玄) 주(注), 공영달(孔穎達) 소(疏))에 따르면, 신분 계층에 따라 모시는 소사(小祀)의 개수와 무후 귀신의 명칭이 엄격히 구분된다.
王爲群姓立七祀,曰司命,曰中霤,曰國門,曰國行,曰泰厲,曰戶,曰竈;王自爲立七祀。諸侯爲國立五祀,曰司命,曰中霤,曰國門,曰國行,曰公厲;諸侯自爲立五祀。大夫立三祀,曰族厲,曰門,曰行。適士立二祀,曰門,曰行。庶士、庶人立一祀,或立戶,或立竈。
왕은 만백성(群姓)을 위해 칠사(七祀)를 세우니 사명(司命), 중류(中霤), 국문(國門), 국행(國行), 태려(泰厲), 호(戶), 조(竈)이며, 왕 자신을 위해서도 칠사를 세운다. 제후는 나라를 위해 오사(五祀)를 세우니 사명(司命), 중류(中霤), 국문(國門), 국행(國行), 공려(公厲)이며, 제후 자신을 위해서도 오사를 세운다. 대부는 삼사(三祀)를 세우니 족려(族厲), 문(門), 행(行)이다. 적사(適士)는 이사(二祀)를 세우니 문, 행이다. 서사(庶士)와 서인(庶人)은 일사(一祀)를 세우니 호(戶)를 세우거나 조(竈)를 세운다.
— 《예기(禮記)》 〈제법(祭法)〉

이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rowcolor=#fff> 신분 제사 범주 여(厲)의 명칭 제사 대상 및 의미
천자(天子) 칠사(七祀) 태려(泰厲) 고대 제왕 및 천하의 후손 없는 모든 귀신
제후(諸侯) 오사(五祀) 공려(公厲) 고대 제후 및 해당 봉국(封國) 내의 후손 없는 귀신
대부(大夫) 삼사(三祀) 족려(族厲) 고대 대부 및 대부 집안·종족(宗族) 내의 후손 없는 친족 귀신
적사(適士) 이사(二祀) - 문(門), 행(行)만 제사 지냄 (여 제사 없음)
서사(庶士)·서인(庶人) 일사(一祀) - 호(戶) 또는 조(竈) 중 하나만 제사 지냄

이처럼 제후(諸侯)는 한 나라(封國)를 통치하는 군주로서,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사명(司命), 거처의 중앙 신인 중류(中霤), 도성의 성문 신인 국문(國門), 도로의 신인 국행(國行)과 더불어 공려(公厲)를 포함한 오사(五祀)를 나라와 자신을 위해 각각 세워 제사 지냈다.

후한(後漢)의 유학자 정현(鄭玄)은 주석에서 "고대의 제후로서 후사가 없는 자의 귀신(古諸侯無後者)"이라고 풀이하였으며, 당(唐)나라 공영달(孔穎達)은 《예기정의(禮記正義)》에서 제후국의 백성 중 후손 없이 죽어 돌아갈 곳이 없는 귀신들까지 제후가 아울러 제사 지내어 재앙을 막는 것이라고 부연하였다.(《예기정의(禮記正義)》 수록 내용에 근거함)

3. 의의

공려(公厲)는 천자(天子)가 천하 차원에서 모시는 '태려(泰厲)'와 대부(大夫)가 가문·종족 차원에서 모시는 '족려(族厲)'의 중간 단계에 위치하는 국가(제후국) 단위의 무연고 귀신 위령제이다.

통치자인 제후가 자신의 영토 안에서 발생한 무후(無後)한 이전 시대의 제후들과 백성의 원혼까지 공적인 제사 체계로 거두어들임으로써, 봉국 내의 재앙과 역병을 예방하고 민심을 안정시키려 했던 유교적 왕도정치 및 예치(禮治) 사상을 보여준다. 이 개념은 후대 동아시아에서 지방관(수령)이 고을 단위로 여단(厲壇)을 설치하고 관할 구역 내의 무연고 귀신들에게 지내던 관행인 여제(厲祭)의 직접적인 기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