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4 20:27:40

괴델, 에셔, 바흐

<colbgcolor=#000><colcolor=#fff> 괴델, 에셔, 바흐
영원한 황금 노끈
파일:괴델에셔바흐.jpg 파일:괴델에셔바흐번역.jpg
초판 표지 한국어 번역판 표지
원제 Gödel, Escher, Bach:
an Eternal Golden Braid
초판 발행 1979년
작가 더글라스 호프스태터
주제 수리논리학, 철학, 인공지능

1. 개요2. 내용3. 특징4. 대화편의 등장인물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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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괴델, 에셔, 바흐》는 1979년 미국의 인지과학자 더글라스 호프스태터가 쓴 책으로, 의미와 의식의 기원 등을 '이상한 고리'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논한다. 원제가 길기 때문에 보통 줄여서 GEB라 부른다.

인공지능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책인데, 1979년에 출간된 책임을 감안하면 책에서 제공하는 통찰은 대단히 선구적인 것이다. 특히 다른 인공지능 분야 책들처럼 구체적인 연구의 방법에 대해 논하는 것이 아닌 아닌 '그래서 인공지능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1980년 퓰리처상 비문학 부문 수상작이자 1980년 내셔널 북 어워드 과학서적 부문 수상작이다.

2. 내용

한마디로 GEB는 어떻게 생명이 있는 존재[1]가 생명이 없는 물질로부터 나올 수 있는지 이야기하려는 매우 개인적인 시도이다.
GEB 20주년 기념판 서문 中에서(박여성, 안병서 驛)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는데 무슨 내용인지는 전혀 감이 안 오는 책으로 유명하다. 보통 부제인 '영원한 황금 노끈'을 통해서 대충 쿠르트 괴델, M. C. 에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세 사람의 작품(수학적 정리도 작품이라 할 수 있다면)을 하나로 엮는 책이라고 유추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책을 직접 읽어 보면 '재귀', '자기-지시', '층위', '동형성' 등 정말로 다양한 주제가 등장하며, 괴델, 에셔, 바흐는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탓에 많은 독자들이 책을 다 읽고도 도대체 책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가 안 되어서 난감해하고는 한다. 하지만 책에서 던지는 수많은 논제들은, 결국 3개의 큰 주제로 정리할 수 있다.

1. 세상의 많은 체계들은 다양한 층위로 이뤄져 있으며, 각 층위들이 서로를 지시하며 만들어내는 '이상한 고리' 혹은 '뒤엉킨 계층질서'에서 의미가 탄생한다.

2. 생명체도 다양한 층위로 이뤄져 있으며, 각 층위들이 만들어내는 '이상한 고리'에서 의식이 발생한다. 또한 뒤엉킨 층위들 아래에는 '건드릴 수 없는 기층' 층위가 존재할 수 있으며 인간의 경우 순수하게 물리적 법칙에 따라 작동하는 뉴런 층위가 이에 해당한다.

3. 인간도 기계와 마찬가지로 순수하게 물리적 법칙에 따라 작동하는 층위에서부터 출발한다면, 기계도 층위를 세분화하고 층위간에 '이상한 고리'를 만듦으로써 인공지능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2]

괴델, 에셔, 바흐는 위의 주장들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이상한 고리'를 자신들의 작품에 적용한 사람들이며, 때문에 저자는 세 사람을 책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등장시키며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미지화시키고 독자들에게 반복적으로 각인시키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특히나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의 증명 과정은[3]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결정적이기 때문에 책에서 여러 장을 할애하여 친절하게 설명한다.

3. 특징

GEB는 여러 면에서 기존의 책들과 차별화되는 개성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그 점이 이 책을 단순한 비문학 서적 이상의 작품으로 만든다.
  • 난해함
    매우 어렵다. 다루는 분야도 방대하고 여러 학문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저자가 제시하는 개념들도 하나같이 생소하고 어려우며 이를 가지고 논하고자 하는 주제도 어렵다. 책에서 다루는 분야들, 특히 수리논리학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비교적 쉽게 책을 읽을 수 있겠지만 일반 대중이 읽기에는 다소 어려운 책이다.
    특히나 어려운 부분은 형식체계에 관한 내용들인데,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기 위하여 책에서만 쓰일 각종 형식체계들을 소개한 뒤에 이를 이리저리 전개한다. 그러면 독자는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기 위해 해당 형식체계를 습득해야 하고, 그 순간부터 독자 입장에서는 독서가 아니라 공부가 된다(...).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교양서를 읽고 있는 것인지 문제집을 풀고 있는 것인지 싶은 착각이 든다.
  • 친절함
    그러나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은 매우 친절하다.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이 책은 결국 일반 대중을 독자로 상정하고 쓴 교양서이며, 다루는 내용의 깊이에 비하면 문장은 무척 쉽고 격식 없이 쓰인 편이다. 저자도 자신이 논하고자 하는 내용이 쉽지 않음을 알기에 같은 개념을 몇 번에 걸쳐서 반복적으로, 다양한 비유와 이미지를 통해서 전달한다.그런데 비유가 더 어려울 때도 있다.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모든 내용은 최소 2번 이상 반복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나 '이상한 층위'나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와 같은 핵심적인 개념들은 책 전체에 걸쳐 반복함으로서 독자로 하여금 그 개념을 단순히 이해하는 것이 아닌, 직관적으로 익숙해지도록 훈련시킨다. 위에서 말한 형식체계에 대해서도 저자가 친절하게도(...) 예제와 연습문제까지 제공하면서 이해를 돕는다. 또한 각 장 앞에 대화편이 붙어 있는 이유도 독자를 이후에 전개할 내용에 미리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다.[4] 그리고 이러한 친절함이 책이 무식하게 두꺼운 주 원인이다(...).
  • '매우 개인적인'
    이 책은, 저자가 밝히듯이, '매우 개인적인' 책이다. 그것이 무슨 뜻이냐면, 책 내에서 저자가 창조한 개념들이나 이름들이 무척 많고 이를 책 전체에 걸쳐서 반복적으로 사용한다는 뜻이다.[5] 책은 결국 저자의 내면을 글로 옮긴 것이니 저자 입장에서는 문제가 없겠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죽을맛이다(...). 책의 내용 자체는 페아노 공리계괴델 부호화 등 수리논리학의 핵심 개념들과 근본적으로 일치하지만, 용어의 경우 이 책 안에서만 한정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형식체계에 관한 내용은 논리 전개에 필수적이라 하더라도, 각 장을 시작하기 전의 대화편에 나오는 각종 비유나 개념들이 본문에서도 유효한 단어로 그대로 등장한다든가... 콜라츠 추측에서 궁극적으로 1로 환원되는 수를 '놀라운 수' 등으로 부른다든가... 독자로 하여금 저자가 치는 드립을 이해하기 위해서 책의 개념과 대화를 전부 기억하고 때로는 몇 백 페이지까지 앞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내용 자체의 난해함과 더불어 읽기를 어렵게 만드는 원흉.
  • 바흐를 모방한 형식
    본문과 대화 형식의 막간이 번갈아 반복되는 형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부터가 바흐의 대위법에 영감을 받은 것이고, 대화 부분은 제목부터가 바흐의 곡들의 패러디이며 대화 내용 또한 푸가대위법적 형식을 모방한 형태로 되어 있다. 예를 들면 아킬레스거북 두 명의 대화를 인벤션과 신포니아의 2성 인벤션으로 나타내는 식이다. 마지막 장으로 가면 음악의 헌정의 6성 리체르카레로까지 발전한다. 즉, 2개의 층위에서 바흐의 모방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마지막 대화편은 저자 본인이 대화 속에 등장하여 이 책 자체를 재귀적으로 언급하는 등 그동안의 모방이 한 데 섞여 푸가에서의 스트레토와 같은 극적인 효과를 내고, '무한히 상승하는 카논'의 종결 부호로 끝나며 다시 서론으로 돌아간다. 실제로 이렇게 읽어도 매우 자연스럽다. 그러나 책을 다시 읽을 때마다 독자는 책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 있을 것이므로, 이는 실로 '무한히 상승하는 카논'인 것이다.
    한편 바흐의 음악적 기법들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괴델적 성질'들과 '이상한 고리'들을 원리로 한 것이므로, 결국 이 책의 형식은 내용 자체를 모방하는 것이다. 거기에 책 자체가 형식과 내용의 관계, 패턴과 재료의 관계, 통사론과 의미론의 관계에 대한 것이므로 다시 책의 내용에 대한 모방이며, 이와 같이 다양한 층위에서 재귀가 발생하게 된다.
    이 형식은 진중권미학 오디세이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좀 더 근원을 따져 보면 미학 오디세이나 괴델, 에셔, 바흐나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영향을 받은 측면이 있다.
  • 언어유희
    루이스 캐럴에게서 영감을 받아 쓴 책인만큼, 두문자어역두문자어 등을 사용한 언어유희가 매우 자주 나온다. 당장 책 제목인 <괴델, 에셔, 바흐: 영원한 황금 노끈>부터가 원문으로는 GEB-EGB로 알파벳 두문자를 맞춘 것이다. 두문자어가 대응되는 "기린, 코끼리, 개코원숭이 - 열대 초원의 동물들(Giraffes, Elephants, Baboons: An Equatorial Grasslands Bestiary)", 금은동으로 장난친 "동, 은, 금: 부서지지 않는 합금(Copper, Silver, Gold: an Indestructable Metallic Alloy)" 등 제목을 갖고 스스로 패러디하기도 했다. 금은동 드립은 아예 골드바흐 추측의 골드바흐를 골드+바흐로 해석하여 실버에셔, 쿠퍼괴델이라는 아재개그를 치기도 한다. 대화 부분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서로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문장을 말하는데, 이를 다성 푸가의 각 성부에 대응시킬 수 있다. 이 때문에 원문으로 읽어야 온전히 즐길 수 있으며, 번역이 매우 까다롭고 그마저도 한계가 있는 편이다.
  • 자기-지시
    책 전반에 걸쳐 책에 대한 자기-지시가 등장한다. 본문 중에서 종종 책이 직접 언급되며, 대화편에서 이름을 바꿔서 등장하기도 한다. 책의 개념들간의 관계도, 즉 책의 구조도도 나오며, 마지막 대화편인 <6성 리체르카레>에서는 아예 저자가 대놓고 인물로 등장하여 직접적으로 책에 대한 자기-지시를 한다. 그 부분에서 다른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이 책 속의 등장인물임을 깨닫고 제각기 반응을 보이는데, 그 반응은 책의 내용인 동시에 책의 내용에 대한 자기-지시이다! 자기-지시는 책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이므로, 이 또한 재귀이다.

4. 대화편의 등장인물

  • 아킬레스: 제논의 역설 중 하나인 아킬레스와 거북에 등장하는 그 아킬레스. 가장 좋아하는 화가는 에셔.
  • 거북: 아킬레스와 거북에 등장하는 그 거북.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는 바흐.
  • 제논
  • : 바흐의 작품 중 하나인 게 카논(Crab canon)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에셔의 작품 중에서도 게를 그린 것이 있다. 가장 좋아하는 논리학자는 괴델.
  • 오카니사마: 아킬레스의 선(禪) 스승. 사실 일본어로 '게 선생(御蟹様)'이라는 뜻이다. 언급으로만 등장한다.
  • 개미핥기
  • 개미집 아줌마: 개미들의 군집체이자 개별 개미들보다 높은 층위에 존재하는 의식. 개미핥기에게 자기 개미들을 맘껏 내어주는, 개별 층위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보인다. 언급으로만 등장한다.
  • 나무늘보
  • 찰스 배비지
  • 앨런 튜링
  •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작가 본인)

5. 여담

  • 본문 중에서 드보르작이 청각을 잃었다고 나오는데, 이는 같은 체코 출신의 스메타나와 헷갈린 것이다.
  • 박여성이 번역한 기존의 1999년판은 번역의 질이 끔찍하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여러 문의들을 수용하고 안병서와 재작업해 출간한 2017년 개역판은 호평이다. 다만 역자의 부연설명이 지나치게 많고, 사항 색인에 알파벳으로 된 개념이 누락되어 있거나 순서가 뒤죽박죽이며, 몇몇 언어유희를 놓친 것이 조금 아쉽다.

[1] 그중에서도 특히 의식이 있는 존재[2] 인공지능의 창조는 마지막 장에서까지 강조되는 주제이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Compose Ever Greater Artificial Brains (By And By)." 참고로 이 문장은 거꾸로 두문자를 따면 BABBAGE C. 즉 찰스 배비지가 된다.[3] 정작 정리 자체는 책의 핵심 주제와는 큰 연관이 없으며,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기계는 절대 완전할 수 없으므로 인간과 다르다고 주제를 잘못 이해하게 만들기 쉽다. 중요한 것은 정리의 증명 과정에서 나오는 '하나의 문장을 여러 층위에서 해석하기'라는 아이디어와 괴델 부호화, 그리고 콰인 문장의 개념이다.[4] 예외적으로 마지막 대화편은 뒤따르는 장이 없기 때문에, 책 전반을 요약하고 그간의 담론들을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사실 책의 결말을 보면 알겠지만, 서론과 이어진다.[5] 프로그래밍에 빗대자면 로컬 함수, 인터넷 문화에 빗대자면 '내수용 밈'이 무척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