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09 18:37:51

권덕근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권진근(權眞根)·권용범(權龍範)·권덕근(權悳根)
출생 1897년 9월 22일
한성부 서서 황화방 군기시계 소정동
(현재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1][2]
사망 1959년 9월 28일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권덕근은 1897년 9월 22일 한성부 서서 황화방 군기시계 소정동(현재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1 운동에 참가했다가 만주로 피신한 뒤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했다. 1921년 백낙주·나정규(羅正奎)[3] 등과 함께 대한독립단 산하 혈성대(血誠隊)를 조직하고 봉천성 관내 해룡현(海龍縣)[4]·통화현(通化縣)[5]· 흥경현(興京縣)[6]·무순현(撫順縣)[7] 등지에서 친일단체인 만주보민회 회원들을 숙청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김명봉·조대능(趙大能) 등 동지들과 함께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그해 체포되어 악형을 받았으며, 고문에 대항해서 혀를 끊어 일본 경찰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그는 평양형무소에서 3년의 옥고를 치르고 1924년 12월 30일 만기출옥하였다.#

출옥 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권덕근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출생지 정동 3번지에는 현재 서울대성당·경운궁 양이재가 위치해 있는데, 각각 1926년, 1927년에 현재의 자리에 세워졌으므로 권덕근 출생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2] 그밖에 한성부 남서 대평방 대광교계 광교동(현 서울특별시 중구 삼각동에서 출생했다는 기록도 있다.[3] 이명 나정봉.[4] 현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메이허커우시(梅河口市).[5] 현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퉁화시(通化市) 퉁화현.[6] 현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 푸순시 신빈만주족자치현(新賓滿族自治縣).[7] 현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 푸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