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 권진근(權眞根)·권용범(權龍範)·권덕근(權悳根) |
출생 | 1897년 9월 22일 |
한성부 서서 황화방 군기시계 소정동 (현재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1][2] | |
사망 | 1959년 9월 28일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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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권덕근은 1897년 9월 22일 한성부 서서 황화방 군기시계 소정동(현재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서 태어났다.그는 1919년 3.1 운동에 참가했다가 만주로 피신한 뒤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했다. 1921년 백낙주·나정규(羅正奎)[3] 등과 함께 대한독립단 산하 혈성대(血誠隊)를 조직하고 봉천성 관내 해룡현(海龍縣)[4]·통화현(通化縣)[5]· 흥경현(興京縣)[6]·무순현(撫順縣)[7] 등지에서 친일단체인 만주보민회 회원들을 숙청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김명봉·조대능(趙大能) 등 동지들과 함께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그해 체포되어 악형을 받았으며, 고문에 대항해서 혀를 끊어 일본 경찰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그는 평양형무소에서 3년의 옥고를 치르고 1924년 12월 30일 만기출옥하였다.#
출옥 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권덕근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