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0 15:37:01

권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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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권용이.jpg
성명 권용이 (權龍伊)
자/호 용구 (龍九) / 송담 (松潭)
출생 1903년 1월 4일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세장리
사망 1972년 3월 18일 (향년 69세)
경상북도 청송군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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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권용이는 1903년 1월 4일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세장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21일 오후 2시경 편항 장터에 모인 천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했다. 이때 경찰재소에서 경찰 2명이 나와서 시위를 중단시키려다 한 경찰이 권총을 발사했다. 그러자 그는 분노한 군중과 함께 주재소 건물을 파괴하고 서류를 파기하면서, 주재소내에 있는 무기를 가지고 나와서 그곳 우물에 버렸다.

그 사이 2명의 경찰은 신덕리(新德里) 방면으로 도망가고, 1명의 일본 경찰은 시위군중에게 잡혀 구타당한 후 독립만세를 같이 외쳤다. 이어서 경찰 사택을 습격·파괴하고 오후 5시 시위군중과 함께 면사무소로 달려가서, 다시 건물을 파괴하고 비품과 서류를 파기했다. 이후 시위는 이튿날 새벽 3시경까지 이어진 후 자진 해산했다. 그 후 그는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1919년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청송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72년 3월 1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권용이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1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