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8 23:09:09

권준희

파일:권준희.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초명 권춘희(權春羲)
자 / 호 계상(啓象) / 우암(友巖)
본관 안동 권씨[1]
출생 1849년 9월 14일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풍산현 가일리
(현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가일마을)[2]
사망 1936년 11월 2일 (향년 87세)
경상북도 안동군
상훈 대통령표창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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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권오돈은 그의 손자이다. 독립유공자 권혁수는 그의 6촌 재종제 권준하(權準夏, 1855 ~ 1919. 12. 15)[3]의 증손자로, 9촌 지간의 삼종증손이 된다.

2. 생애

1849년 9월 14일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풍산현 가일리(현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가일마을)에서 아버지 권찬(權鑽, 1826 ~ 1905. 11. 28)과 어머니 의성 김씨(1822 ~ 1851. 9. 3)[4] 사이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5촌 당숙인 권익(權𫓢, 1821 ~ 1876. 6. 2)에 입양되었다.

그는 1913년 채기중 등이 결성한 풍기광복단에 가입하여 활동했으며, 이어 1915년 7월 경상북도 대구부에서 박상진 등이 조직한 비밀결사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고문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유시만(柳時萬), 족제 권준흥(權準興, 1881 ~ 1939. 4. 6)[5], 족질 권영식(權寧植, 1894 ~ 1930. 3. 6)[6] 등의 단원들과 함께 군자금을 모금하여 박상진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러던 1918년 초 대한광복회의 활동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단원들이 대거 검거되자, 그 또한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어 소위 보안법 위반 및 공갈죄 혐의로 기소되어 공주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그러다가 같은 해 5월 3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및 공갈죄 혐의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면소 판결을 선고받고 불기소처분, 방면되었다.#

이후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36년 11월 2일 사망하였다.

2018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1] 복야공파 박(搏)계 33세 준(準) 항렬.[2] 출생지 419번지에는 현재 수곡고택이 남아 있으며, 국가민속문화재 제17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고택은 권준희의 증조부 권조(權眺)가 조부인 수곡(樹谷) 권보(權䋠)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3] 초명 권태능(權泰能).[4] 김중수(金重壽)의 딸이다.[5] 초명 권태홍(權泰洪). 족보상 20촌 지간이다.[6] 족보상 21촌 지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