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6 04:31:04

대한광복회

1. 개요2. 활동3. 성향4. 강령

1. 개요

大韓光復會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대구부에서 박상진 등이 결성한 독립운동 단체이다.

2. 활동

만주에 군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하여 일제와의 전면전을 치르는 것에 주안을 두었다. 또한 독립군 양성을 위해 군자금 조달 및 무기 구입에 주력했다.

대한광복회의 전신은 1913년 경상북도 풍기군[1]에서 유림인 채기중이 결성한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과 1913년 음력 2월 경상북도 달성군 수성면 대명동 안일암(安逸庵)에서 박상진을 비롯하여 서상일·이시영(李始榮)[2]·홍주일(洪宙一)·이영국(李永局)·윤상태(尹相泰) 등이 결성한 조선국권회복단으로, 1915년 8월 25일 경상북도 대구부 달성정[3] 달성공원에서 이 두 조직이 합쳐지면서 대한광복회로 발전하였다.

본부는 경상남도 울산군 농소면 지당리[4]에 있던 박상진 생가에 있었다. 본회는 조직을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로도 확대하여 군자금을 모금하고, 만주에 군관학교를 설립한 뒤 독립군을 양성하여 국내에 확보한 독립군 기지를 거점으로 적당한 시기에 일본 제국과 전면전을 치러 조선 독립을 쟁취할 것을 계획하였다. 이에 비밀·폭동·암살·명령의 4대 강령을 내걸고 각처에 곡물상을 설치하여 독립군 기지로 확보하는 한편, 군자금 조달, 독립군 기지 건설, 의협 투쟁으로서의 조선총독 처단 계획, 친일 부호 처단 등으로 계획이 추진되었다.

또한 대한광복회는 군자금 모집에 응하지 않는 친일부호 장승원[5]과 박용하를 처단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1918년 주요 인물들이 체포되어 해체되었다.

3. 성향

국권을 회복하고 공화정치를 실현하는 것을 마지막 목표로 두었다. 신민회공화주의를 주창한 것을 시작으로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공화주의 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4. 강령

1. 부호의 의연금 및 일인이 불법 징수하는 세금을 압수하여 무장을 준비한다.
2. 남북 만주에 군관 학교를 세워 독립 전사를 양성한다.
3. 종래의 의병 및 해산 군인과 만주 이주민을 소집하여 훈련한다.
4. 중국·아라사 등 여러 나라에 의뢰하여 무기를 구입한다.
5. 본회의 군사 행동·집회·왕래 등 모든 연락 기관의 본부를 상덕태상회에 두고, 한만(韓滿) 각 요지와 북경·상해 등에 그 지점 또는 여관·광무소(鑛務所) 등을 두어 연락 기관으로 한다.
6. 일인 고관 및 한인 반역자를 수시(隨時)·수처(隨處)에서 처단하는 행형부(行刑部)를 둔다.
7. 무력이 완비되는 대로 일인 섬멸전을 단행하여 최후 목적의 달성을 기한다.


[1]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2]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과는 동명이인이다.[3]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4]울산광역시 북구 송정동 지당마을[5] 장택상의 아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