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 행정구역 변천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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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e2e2e><colcolor=#fff> 부청 소재지 | 대구부 동운정(東雲町) 소재[1] | |||||
상위 행정구역 | 경상북도 | |||||
하위 행정구역 | 정 | |||||
면적 | 116.82km²(1938년) | |||||
인구 | 206,638명(1944년) | |||||
존속기간 | 1910년 10월 1일 ~ 1949년 8월 14일[2] |
대구부청 현재의 대구광역시의회 자리에 있었다. |
본정통의 모습 현재의 서성로 일대로 당시 대구의 주요 도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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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제강점기 당시 설치되었던 부로 현재 대구광역시의 전신이다.2. 역사
1910년 일제에 의해 대구군 지역에 대구부가 설치되었다. 1911년에 중심 시가지 지역에 있던 서상면과 동상면을 합쳐 대구면을 설치하였고 1914년에는 대구면을 제외한 지역을 달성군으로 분리하면서 면적이 크게 줄어들었으나 1938년 달성군과 경산군 일부를 편입해 면적이 늘어났다. 하위 행정구역으로 일본인 거주지역은 정(町), 조선인 거주지역은 동(洞)을 사용하여 구분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는데, 1914년 달성군 분리 당시의 대구부 지역과 1917년 편입한 현 대봉동 일대는 정을 사용했지만 1938년에 편입한 지역은 동을 사용했다.1920년대까지는 조선 제4의 도시였으나 인천부가 경성의 외항 및 공업도시로써 발전하면서 순위가 밀려났지만 인구 밀도는 인천부를 2배 이상 압도했으며 해방 전까지 조선 5대 도시 자리를 유지했다.
특이한 점으로, 일제강점기에 정해진 각 부의 휘장은 대부분 해방 후 교체되었으나, 대구부 휘장은 해방 후에도 오랫동안 교체되지 않고 1996년까지 대구시와 대구직할시의 휘장으로 계속 사용되었다. 그런 이유로, 지금도 대구광역시의 맨홀에서는 이 휘장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