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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임기: 2022년 7월 1일 ~ 2026년 6월 30일(예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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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장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초대 허억 | 제2대 이호석 | 제3대 김종환 | 제4대 허흡 | 제5대 조준영 |
제6대 이종왕 | 제7대 박기서 | 제8대 김종환 | 제9대 강원채 | 제10대 강계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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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34대 권영진 | 제35대 홍준표 | ||||
◀ 일제치하·미군정 경상북도 대구부윤 | |||||
<colcolor=#fff> 대구광역시장 大邱廣域市長 Mayor of Daegu Metropolitan City | |
현직 | <colbgcolor=#fff,#191919>홍준표 / 제35대 (민선 8기) |
취임일 | 2022년 7월 1일 |
정당 | |
관사 |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 래미안웰리스트 |
홈페이지 |
1. 개요
1.1. 대구광역시장 선거 100% 적중 지역
2. 목록2.1. 고려~구한말2.2.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대구부윤2.3. 미군정기 경상북도 대구부윤2.4. 역대 경상북도 대구부윤 및 대구시장2.5. 역대 대구직할시장2.6. 역대 대구광역시장
3. 역대 선거 결과3.1.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3.2.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3.3.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3.4.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3.5.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3.6.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3.7.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3.8.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3.9.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4. 역대 정당별 전적5. 역대 후보별 순위6. 시정 구호7. 여담8. 관련 문서[clearfix]
1. 개요
대구광역시장은 대구광역시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자치단체장이다. 1995년 1월 1일 이전까지는 직할시장이라 불렸고, 1981년 7월 1일 이전까지는 경상북도 대구시장이라 불렸으며, 1949년 8월 15일 이전까지는 경상북도 대구부윤이라 불렸다. 지역 정치 특성상 대부분의 민선 대구광역시장이 현재 국민의힘 계열의 정당 소속이며, 대구광역시장은 대구 FC 구단주를 당연직으로 겸직한다.이전까지는 경상북도지사와 비슷하게 중앙 정계의 거물이나 대권 주자급 인물은 없고 주로 관료 출신들이 대구광역시장을 맡았지만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홍준표가 당선되면서 이 경향이 깨졌다.
경상북도지사가 3연임하는 기조가 강하다면 대구광역시장은 재선이 사실상 한계인 기조가 강하다. 대구광역시 지하철 참사로 인해 초선 임기만에 불출마를 택한 조해녕 전 시장과 차기 정치적 행보를 위해 재선에 도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홍준표 시장 외에는 모두 재선에서 대구광역시장 커리어가 마무리 되었다.
경상북도지사가 TK 원로에 가까운 공무원 출신 정치인들이 도전한다면 대구광역시장은 경상북도지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짬이 낮고 지역 맹주라고 불리기는 부족한 공무원 및 정치인 출신들이 도전[1]하는 경우가 많아 3연임에 강한 견제를 받기 때문에 재선으로 마무리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다.[2]
1.1. 대구광역시장 선거 100% 적중 지역
대구광역시장 선거는 사실 원사이드하게 흘러가는 지역이긴 한데,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딱 한 곳이 적중 지역에서 탈락했다. 무소속으로 재선 남구청장을 지낸 이재용 후보가 무소속으로 나와서 다른 지역에서는 다 졌지만 남구에서 이겼기 때문에 적중 지역에서 빠지게 된 것이다.2. 목록
2.1. 고려~구한말
- 대구현령 (1143~1419)
- 지대구군사 (1419~1466)
- 대구도호부사 (1466~1895)
- 대구군수 (1895~1910)
2.2.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대구부윤
경상북도 대구부윤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일제치하 경상북도 대구부윤 | ||||
초대 다케자키 로쿠지로 | 제2대 나가노 타이사로 | 제3대 마쓰이 신스케 | 제4대 미야다테 데이이치 | 제5대 가미우치 히코사쿠 | |
제6대 야마자키 마사오 | 제7대 구와하라 이치로 | 제8대 이타가키 신지 | 제9대 다가 히데토시 | 제10대 가도와키 마코이치 | |
제11대 후루이치 스스무 | 제12대 스기야마 무이치 | 제13대 야마모토 미노루 | 제14대 우에노 히코하치 | ||
미군정 조선 경상북도 대구부 | |||||
군정부윤 | 민정부윤 | ||||
초대 존 콘치 | 제2대 쥬라-듸 | 제3대 필립스 | 초대 이경희 | 제2대 권영세 | |
미군정 조선 경상북도 대구부윤 | 대한민국 경상북도 대구부윤1 | ||||
제2대 권영세 | 제3대 한보용 | 서리 조용해 | 초대 허억 | ||
경상북도 대구시장·대구직할시장·대구광역시장 ▶ | |||||
<rowcolor=#ffffff> ※ 1 : '49.08.15. 대구부 → 대구시 개칭, 부윤 → 시장 개칭 | }}}}}}}}} |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임기 | 당적[7] | |
<rowcolor=white> 일제치하 조선 경상북도 대구부윤 | ||||
초대 | 다케자키 로쿠지로 (竹崎六次郞) | 1910년 9월 30일 ~ 1918년 2월 26일 | 조선총독부 | |
2대 | 나가노 타이사로 (中野太三郞) | 1918년 2월 26일 ~ 1919년 8월 20일 | ||
3대 | 마쓰이 신스케 (松井信助) | 1919년 8월 20일 ~ 1924년 11월 24일 | ||
4대 | 미야다테 데이이치 (宮館貞一) | 1924년 11월 24일 ~ 1926년 5월 24일 | ||
5대 | 가미우치 히코사쿠 (上內彦策) | 1926년 5월 24일 ~ 1928년 3월 30일 | ||
6대 | 야마자키 마사오 (山崎眞雄) | 1928년 3월 30일 ~ 1929년 11월 28일 | ||
7대 | 구와하라 이치로 (桑原一郞) | 1929년 11월 28일 ~ 1931년 9월 23일 | ||
8대 | 이타가키 타다지 (板垣只二) | 1931년 9월 23일 ~ 1932년 2월 13일 | ||
9대 | 다가 히데토시 (多賀秀敏) | 1932년 2월 13일 ~ 1934년 5월 1일 | ||
10대 | 가도와키 모쿠이치 (門脇黙一) | 1934년 5월 1일 ~ 1936년 | ||
11대 | 후루이치 스스무 (古市進) | 1937년 4월 1일 ~ 1939년 6월 21일 | ||
12대 | 스기야마 무이치 (杉山茂一) | 1939년 7월 1일 ~ 1941년 5월 16일 | ||
13대 | 야마모토 미노루 (山本實) | 1941년 5월 17일 ~ 1943년 | ||
14대 | 우에노 히코하치 (上野彦八) | 1943년 ~ 1945년 8월 16일[근무이탈] |
2.3. 미군정기 경상북도 대구부윤
경상북도 대구부윤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일제치하 경상북도 대구부윤 | ||||
초대 다케자키 로쿠지로 | 제2대 나가노 타이사로 | 제3대 마쓰이 신스케 | 제4대 미야다테 데이이치 | 제5대 가미우치 히코사쿠 | |
제6대 야마자키 마사오 | 제7대 구와하라 이치로 | 제8대 이타가키 신지 | 제9대 다가 히데토시 | 제10대 가도와키 마코이치 | |
제11대 후루이치 스스무 | 제12대 스기야마 무이치 | 제13대 야마모토 미노루 | 제14대 우에노 히코하치 | ||
미군정 조선 경상북도 대구부 | |||||
군정부윤 | 민정부윤 | ||||
초대 존 콘치 | 제2대 쥬라-듸 | 제3대 필립스 | 초대 이경희 | 제2대 권영세 | |
미군정 조선 경상북도 대구부윤 | 대한민국 경상북도 대구부윤1 | ||||
제2대 권영세 | 제3대 한보용 | 서리 조용해 | 초대 허억 | ||
경상북도 대구시장·대구직할시장·대구광역시장 ▶ | |||||
<rowcolor=#ffffff> ※ 1 : '49.08.15. 대구부 → 대구시 개칭, 부윤 → 시장 개칭 | }}}}}}}}} |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임기 | 당적[9] | |
서리 | 권영세 (權寧世) | 1945년 8월 15일 ~ 1945년 10월 10일 | 대구부 부부윤 | |
<rowcolor=white> 미군정 조선 경상북도 대구부 군정부윤 | ||||
초대 | 존 P. 콘치 | 1945년 10월 10일 ~ 1945년 11월 2일 |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 |
2대 | 쥬라-듸 | 1945년 11월 2일 ~ 1946년 4월 28일 | ||
3대 | 필립스 | 1946년 4월 28일 ~ 1947년 3월 17일[10] | ||
<rowcolor=white> 미군정 조선 경상북도 대구부 민정부윤 | ||||
초대 | 이경희 (李慶熙) | 1946년 1월 26일 ~ 1946년 7월 3일 |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 |
2대 | 권영세 (權寧世) | 1946년 7월 5일 ~ 1947년 5월 2일 | ||
3대 | 한보용 (韓普容) | 1947년 5월 3일 ~ 1948년 8월 14일 |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남조선과도정부 |
2.4. 역대 경상북도 대구부윤 및 대구시장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임기 | 당적[11] | 비고 |
서리 | 한보용 (韓普容) | 1948년 8월 15일 ~ 1948년 12월 4일 | - | [12] |
조용해 (趙龍海) | 1948년 12월 4일 ~ 1949년 1월 8일 | 대구부 부부윤 | [13] | |
<rowcolor=white> 경상북도 대구부윤 관선 | ||||
초대 | 허억 (許億) | 1949년 1월 8일 ~ 1949년 8월 14일 | 이승만 정부 | |
<rowcolor=white> 경상북도 대구시장 관선 | ||||
초대 | 허억 (許億) | 1949년 8월 15일 ~ 1951년 9월 10일 | 이승만 정부 | |
2대 | 이호석 (李浩錫) | 1951년 9월 19일 ~ 1952년 5월 5일 | ||
1952년 5월 5일 ~ 1952년 10월 24일 | ||||
3대 | 김종환 (金鍾煥) | 1952년 11월 1일 ~ 1954년 8월 31일 | ||
4대 | 허흡 (許洽) | 1954년 10월 5일 ~ 1958년 10월 5일 | ||
<rowcolor=white> 경상북도 대구시장 민선 | ||||
5대 | 조준영 (趙俊泳) | 1958년 10월 5일 ~ 1959년 5월 29일 | | [14] |
<rowcolor=white> 경상북도 대구시장 관선 | ||||
직무대리 | 이종왕 (李鍾王) | 1959년 5월 29일 ~ 1959년 6월 12일 | 이승만 정부 | |
6대 | 1959년 6월 12일 ~ 1960년 5월 6일 | |||
7대 | 박기서 (朴箕緖) | 1960년 5월 16일 ~ 1960년 10월 31일 | 허정 내각 | |
직무대리 | 이백희 (李白熙) | 1960년 10월 31일 ~ 1960년 12월 28일 | 장면 내각 | |
<rowcolor=white> 경상북도 대구시장 민선 | ||||
8대 | 김종환 (金鍾煥) | 1960년 12월 28일 ~ 1961년 5월 25일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
<rowcolor=white> 경상북도 대구시장 관선 | ||||
9대 | 강원채 (姜元採) | 1961년 5월 25일 ~ 1963년 12월 11일 | 국가재건최고회의 | |
10대 | 강계원 (姜啓元) | 1964년 1월 11일 ~ 1966년 5월 25일 | 박정희 정부 | |
11대 | 태종학 (太鍾鶴) | 1966년 5월 25일 ~ 1969년 10월 2일 | ||
12대 | 김수학 (金壽鶴) | 1969년 10월 2일 ~ 1972년 6월 30일 | ||
13대 | 이규이 (李圭利) | 1972년 6월 30일 ~ 1974년 7월 18일 | ||
14대 | 김무연 (金武然) | 1974년 7월 18일 ~ 1976년 10월 11일 | ||
15대 | 정채진 (鄭埰鎭) | 1976년 10월 22일 ~ 1979년 1월 15일 | ||
16대 | 박창규 (朴昌圭) | 1979년 1월 15일 ~ 1980년 7월 8일 | ||
17대 | 장병구 (蔣炳九) | 1980년 8월 1일 ~ 1981년 6월 30일 | 최규하 정부 |
2.5. 역대 대구직할시장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임기 | 당적[15] | 비고 |
<rowcolor=white> 관선 (임명직) | ||||
18대 | 정채진 (鄭埰鎭) | 1981년 7월 1일 ~ 1982년 5월 2일 | 전두환 정부 | |
19대 | 이상희 (李相熙) | 1982년 5월 3일 ~ 1985년 2월 20일 | ||
20대 | 이상연 (李相淵) | 1985년 2월 21일 ~ 1987년 5월 29일 | ||
21대 | 박배근 (朴培根) | 1987년 5월 30일 ~ 1988년 12월 12일 | ||
22대 | 박성달 (朴成達) | 1988년 12월 13일 ~ 1990년 12월 27일 | 노태우 정부 | |
23대 | 이해봉 (李海鳳) | 1990년 12월 28일 ~ 1992년 4월 20일 | ||
24대 | 한명환 (韓明煥) | 1992년 4월 21일 ~ 1993년 3월 3일 | ||
25대 | 이의익 (李義翊) | 1993년 3월 4일 ~ 1993년 12월 27일 | 김영삼 정부 | |
26대 | 조해녕 (曺海寧) | 1993년 12월 28일 ~ 1995년 3월 31일 |
2.6. 역대 대구광역시장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임기 | 당적[16] | 출신지 | 비고 |
<rowcolor=white> 관선 (임명직) | |||||
27대 | 이종주 (李鍾宙) | 1995년 4월 1일 ~ 1995년 6월 30일 | 김영삼 정부 | 경북 안동 | |
<rowcolor=white> 민선 (선출직) | |||||
28대 | 문희갑 (文熹甲) | 1995년 7월 1일 ~ 1998년 6월 30일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대구 달성 | [17] |
29대 | 1998년 7월 1일 ~ 2002년 6월 30일 | | |||
30대 | 조해녕 (曺海寧) | 2002년 7월 1일 ~ 2006년 6월 30일 | 경북 경산 | ||
31대 | 김범일 (金範鎰) | 2006년 7월 1일 ~ 2010년 6월 30일 | | 경북 예천 | |
32대 | 2010년 7월 1일 ~ 2014년 6월 30일 | [18] | |||
33대 | 권영진 (權泳臻) | 2014년 7월 1일 ~ 2018년 6월 30일 | [[새누리당|]] | 경북 안동 | [19] |
34대 | 2018년 7월 1일 ~ 2022년 6월 30일 | [[자유한국당|]] | [20] | ||
35대 | 홍준표 (洪準杓) | 2022년 7월 1일 ~ 현재 | | 경남 창녕 | [21][22] |
왼쪽부터 김범일, 조해녕, 권영진, 문희갑 전 시장 |
3. 역대 선거 결과
역대 대구광역시장 선거 결과 | ||||||
1995 | 1998 | 2002 | 2006 | 2010 | ||
무소속 | 한나라당 | 한나라당 | ||||
문희갑 | 조해녕 | 김범일 | ||||
2014 | 2018 | 2022 | ||||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 | 국민의힘 | ||||
권영진 | 홍준표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주요 후보 득표율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구분 | 주요 후보 득표율 | ||||
1995년 | 1위: [[무소속(정치)| 무소속 ]] 문희갑 36.79%2위: [[자유민주연합|]] 이의익 22.14% 3위: [[무소속(정치)| 무소속 ]] 이해봉 21.35%4위: [[민주자유당|]] 조해녕 16.87% | |||||
1998년 | 1위: 문희갑 71.98% 2위: [[자유민주연합|]] 이의익 20.66% | |||||
2002년 | 1위: 조해녕 61.18% 2위: [[무소속(정치)| 무소속 ]] 이재용 38.81% | |||||
2006년 | 1위: 김범일 70.15% 2위: [[열린우리당|]] 이재용 21.08% | |||||
2010년 | 1위: 김범일 72.92% 2위: [[민주당(2008년)|]] 이승천 16.86% 3위: [[진보신당|]] 조명래 10.20% | |||||
2014년 | 1위: [[새누리당|]] 권영진 55.95% 2위: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 40.33% | |||||
2018년 | 1위: [[자유한국당|]] 권영진 53.73% 2위: 임대윤 39.75% | |||||
2022년 | 1위: 홍준표 78.75% 2위: 서재헌 17.97% | }}}}}}}}} |
3.1.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구광역시장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조해녕(曺海寧) | 175,749 | 4위 |
[[민주자유당|]] | 16.87% | 낙선 | |
2 | 이의익(李義翊) | 230,668 | 2위 |
[[자유민주연합|]] | 22.14% | 낙선 | |
3 | 문희갑(文熹甲) | 383,272 | 1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36.79% | 당선 | |
4 | 안유호(安有鎬) | 29,617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84% | 낙선 | |
5 | 이해봉(李海鳳) | 222,409 | 3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1.35%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663,614 | 투표율 63.97% |
투표 수 | 1,064,253 | ||
무효표 수 | 22,538 |
3.2.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구광역시장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문희갑(文熹甲) | 570,167 | 1위 |
| 71.98% | 당선 | |
3 | 이의익(李義翊) | 163,653 | 2위 |
[[자유민주연합|]] | 20.66% | 낙선 | |
4 | 유성환(兪成煥) | 58,243 | 3위 |
[[국민신당(1997년)|]] | 7.35%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716,312 | 투표율 46.81% |
투표 수 | 803,363 | ||
무효표 수 | 11,300 |
3.3.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구광역시장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조해녕(曺海寧) | 452,943 | 1위 |
| 61.18% | 당선 | |
3 | 이재용(李在庸) | 287,396 | 2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38.81%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814,278 | 투표율 41.45% |
투표 수 | 751,994 | ||
무효표 수 | 11,655 |
3.4.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구광역시장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재용(李在庸) | 191,131 | 2위 |
[[열린우리당|]] | 21.08% | 낙선 | |
2 | 김범일(金範鎰) | 636,057 | 1위 |
| 70.15% | 당선 | |
4 | 이연재(李演宰) | 35,497 | 3위 |
[[민주노동당|]] | 3.91% | 낙선 | |
5 | 박승국(朴承國) | 8,764 | 5위 |
[[국민중심당|]] | 0.96% | 낙선 | |
6 | 백승홍(白承弘) | 35,232 | 4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3.88%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885,043 | 투표율 48.54% |
투표 수 | 915,060 | ||
무효표 수 | 8,379 |
3.5.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구광역시장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범일(金範鎰) | 633,118 | 1위 |
| 72.92% | 당선 | |
2 | 이승천(李承天) | 146,458 | 2위 |
[[민주당(2008년)|]] | 16.86% | 낙선 | |
7 | 조명래(趙明來) | 88,599 | 3위 |
[[진보신당|]] | 10.2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928,835 | 투표율 45.94% |
투표 수 | 886,035 | ||
무효표 수 | 17,860 |
대구광역시장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김범일 | 이승천 | 격차 |
전체 | 76.4% | 15.3% | 61.1%p |
3.6.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구광역시장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권영진(權泳臻) | 581,175 | 1위 |
[[새누리당|]] | 55.95% | 당선 | |
2 | 김부겸(金富謙) | 418,891 | 2위 |
[[새정치민주연합|]] | 40.33% | 낙선 | |
3 | 송영우(宋映雨) | 10,857 | 5위 |
[[통합진보당|]] | 1.04% | 낙선 | |
4 | 이원준(李源晙) | 12,922 | 4위 |
[[정의당|]] | 1.24% | 낙선 | |
5 | 이정숙(李定淑) | 14,774 | 3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42%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012,579 | 투표율 52.30% |
투표 수 | 1,052,638 | ||
무효표 수 | 14,019 |
대구광역시장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권영진 | 김부겸 | 격차 |
전체 | 55.6% | 41.5% | 14.1%p |
3.7.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구광역시장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임대윤(林大潤) | 458,112 | 2위 |
| 39.75% | 낙선 | |
2 | 권영진(權泳臻) | 619,165 | 1위 |
[[자유한국당|]] | 53.73% | 당선 | |
3 | 김형기(金炯基) | 74,955 | 3위 |
[[바른미래당|]] | 6.5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047,286 | 투표율 57.26% |
투표 수 | 1,172,279 | ||
무효표 수 | 20,047 |
대구광역시장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임대윤 | 권영진 | 격차 |
전체 | 41.4% | 52.2% | 10.8%p |
사실 지난 선거에서 김부겸이 40.33%를 얻으며 선전했던 건 당시 박근혜와 찍은 사진으로 어필을 했기 때문도 있었다. 동시에, 당시 김부겸 후보는 비노 비문 계열이라 대구광역시·경상북도에 크게 비토 정서도 없었다는 점도 있었다. 반면 임대윤은 아랫동네와 달리 거부감이 좀 컸고, 게다가 상대는 인지도가 시정 평가에서 40% 후반을 기록하는 권영진이였다. 그런데 이런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특히 2010년대 들어 신도시가 만들어지고 있는 달성군에서는 42%의 득표율을 받아 권영진 후보와 불과 9% 차이의 접전을 벌였다. 이를 제외하고도 달서구의 41%, 수성구의 40%도 주목을 받았으며, 읍면동 단위에서는 달성군 유가읍, 동구 안심3·4동 등 일부 지역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3.8.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구광역시장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서재헌(徐載憲) | 156,429 | 2위 |
| 17.97% | 낙선 | |
2 | 홍준표(洪準杓) | 685,159 | 1위 |
| 78.75% | 당선 | |
3 | 한민정(韓玟晶) | 20,904 | 3위 |
[[정의당|]] | 2.40% | 낙선 | |
4 | 신원호(申原昈) | 7,542 | 4위 |
[[기본소득당|]] | 0.86%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044,579 | 투표율 43.19% |
투표 수 | 883,141 | ||
무효표 수 | 13,107 |
대구광역시장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서재헌 | 홍준표 | 격차 |
전체 | 18.4% | 79.4% | 61.0%p |
한편 더불어민주당에선 서재헌을 출마시켰지만, 문제는 서재헌 후보는 이전에 내보낸 김부겸, 임대윤에 비해 중량감이 떨어졌기에[25] TK의 반더불어민주당 정서 + 허니문 효과 + 인지도와 중량감 격차로 인해 승패는 결정이 났었다. 결국 서재헌 후보는 역대 민주당계 정당 후보 중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이승천(16.86%) 후보 다음으로 낮은 득표율인 17.97%에 그쳤는데, 이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광역자치단체장에 출마한 낙선자 후보 중 유일하게 10%대 득표율을 기록하며 선거비 전액보전(15%)을 넘기는 것에 만족해야했다.
지역별로 보면 모든 지역에서 홍준표 후보가 기본적으로 70%를 가뿐히 넘었으며, 특히 노년층 인구가 많은 서구와 남구에선 무려 80%를 넘는 기염을 토했다.
같은 TK 광역자치단체장으로 출마한 임미애 경상북도지사 후보 20%대를 받는데 그쳐서 낙선했지만 경상북도 읍면동 중 그나마도 유일하게 예천군 호명면에서라도 62표 차로 신승해서 유종의 미라도 거뒀지 서재헌은 아예 대구광역시 8개구군 전 행정동에서 패배함로써 송영길, 변성완과 같이 더불어민주당 후보 중 모든 행정동에서 전패한 후보가 되었다.
3.9.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구광역시장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0 | ||
| 00.00% | ||
2 | 0 | ||
| 00.00% | ||
계 | 선거인 수 | 투표율 00.00% | |
투표 수 | |||
무효표 수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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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장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eee,#353535> 후보 | ○○○ | ○○○ | 격차 |
전체 | 00.00% | 00.00% | 00.00%p |
4. 역대 정당별 전적
민주당계 정당 | 보수 정당 | 제3후보[26] | |
1회 | - | 조해녕 | 문희갑[27] |
[[민주자유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
낙선 16.87% | 당선 36.79% | ||
2회 | 이의익[28] | 문희갑 | 유성환[29] |
[[자유민주연합|]] | | [[국민신당(1997년)|]] | |
낙선 20.66% | 당선 71.98% | 낙선 7.35% | |
3회 | - | 조해녕 | 이재용[30] |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
당선 61.18% | 낙선 38.81% | ||
4회 | 이재용 | 김범일 | 이연재[31] |
[[열린우리당|]] | | [[민주노동당|]] | |
낙선 21.08% | 당선 70.15% | 낙선 3.91% | |
5회 | 이승천 | 김범일 | 조명래[32] |
[[민주당(2008년)|]] | | [[진보신당|]] | |
낙선 16.86% | 당선 72.92% | 낙선 10.20% | |
6회 | 김부겸 | 권영진 | - |
[[새정치민주연합|]] | [[새누리당|]] | ||
낙선 40.33% | 당선 55.95% | ||
7회 | 임대윤 | 권영진 | 김형기[33] |
| [[자유한국당|]] | [[바른미래당|]] | |
낙선 39.75% | 당선 53.73% | 낙선 6.50% | |
8회 | 서재헌 | 홍준표 | - |
| | ||
낙선 17.97% | 당선 78.75% | ||
9회 | ○○○ | ○○○ | - |
| | ||
- | - |
5. 역대 후보별 순위
- 사퇴, 사망, 등록 무효 후보 제외.
<rowcolor=#000,#fff>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1회 | 문희갑 | 이의익 | 이해봉 | 조해녕 | 안유호 |
2회 | 문희갑 | 이의익 | 유성환 | ||
3회 | 조해녕 | 이재용 | |||
4회 | 김범일 | 이재용 | 이연재 | 백승홍 | 박승국 |
5회 | 김범일 | 이승천 | 조명래 | ||
6회 | 권영진 | 김부겸 | 이정숙 | 이원준 | 송영우 |
7회 | 권영진 | 임대윤 | 김형기 | ||
8회 | 홍준표 | 서재헌 | 한민정 | 신원호 |
6. 시정 구호
시장 | 시정 구호 |
김수학 | <colcolor=#000,#fff> 뭉치자 백만 가꾸자 새 대구 |
김무연 | 창의로 개발 총화로 전진 |
정채진 | 밝고 푸르고 활기찬 도시 |
박창규 | 발전시정의 구현 |
장병구 | 밝은 새 대구 복지 대구 건설 |
정채진 | 활기찬 새대구 긍지높은 시민 |
이상희 | 밝은거리 푸른도시 복지대구 건설 |
이상연 | 긍지높은 시민 건강한 도시 |
박배근 | 강한 도시 신뢰받는 시정 |
박성달 | 참여하는 시민 희망찬 도시 |
이해봉 | 새질서 새생활 새대구 |
한명환 | 화합하는 시민 봉사하는 시정 |
이종주 | 대구는 우리모두의 자랑입니다 |
문희갑 (민선 1·2기) | 화합하는 시민 거듭나는 대구 |
아름다운 도시 품위있는 대구 | |
조해녕 (민선 3기) | 마음을 하나로 대구를 세계로 |
김범일 (민선 4·5기) | 희망의 도시 일류 대구 |
권영진 (민선 6·7기) | 오로지 시민행복 반드시 창조대구 |
행복한 시민 자랑스러운 대구 | |
홍준표 (민선 8기) | 자유와 활력이 넘치는 파워풀 대구 |
7. 여담
- 1995년 지방자치제 출범 이후부터 현재까지 임기 중 사퇴하거나 궐위된 시장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광역자치단체장[34] 중 하나다.
- 권영진 전 시장을 포함한[35][36] 역대 민선 대구광역시장들은 퇴임 후에도 모두 대구광역시에서 살고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라고 들릴 지 모르겠지만, 다른 광역자치단체의 경우 광역자치단체장을 지낸 뒤 수도권으로 올라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선 대구광역시장을 지냈던 문희갑, 조해녕, 김범일 모두 은퇴 후에도 대구광역시에서 살고 있다. 관선 대구광역시장을 지낸 이상희, 이의익, 이종주 전 시장 역시도 대구광역시에서 살고 있다.[37]
- 김범일 전 시장까지 민선 대구광역시장은 모두 경북고등학교, 행정고시 합격 관료 출신이었는데, 권영진 전 시장은 비 경북고등학교, 비 관료 출신이다. 향후에는 고교 평준화의 영향으로 비 경북고등학교 출신 시장들이 더 나올 가능성이 높다. 현 홍준표 시장도 비 경북고등학교 출신이다.
- 역대 민선 대구광역시장은 전원이 인서울 대학교 출신으로, 문희갑 전 시장은 국민대학교, 조해녕, 김범일 전 시장은 서울대학교, 권영진, 홍준표 시장은 고려대학교를 졸업했다. 반면 역대 민선 경상북도지사의 경우 이의근, 김관용 전 지사가 영남대학교, 이철우 지사가 경북대학교 출신으로서 전원이 대구시 지역대학을 졸업했다.
- 대구광역시장이 대구 FC의 구단주를 겸임한다. 대구 FC가 창단될 때 부터 시민 구단이었기 때문이다.
8. 관련 문서
[1] 이러한 경향은 대권 주자급 거물 정치인 홍준표가 대구광역시장에 당선되면서 처음으로 깨졌다. 그러나 지속 여부는 차기 지방선거를 지켜봐야할 듯하다.[2] 대구광역시장과 유사한 광주광역시장도 같은 이유로 3선 시장이 없다. 게다가 광주광역시장의 경우 당내 경쟁이 더 심한 탓에 재선 시장도 박광태 한 명밖에 없다. 나머지 광주광역시장들은 보통 초선으로 커리어가 끝나는 편이며 광주광역시장직을 마치면 사실상 정계 은퇴 수순을 밟게 된다.[3] 다만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수성구 전체는 새누리당 권영진 후보가 이겼지만, 수성구 갑 지역으로 한정하면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 후보가 신승하였다.[4] 여기도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달서구 전체는 새누리당 권영진이 압승하였으나, 월성1동은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이 승리하였다.[5] 도호부사는 원래 종3품 관직이지만 대구도호부사는 경상감사가 겸직했으므로 종2품이었다.[6] 1895년 23부제로 등장한 대구부윤은 이후 경상북도장관으로 이어진다.[7] 선거 당시 당적.[근무이탈] [9] 선거 당시 당적.[10] 민정이양[11] 선거 당시 당적.[12] 1948년 12월 4일 사임. 情誼는 感謝하나 運動할 必要없다, 留任運動에 對하여 韓普容씨談話.[13] '48.02.21. 대구부 부부윤에 임명. 道幹部人事內定, 人事處長에 金鍾구氏· 副府尹에 趙龍海氏·厚生局長李章熙氏.[14] 지방자치법 부칙 개정으로 인한 민선을 당선되었으나, 당선 후 여당우위의 의회 때문에 시정은 마비가 되었고, 이를 포함한 여러 사유로 시 의회는 시장을 공격하였다. 그 사이 또 개정된 지방자치법(시, 읍, 면장은 관선이나, 각 의회에서 불신임 안 제출 가능)으로 인해 불신임 안이 제출 및 통과되어 가결되어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15] 선거 당시 당적.[16] 선거 당시 당적.[17] 1997.12.3.
복당.[18] 2012.2.13.
[[새누리당|]]으로 당명 변경.[19] 2017.2.13.
[[자유한국당|]]으로 당명 변경.[20] 2020.2.17. 으로 신설 합당.
2020.9.2.
으로 당명 변경.[21] 최초의 비TK 출신 민선 대구광역시장. 다만 창녕군은 경상남도인데도 대구권에 속할 정도로 창녕군을 비롯한 경상남도 서북부 지역은 대구광역시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이기도 하다. 또 본인 역시 초중고 학창 시절을 대구광역시에서 보냈기 때문에 대구광역시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있다.[22] 헌정사상 최초의 복수(경상남도지사, 대구광역시장) 광역자치단체장.[23] 실제 경선 득표율 기준. 페널티 10% 적용시 49.45%.[24] 종전 최다 득표율은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김범일 후보가 받은 72.92%이다.[25] 김부겸은 적어도 군포시에서 3선 의원을 지냈을 뿐더러, 원래 한나라당 출신이라 더불어민주당 인사 중에선 상대적으로 보수적인데다 수성구 갑에서 40%를 득표하는 등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임대윤 후보도 한나라당 출신에 대구광역시 동구청장 재선에 성공한 이력이 있고, 민주당 소속으로도 4번 출마했던 사람이다. 반면에 서재헌 후보는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동구청장 출마)에서 2차례 출마하여 2연속 낙선한데다가 정치 외 커리어도 상대적으로 빈약한 편이라 사실상 대구광역시의원 내지 구청장 후보 수준의 이력에 가깝다. 하지만 김부겸 전 총리가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정계를 은퇴하여 나갈 사람이 없었다.[26] 3% 이상 득표자만 기재.[27] 보수 성향 후보.[28] 보수 정당 후보, 새정치국민회의와 단일화.[29] 보수 정당·민주당계 정당 후보.[30] 민주당계 성향 후보.[31] 진보 정당 후보.[32] 진보 정당 후보.[33] 제3지대 정당 후보.[34] 인천광역시, 광주광역시, 충청북도, 경상북도, 전북특별자치도. 원래는 대전광역시도 해당되었지만 권선택 전 대전광역시장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2017년 11월 14일 징역 10년, 벌금 5억원 선고로 대전시장직을 상실해 탈락했다. 충청남도는 도지사 재보궐선거가 없었지만 이쪽은 민선 도지사들이 대부분 1년 미만의 잔여 임기를 놔두고 모조리 사퇴했다. 경기도 역시 재보궐선거가 없었으나 여기도 잔여 임기 1년 미만을 놔두고 대통령 선거 출마로 사퇴한 적이 2번 있었다. 울산광역시는 1997년(여기도 재보궐선거가 없었으나, 임기 종료 전 사퇴한 사례가 1번 있었다.), 세종특별자치시장은 2012년 출범했으므로 제외.[35] 권영진 전 대구광역시장이 대구광역시에서는 관사(그것도 김범일 전 시장 시절 폐지했던 관사를 부활시켰다.) 생활을 해서 말이 나왔다. 게다가 중학교까지 고향인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졸업했으며, 대구광역시에서는 고등학교만 졸업했다. 이후 대구광역시장 퇴임 후에도 가족과 함께 대구광역시에서 계속 살겠다는 인터뷰를 했다. 대구광역시장 퇴임 후 잠시 서울에서 생활하다 계명대학교 특임교수로 임명되면서 다시 대구광역시로 내려왔으며, 22대 총선에서 대구 달서구 병 지역구에 당선되면서 성당 래미안 e편한세상아파트로 이사해 거주 중이다.[36] 다만 권영진 전 시장은 대구광역시장 이전에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과 서울특별시 노원구 을에서 국회의원을 지내는 등 모든 정치적 직위를 서울특별시에서 역임하였다.[37] 경상북도지사와 대구광역시장을 모두 지낸 김무연 전 경북지사 역시도 대구광역시·경상북도에서 평생 공직 생활을 했고 대구광역시에서 여생을 보냈다.
복당.[18] 2012.2.13.
[[새누리당|]]으로 당명 변경.[19] 2017.2.13.
[[자유한국당|]]으로 당명 변경.[20] 2020.2.17. 으로 신설 합당.
2020.9.2.
으로 당명 변경.[21] 최초의 비TK 출신 민선 대구광역시장. 다만 창녕군은 경상남도인데도 대구권에 속할 정도로 창녕군을 비롯한 경상남도 서북부 지역은 대구광역시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이기도 하다. 또 본인 역시 초중고 학창 시절을 대구광역시에서 보냈기 때문에 대구광역시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있다.[22] 헌정사상 최초의 복수(경상남도지사, 대구광역시장) 광역자치단체장.[23] 실제 경선 득표율 기준. 페널티 10% 적용시 49.45%.[24] 종전 최다 득표율은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김범일 후보가 받은 72.92%이다.[25] 김부겸은 적어도 군포시에서 3선 의원을 지냈을 뿐더러, 원래 한나라당 출신이라 더불어민주당 인사 중에선 상대적으로 보수적인데다 수성구 갑에서 40%를 득표하는 등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임대윤 후보도 한나라당 출신에 대구광역시 동구청장 재선에 성공한 이력이 있고, 민주당 소속으로도 4번 출마했던 사람이다. 반면에 서재헌 후보는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동구청장 출마)에서 2차례 출마하여 2연속 낙선한데다가 정치 외 커리어도 상대적으로 빈약한 편이라 사실상 대구광역시의원 내지 구청장 후보 수준의 이력에 가깝다. 하지만 김부겸 전 총리가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정계를 은퇴하여 나갈 사람이 없었다.[26] 3% 이상 득표자만 기재.[27] 보수 성향 후보.[28] 보수 정당 후보, 새정치국민회의와 단일화.[29] 보수 정당·민주당계 정당 후보.[30] 민주당계 성향 후보.[31] 진보 정당 후보.[32] 진보 정당 후보.[33] 제3지대 정당 후보.[34] 인천광역시, 광주광역시, 충청북도, 경상북도, 전북특별자치도. 원래는 대전광역시도 해당되었지만 권선택 전 대전광역시장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2017년 11월 14일 징역 10년, 벌금 5억원 선고로 대전시장직을 상실해 탈락했다. 충청남도는 도지사 재보궐선거가 없었지만 이쪽은 민선 도지사들이 대부분 1년 미만의 잔여 임기를 놔두고 모조리 사퇴했다. 경기도 역시 재보궐선거가 없었으나 여기도 잔여 임기 1년 미만을 놔두고 대통령 선거 출마로 사퇴한 적이 2번 있었다. 울산광역시는 1997년(여기도 재보궐선거가 없었으나, 임기 종료 전 사퇴한 사례가 1번 있었다.), 세종특별자치시장은 2012년 출범했으므로 제외.[35] 권영진 전 대구광역시장이 대구광역시에서는 관사(그것도 김범일 전 시장 시절 폐지했던 관사를 부활시켰다.) 생활을 해서 말이 나왔다. 게다가 중학교까지 고향인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졸업했으며, 대구광역시에서는 고등학교만 졸업했다. 이후 대구광역시장 퇴임 후에도 가족과 함께 대구광역시에서 계속 살겠다는 인터뷰를 했다. 대구광역시장 퇴임 후 잠시 서울에서 생활하다 계명대학교 특임교수로 임명되면서 다시 대구광역시로 내려왔으며, 22대 총선에서 대구 달서구 병 지역구에 당선되면서 성당 래미안 e편한세상아파트로 이사해 거주 중이다.[36] 다만 권영진 전 시장은 대구광역시장 이전에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과 서울특별시 노원구 을에서 국회의원을 지내는 등 모든 정치적 직위를 서울특별시에서 역임하였다.[37] 경상북도지사와 대구광역시장을 모두 지낸 김무연 전 경북지사 역시도 대구광역시·경상북도에서 평생 공직 생활을 했고 대구광역시에서 여생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