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3 14:05:59

금문의 변

에도 막부 말기 주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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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400> 1716년 ~ 1735년 교호 개혁
1787년 ~ 1793년 간세이 개혁
1830년 ~ 1843년 텐보 개혁
1853년 7월 8일 쿠로후네 사건
1854년 3월 31일 미일화친조약 체결
1858년 7월 29일 미일수호통상조약 체결
1858년 ~ 1859년 안세이 대옥
1860년 3월 24일 사쿠라다 문 밖의 변
1862년 2월 13일 사카시타 문 밖의 변 (坂下門外の變)
1862년 5월 21일 사쓰마 번 지사 숙청 사건 (薩摩藩志士肅淸事件)
1862년 8월 21일 나마무기 사건
1863년 8월 15일 ~ 1863년 8월 17일 사쓰에이 전쟁
1863년 9월 30일 8월 18일의 정변 (八月十八日の政變)
1863년 ~ 1864년 시모노세키 전쟁
1864년 7월 8일 이케다야 사건
1864년 8월 20일 금문의 변
1864년 8월 24일 ~ 1865년 1월 24일 제1차 조슈 정벌
1866년 3월 7일 삿초 동맹
1866년 7월 18일 ~ 1866년 10월 8일 제2차 조슈 정벌
1867년 11월 9일 대정봉환
1868년 1월 3일 왕정복고의 대호령
1868년 1월 27일 ~ 1869년 6월 27일 보신 전쟁 }}}}}}}}}
금문의 변
禁門の変
파일:禁門の変MAP-1024x1024.gif
일시
1864년 8월 20일 (겐지 원년 7월 19일)
장소
일본 교토 시내, 교토어소 주변
원인
8.18 정변, 이케다야 사건
교전 세력
파일:도쿠가와 가몬.svg 에도 막부 파일:모우리 가몬.svg 조슈 번
파일:도쿠가와 가몬.svg 에도 막부
파일:도쿠가와 가몬.svg 아이즈 번
파일:사츠마 시마즈 가문 문장.svg 사쓰마 번
파일:도쿠가와 가몬.svg 구와나 번
파일:도쿠가와 가몬.svg 오와리 번
파일:도쿠가와 가몬.svg 미토 번
파일:도쿠가와 가몬.svg 기슈 번
파일:도쿠가와 가몬.svg 후쿠이 번
파일:이이 가몬.svg 히코네 번
파일:야마우치 가몬.svg 도사 번
파일:도다 가몬.svg 구마모토 번
파일:토도 가몬.svg 쓰 번
파일:신센구미 깃발.svg 신선조
파일:도쿠가와 가몬.svg 교토 견회조
파일:모우리 가몬.svg 조슈 번
탈번 낭인들
지휘관[1]
파일:도쿠가와 가몬.svg 도쿠가와 요시노부
파일:도쿠가와 가몬.svg 마츠다이라 카타모리
파일:사츠마 시마즈 가문 문장.svg 사이고 다카모리
파일:도다 가몬.svg 오하라 텟신
파일:신센구미 깃발.svg 곤도 이사미
파일:모우리 가몬.svg 후쿠하라 에치고
파일:모우리 가몬.svg 쿠사카 겐즈이
파일:모우리 가몬.svg 키지마 마타베†
파일:모우리 가몬.svg 쿠니시 시나노
파일:모우리 가몬.svg 마스다 우에몬노스케
파일:토모에 가몬.svg 마키 이즈미
병력
약 50,000명 약 3,000명
피해
60여 명 전사 400여 명 전사
결과
막부 측의 승리, 조슈 번의 철수
영향
조정의 조슈 번 조적 선언 및 조슈 정벌 칙허 하달

1. 개요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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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금문의 변(禁門の変). 하마구리어문의 변(蛤御門の変)이라고도 불린다. 8.18 정변으로 교토에서 쫓겨난 조슈가 하마구리 문 전투를 시작으로 교토에서 일으킨 반란. 처음엔 조슈가 우세를 점하는 듯 보였으나, 사츠마아이즈가 교토의 황궁을 방어하는데 성공하면서 이내 패배하게 된다. 이는 제1차 조슈 정벌의 원인이 된다.

2. 상세

고메이 천황이 양이 토벌의 명령을 내리면서, 존황양이 사상이 일본 내에 퍼지게 된다. 그러면서 존황파와 양이파의 세력도 불어나는데, 그 중에는 사츠마와 조슈가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조슈는 시모노세키 전쟁과 8.18 정변, 그리고 뒤따른 이케다야 사건까지 겹치면서 권력의 중심에서 완전히 밀려난 상태였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정변을 일으켜 쇼군의 권력을 천황에게 되돌리려는 계획을 세운다.[2]

조슈번은 1864년 8월 20일 교토의 하마구리 문을 공격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막부군을 상대로도 우위를 점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이내 사츠마와 아이즈가 연합하여 교토의 황궁을 성공적으로 방어하면서 수세에 몰리기 시작한다. 이 때 조슈가 퇴각하는데 시간을 벌기 위하여 교토에 불을 질렀는데,[3] 이 불이 번지면서 타카츠카사 가[4]의 저택이 불타기도 한다.

반란은 진압되었고 조슈는 교토에서 완전히 퇴출된다. 그러면서 천황의 국사어용괘(国事御用掛)[5]였던 나카야마 타다야스[6]가 책임을 지고 교토에서 쫓겨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막부는 이 일을 계기로 제1차 조슈 정벌을 계획하게 된다.


[1] †표는 전사, ‡표는 처형, +표는 병사.[2] 그러나 천황에게 권력을 되돌리는 것보다도, 천황을 이용하여 다른 파벌에 대하여 정치적인 우위를 점하려는 목적이 컸다고 볼 수 있다.[3] 퇴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투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질렀다는 설도 있다.[4] 오섭가 중 하나인 공가.[5] 막부 말기에 국사를 논의하기 위하여 설치된 관직[6] 고메이 천황의 첩이자 메이지 천황의 어머니 나카야마 요시코의 아버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