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0-18 11:03:20

김국훈



1. 개요2. 생애3. 참고문헌

1. 개요

북한의 정치인, 외교관.

2. 생애

1922년 3월 19일 함경북도 길주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방 전에 일본으로 유학하여 주오대학을 다녔으며 좌익 학생써클에 가담하였다.

해방 이후 귀국, 1958년 12월 조선로동당 중앙당학교 교장에 임명되었으며 1961년 5월 조평통 중앙위원에 선출되었다. 1961년 9월, 4차 당대회에서 중앙검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962년 10월, 김책공업대학 학장에 임명되었다. 1962년 11월, 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는 한편 법제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64년 1월, 조선평화옹호민족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67년 11월, 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및 법제위원에 재선되었다. 1969년 6월, 중앙당학교 교장에 다시 임명되었다. 1970년 11월, 5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했으며 1971년 1월 당중앙위원회 부장에 임명되었다. 1972년 3월, 조선중앙방송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1972년 8월, 조선의회그루빠 서기장에 임명되었다. 1972년 12월, 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1973년 2월 쿠바 대사로 부임하였으며 가이아나 대사를 겸하였다. 1976년 9월, 최용건 장의위원을 지냈다. 1976년 6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도 선출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1977년 1월, 직총 위원장을 지냈으며 1977년 4월, 조선-리비아 친선협회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77년 8월, 리장수의 뒤를 이어 동독 대사로 부임하였고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재선되었다. 1982년 2월, 7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며 1983년 9월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에 임명되었다. 1986년 11월, 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1990년 4월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나 은퇴단계로 접어들었는지 1990년 5월, 인민경제대학 총장으로 물러났다.

1990년 6월, 조선-아시아-아프리카 단결위원회 위원장, 1991년 7월, 북일 우호친선협회 부회장, 1992년 6월 북한-짐바브웨 친선협회 위원을 지냈으며 1993년 12월 최고인민회의 9기 6차 회의에서 법제위원으로 보선되었다.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 1996년 2월, 리승기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7년 3월에 북한-불가리아 의원친선협회 회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조용히 지내다가 2001년 11월 19일에 사망했다. 따로 부고 발표 등은 없었으나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인민경제대학 총장 직함으로 안장되었다.

3. 참고문헌

  • 통일부 정보분석국, 2000 북한 주요 인물 자료집(서울: 통일부,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