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7-23 01:31:43

김덕목


파일:독립운동김덕목.jpg
<colbgcolor=#0047a0> 본관 의성 김씨
출생 1913년 5월 10일
평안남도 용강군 신정면 구룡동[1]
(현 평안남도 대안군 오신리)
사망 1977년 7월 2일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직업 독립운동가, 군인
학력 인성학교 (졸업)
상해 육청중학 (졸업)
중산대학 법학원 (경제학 / 학사)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경력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참모

1. 개요2. 생애3.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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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2. 생애

김덕목은 1913년 5월 10일 평안남도 용강군 신정면 구룡동(현 대안군 오신리)에서 독립유공자 김붕준·노영재 부부 사이의 1남 2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아버지를 따라 가족 전체가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운영하던 인성학교(仁成學校)와 상해 육청중학(育靑中學)을 졸업하였다.

1931년 흥사단에 가입하여 단원으로서 한·중 우호 증진 및 항일의식 고취를 위해 활동하던 중, 윤봉길훙커우 공원 의거로 독립운동가 일제 검거에 나선 일본 경찰에 의해 1932년 4월 상하이 프랑스조계에서 체포되었다가 그해 5월 14일 혐의점을 찾지 못해 가출옥하였다. 그 후 1933년 9월 중산대학 법학원 경제학과에 입학하였고, 1934년 2월 애국비밀단체인 동방구락부 간부로 중국 학생항일구국회 간부에 선출되었으며, 이후 항일투쟁의 수단으로 대적선전 및 장병위문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1937년 7월 루거우차오 사건을 계기로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중산대학 학생전시복무단을 조직하여 항일의식 고취 및 대적선전, 장병위문 등의 활동을 하였으며, 보다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위해 1939년 3월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에 입학하였고, 군사훈련을 수료한 뒤 중국군에 배속되어 항일전에 참전하였다. 1940년 초에는 난닝 전투에 참전하였고, 같은 해 5월 중국 군사위원회 군령부 첩보학교에 입학하였다. 졸업 후에는 중국군 상위(上尉)에 올라 적정 수집, 일본군에 대한 정보수집 및 파괴활동, 연합군의 중국해안 상륙을 위한 특수공작 수행에 전념하는 한편,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참모로서 활약하였다.

8.15 광복 후 1945년 12월 중국군사위원회로부터 항전기념장을 수여받았다.

196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수여되었으며, 1977년에는 건국포장이 수여되었다. 1977년 7월 2일 별세하였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3. 참고 자료


[1] 의성 김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