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17:51

김동식(1883)

성명 김동식(金東植)
본관 경주 김씨
생몰 1883년 9월 30일 ~ 1942년 5월 3일
출생지 평안남도 중화군 풍동면 노동리[1]
사망지 평안남도 중화군
위패 국립서울현충원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김동식은 1883년 9월 30일 평안남도 중화군 풍동면 노동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천도교 신자로, 1919년 3월 1일 천도교 중화교구의 전도사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받아가지고 만세운동계획을 세웠다. 3월 2일 상원교구 앞에서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수백 명의 군중을 모아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선창한 후, 경찰주재소로 행진해 주재소 철거를 요구했다. 이에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제지하려 하자, 그는 주재소 습격을 지휘하여 경찰을 주재소 안에다 가두고 총기와 탄약을 빼앗았으며, 마침 순찰차 그곳에 와 있던 중화경찰서장을 포박했다.

이러한 사태를 일본인 우편소장으로부터 연락받은 평양경무부는 장교와 보병 12명, 경찰 2명을 현지에 급파했다. 이에 군중은 그들이 탈취했던 총기와 탄약을 도로 빼앗겼고 39명이 검거되었다. 이때 김동식도 체포되었고, 1919년 7월 31일 고등법원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중화군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42년 5월 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김동식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9년에 그를 기리는 위패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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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주 김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