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 경주 김씨 |
출생 | 1924년 12월 1일 |
경상북도 달성군 현풍면 부동 (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부리)[1] | |
사망 | 1969년 8월 4일 |
서울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103 |
상훈 | 대통령 표창[2],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3] |
1. 개요
1. 개요
김말도는 1924년 12월 1일 경상북도 달성군 현풍면 부동(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부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 요자(與謝)군의 시마무라(島村)토공 회사에 노동자로 취직하였다.시마무라 토공에서 근무하던 1941년 6월 경상북도 칠곡군 출신으로 교토 미야즈(宮津)중학교를 졸업한 전경원(全京元)을 만나 동지를 규합하였으며, 한국인의 참된 자유와 행복의 쟁취를 이루려면 조국이 독립하는 길밖에 없다고 믿고 독립운동에 몸을 바칠 것을 결의하였다. 이들은 그해 9월부터 경상남도 통영군 출신의 김석용(金碩用)·경상북도 칠곡군 출신의 이상문(李相文)등 수명의 동지를 확보하고 요자(與謝)군 소재 미륵신사 경내에서 수 차례 회합하여 상호 민족적 열의를 피력하여 민족정신을 고취하였다. 그리고 민족차별 철폐, 징병제 반대, 항공병에 자원입대하여 일본국 기지 폭격, 일본 경찰에 들어가 대대적인 독립운동 전개 등을 목표로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1944년 6월 일제 경찰의 토공 기숙사 일제 수색으로 전경원의 일기장이 발견됨으로써 동지들이 모두 체포되었으며, 그해 11월 10일 교토지방재판소 검사국에 송치되었으나, 장기간의 미결 끝에 1945년 8.15 광복을 맞았고, 그 직후 9월 맥아더사령부의 석방명령에 따라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형을 받고 출옥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여생을 보내다가 1969년 8월 4일 별세하였다.
198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