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8 15:33:34

김윤상(무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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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일생3. 용술관4. 여담

1. 개요

金潤相
1934 – 2021 (87세)

합기도 3대 도주, 전 용술관 총재. # 최용술 1대 도주의 직제자이다.

2. 일생

처음 합기도와 연을 맺은 것은 의외라면 의외로 극장에서였는데, 당시엔 영화 시작 전 대한늬우스를 방영하였는데 그때 나온 합기도 영상이 계기가 되어 무력(武歷)이 시작됐다고 한다. 그리고 본인이 2011년 인터뷰한 말에 따르면 1973년 4월, 서대문에서 통합대회를 할 때 스승 최용술을 처음 봤다고 한다.
"그때까지 지한재 선생이 최고인줄만 알고 있었는데 선생님을 보고 깜짝 놀랐죠. 선생님을 뵙고 나서 '이왕 배울 거 선생님한테 가야겠다' 마음먹었어요. 나중에 (협회에) 선생님 주소를 물으니 (모른다느니) 이상한 소리를 해요. 선생님 돌아가신지 2년 됐다는 겁니다. 선생님 뵌 지 몇 달 안 됐는데 돌아가신지 2년이라니 얘기가 틀리잖아요. 그래서 내가 '여보쇼, 왜 사람을 그렇게 말하시오. 들어가서 사진 보시오. 선생님하고 찍은 단체 사진에 나도 있을 거요.' 그랬죠. 주소도 모르고 무조건 보따리 싸서 대구로 내려갔어요. 그렇게 선생님을 찾아서 (수련)했어요. 협회에서는 선생님(의 존재)을 속이고 있더라고. 멀쩡히 살아 계신 분을 돌아가셨다고.. 가서 보니까 선생님이 도복 입고 운동을 가르치고 있는데. 인간적으로 도리가 아니죠. 오늘날 돌아보면 한 50년 흘렀는데, 물론 그분들이 한국합기도를 발전시킨 공로는 인정합니다만, 하여간 그때부터 (협회와 관계를) 딱 끊어버렸습니다."

후일 합기도에 대한 한계를 느끼던 중[1] 상기한 최용술 도주의 시연을 눈 앞에서 목격하고 충격을 받아, 직접 배워야 겠다는 결심을 하였다고 한다. 이후 여차저차 고생 끝에[2] 최용술을 만나 배울 기회가 생겼으며, 첫 수련 때 사범급이었던 당시 김윤상과 일행들이 검은 띠를 매자, 최용술이 불같이 화를 내며 흰 띠를 매게 하고 처음부터 다시 가르쳤다고 한다. 이때 김윤상 나이가 40 무렵.

다만 현실 사정상 매일 도장에 머무를 순 없는지라 최용술이 몇가지 술기를 가르쳐주면 금산에 돌아와 수련하고 익힌 다음, 다시 대구에서 최용술의 재가를 받고 진도를 나가는 식으로 수련을 받았다고 한다. 최용술 도주는 가장 기본적인 술기들을 가르쳐 주면 이후에는 술기의 형태를 자주 바꾸어 보여주었다고 한다. 여하튼 김윤상의 술기가 깊어지던 시기, 최용술 도주는 그에게 직접 도장을 하라는 조언을 하였고, 그리하여 만들어진 도장이 용술관이다.

최용술 도주가 죽기 1년 전인 1985년에 9단을 직접 수여받았고, 2002년 4월에는 최용술 대구종가로부터 정식으로 합기유술의 3대 도주[3]로 추대되었다. 최용술의 손자 또한 김윤상 도주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4]

최용술의 합기유술을 원형 그대로 가르쳤으며[5], 스승인 최용술과는 각별한 관계로[6] 그가 사망 직전까지 계속해서 운동을 쉬지 않고 합기도만 고집했던 이유도 수련을 계속하라는 최용술 도주의 유지를 받드는 의미라 하였다. 유파가 난립하고 스승을 부정하는 일도 생기던 이전의 사례들과는 대비된다.[7]

2021년 6월 23일 새벽 5시 별세했다. 향년 87세. #

3. 용술관

김윤상이 만든 도장이다. 용술관 문서 참조.

4. 여담

2000년대 KBS 방송 고수를 찾아서에 출연해 자신의 술기와 내공을 보여주었다. 건장한 성인을 그것도 십수년 이상 합기도를 수련한 제자나 타 유파 고수들을[8] 손가락 하나로 무력화하는 실력을 보여주었다.[9]


[1] 당시 합기도가 발차기나 당사자의 힘만을 사용한 우왁스런 기술들이 대부분이었기에, "나이가 더 들면 과연 기술을 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2] 최용술의 소재지였던 대구에서 유술을 가르친다는 도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다, 대동류 합기유술을 배운 또다른 인물인 장인목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김윤상에게 "나도 최 영감처럼 대동류를 했으니, 나에게 배우는 것이 어떠한가?"는 제안을 했다고 증언하는데, 최용술한테 간거 보면 안 배운 모양.[3] 2대는 최용술의 아들인 최복열이었으나, 합기도 통합 시도 중 사망하였다. 그 이외에는 장진일 또한 2대 도주로서 해외를 담당토록 하였다.[4] 지금은 독립하여 또 다른 단체를 만들었다.[5] 대동류 합기유술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이지만, 용술관 항목에도 있듯 대동류 관계자조차 생소한 스타일도 있다는걸 봐선 똑같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6] 스승의 행적을 따라 대동류 종가를 비롯하여 수시로 일본 각지를 방문하며, 스승의 흔적을 발굴하고 기록으로 남기려 했다.[7] 이는 김윤상 본인의 인품 탓도 있을 것이고, 시기상 최용술의 말년에 수련받은 점도 있어보인다. 최용술 입장에서도 초기엔 수업료에 따라 차별교육했다는 유명 일화가 있는만큼 말년 들어서야 실수를 깨닫고 제대로 된 후계자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8] 무토에서 올린 용술관 특집 3부작에서는 합기도 협회 소속의 도장 사범이 용술관을 방문하여 김윤상 도주와 제자들에게 술기를 받기도 했다.[9] 당시 합기도 협회 소속 사범은 2017년 기준 브라질리언 주짓수를 수련 중이며, 용술관에서의 경험을 흥미로운 기억으로 회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