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8 09:57:02

대동류 합기유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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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고류 무술과 현대 무도를 나누는 기준점은 메이지 유신(1868)으로 여겨지나, 창시가 그 기간에 걸쳐있거나 그 이후지만 고류의 형식으로 수련되고 있는 경우 여기에 넣었다.
일본 고류 무술의 유파들의 경우 창시 세기별로 분류해 외래어 표기법/일본어 기준 가나다순으로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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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東流合気柔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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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유파
3.1. 국내 현황
4. 아이키도, 합기도 관련5. 대동류 출신 무술인 (가나다순)6. 영상7. 대중매체에서의 대동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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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동류 합기유술(大東流合気柔術)은 일본의 근대 무술이다. 메이지 시대타케다 소카쿠(武田惣角)라는 무술의 명인이 세상에 전파했으며, 합기(合氣) 계열 무술들의 시초가 되는 무술이다.[1] 대동류는 처음엔 '대동류 유술'이라고 칭하였는데, 명칭에 '합기'란 단어가 들어간 첫 문헌은 다이쇼 11년(1922), 타케다 소카쿠가 우에시바 모리헤이에게 수여한 목록이다.[2]

대동류는 한국 합기도(合氣道)와 일본 아이키도(合気道)의 원류 격이 되는 무술이기도 하다.[3] 최용술[4]의 전성기 때 합기도나 우에시바 모리헤이[5], 시오다 고조[6]의 전성기 때 아이키도가 대동류 합기유술과 흡사했다. 다만 세월이 흘러 현대의 한국 합기도는 종합 무술[7]로, 우에시바 모리헤이의 아이키도는 2대인 우에시바 기쇼마루 시기부터 상호 간의 공격과 상해의 위험성을 배제한 아이키도로 변모했다.[8] 시오다 고조의 요신칸 유파나 한국의 용술관 정도가 그나마 일부 비슷하게 남아있다.

대동류 합기유술의 경우 아이키도에 비해 보법이 제한적으로 움직인다. 다다미 1척 내 같은 좁은 상황에서 상대를 제압한 뒤 단도 등으로 급소를 확실하게 찌르는 상황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반면 아이키도는 상대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한 무술이다. 때문에 상대의 사각(측면)으로 움직이며 제압하므로 움직임이 대동류에 비해 다이내믹한 편이다.

또한 대동류 합기유술은 주짓수와도 의외로 궁합이 좋은 편이다.[9] 물론 대동류는 서서 하는 입식 유술이고 주짓수는 누워서 하는 와식 유술이지만, 주짓수의 클로즈, 버터플라이, 스파이더 등 가드 상황과, 탑에서의 레그 드래그나 압박 패스 등 이런 것들이 대동류에 어떤 기술에 해당하는 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 편이다. 대동류에서 손을 쓰는 경우를 주짓수에선 손 대신 발을 쓴다든지, 대동류에선 다리를 간접적으로 통제하는데 주짓수에선 직접적으로 통제한다든지 등. 어느 정도 상황에 맞게 변형되어 활용되지만, 결국 힘을 쓰는 원리라든지 상대방의 밸런스를 컨트롤하는 원리는 유술이라는 측면에서 비슷하다. 때문에 대동류 수련자 중에는 주짓수를 같이 배우는 사람들도 있다. 관절기 빌런

2. 역사

대동류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으나, 여기에서는 대표적인 설 세가지를 소개한다.

첫 번째는 오시키우치(御式内)라고 알려진, 다케다 가문에 전해 내려온 문외불출(門外不出)의 고류무술이라는 설이다. 이 설에 따르면 대동류는 미나모토노 요시미츠(新羅三郎 源義光, 1045–1127)를 시조로 하여, 아이즈 번 내에서만 대대로 전해 내려 오다가 메이지 시대에 와서 타케다 소카쿠(武田惣角, 1859–1943)가 세상에 내놓은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근현대 일본 무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 무술이 소카쿠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의문이 생긴다.[10] 타케다 소카쿠의 제자로서 타케다 소카쿠로부터 종가의 자리를 자칭하던 사가와 유키요시[11]는 대동류는 소카쿠가 창시한 무술이라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특히 그는 대동류가 무장 정도나 배울 법한 무술이었다고 주장했다.[12][13]

두 번째는 앞서 언급했듯이 대동류가 타케다 소카쿠가 창시한 무술이라는 설이다. 소카쿠는 오노하일도류 등 여러 무술[14]을 배운 듯하며, 대동류는 소카쿠가 배운 이러한 기술을 종합해 창시한 신흥무술이라는 주장이다.[15][16]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 중에는 1967년에 발행된 <아이즈 검도지>가 있다. <아이즈 검도지>에 따르면, 당시 옛 아이즈에 존재했던 무술을 모두 조사하였으나 합기나 대동류라는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소카쿠의 가르침에는 여타 고류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예법'이 일절 포함되지 않았다고 하여[17], 연구자들은 이를 근거로 사실상 소카쿠 당시에는 '독립된 유파로서 성립되는 과정'에 있지 않았는가 보기도 한다.

현재 일본 무술계에서는 '타케다 소카쿠가 창시한 무술'로 보는 시각이 유력하다. 타케다 소카쿠는 10대 후반 무렵부터 무사수행으로 전국을 정처없이 떠돌아 다녔고[18], 30대 이후엔 자신이 머물렀던 여러곳에서 대동류 합기유술을 교습하였다.

세 번째는 한국 합기도 단체에서 말하듯 신라에서 비롯된 무술이라는 설이다. 이 설의 시초는 최용술의 증언이다. 그는 생전에 다케다 소카쿠가 이 무술은 본래 너희나라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논란을 낳았는데 그는 임종시에도 이 발언이 사실이라 증언했다고 한다. 이에 합기도 한국 기원설은 여러 다양한 떡밥을 낳았다.

신라에서 화랑이 수련하던 무술[19]이 일본으로 건너가 대동류 합기유술로 발전했고 그 대동류를 다시 최용술 도주가 한국에 가져와서 합기도로 재탄생시키게 되었다... 라는 이야기 등으로 발전했는데 합기유술 관련 서적(제목 불명)과 도미키 켄지[20] 교수의 논문[21]에서 '원(源)씨 성의 신라인이 왜로 넘어와 무술을 가르쳤는데 이것이 발전하여 대동류가 되었다.' 고 언급된다. 신라삼랑원의광(新羅三郎源義光), 즉 미나모토노 요시미츠는 사실 신라인이라고 보는 견해.[22]

그러나 해당 문서에도 나와있듯이 신라명신(新羅明神) 앞에서 성인식을 치추어서 붙여진 이름일 뿐, 신라인 운운은 낭설에 불과하다.[23] 실제로 맏형 요시이에는 하치만궁에서 성인식을 치루어서 하치만타로[24], 둘째 요시츠나 또한 카모지로[25]라고 불렸다. 삼랑(三郎)은 셋째 아들이지, 단군신화와 관련이 없다. 게다가 신라시대부터 소가쿠가 활동할 메이지 시대까지 화랑도가 아무 유명세도 없었다는 것이 의심스럽다. 이 설은 '태권도 전통무예설'처럼 합기도의 유래를 우리 것으로 위장하기 위한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26] 용술관을 방문해 술기를 겪어보고 칭찬한 대동류 성심관의 관장대리 후쿠오카 마사미도 이런 설에 대해 일제의 잔재라 할 수 있는 영광사관[27]을 한국인들이 따르는 것은 안타깝다는 견해를 내비친 바 있다.

현재 이 떡밥은 장보고가 신라명신이며, 대동류가 여기서 나왔다는 주장으로까지 발전하였다.[28][29][30]

3. 유파

  • 대동류 합기유술 종가(宗家)[31][32]
  • 대동류 합기유술 탁마회(琢磨会)[33]
  • 대동류 합기유술 행도회(幸道会)
  • 대동류 합기유술 육방회(六方会)
  • 대동류 합기유술 연심관(練心館)[34]
  • 팔광류(八光流) 유술[35]
  • 서향파(西郷派) 대동류 합기무술[36][37]

3.1. 국내 현황

현재 대동류 합기유술 연심관 한국 지부만이 "대동류 합기유술"이라는 무명武名을 걸고 교습을 한다.
  • 대동류 합기유술 연심관 한국지부 : 일본에서 현 연심관장 타카세 미치오(교수대리)의 인가를 받고 활동하고 있는 정통 대동류 수련 단체. 단체를 이끌고 있는 김기태는 연심관 유술 비전목록 사범대 겸 합기유술 비전목록 사범대로서 한국지부장을 맡고 있다.

그 외에 대동류 합기유술라는 이름은 쓰지 않고 있지만, 1대 도주가 대동류를 배웠거나 배웠다고 추정되는 무술 도장은 다음과 같다.
  • 용술관 : 최용술 도주의 기술을 원형대로 최대한 보존한 도장으로, 대한합기도협회 등 오늘날 한국의 주류 합기도 계열과 기술 면에서 차이가 있다.[38] 일본 대동류 무술가 중에서 용술관 기술을 대동류 합기유술로 보는 사람도 일부사실 1명 있지만 아니다 라고 보는 쪽도 있다. 다만 일본 쪽에서도 종종 취재할만큼 관심이 있긴 한 모양.
  • 정기관 : 최용술 도주로부터 직접 9단을 수여받은 임현수 관장이 합기유술과 함께 거합도[39]도 같이 가르치고 있다.[40]
  • 서향파 대동류 합기무술 : 한국에 들어온지 꽤 되었다.

4. 아이키도, 합기도 관련

아이키도의 시조 우에시바 모리헤이다케다 소가쿠에게 면허개전은 못 받았지만 교수 대리는 받았다. 고류에서 이야기하는 '개전'이란 모든 것을 다 가르쳤다는 뜻이고 '면허개전'은 졸업증서로 보면 된다. 다만 타케다 소카쿠는 제자의 실력과는 별개로 면허개전을 쉽게 발행하지 않았다. 또 다른 수제자로 꼽히는 사가와 유키요시는 물론, 임종을 지킨 야마모토 카쿠요시나 자기가 후계자로 인정한 아들인 다케다 토키무네까지 모두 '교수 대리'만 허가하였을 뿐 면허개전을 발급하진 않았다. 타케다 소카쿠에게 면허개전을 받은 인물은 1930년대 아사히 신문사 직원 수련 교육할 당시 전수받은 히사 타쿠마(久琢磨)와 토네다치 마사오(刀祢館正雄) 두 사람뿐이다.[41] 하여튼 우에시바 모리헤이는 대동류 합기유술과 자신이 배운 다른 여러 무술[42]에 당시 유명한 신흥종교 오모토(大本)의 사상을 결합하여 아이키도(合気道)를 창시했다.[43]

대동류와 아이키도의 대표적인 차이점이라면 대동류는 발놀림 즉, 보법(스텝)이 아이키도에 비해 매우 제한적이다.[44] 아이키도에는 사바키라는 상대의 측면으로 돌아들어 가는 보법이 존재하는데, 사실 대동류에도 사바키가 있다. 응? 다만 선호하질 않을 뿐. 정확히 말하면 아이키도의 타이사바키는 몸 전체의 움직임으로 회피하면서 패링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법이 존재하는 것이고, 대동류는 상반신의 움직임 위주로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발의 움직임이 작거나 별로 없는 것이다.[45] 또 다른 차이점으론 아이키도에는 수신이라는 구르는 낙법이 있지만 대동류에는 낙법이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46] 기술적인 부분에선 아무래도 대동류에서 아이키도가 파생되었기 때문에 같은 기술들도 많다. 하지만 같은 기술이라도 디테일적인 부분에서 차이를 보인다.

2019년 한국의 대동류합기유술, 아이키도 사범들이 만나 나눈 아이키도 vs 대동류 합기유술 썰전에 의하면, 기술적으로 큰 차이는 없는데[47] 대동류는 그 기본 원리에서 나오는 수많은 동작들을 다 술기로 쳐서 수천가지가 나온다고 아이키도 입장에선 머리 아프다고 말했다. 대동류 사범들은 아이키도의 종교적인 부분이 무술 자체와는 큰 연관이 없어보인다고 지적했고 아이키도 사범도 자기 무교라며 동의했다.(...)

오늘날 일본에서 대동류 합기유술은 아이키도보단 시장성이 밀리기 때문인지 대동류 관련 학계 연구도 아이키도 연구자들에 의해 원류격 무술 형태로 이뤄지는 측면도 있다.

한편, 한국에선 또다른 의미로 주목받는 무술인데, 왜냐하면 한국 합기도 1대 도주 최용술이 직접 다케다 소가쿠한테 대동류 합기유술을 배웠고 심지어 양자, 수제자로 지냈다는 식의 말도 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에 대해선 오늘날까지도 갑론을박이 있다. 자세한건 항목 참조.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배우긴 했다까진 인정되고 있는 분위기. 다만 오늘날 한국 합기도는 최용술이 전파한 무술과도 형태가 많이 달라져 대동류 합기유술과는 거리가 많이 먼 한국 창작 무술 비슷하게 되어있다. 이것도 자세한건 항목 참조.

5. 대동류 출신 무술인 (가나다순)

  • 가범석 : 유심회. 극진공수도, 대동류 합기유술, 강유류 공수도 등 다양한 무술을 수련했다.
  • 김기태 : 대동류 합기유술 연심관 한국지부장. 대동류 비전목록을 받은 세 번째 한국인. 대동류 비전목록이란 무엇인지 알아보자 (아마도 세계 최초 언박싱) [48] 탁마회 전(前)간사장 코바야시 키요히로 선생(8단)도 사사하여 초단을 받고 탁마회 기술연구회로도 활동하고 있다.
  • 김태욱 : 대동류 합기유술 한국인 최고단자이자 거의 모든 대동류의 계열을 수련하고 있다. 합기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구매하는 대동류 매니아. 여담으로 대동류를 배우는데 검술을 익혀두면 좋겠지만 굳이 익힐 필요는 없다는 지론을 밝힌 바 있다.
  • 마츠다 토시미 : 본명은 마츠다 호사쿠(松田豊作). 타케다 소카쿠의 제자로 대리교수를 받았다.[49] 한국인 제자로 장인목[50]이 있으며, 현재 한국에 정식으로 지부가 들어와 있는 유일한 계열인 연심관이 마츠다 토시미 직전(直傳) 계열로 한국과 인연이 깊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 반기야[51]
  • 사가와 유키요시 : 타케다 소카쿠의 제자로 교수대리를 수여했다. 일본 무술계에서는 뛰어난 실력으로 일본 최후의 달인이란 칭송 되며 대동류가 쉽게 공개되는 것을 꺼리면서도, 남긴 어록이 많아 합기의 연구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52]
  • 오카모토 세이고 : 호리카와 코도의 제자.
  • 오쿠야마 류호 : 마츠다 토시미의 제자. 이후 팔광류 유술을 창시했다. 팔광류에서는 합기를 금강력이라 칭한다.
  • 요시다 코타로 : 소카쿠에게 아이키도 창시자인 모리헤이를 소개한 인물. 흑룡회 출신으로, 최용술이 이 사람한테 대동류를 배운거 아니냐는 추정도 있다.
  • 요시마루 케이세츠 : 사가와 유키요시의 제자로 합기의 과학,발경의 과학 책을 저술했다. 합기연체회란 단체를 만들어 따로 독립하였다.
  • 우에시바 모리헤이 : 교수대리. 사실상의 수제자로, 각종 자료나 증언에 따르면 소카쿠는 모리헤이에게 유파의 대를 잇게 할 생각이었던 듯하다.[53]
  • 장인목 : 최용술 외에 한국에서 대동류를 가르친 또다른 인물로 생전에 대구에서 몇 차례 만났다고 한다.[54] 마츠다 토시미의 제자로 홋카이도에서 대동류를 배운 뒤, 해방후 대구에 국무관을 설립하여 대동류를 가르쳤다. 합기도 통합 당시에도 참여하였으며 70년대 이후부터는 하카마를 제외하고 수련을 하도록 하였다. 다만, 대동류의 적극적인 전파보다는 접골원을 운영하는게 주 생계 유지였기 때문에 지압과 같은 건강유지에 집중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제자로 장목구, 이성창, 박병관, 한종렬, 허일웅 등이 있다. 박병관은 최용술과 장인목 모두에게 배운 바가 있으며, 현재도 대구에서 활동 중이다.[55] 장인목의 비전목록은 현재 한국 명지대학교(明知大學校) 체육학과 명예교수로 재직 중인 허일웅이 소장하였다.
  • 최용술 : 본인은 매체에 따라서 타케다 소카쿠의 수제자 혹은 양자라고 주장하였다. 다만 이에 대해선 갑론을박이 있는데 자세한건 항목 참조.
  • 최영의 : 극진공수도의 창시자인 최영의도 요시다 코타로에게 대동류를 배웠었다고 한다. 사실 최영의는 정통 가라테(송도관, 강유류)를 익혔을 뿐 아니라 유도귀신 기무라 마사히코와 교류하며 유도를 배우기도 했을 정도로 여러 무술을 섭렵한 무도인이었다.
  • 콘도 카츠유키 : 다케다 토키무네의 제자. 토키무네에게 입문하기 전에는 타케다 소카쿠의 제자 호소노 츠네지로, 요시다 코타로에게 대동류를 배웠다.
  • 타케다 토키무네 : 타케다 소카쿠의 셋째 아들로 기술은 호리카와, 면허는 히사, 실력은 사가와 라고 평을 한 바 있다. 후사를 콘도 카츠유키 관장에게 맡기고(사실상 3대 관장) 그에게 유일하게 면허개전을 허하였다. 말년에 아버지의 노제자들을 규합하여 대동류를 하나로 통합하려 시도하였으나, 무위에 그친다.
  • 호리카와 코도 : 타케다 소카쿠의 제자로 교수대리를 수여했다. 제자들로부터 '영세명인(永世名人)'으로 추대되었다.
  • 히사 타쿠마 : 타케다 소카쿠의 제자로 면허개전을 받았다. 원래는 1930년대 본인이 다니던 아사히 신문사에서 우에시바 모리헤이에게 아이키도를 배웠으나, 타케다 소카쿠가 신문사에 쳐들어가(...) "내가 우에시바의 스승이다. 기초는 그에게 배웠을 테니 이후부터는 내게 배워라." 하여 타케다 소카쿠 문하에 입문하였다.[56]

6. 영상



검도와의 실제 스파링.

입신[57]을 활용하는 모습이 나온다. 입신이란 사바키의 종류 중 하나로 상대의 공격선에서 벗어나는 전진 동작을 말한다. 즉, 상대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는게 아니라[58] 바깥쪽 사각으로 돌아 들어가는 것이다.[59]



입식 격투기 선수와의 맨손 스파링.

한국의 종합격투기 팀인 팀매드의 양성훈 감독이 개최했던, 천하 제일 무술대회에 참가했던 최창희 선수와의 스파링. 1 2



대동류 기술을 단순 힘으로 버틸수 있는가.

당연한 말이지만 실전에서 기술을 쓰려면 그에 맞는 연습이 필요하다.



안면 펀치에 대한 대처법.

이런 개념을 따르는 펀치 트래핑은 UFC 챔피언이였던 랜디 커투어가 자주 활용했었다.[60][61] 다만 보통의 UFC 선수들은 복싱,무에타이 같은 타격계를 베이스로 하기 때문에, 상대의 펀치 공격으로 부터 상대를 잡고 싶다면 클린치를 사용 하는게 더 자주 나오긴 한다. 대동류는 기본적으로 창시자가 오노하일도류를 배웠고 검술이 근본이다. 그렇지만 현대 격투기의 빠른 펀치에 대처하는 원리도 연구되고 있으며, 다른 타격계 무술을 병행하며 펀치에 내성을 키우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62]



기초적인 연습.

상대가 자신의 손목을 못움직이게 구속 했을때, 합기[63] 상대의 중심을 통제한 뒤[64] 기술을 쓰면 된다.[65]

7. 대중매체에서의 대동류



[1] 합기(合氣)란 신체를 효율적으로 써서 힘을 낸 뒤 상대방의 중심(밸런스)을 무너뜨리는 것을 뜻한다. 쉽게 말해 힘을 내는 방법이다. 다만 전문가간에도 조금씩 개념 차이는 있는듯.[2] 대동류 합기유술과 아이키도에서 이야기하는 현대적인 의미의 합기라는 명칭은 타케다 소카쿠가 오모토 본부에 있는 모리헤이의 거처를 방문했을 때 등장했다. 오모토의 성사(聖師) 데구치 오니사부로가 '합기'를 무술의 이름으로 칭하도록 모리헤이에게 권하였고, 모리헤이가 '합기'를 대동류의 이름에 가미할 것을 소카쿠에게 권유, 소카쿠도 동의하여 '대동류 합기유술'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타케다 소카쿠는 그 이전부터 합기에 대해 몸으로는 알았지만, 이 개념을 무술의 명칭에 직접적으로 붙이도록 제안한 사람은 우에시바 모리헤이이다. 우에시바 또한 아이키도 창시 초기에는 대동류 합기무도(大東流合気武道)라고 명명하려 했으나, GHQ에게 지적당하여 아이키도로 했다고 한다.[3] 다만 현재의 시장성 자체는 아이키도에 밀린다.[4] 한국 합기도 1대 도주.[5] 아이키도의 창시자.[6] 요신칸 아이키도 유파 관장.[7] 유술 외에 하이킥 등 타격기, 쌍절곤지팡이 등의 무기술 그리고 공중제비, 텀블링 등의 낙법까지 다룬다.[8] 아이키도가 기본 원리를 중심으로 (철학성을 포함해) 배우기 쉽게 기술을 대폭 줄였다면, 대동류는 기본 원리에서 나오는 여러 동작들을 죄다 술기로 쳐서 수천 가지가 나오는 모양.[9] 비교 영상.[10] 이 때문에 가전(家伝)으로만 전승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원래 아이즈에는 오토메(御留)라 불리는 타 지역(藩)으로의 유출을 금지 하는 유술 유파가 있었다.[11] 사가와 유키요시는 대동류를 타케다 소카쿠보다 더 뛰어나게 구사했다는 설도 있을만큼 일본 무술 역사상 최후(?)의 달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개인 도장인 사가와 도장(佐川道場)을 운영했지만 세력을 확장하지는 않았다. 후에 타케다 소카쿠의 셋째 아들 다케다 토키무네(武田時宗)에게 '종가'라는 타이틀을 양보한 뒤 토키무네로부터 '종가의 사범'이라는 뜻인 종범(宗範)으로 추대되었다. 사가와 유키요시가 숨을 거두면서 외국인을 제자로 받지 말라고 유언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비밀스럽게 기술을 전수한다.[12] 물론 최악의 상황이라는 경우가 존재하지만, 상식적으로 집단의 대표가 그 옆에 호위 수행원을 거느리지도 않고 불시에 기습하는 자들과 업치락뒤치락 싸울리가 없기 때문이다.[13] 참고로 많은 유술 유파들이 자기네 시조가 미나모토 요시미츠라고 주장한다. 소카쿠는 무호(武號)로 원정의(源正義:미나모토마사요시)를 사용했으며, 오쿠야마 류호는 자신의 가문이 奥之山源(오쿠노야마 미나모토)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타케노우치류(竹内流) 또한 미나모토 요시미츠(源義光)가 시조라고도 한다.[14] 시부카와류, 직심영류 검술, 혹은 경심명지류 검술을 배웠다는 추측적인 이야기가 있다.[15] 야규신카게류나, 혹은 그에 파생된 천심류 병법의 유술기에서도 앉아 사방 던지기와 비슷한 술기가 보이지만 신카게류에서 파생된 텐신류는 오래 전에 절전되었고, '천심류병법'이라는 유사한 이름을 사용하는 유파는 신카게류와는 전혀 다른 보여주기식 발도술 위주의 기술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천심류측에서 고류 무술이라고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실상은 일본의 액션 전문 배우들이 창시한 신생유파이다. 따라서 해당 유파가 대동류나 아이키도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16] 빠르게 날아오는 BB탄, 테니스공을 베어내는 영상으로 해외에서도 유명해진 마치이 이사오(町井勲) 사범도 이 가짜 고류에 대해 여러차례 비판적인 글도 썼을 정도다.링크1, 링크2.[17] 사가와 유키요시의 증언에 따름. 아들 다케다 토키무네(武田時宗) 계열은 예법을 강조한다.[18] 서남전쟁에 참전하려 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전쟁 이후에 무사수행을 하였다.[19] 그 원형은 현재 '화랑도'라는 별개의 무술로 발전했다고 한다. 당연히 여기도 근거는 없다.[20] 유도의 창시자와 아이키도의 창시자에게 각각 유도와 아이키도를 배운 인물로 유도 8단, 아이키도 8단이다. 스포츠화에 성공한 유도를 보고 아이키도의 스포츠화를 시도했으며 시합이 존재하는 쇼도칸(도미키) 아이키도 유파를 설립했다.[21] 도미키 켄지가 대동류가 다케다 스승의 주장에 의하면 신라 사부로 미나모토 노 요시미츠를 시조로 하는 무술이니(다만 현대창작설에 따르면, 걍 다케다가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뻥카를 쳤을 가능성이 크다. 당장 다케다는 본인의 가문도 신분세탁한 정황이 연구자들에게 언급되고 있다.) 대륙에서 건너온거 아닌가 비슷한 가설을 논문에 썻는데, 한동안 한국 합기도계에서 이 가설을 열심히 인용하여 입맛에 맞게 여러개를 첨가했지만, 지금은 모두 사장됐다. 첨가한 내용들은 판타스틱한 내용들이 다채롭게 존재한다. 미나모토 요시미츠가 성인식때 신라 사부로 라는 이름이 붙었기 때문에 신라인의 양자라던가, 아예 현해탄을 넘어와 신라에서 활동한 신라인이라던가...[22] 환뽕 맞은 합기도 단체에서는 이 삼랑(三郎)이란 단어가 환단고기단군신화의 풍백,우사,운사를 의미한다는 이야기까지 한다.[23] 애초에 미나모토 항목이나 신적강하 항목에 써있듯이 당시 미나모토라는 성은 덴노 가문에서 신적강하한 사람들에게 주는 탑클래스 귀족의 성이었다. 물론 당시 일본 열도에 살던 사람들에게 통일신라백제가 대단한 곳으로 보였던 건 사실이지만, 솔까말 신라계 원씨가 일본에서 활동했다 쳐도 모계만 신라인이라던가 무시무시한 공이라도 세웠다면 모를까, 꼴랑 같은 한자로 된 성을 가졌다고 해서 다른 나라 사람을 인정해줬을리가...[24] 八幡太郎(하치만궁에서 성인식 치른 첫째라는 뜻)[25] 賀茂次郎(카모신사에서 성인식 치른 둘째라는 뜻)[26] 역사스페셜에서 이 신라명신 떡밥을 물어 대동류 종가에 가서 취재까지 한다.[27] 소위 자학사관과 대비되는, 자국 역사는 영광뿐이라는 사관. 쉽게 말해 비뚤어진 애국심.[28] 대동홍본류의 송일훈 관장의 연구논문이며, 이에 관한 책도 집필했다. 설령 장보고의 무술이었다 해도, 전란의 시대 속에서 온갖 전략과 전술, 무기, 그리고 방어구에 의해 진화한 유술이 온전히 한국의 것이 될 수 있을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29] 최용술 도주나 장인목 선생은 각자의 스승으로부터 대동류가 한반도에서 건너왔다는 걸 자주 들었다고 언급했는데, 반일 정서가 심한 한국에서 교육하기 위해 뻥을 쳤거나 아님 대동류의 시조에 신라(新羅)라는 이름이 들어있는 부분을 과하게 해석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30] 실제 이 떡밥은 이렇게 이용되고 있다. #[31] 현재 종가를 주장하는 단체가 다케다 토키무네의 이복형제의 후손인 다케다 무네미츠(武田宗光)와 토키무네의 친동생인 동명이인 다케다 무네미츠(武田宗光), 그리고 다케다 토키무네 노제자들의 성심회 계열, 다케다 마사노부 등등, 혼돈의 도가니이다.[32] 다케다 토키무네에게는 아들이 없고 딸만 둘이었다. 토키무네의 말년에 차녀 요코야마 노부코(横山信子)가 단증발급 등의 문서 작업을 하였고, 콘도가 대동류 강습과 심사를 지속하였다. 요코야마 노부코는 이 사태에 대해 관여하길 거부하며 자기 아들에게는 대동류를 가르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빠지자, 장녀 오시마 요코는 남편 오시마 마사노부의 성을 타케다로 바꾸는 강수를 두며 종가의 대표로 인정을 요하는 법적 행동을 취하지만, 패소하고 만다. 후쿠오카 부관장에 따르면, 그 손자는 성심회에서 수련하였다고 한다.[33] 현재 탁마회(타쿠마카이)의 지부였던 야마토카이는 기술의 동영상을 활발하게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야마토카이는 현재 독립하였다.[34] 연심관(렌신칸)은 타케다 소카쿠 - 마츠다 토시미 - 마에다 타케시 - 타카세 미치오로 내려오는 소위 '마츠다 덴' 계보로, 연심관이라는 이름은 마에다 타케시 선생이 붙인 것.[35] 타케다 소카쿠의 직제자인 마츠다 호사쿠, 즉 마츠다 토시미의 제자 오쿠야마 류호가 설립한 유파로 합기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금강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36] 타케다 소카쿠의 대동류 합기유술과는 역사적 접점이 없고 이름만 같다. 이전에 이 단체가 타쿠마카이(琢磨会)에서 수련을 했기 때문인데, 아이즈(会津)의 최고위직인 가로(家老)였던 사이고 다노모(西郷頼母)가 다케다 우에몬 (武田右衛門)에게서 아이즈 지역의 오토메 유술(御留柔術), 그 중에서도 오시키우치(御式内)와 음양술을 배워 후일 우에몬의 손자인 타케다 소카쿠를 가르쳤던 것과, 그의 양자인 사이고 시로가 강도관에서 파문당한 이후, 잠시 유술을 가르쳤던 것을 이용하여 사이고 시로를 시조라 하여 법적 분쟁에서 회피하려 한 것. 명칭은 토키무네가 정리한 것을 서향파가 참고해서기도 하고...[37] 현재는 독립된 단체임을 표방하기 위해 유(柔) 대신 무(武)를 사용한다고 한다. 특히 타쿠마카이에서 서향파에 대해서 매우 언짢게 생각한다. 대동류 종가에서도 서향파가 타쿠마카이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베꼈다며 한동안 법적 분쟁이 발생할 뻔했다.실력만큼 직설적인 화법으로도 최고의 달인이라 할 수 있던 사가와 유키요시에 따르면 사이고 다노모는 무력(武歷)이 신통찮았을 것이라며, 지금의 대동류 합기유술은 온전히 타케다 소카쿠 증흥조 덕분이라고 확언한다.[38] 제자간 교차검증이 안 됐다는 발언도 존재하는데, 최용술 도주의 가르침에 사형사제간에도 서로를 잘 모르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밑의 정기관조차도 용술관을 잘 모른다고 할 정도였다.# 용술관은 최용술 도주의 종가로부터 나름대로 인정을 받은 터라# 소위 원형술기 보존에 민감하다.[39] 무쌍직전영신류.[40] 임현수 관장은 평소 최용술 도주로부터 이 무술은 검술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무작정 일본의 검도 서적을 보다가 서적에 적힌 합기라는 글자에 놀라서 거합도를 배웠다고 한다.[41] 이때 히사 타쿠마는 돈벌레 다케다한테 집 세 채 정도 되는 돈을 지불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덕분에 대동류 졸업증 소유자를 두 명 소유한 언론사가 되었다[42] 모리헤이는 대동류 외에도 키토류 유술(유도의 모체 중 하나), 신카게류 검술, 야규신카케류 검술(면허개전), 가토리신토류 등 여러 무술을 배웠다.[43] 다만 종교성은 2대 우에시바 기쇼마루 도주로 내려오면서 많이 희석된다.[44] 두 유파의 술기인 대동류의 片手捕小手返아이키도의 片手取り小手返し를 한번 보자. 두 유파 모두 동일한 형(形)과 술기가 있다. 해당 동영상에서는 움직임이 어느 정도인지를 참고하는 용도로 봐야지, 이 기술은 아이키도나 대동류에 있다, 없다는 단정은 금물이다.[45] 이런 차이가 나는 이유는 아이키도는 대도(긴 칼)를 가정했을 때의 움직임에 가깝고 대동류는 소도를 가정했을 때의 움직임과 비슷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아이키도는 고류 검술을 병행 하며 수련 하지만, 대동류는 검술 수련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 라는 유파들이 많다.[46] 현재는 대동류가 여러 유파로 나뉘었기 때문에 낙법을 도입한 유파들도 있다.[47] 다만 디테일에선 차이를 보인다. 상대를 배려 하며 기술을 거는 아이키도에 비해 대동류는 과격 하게 거는 편이다.[48] 첫 번째는 장인목, 두 번째는 김태욱. 이 두 사람은 일본에서 수련하여 목록을 받았으니 순수하게 한국에서 대동류를 수련한 인물로서는 김기태가 처음이다.[49] 타케다 소카쿠는 시기에 따라 대리교수 또는 교수대리로 면장을 발급했는데, 마츠다 토시미에게 발급한 면장은 비교적 초기의 것으로 '대리교수'로서 발급했다. 마츠다 토시미 또한 제자들에게 '대리교수'로 면장을 발급했다.[50] 마츠다 토시미에게 비전목록을 받음.[51] 김광석 씨 계열의 '십팔기'(무예도보통지 복원무술. 본인들은 계승을 주장) 쪽에서는 일본에서 대동류를 배워온 반기야라는 인물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디서 누구에게 얼마나 배웠는지에 대한 자료는 전혀 없으며, 십팔기측 이외의 계통에서 이 인물이 언급되는 일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물론, 타케다 소카쿠의 영명록에 반기야의 이름은 없다.[52] 그의 아버지 또한 타케다 소카쿠에게 대동류를 배웠지만, 합기를 이해하지 못하여 포기했다고 전해진다.[53] 홋카이도 개발단장으로 활동하다 부친이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홋카이도를 떠날 당시, 우에시바가 카미유베츠정(上湧別町)의 집을 비롯한 자기 전재산을 다케다에게 모두 줄 정도로 초기에는 관계가 매우 좋았다. 그러나 사가와 유키요시의 증언에 의하면 점차 서로에 대한 반감이 생겼다고 한다. 후일 타케다 소카쿠는 우에시바의 손은 합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에게 합기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하는 등 비난하였다. 게다가 우에시바 개조가 아이키도를 만들어 독립하자, 진노하고 그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이 무렵 도장을 찾아 온 타케다를 만난 아이키도 제자들은 '단신의 노인네가 귀신 같은 얼굴에 안광을 내뿜으며 우에시바 개조를 찾아다녀서 놀랐다.'고 증언했다. 우에시바 또한 타케다 소카쿠를 피하며 부딪히지 않으려 했다. 그럼 왜 아사히 신문에 그런 논설을.. 대동류 제자들에 따르면 일종의 애증관계라 여겼다고..[54] 첫 만남이 우연찮았는데, 장인목에게 지압을 받던 노파의 주선으로 만나 술기를 주고 받으며 놀랐다는 후문이 있다.[55] 검도를 오랫동안 수련하였고 최용술의 곁에 끝까지 남은, 몇 안 되는 제자이다. 특히 최용술 도주의 주먹지르기는 전부 검술에서 비롯된 자르기와 찌르기 형태임을 증명하기도 하였다. 최용술이 대동류를 언급한 적이 없으므로 대동류를 배운 것이 아닌 것 같다며, 스승이 까막눈이라 역사 왜곡을 하던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휘둘렸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최용술의 스승은 '스님'이었다면서, 최용술의 소림사 권법 수련설을 퍼트리는데 본의 아니게 큰 일조를 한다.[56] 그래서 탁마회(琢磨会)의 초전 술기는 아이키도, 이후의 술기는 대동류의 형태가 되었다. 사실 히사는 이후에도 우에시바와 교류를 이어나가 아이키도 8단도 된다.[57] '이리미'라고도 부른다.[58] 당연한 소리지만 칼을 정면에서 막으면 매우 위험하다.[59] 다만 대동류 합기유술을 굳이 검술과 엮어서 배워야 하냐에 대해선 사범간에도 의견이 엇갈리는 편이다. 특히 소도가 아닌 대도는 굳이 유술과 엮일 필요 없다는 사범도 많다.[60] 파일:sticky hands.gif[61] 랜디 커투어가 사용한 기술은 스티키 핸즈(Sticky Hands). '끈적끈적한 손' 이란 뜻으로 랜디가 자신의 저서에 기재 했다. 상대방이 펀치를 내밀고 회수하는 중간에 상대방의 팔을 잡은 뒤, 자연스럽게 따라 들어가 상대를 잡는 기술이다.[62] 펀치란건 평소에 스파링을 통해 많이 맞아 보고 막아본 사람만이 실전에서 대처할 수 있게 되는 법이다.[63] 합기는 상대방이 자신의 몸이나 손목 등을 단순히 잡고 있기만 하면 잘 안걸린다. 상대가 힘을 줘서 말그대로 자신을 못 움직이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세게 구속 하면 기술 걸기가 더 편하다. 힘겨루기 한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하다. 애당초 합기는 과거 무사들이 서로간의 힘겨루기 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릴까 하는 고민 속에서 탄생 하였다라는 추정이 있다. 손목이 잡혔을때 상대의 중심까지 힘을 전달해 무너 뜨린다. 자신과 상대가 톱니바퀴 처럼 맞물린 구조가 만들어 졌기 때문에 자신의 중심으로 상대 중심을 움직이는 것이다.[64] 상대는 중심을 뺏긴 상태라 뭘 할 수가 없어 끌려올수 밖에 없다.[65] 만약 손목을 잡혔을 때 단순히 팔의 완력으로만 상대를 띄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애당초 무술 같은거 배울 필요가 없다.(...)[66] 영화 내에서는 아이키도라 불리지만 실제 기술 자문은 대동류 합기유술에서 받았다.[67] 사가와 유키요시를 모델로 했다.[68] 신기(神技)에 가까운 합기유술을 사용한다.[69] 스토리 초반부에는 아이키도 스타일의 기술을 사용하지만, 뒤로 갈수록 고류 유술의 형태를 띈다.[70] 메이지유신 이후 자유당 운동을 벌이다 투옥된 뒤, 탈출하여 아이누 마을에 숨어들어갔다가, 생활고로 인해 마을 여자들이 유린을 당하여 병에 걸리고 착취를 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분노하여 이들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 우연하게 만난 타케다 소카쿠에게 대동류 합기유술 전수를 받는다. 타케다 소카쿠에게 기술의 일부만을 전수받았지만, 갖은 주인공 보정 등을 받아 거의 웬만한 상대들을 제압하는 실력을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