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국 검교태자태사 김인관 | |
본관 | 경주 김씨(慶州 金氏) |
이름 | 인관(仁琯) |
생몰년도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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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 중기 문신으로, 경주 김씨 태사공파의 파시조이다.2. 개요
예종 때 문관. 자는 인진(仁珍). 시호는 문순(文純). 벼슬은 조산대부 위위시경, 검교태자태사. 경주 김씨 태사공파의 '태사공'은 이 태자태사 관직에서 따왔다.3. 생애
1115년(고려 예종 10년) 낭중이 되어 낙기복사 사은사로 요나라로 갔으나, 여진족의 병란으로 길이 막혀 중도에 돌아왔다.4. 신라 경순왕의 후손?
판도판서공파와 마찬가지로 경순왕의 후손이라고 증명할 사료가 없어서 김알지의 먼 후손이라고 칭하고 있다. 덧붙여서 헌강왕의 후손이라는 설도 존재한다. 경순왕의 몇 대손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우나, 경순왕이 고려 경종 3년 서기 978년에 세상을 떴으니 그 사이 130년 정도가 비는 셈이니 대략 4~5대가 실전된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왕조가 신라에서 고려로 바뀐지 얼마 안되었던 고려 초는, 귀족중심사회인지라 신분계층간 이동이 불가능하고, 신라의 경주 김씨는 고려의 최상위 기득권에 편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당시 전국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신라의 '경주 김씨'를 사칭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태사는 본래 왕자나 부마 등 종실 혹은 공신과 고위 관원에게 내렸기에 품계는 높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고려실록이 실전되어 자세히 알 수 없긴 하지만, 큰 족적을 남길만한 공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려 초에 이러한 벼슬을 하사받았다면, 이미 선대부터 고위직을 역임해왔을 가능성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