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131230><colcolor=#ffffff> 김형칠 金亨七 | Kim Hyungchil | |
출생 | 1959년 7월 1일 |
광주광역시 | |
사망 | 2006년 12월 7일 (향년 47세) |
카타르 도하[1]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종목 | 승마 |
주종목 | 마장마술 |
소속 | 금안회승마장[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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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승마 선수이다.2. 선수 경력
어렸을 때부터 그의 아버지에게 승마 기술을 배웠고, 1976년부터 승마 선수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85 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했고, 그 이듬해인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에 참가해 장애물 단체전 동메달을 땄다. 이후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이후 4회 연속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였으며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종합마술에서 은메달을 따기도 했다.가족도 승마를 하고 있으며, 조카이자 김형칠을 이어 금안회승마장을 운영 중인 김균섭은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마장마술 부문 단체전[3]에서 금메달을 땄다.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종합마술 크로스 컨트리 경기 도중 5년 간 경기를 같이 진행한 애마 벤디에서 떨어져 뇌에 부상을 입었다. 사고 직후 응급 요원들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어 선수촌 인근 하마드 종합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의식을 찾지 못하고 현지 시각으로 10시 50분경 사망 판정이 내려졌다. 사고는 23개의 장애물 중 8번째 장애물을 넘다가 일어났다. 높이 1.1m인 장애물 상단에 말의 앞발이 걸리면서 말에서 떨어지고, 이어 무게 500kg인 말이 넘어지면서 그의 머리와 가슴 부위를 덮친 것이다. 사고 직후 언론들은 비가 오는데도 경기를 강행한 주최 측의 무리한 진행 사실을 보도했고, 김형칠이 비로 인해서 미끄러워진 경기장 환경 때문에 낙마한 것으로 분석하였다. 1951년부터 시작된 아시안 게임에서 선수가 경기 도중 사망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아시안 게임 대한민국 승마 대표팀 참가 선수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김형칠은 그 당시 아시안 게임 5번째 출전이자 마지막 은퇴 경기였다. 12월 8일 대한민국 문화관광부는 그에게 체육훈장 맹호장을 추서했다. 도하 아시안 게임 대회 조직위원회는 그에게 명예 금메달을 헌정했다. 그의 영정을 들고 갔던 조카 김균섭은 반 년 동안 말을 못 탔다고 한다.
이후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종합마술 부문에서 우승한 방시레, 송상욱, 전재식, 홍원재는 "28년 만에 획득한 종합마술 금메달을 김형칠 선배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전했다.
한편 2002년 대회부터 함께 했던 그의 애마도 이 사고로 다리를 다쳤다. 이 벤디의 운명을 놓고 한동안 시끄러웠지만 다행히도 안락사를 당하지는 않았다는 기사가 나왔다.
3. 수상 기록
아시안 게임 | ||
은메달 | 2002 부산 | 종합 마술 |
동메달 | 1986 서울 | 장애물 단체전 |
[1]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 경기 도중 낙마와 말에게 눌림 현상으로 사망하였다.[2]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고은리에 위치하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 된 이 승마장은 3대에 걸쳐 운영 중이다. 승마 명문가인 김철규와 김형칠을 거쳐 현재는 조카(형의 아들) 김균섭이 운영하고 있다. 김철규는 김형칠의 아버지로 1964 도쿄 올림픽에 출전했으며, 2002년에 작고했다.[3] 김동선과 정유라도 함께 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