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4 16:51:45

나이젤 피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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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젤 피어슨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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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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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3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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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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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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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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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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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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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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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축구감독
파일:나이젤 피어슨 2023.jpg
<colbgcolor=#eeeeee> 이름 나이젤 피어슨
Nigel Pearson
본명 나이젤 그레이엄 피어슨
Nigel Graham Pearson
출생 1963년 8월 21일 ([age(1963-08-21)]세)
노팅엄셔주 노팅엄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85cm
직업 축구선수(수비수 / 은퇴)
축구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 선수 슈루즈버리 타운 FC (1981~1987)
셰필드 웬즈데이 FC (1987~1994)
미들즈브러 FC (1994~1998)
감독 칼라일 유나이티드 FC (1998~1999)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2006 / 감독 대행)
잉글랜드 U-21 대표팀 (2007)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2007 / 감독 대행)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2008 / 감독 대행)
사우스햄튼 FC (2008)
레스터 시티 FC (2008~2010)
헐 시티 AFC (2010~2011)
레스터 시티 FC (2011~2015)
더비 카운티 FC (2016)
OH 뢰번 (2017~2019)
왓포드 FC (2019~2020)
브리스톨 시티 FC (2021~2023)
국가대표 없음

1. 개요2. 선수 시절3. 감독 시절4. 수상
4.1. 선수 시절4.2. 감독 시절4.3. 개인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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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

선수 시절 센터백으로서 제법 훌륭한 활약을 선보였지만 국가대표로는 단 한차례도 뽑히지 못했다. 그후 감독 생활을 시작한 그는 레스터 시티에서 기량을 발휘해 레스터를 EPL로 승격시키고 승격 시즌에 압도적인 꼴지로 강등될 위기에 직면했을 때 기적적으로 팀을 구해 레스터 팬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아들을 비롯한 세 선수들의 탈선으로 인해 불명예스럽게 경질되었고 그후 레스터 시티에 부임한 클라우디오 라니에리가 너무나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그대로 묻혀져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레스터가 2015-16 시즌에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데엔 이 사람의 공도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2. 선수 시절

피어슨은 1980년 17살의 나이에 논-리그인 Heanor Town에 입단하는 것으로 축구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한 시즌 동안 그 팀에서 활동하다가 1981년 11월 2부리그에 속했던 슈루즈버리 타운으로 이적했다. 그의 첫번째 1군 무대 데뷔전은 1982-83 시즌 개막전이었다. 이날 그는 올드햄 애슬래틱을 상대로 선전했지만 팀은 1:0으로 패했다. 이후 피어스는 1983년 3월 12일에 반슬리를 상대로 데뷔 첫 골을 기록했다. 피어슨은 1982-83 시즌에 39경기에 출전하여 든든한 센터백 역할을 수행했고 팀은 리그 9위를 기록했다.

이듬해, 슈루즈버리는 지난 시즌보다 한계단 상승한 8위를 거두었지만 피어슨은 이 시즌엔 부상에 시달려 26경기 출전으로 그쳤다. 부상은 매우 심각해서 1984-85시즌을 통째로 날려버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피어슨은 1985-86 시즌에 복귀한 후 35경기를 출전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팀은 이 시즌엔 17위로 추락하고 말았다.

1986-87 시즌, 그는 42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기록하며 분전했지만 슈루즈버리는 오히려 18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결국 피어슨은 이대로 있다간 2부리그에서 영원히 썩겠다고 판단하고 이적을 요청했고 1987년 10월 12일 25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셰필드 웬즈데이로 이적했다. 피어슨은 슈루즈버리 타운에서 6년간 활동하면서 모든 대회에서 184경기에 출전했고 5골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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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필드 웬즈데이 시절 피어슨

피어슨은 쉐필드 웬즈데이로 이적한 후 곧 그 팀의 핵심 멤버가 되었고 1990-91 시즌에 팀의 주장으로서 리그컵 우승을 달성했다. 특히 리그컵 결승전에선 MOM에 선정될 만큼 훌륭한 활약을 선보여 팬들의 찬사를 받았다. 또한 그는 이 시즌에 웬즈데이를 1부리그로 승격시키며 마침내 1부리그에 발을 들이는 데 성공했다. 1992-93 시즌, 그는 셰필드 웬즈데이가 다시 한번 리그컵 결승을 향해 순조롭게 나아가는 데 기여했으나 리그컵 4강전에서 그는 그만 무릎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결국 피어슨은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했고 쉐필드 웬즈데이는 결승전에서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그는 셰필드 웬즈데이에서 전 대회를 포함하여 200경기 이상을 소화하며 14골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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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즈브러 시절 피어슨

피어슨은 1994년 75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브라이언 롭슨이 이끌고 있는 미들즈브러로 이적했다. 그는 그 팀에서 주장이 되었고 팀을 1994-95 시즌에 3부리그 우승으로 승격, 1997-98 시즌에 2부리그 준우승을 기록하며 EPL 승격으로 총 2번의 승격을 이뤄냈다. 또한 피어슨은 미들즈브러를 1997년 FA컵 결승전과 리그컵 결승전, 1998년 리그컵 결승전에 진출시켜 총 3번의 국내 컵대회 결승전에 도달해 준우승을 기록했다. 이후 피어슨은 1998년에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

3. 감독 시절

3.1. 감독 대행 시절

그는 1998-99 시즌에 4부리그에 속한 칼라일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부임했고 팀이 논 리그에 해당하는 5부리그로 떨어지지 않는데 공헌했다. 이후 1999년, 그는 게리 멕슨 감독의 부름을 받고 스토크 시티의 1군 코치가 되었다. 피어슨은 멕슨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뒤에도 스토크에 남아 코치로서 일하다가 2001년 팀을 떠났다.

2004년 11월, 피어슨은 브라이언 롭슨 감독의 부름을 받고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의 수석코치가 되었다. 롭슨이 2006년 9월 갑작스럽게 팀을 떠나자, 그는 감독 대행으로 부임하여 3번의 승리와 한 번의 무승부를 이끌었다. 하지만 웨스트브로 미치 알비온은 그를 정식 감독으로 정하지 않고 토니 모브레이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2006년 10월 19일, 피어슨은 셰필드 웬즈데이의 감독이 될 것이라는 루머에 휩싸였지만 그 대신에 뉴캐슬의 수석코치로 부임했다. 그리고 2007년 2월 1일엔 잉글랜드 U-21 대표팀 감독 스튜어트 피어스의 제안을 수락하고 대표팀 수석코치가 되었고 피어스가 계약 만료로 물러나자 그가 대신 임시 감독으로서 2007년 3월 24일 이탈리아의 친선경기를 이끌어 3:3 무승부를 거두었다. 그후 2007년 5월 6일 글렌 로더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임하자, 그는 뉴캐슬의 감독 대행이 되어 잔여경기를 치뤘다. 하지만 뉴캐슬은 그를 정식 감독으로 선임하지 않았고 샘 알라다이스를 새 감독으로 선임했다.

그런데 알라다이스가 2008년 1월 9일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자, 피어슨은 다시 뉴캐슬의 감독 대행이 되었다. 그는 2008년 1월 9일 맨체스터 유타이티드와의 경기에서 호날두의 해트트릭, 카를로스 테베스의 2골, 그리고 리오 퍼디난드의 골로 6:0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후 일주일이 지난 1월 16일, 케빈 키건이 뉴캐슬의 새 감독으로 부임했고 피어슨은 뉴캐슬을 떠나야 했다.

3.2. 사우스햄튼 FC

2008년 2월 18일, 피어슨은 사우스햄튼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사우스햄튼은 2부리그에서 3부리그로 강등 위기에 몰려 있어서 그에게 강등 탈출을 맡겼다. 피어슨의 사우스햄튼에서의 첫번째 경기는 플리머스 아가일과의 경기였고 결과는 2:0 패배였다. 이후 사우스햄튼은 아슬아슬하게 강등권과 인접한 성적을 찍다가 마지막 날에 셰필드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1:0으로 지다가 피어슨의 교체가 통한 덕분에 3:2 역전승을 거둬 간신히 챔피언십 잔류를 확정지었다. 이후 피어슨은 2008년 5월 30일 사우스햄튼이 네덜란드 출신 감독인 얀 포르트플리트를 선임하면서 팀을 떠났다.

3.3. 레스터 시티 FC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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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리그 우승을 달성한 직후

2008년 6월 20일, 피어슨은 레스터 시티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과거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 및 셰필드 웬즈데이에서 함께 했던 코치들을 불러들였고 그들과 함께 2008-09 시즌 레스터의 경기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레스터는 시즌이 시작한 직후 4경기에서 3경기를 이겼고 피어슨은 이 공으로 8월의 3부리그 감독 상을 수상했다. 그후 브라이튼에게 2:0으로 이기고 있다가 3:2로 뒤집히는 충격패를 맞이했지만 곧 분위기를 전환시키고 2008년 11월 1일부터 2009년 3월 7일까지 23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벌이며 1위를 굳건히 했다. 그 결과, 피어슨은 2009년 4월 18일 사우스앤드를 상대로 2:0 승리를 거두고 우승을 달성, 챔피언십으로 승격했다. 그는 이 공적으로 2008-09 시즌 3부리그 올해의 감독에 선정되었다. 이 시즌, 레스터는 46경기에서 단 4패만 기록하며 승점 96점을 획득했다. 이는 3부리그 역사상 최소 패배 기록이라고 한다.

2009년 여름, 피어슨의 레스터는 챔피언십에서도 거침없는 상승세를 보였다. 그들은 홈에서 무적과도 행보를 보이며 2009년 9월 26일 프레스턴에게 2:1 패배를 당한 걸 제외하고 패배를 하질 않는 강력한 면모를 보였다. 그 결과 레스터는 챔피언십에 승격하자마자 곧바로 5위를 기록하며 EPL 승격을 위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에서 카디프 시티에게 종합 3:2로 패배, EPL 승격은 아쉽게 실패했다. 그래도 그가 레스터에서 보여준 2년간의 행보는 실로 세간의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 시기 피어슨은 레스터의 구단주 밀란 만다라치와 갈등을 빚었다. 결국 2010년 여름, 만다라치는 클럽을 팔아치우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고 피어슨과의 감독 계약도 연장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피어슨은 훗날 자신은 계속 레스터에 남고 싶었는데 구단주가 노골적으로 얼른 나가라고 부추겼다며 분노를 토로했다. 결국 피어슨은 2010년 여름 헐 시티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3.4. 헐 시티 AFC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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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29일, 피어슨은 헐 시티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헐 시티는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등된 후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피어슨은 재정이 부족한 와중에도 놀베르토 솔라노, 리암 로세니어, 로베르트 코렌, 제이 심슨 등을 영입했다. 이후 피어슨이 이끄는 헐 시티는 초반에 부진했지만 9월에 노리치 시티를 격파한 후 반등하여 원정에서의 14연속 무패를 기록했다. 이 기록은 클럽 역사에서 66년만에 거둔 성과였다. 하지만 정작 홈에선 부진하였고 헐 시티는 11위에 머물러야 했다.

2011-12 시즌, 헐시티의 출반은 괜찮았다. 클럽은 11월 중순까지 승격 플레이오프권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피어슨은 자신에게 돌아와달라는 레스터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시즌 도중 헐 시티를 떠나 레스터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3.5. 레스터 시티 FC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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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레스터의 구단주였던 밀란 만다라치는 태국의 갑부 비차이 스리바드하나프라브하에게 구단을 넘겨줬다. 비차이 회장은 레스터를 인수한 뒤 과거 레스터를 잘 이끌었던 피어슨을 재선임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피어슨은 2011년 11월 15일, 당시 챔피언십 12위를 찍고 있던 레스터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피어슨은 첫 3경기에서 승점 7점을 획득하며 좋은 출발을 보였고 레스터는 성적을 6위로 끌어올렸다. 그러다가 헐 시티와 맞붙게 되었을 때, 헐 시티 팬들은 시즌 도중에 느닷없이 레스터로 가버린 피어슨을 향해 가룟 유다라며 욕설을 퍼부었고 레스터는 2:1로 패하고 말았다.

헐시티 전에서의 패배로 기세를 잃은 레스터는 5경기 연속 무승을 기록하며 뚝 떨어졌다. 그러다가 2012년 1월, 레스터는 피어슨의 격려를 받으며 다시 기세를 끌어올려 크리스탈 팰리스를 격파한 후 성적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해 2월, 피어슨은 2:2 무승부로 끝난 미들즈브로와의 경기 직전에 퇴장당했다. 심판이 레스터 측 드레싱룸에 들어갔다가 피어슨이 왜 들어오느냐며 격하게 항의하자 퇴장을 명령한 것이다. 이에 피어슨은 자신의 퇴장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나는 내 선수들에게 설명하고 있었고 누구라도 내 팀과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 심판은 나더러 서두르라고 했고 나는 내 권리를 지키기 위해 나가라고 했다. 나는 내 감독 권한이 훼손된 것을 참을 수 없다.

피어슨의 주장은 받아들여졌고 그는 잉글랜드 축구 협회로부터 무징계 처분을 받았다. 이후 레스터는 챔피언십 9위를 기록하며 지난 시즌보다 한결 나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2012-13 시즌, 레스터는 시즌 초반 5경기에서 3패를 기록하며 저조한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12경기에서 무패 행진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타 3위권에 진입했다. 이후 잠시 주춤하던 레스터는 이내 5연속 승리를 거두며 카디프에 이은 리그 2위를 기록하며 승격을 향한 꿈에 부풀러올랐다. 하지만 시즌 막판에 저조한 성적을 거둬 3위를 기록,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이후 레스터는 왓포드와의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홈에서 1:0 승리를 거두었고 원정에서 후반 막판까지 2:1로 지고 있었다. 이대로 경기가 끝난다면, 레스터는 원정골에서 앞서므로 승격 플레이오프 최종전에 진출하게 되었다. 더구나 경기 종료 1분 전, 레스터는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이제 키커로 나선 앙토니 크노카르트가 페널티킥을 성공시킨다면 원정에서 2:2 무승부를 기록, 당당히 결승전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 광경이 펼쳐지고 말았다. 앙토니 크노카르트의 슛이 상대 골키퍼에 의해 저지된 데 이어 왓포드 선수들이 빠른 역습으로 가져가더니 트로이 디니가 절묘한 발리슛으로 골을 넣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로 인해 왓포드가 3:1로 앞서게 되었고 경기는 그대로 종료되었다. 결국 레스터는 골 득실에서 2:3으로 밀려, 결승전 진출이 좌절되고 말았다.

너무도 허무하게 날아가버린 EPL로의 승격. 그러나 피어슨은 선수들을 다독여 다음 시즌에 승격을 향한 전의를 불태우는 데 성공했다. 레스터는 2013-14 시즌에 챔피언십을 그야말로 씹어먹었다. 그들은 시즌 초반부터 끝까지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고 2013년 12월 21일부터 2014년 2월 1일까지 9경기 연속 승리를 거두었고 뒤이어 3월말까지 20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달렸다. 그 결과 레스터는 2위와 승점 10점차에 달하는 격차를 기록하며 우승을 차지, 마침내 고대하던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확정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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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챔피언십 우승을 달성한 뒤 기뻐하고 있는 레스터 선수들.

고대하던 프리미어리그에 승격한 레스터 시티. 그러나 그들의 첫 시즌은 매우 힘겨웠다. 레스터 시티는 한때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5:3 승리를 거두는 등 분전했지만 이내 13경기에서 승점 2점만 얻는 끝없는 부진에 휩싸였고 헐시티-리버풀-빌라를 상대로 2승1무를 거두며 반등하는 듯 했지만 다시 연패에 빠지며 2015년 2월 무렵엔 압도적인 꼴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급기야 2015년 2월 7일, 홈에서 크리스탈 팰리스에게 0-1로 패했는데 이 경기에서 크리스탈 팰리스의 제임스 맥아더가 볼을 다투다가 나동그라지며 터치라인의 피어슨까지 같이 넘어졌었는데 피어슨이 일어나서 갑자기 같이 넘어진 맥아더의 목을 조르려는 시늉을 했고 맥아더가 일어났는데도 그의 소매를 계속 잡으면서 논란이 불거졌다.[1] 이 논란에 대해 피어슨은 “맥아더가 무언가 내게 말을 건넸기 때문이었다. 물론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언급할 필요가 없다”며 “나는 우려하는 것보다 내 자신을 잘 컨트롤할 수 있다. 맥아더와도 아무 문제없다”며 해명했지만 피어슨은 곧 경질될 것이라는 루머에 시달렸다. 영국 언론 가디언지는 클럽 스탭들, 심지어 피어슨 자신조차 곧 경질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같은 날, 레스터 보드진은 "이러한 보도들은 부정확하고 근거도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그래도 피어슨이 경질되고 레스터가 강등되리라는 것은 기정사실이나 다름 없어 보였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피어슨은 2015년 4월부터 9경기에서 7승 1무 1패를 기록하며(그나마도 1패는 리그 챔피언 첼시에게 당한 것이었다) 압도적인 꼴지에서 14위로 뛰어오른 것이다! 이리하여 레스터는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크리스마스에서 꼴지를 기록한 이래 강등을 모면한 최초의 클럽으로 기록되었다. 팬들은 피어슨의 지도력을 칭찬했고 다음 시즌에도 그가 팀을 잘 이끌기를 기대했다.

3.5.1. 아들 때문에 경질되다

2015년 6월, 레스터는 프리 시즌에 구단주의 조국인 태국에서 친선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그런데 U-21팀 소속인 톰 호퍼, 아담 스미스, 제임스 피어슨이 현지 밤 업소에서 동영상을 촬영했다. 여기까지는 사생활이라고 넘길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이 3명이 동영상에서 동양인 비하를 일삼은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미성년자인 태국인 소녀들에게 동성끼리의 변태 성행위까지 강요했다. 당연히 태국에선 난리가 났고 레스터 현지에서도 많은 아시아계 이민자가 거주하고 있었기에 당장 이 3명을 추방하고 구단은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이 3인방은 곧바로 영국으로 보내졌고 영국 언론은 부끄러운 3인방이라고 지칭하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구단주의 얼굴에 먹칠을 제대로 한 샘이자 나라 망신 그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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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중 제임스 피어슨은 바로 나이젤 피어슨의 아들이다. 이에 아들 교육을 어떻게 이따위로 하냐, 아들이 동양인을 이따위로 생각한다면 아버지도 그러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구단에서는 6월 17일에 사과 성명을 발표하고 세 사람을 방출했다. 다만 피어슨에게는 징계를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6월 30일, 피어슨은 결국 경질되고 말았다. 구단 측에서는 "아들 때문에 경질된 게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그 말을 믿을 이는 많지 않았다.

레스터 서포터즈는 멍청한 아들 때문에 졸지에 경질되어버린 피어슨을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구단의 처사에 불만을 표했다. 그러나 후임인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이 리그 우승이라는 꿈같은 업적을 거둬버리면서 피어슨은 많이 잊혀졌다. 그래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프리미어 리그 승격의 기틀을 닦아놓은 감독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3.6. 더비 카운티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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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7일 챔피언십 클럽인 더비 카운티와 3년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그해 9월 27일, 피어슨은 더비 구단주 멜 모리스의 주도하에 시행된 구단 내부 조사로 인해 감독 자격이 일시 정지되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피어슨은 모리스 구단주가 훈련 과정을 무인 드론으로 감시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했고 모리스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내부 조사를 빌미로 그의 감독 권한을 중지시켰다고 한다. 결국 2016년 10월 8일, 피어슨은 팀이 20위로 떨어진 상황에서 구단과 상호 합의 후 구단을 떠났다.

3.7. OH 뢰번

2017년 9월 22일 레스터의 모기업인 킹 파워 그룹이 소유한 벨기에 퍼스트 디비전 B의 OH 뢰번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2019년 2월 3일 경질되었다.

3.8. 왓포드 FC 시절

2019년 12월 6일, 피어슨은 왓포드 감독으로 부임했다. 2019-20 시즌이 끝날 때까지 감독직을 맡으면서 팀을 강등권에서 구원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12월 14일 첫 경기였던 17라운드 선두 리버풀 원정에서 2:0으로 졌지만 상대의 골문을 여러차례 위협하는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희망을 보여줬고 2번째 경기인 18라운드 맨유와의 홈경기에서 2:0 완승을 기록하며 팀의 6경기 무승을 끊어냈다. 그리고 12월 26일 19라운드 돌풍의 승격팀 셰필드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1:1로 비기며 꼴찌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이틀 뒤 20라운드 18위였던 빌라와의 홈경기에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3:0 대승으로 3경기 승점 7점을 따냈다. 17경기 1승이었던 팀을 3경기 만에 2승을 올렸다.

그리고 2020년 첫 경기인 21라운드 울버햄튼과의 홈경기에서도 2:1 승리를 기록하며 감독직을 맡은 이후 불과 5경기 만에 승점 10점을 기록했다.[2] 그리고 22라운드 18위 본머스 원정에서 3:0 대승, 아스톤 빌라와 본머스를 강등권으로 내리고 왓포드는 17위로 강등권에서 드디어 탈출하며 피어슨 매직을 보여주었다. 23라운드 토트넘과의 홈경기에서는 디니의 PK 실축으로 0:0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상승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허니문 기간이 끝나고 24라운드 강등권 맞수였던 빌라 원정에서 2:1로 패배하며 상승세가 꺾이고 강등권으로 내려갔다. 25라운드 에버튼 원정에서 상대에게 버저비터를 허용하며 3:2로 아깝게 졌고 26라운드 브라이턴 원정도 1:1로 비겼다. 홈 데뷔전 승리의 제물이었던 맨유를 상대로 27라운드 원정에서 3:0으로 설욕당하며 19위에 머물렀다.

그리고 한국 시간 2020년 3월 1일, 비커리지 로드에서 펼쳐진 프리미어 리그 28라운드 리버풀전에서 3:0 완승을 거두며 리버풀의 무패 우승과 EPL 최다 연승 기록 수립을 저지했다. 그러면서 왓포드는 카라바오컵 결승전으로 인해 경기가 없었던 빌라와 첼시에 비긴 본머스를 제치고 17위로 올라서며 강등권에서 탈출했다.

7월 18일 웨스트 햄전에서 1:3으로 패한 후 갑작스레 경질되었다. 리그 종료 2경기를 남기고 일어났기에 논란이 있었고[3] 이후 왓포드는 남은 2경기 모두 패하면서 강등되었다. 당연히 현지 팬들은 경질 결정을 이해하지 못한 상황.[4][5]

3.9. 브리스톨 시티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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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시즌 도중 경질된 딘 홀든 감독의 후임으로 브리스톨 시티와 계약하게 된다.

2023년 10월 29일, 리그 15위로 부진 끝에 결국 경질되었다.#

4. 수상

4.1. 선수 시절

  • 셰필드 웬즈데이 FC
    • 2부 리그 승격: 1990-91 시즌
    • 리그컵 우승: 1991년

  • 미들즈브러 FC
    • 3부 리그 우승: 1994-95 시즌
    • 2부 리그 승격: 1997-98 시즌
    • FA컵 준우승: 1997년
    • 리그컵 준우승: 1997년, 1998년

4.2. 감독 시절

  • 3부 리그 우승: 2008-09 시즌 (레스터)
  • 챔피언십 우승: 2013-14 시즌 (레스터)

4.3. 개인

  • 챔피언십 올해의 감독: 2013-14 시즌
  •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감독: 2014년 4월
  • 챔피언십 이달의 감독: 2010년 2월, 2013년 1월, 2014년 1월, 2014년 3월
  • 3부리그 이달의 감독: 2008년 8월, 2008년 12월

5. 기타

  • 감독인데도 벤치가 아닌 관중석에서 무전기로 지시를 내리는 경우가 많다.
  • epl에서 싸움 제일 잘할 것 같은 감독 1위로 선정되었다.


[1] 14라운드 1-3으로 진 리버풀과의 홈경기에서도 욕하는 홈관중에게 "어디 가서 그냥 죽어버려!(F**k Off! & Die!)”라고 맞받아치며 언쟁을 벌였다. 영상 끝까지 언쟁에 대한 사과를 거부하며 FA로부터 1만파운드의 벌금과 1경기 출장정지를 받았다.[2] 부임하기 전까지 왓포드는 16경기 승점 9점을 기록했다.[3] 거기다가 피어슨 감독은 최근 왓포드 감독들중 가장 승률이 높았다.[4] 현지 팬들은 시즌 첫번째 감독인 하비 그라시아의 경질도 이해하지 못 하는 상황이었다.[5] 웨스트 햄전에서 물론 패하기는 했지만, 그 경기 이전 피어슨은 2경기 연속 승리를 가져가면서 팀의 분위기를 점차 반전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당시 남은 경기 2개가 맨시티, 아스날이라는 강팀과의 경기였지만 본인들이 리그에서 무패를 자랑하던 리버풀을 전술로 완승했고 당시 17위였기 때문에 만약 경질하지 않았더라면 상황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잔류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감독을 오히려 경질시켜버렸으니 팀의 사기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리가 문무하다. 맨시티전에서는 골키퍼였던 벤 포스터가 잘해줬으나 결국 화력을 이기지 못해 대패했다. 여기서 한두 골만 덜 먹혔더라도 왓포드는 최종전을 앞두고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 아스날전에서는 전반전에만 3골을 먹히며 절망적인 경기력을 보여줬고 2골을 넣으며 따라갔으나 결국 패해 강등당했다. 경질이라는 무리한 수를 쓰지않고 최소한 리그가 끝날때까지만이라도 기회만 줬다면 잔류가 가능했을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