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4 16:14:43

브라이언 롭슨

브라이언 롭슨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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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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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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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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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대
파일:셰필드 유나이티드 FC 로고.svg

23대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케빈 키건
(1976~1982)
브라이언 롭슨
(1982~1990)
게리 리네커
(1990~199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역대 주장
새미 매킬로이
(1979~1982)
브라이언 롭슨
(1982~1994)
스티브 브루스
(1994~1996)
}}} ||
브라이언 롭슨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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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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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82 · 1982-83 · 1983-84 · 1984-85 · 1985-86 · 1988-89
}}} ||
Manchester United Football Club Ambassador
파일:Bryan_Robson.jpg
<colbgcolor=#da020e> 이름 브라이언 롭슨
Bryan Robson
출생 1957년 1월 11일 ([age(1957-01-11)]세)
영국 잉글랜드 더럼 체스터-르-스트릿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80cm
주발 왼발[1]
직업 축구 선수 (미드필더[2]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da020e> 선수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1975~198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81~1994)
미들즈브러 FC (1994~1997)
감독 미들즈브러 FC (1994~1997 / 선수 겸 감독)
미들즈브러 FC (1997~2001)
브래드포드 시티 AFC (2003~2004)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2004~2006)
셰필드 유나이티드 FC (2007~2008)
태국 대표팀 (2009~2011)
기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1~ / 앰버서더)
국가대표 90경기 26골 (잉글랜드 / 1980~1991)

1. 개요2. 유년기3. 선수 경력4. 지도자 경력5. 은퇴 이후6. 플레이 스타일7. 기록
7.1. 선수
7.1.1. 대회 기록7.1.2. 개인 수상
7.2. 감독
7.2.1. 대회 기록7.2.2. 개인 수상
7.3. 수훈
8. 브라이언 롭슨에 대한 헌사9. 뒷이야기

[clearfix]

1. 개요

영국(잉글랜드)축구 선수 출신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이며, '캡틴 마블'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현역 시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12년 동안 주장을 맡아 암흑기의 빠진 팀을 이끌었고, 알렉스 퍼거슨의 부임 후에는 2회의 프리미어 리그를 포함해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 유년기

1957년 1월 11일 잉글랜드 더럼 주의 체스터 리 스트리트에서 트럭 운전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3. 선수 경력

3.1.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1972년, 15살의 나이에 당시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의 감독이었던 돈 하우 감독의 눈에 들어 유소년 팀에 들어가 2년 동안 뛰었다. 그 후 1974년, 17살에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7년 동안 WBA에 뛰면서 팀을 중상위권 팀으로 유지시켰다.

3.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내가 맨유로 간 이유는 돈이 주된 이유는 아닙니다. 나는 단지 승자가 되고 싶었을 뿐이죠.
맨유로 간 이유에 대한 롭슨의 답변
1981년 리버풀 FC의 구애를 받았으나, 그 해 10월 1일 롭슨은 당시 영국 최고액 이적료였던 150만 파운드로[3] 맨유행을 택하게 되었고 맨유에서 그의 전설적인 커리어가 시작된다.[4] 맨유에서는 론 앳킨슨 시절인 1980년 초반에 2개의 FA컵을 들어올리며 나름 선전하기 시작하여 1986년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재임한 뒤 1990년에 FA컵을 들어올렸고, 1993년과 1994년에는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2개나 들어올리는 최대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 체제의 기반을 다지며 캡틴 마블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팀의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유소년 팀 및 후보 선수들의 훈련에 자주 참여해 선수들에게 많은 동기부여와 가르침을 주었다고 한다.

타고난 리더였던 그는 강인한 정신력과 끝없는 승부욕의 소유자였으며 맨유의 붉은 유니폼을 입었을 때나,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흰 유니폼을 입었을 때나 가리지 않고 항상 120%의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그는 맨유에 있던 내내 정신적인 멘토 역할을 누구보다도 확실히 수행했고, 실력적인 면에서도 그의 중원 조율 능력은 맨유를 다시금 정상으로 올려놓는 데 톡톡히 일조했다.

4. 지도자 경력

4.1. 미들즈브러 FC

선수 생활 말년인 1994년에 미들즈브러에 선수 겸 감독으로 부임하여 2부 리그에 있던 미들즈브러를 1부 리그로 올리는 데 공헌하였고, 1995년에는 주니뉴 파울리스타를 영입하여 뻥축 일색이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자 시도하면서 1996/97 시즌에 리그컵-FA컵 준우승 더블을 달성하며 선전하였다. 그러나 주축 선수들이 독감에 걸리는 불운으로 인해 승점 3점 삭감 조치를 받아 리그에서 강등당했다. 그래도 1997년부터 감독직에 전념하여 한 시즌만인 1998년에 프리미어리그에 승격하여 나름 중위권을 유지하였지만, 결국 2000/01 시즌 도중에 성적이 안 좋아지자 테리 베너블스와 함께 감독을 맡다가 잔류 후 나란히 사임했다.

이후 2003년에 브래드포드 시티의 감독을 맡다가 2004년에 프리미어리그로 갓 승격된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의 감독을 맡아 첫 시즌에 잔류에 성공했으나 2005/06 시즌에 강등당하고 쫓겨났고, 이후 셰필드 유나이티드 FC 감독을 거쳐 2011년에 태국 국대 감독을 끝으로 은퇴하였다.

5. 은퇴 이후

2011년 7월 1일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앰버서더로 지명되었다.

6. 플레이 스타일

당대 최고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중 한 명이었다. 전술적 이해도가 매우 뛰어나 어느 전술이든 탁월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롭슨과 비슷한 스타일, 비슷한 위상을 가진 당대의 선수는 유벤투스에서 뛰던 마르코 타르델리와 리버풀의 그레이엄 수네스를 들 수 있다.

브라이언 롭슨의 가장 큰 특징은 루드 굴리트처럼 어느 포지션에서나 뛸 수 있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전술의 변화에 구애 받지 않고 한결같은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었다. 주로 중앙 미드필더로 뛰었지만, 그에 대한 말말말에서의 언급처럼 탁월한 위치선정을 바탕으로 전술에 따라 수비형 미드필더로 뛸 수 있었고 센터 포워드 역할도 가능했다.

잉글랜드 출생의 모든 선수 중에서 패싱, 태클, 드리블, 슈팅 등 모든 축구 기술을 가장 고르게 갖추었던 선수로 평가된다.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인 만큼 체력도 아주 훌륭했다. 프로필에서 보여지는 신체조건은 다소 평범하지만, 그 시절 영국 프리미어 디비전에서 잘 적응해 최고의 미드필더로 불렸던 것만 보더라도 그의 몸싸움 테크닉이 훌륭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의 유상철과 비슷한 면을 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잦은 부상을 유발하는 원인이었다. 롭슨은 신속한 공수전환과 활동량이 돋보이는 선수였는데, 이런 플레이 스타일은 엄청난 체력 소모를 일으켜 자잘한 부상을 종종 불러오곤 했다.

7. 기록

7.1. 선수

7.1.1. 대회 기록

7.1.2. 개인 수상

  • PFA 올해의 팀: 1981-82, 1982-83, 1983-84, 1984-85, 1985-86, 1988-89
  • PFA 세기의 팀(1977~1996): 2007
  • BBC 풋볼 리그 디비전 1 올해의 골: 1985-86
  • 맷 버스비 올해의 선수: 1988-89
  • FWA 공로상: 2006
  • IFFHS 올타임 잉글랜드 드림팀: 2021

7.2. 감독

7.2.1. 대회 기록

7.2.2. 개인 수상

7.3. 수훈

8. 브라이언 롭슨에 대한 헌사

마이 캡틴. 그는 그의 시대의 스티븐 제라드였다.
데니스 어윈
로보는 완벽한 리더였다. 그는 포백 앞에 버티고 있다가 상대 팀의 공격을 분쇄하고 헤딩을 따냈다. 하지만 그는 또한 딱 떨어지는 타이밍에 앞으로 돌진해 들어가 득점하는 데에도 능했다. 그는 결코 축구화들이 날라다니는 공중에 머리를 갖다대기를 두려워한 적이 없다(그가 그 많은 부상을 극복해야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것. 당신이 그에 관해 들은 모든 것은 사실이다. 그는 진정 페노메날. 그것이 내가 말할 수 있는 전부다.
테리 부처
그는 나의 또 다른 영웅이었다. 나는 브라이언 롭슨에 대해 완전히 경외감에 빠져있었다. 심지어 그와 함께 플레이했을 때에도! 그의 부상만 아니었더라면 그는 모두의 베스트 일레븐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왜냐면 그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올라오기도 내려오는 데에도 능했고 수비도 할 수 있었으며 패스도 득점도 할 수 있었다.
게리 리네커
그는 영감을 주는 리더였다. 언젠가 나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플레이한 적이 있는데 그 경기에서 그는 그 7번을 달고 쇼를 주도했다. 우리 팀의 미드필드를 찌그러뜨리고 결국 굴복시키면서 말이다. 그는 확실히 그 유나이티드의 엔진이었다.
맷 르티시에
내가 스콜스에게 바칠 수 있는 최대의 찬사는 그가 내게 브라이언 롭슨을 떠올리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가 박스로 침투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말이다. 하지만 그 방면에 있어 로보보다 뛰어난 선수는 없었지. 그는 독창적인 행동가였다. 그는 온갖 도전에 그의 몸을 던지곤 했고 피치 위에서 모든 공간을 커버하려 했으며 또한 박스 어딘가에 튀어나와 골을 넣곤했다. 진정 환상적인 선수.
레이 윌킨스
요즘 선수들은 문신을 보이려하고 귀걸이를 과시하려 든다. 어떤 선수들은 이제 드레싱 룸에서 울기까지 한다. 전 캡틴이던 브라이언 롭슨은 결코 운 적이 없다.
알렉스 퍼거슨
테리 부처, 브라이언 롭슨, 폴 개스코인, 호마리우, 게리 리네커, 앨런 시어러와 같은 위대한 선수들과 함께했던 것은 감독으로서 하나의 특권이었다.
시어러와 브라이언 롭슨은 내가 가졌던 최고의 영국 선수들이었다.
킨과 브라이언 모두 엄청난, 영웅적인 올라운드 플레이어들이었지만 브라이언 롭슨은 더 많은 골을 가져온다.
바비 롭슨
브라이언 롭슨, 토니 아담스. 그들은 아주 헌신적으로 팀을 위했다. 얼굴과 몸이 뜨거워져도, 경기가 끝날 때까지 공 앞에서 일관된 태도를 유지했다. 그리고 다른 선수들 역시 그들을 따랐다. 나는 젊은 시절에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을 즐겼다. 그들의 플레이는 지금의 나를 돋보이게 만든 원동력이다.
존 테리#

9. 뒷이야기

  • 이 시대의 영국 선수들이 그랬지만 롭슨 역시 술을 엄청나게 좋아했다. 하지만 맨유의 주장답게 아무리 술을 늦게까지 많이 마셔도 훈련에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새벽 5시까지 마셔도 10시에 시작하는 훈련에는 항상 제일 먼저 모습을 드러냈고 당시 영국 축구계에서는 동료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술에 취한 상태로는 훈련에 참가하지 못하게 했다. 훈련에 참가하려면 토하고 뛰고를 반복해서 술이 깨야 가능했다.


[1] 오른발 볼 터치와 슈팅도 능한 양발잡이였다.[2] 중앙 미드필더[3] 이 기록은 6년 동안 깨지지 않다가 리버풀이 뉴캐슬의 공격수였던 피터 비어슬리를 190만 파운드로 영입할 때 깨진다.[4] 당시 WBA 감독이었던 론 앳킨슨과 레미 모제스도 맨유행을 택했다.[5] 관보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