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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나정윤(羅正綸) |
이명 | 나정륜(羅正倫) |
일문식 이름 | 마츠시마 마사노리(松島正綸) |
생몰 | 1900년 7월 19일 ~ 1942년 9월 7일 |
출생지 |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면 칠동리 |
사망지 | 전라남도 보성군 |
추서 | 대통령표창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2. 생애
나정윤은 1900년 7월 19일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면 칠동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0년대 중반부터 벌교면을 중심으로 농민운동, 노동운동, 청년운동 등 사회 운동에 가담했고, 1925년 1월 서울의 조선노농총동맹(朝鮮勞農總同盟)에서 노동단체와 농민단체의 분립(分立)이 결정되자 이에 찬성하여 12월 12일 보성군 벌교포에 소재한 동벌노농동맹(東筏勞農同盟)에서도 노동연맹(勞動聯盟)과 농민연합회(農民聯合會)로 분립하여 새로 창립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12월 19일 창립된 농민연합회의 창립준비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26년 4월 27일 벌교청년회관에서 노동연맹이 창립될 때 박맹(朴猛)·김인수(金寅洙)와 함께 전남노동연맹(全南勞動聯盟) 창립대회의 출석대표로 선정되었다.1927년 4월 15일 벌교청년회(筏橋靑年會) 정기총회에서 임시의장으로 활동했으며, 7월 30일에 개최된 신간회 벌교지회 설립대회에서 대표의원으로 선정되었다. 1928년 4월 26일 벌교청년회의 등사기를 이용해 <정세보고(情勢報告)>라는 제목의 항일 문서를 인쇄했다. 그 내용은 제당국 및 조선총독의 폭압적인 경찰정치를 비판하고 ‘약소민족인 한국 민족의 고혈(膏血)을 빨아먹는 수탈’에 대해 비난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내용의 문서를 약 30부 인쇄하여 다음날인 27일 벌교수산회사(筏橋水産會社)의 총회 자리에서 회원 수십 명에게 배포했다.
그러나 1928년 7월 26일 재만동포의 위문금 문제로 김익두(金益斗)와 함께 검거되었다. 재만 한국인의 구조(救助)를 목적으로 강우국(姜又國) 외 72명으로부터 모집한 자금 약 20원을 보관하던 중 이를 개인적인 용도로 유용하여 횡령(橫領)했다는 혐의였다. 사실 나정윤은 7월 1일 벌교 내 각 사회단체가 개최한 긴급연합위원회에서 김익두의 비행을 응징하기 위한 실행위원에 선정됐다. 그럼에도 일제는 그가 김익두와 함께 횡령했다고 몰아세웠고, 8월 16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횡령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8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보성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2년 9월 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나정윤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