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28:13

남경명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족보명 남용희(南溶熙)
경명(慶明)
본관 의령 남씨[1]
출생 1898년[2] 9월 23일
경상남도 영산군 읍내면 성내동
(현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 성내리)[3]
사망 1968년 4월 25일
경상남도 창녕군
묘소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 동리 인산
상훈 대통령표창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남경명은 1898년 9월 23일 경상남도 영산군 읍내면 성내동(현 창녕군 영산면 성내리)에서 아버지 남정건(南廷乾, 1856 ~ ?. 12. 29)[4]과 어머니 김해 김씨 김기택(金基澤)의 딸 사이의 8남 1녀 중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5] 이후 영산면 죽사리로 이주하였다.#

그는 1919년 3월 13일 창녕군 영산면에 있는 남산에서 구중회·김추은(金秋銀) 등과 함께 비밀리에 결사단(決死團)을 조직하고 독립만세시위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했다. 이들은 '독립운동에서 후퇴하는 자는 생명을 빼앗긴다'는 내용의 맹세서에 각기 서명한 후 700여명의 시위군중을 규합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영산면 읍내를 행진하다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5월 1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6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심판결이 일부 최소되었을 뿐 형기는 유지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창녕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8년 4월 2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남경명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1] 의산위공파-군수공파 23세 희(熙) 항렬.[2] 남씨대동보 11권 528쪽에는 1897년생으로 등재되어 있다.[3] 의령 남씨 집성촌이다.[4] 이명 남정술(南廷述).[5] 어머니 김해 김씨는 아버지의 둘째 부인이다. 첫째 부인 단양 우씨 우석동(禹錫東)의 딸은 1855년에 태어나 슬하에 맏형 남백희(南百熙, 1873년생)를 둔 뒤 1882년 8월 23일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