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호 | 여문(汝文) / 지산(芝山) |
본관 | 영양 남씨[1] |
출생 | 1894년[2] 8월 27일 |
강원도 울진현 원북면 고등동 (현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 지정골) | |
사망 | 1955년 2월 8일[3] |
경상북도 울진군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5묘역-42호 |
상훈 | 대통령표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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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2. 생애
남병표는 1894년 8월 27일 강원도 울진현 원북면 고등동(현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 지정골)에서 아버지 남유익(南有翊)과 어머니 담양 전씨(潭陽 田氏) 전상환(田相煥)의 딸 사이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그는 1919년 4월 13일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서 김일수(金一壽)·김재수(金在壽)·전병항(田炳恒) 등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대형기와 태극기를 준비하여 장터에 모인 50여명의 시위군중에게 배부하며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4월 19일 대구지방법원 울진지청[4]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7개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울진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5년 2월 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남병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4년 11월 15일 본래 울진군 북면 고목리 가치산(加峙山)에 묻혀있던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5묘역에 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