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30:43

남시우

성명 남시우(南時祐)
생몰 1884년 11월 26일 ~ 1937년 1월 27일
출생지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내가천리
사망지 경기도 안성군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남시우는 1884년 11월 26일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내가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1일 최은식(崔殷植), 홍창섭(洪昌燮), 이유석(李裕奭) 등이 주동한 양성면, 원곡면 일대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 그는 이날 1,000명의 군중과 함께 외가천리에 있는 원곡면 사무소 앞에 모여서 만세시위를 벌이고, 면장을 선두로 내세워 횃불을 들고 양성면으로 행진했다. 이후 군중은 양성면 내에 있는 주재소, 우편소, 면사무소를 파괴하기로 결의했다.

군중이 양성에 도착할 무렵, 양성 경찰 주재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귀가하던 양성면민 천여 명이 합세함으로서, 군중은 2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오후 10시경 경찰 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남시우는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웠다. 이후 양성 우편소로 가서 그곳의 기물과 건물을 파괴, 방화했으며, 토자 토요테(外里與手)가 경영하는 잡화점과 일본인 고리대금업자 타카 히데토모(隆秀知)의 집을 파괴했다. 그 다음엔 양성면 사무소로 가서 서류의 기물을 파괴하고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치고 해산했다.

4월 2일 새벽 4시에 원곡면으로 돌아온 그는 군중과 함께 원곡면사무소의 건물을 파괴, 방화했고 얼마 후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그 후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 소요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37년 1월 2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남시우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2007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