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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금강면 內金剛面 | |
국가 | 북한 |
광역시도 | 강원도 |
시간대 | UTC+9 |
인구 | 21,824명 |
면적 | 501.42㎢ |
1. 개요
1. 개요
현 금강군의 중심지이다.내금강면(內金剛面)의 면 소재지는 말휘리이다.
삼국시대에는 대양관군(大陽管郡) 또는 마근압(馬斤押)으로 불렸는데 전국 지명을 한화하면서 대양군(大陽郡)이 되었고, 고려 때 장양현(長楊縣)으로 바뀌며 교주(交州)의 임내로 소속된 것이 조선 때까지 이어져 면제 실시 때 그대로 장양면(長楊面)이 되었다.
부군면 통폐합 때도 장양면은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일제강점기 말에 내금강면으로 개칭되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악지대로 동부 면계에 태백산맥이 남북으로 뻗어내려 금강산의 주봉인 비로봉(1,638m)을 비롯해 옥녀봉(玉女峰)·국사봉 등이 솟아 있으며, 서부 면계에도 구단발령(舊斷髮嶺)·증봉(甑峰, 1,267m) 등이 솟아 있다. 이들 산지에서 발원한 여러 작은 내들이 모여 금강천과 동금강천(東金剛川)이 되어 남류하다가 합쳐 북한강이 된다. 이들 강 유역에는 규모는 작으나 평지가 형성되어 있어 농경지로 이용된다.
주 산업은 농업으로 밭농사를 주로 했었으며, 주요 농산물로는 콩·조·감자·메밀·팥·잎담배 등이 생산되었었다. 광업은 장양광산(長楊鑛山)에서 금·은·수연·중석 등이 채굴되었다.
교통은 경원선 철원역에서 분기되는 사철(私鐵) 금강산 전철이 단발령을 넘어 내금강의 장안사 부근까지 도달했었으며, 단발령·말휘리·내금강역의 3역이 설치되어 있었다. 2차 대전 도중 선로가 뜯겨나가 폐역되었고 6.25 전쟁을 거친 후 본래 금강산선의 기점 쪽이던 철원과 김화 대부분을 남한이 수복하면서 결국은 복구되지 않았으며 통일 후에도 금강산선의 선형 문제로 인해 그대로 복구될 가능성은 적다.
원래부터 지리적으로 다른 회양군 일대와 수계와 생활권이 구분되었던 데다 과거의 회양이 너무 넓었고[1] 북한 치하에서 이미 다른 동네로 떨어져 나온 지 오래되었기에 통일 후에도 그대로 회양군 소속이 될지는 알 수 없다.
[1] 세종실록 지리지 기준으로 속현이 5개나 있었고, 그 중 문등현, 수입현이었을 영역인 수입면을 1906년에 양구군에 떼어 줬는데도 이북 5도 기준 회양군은 지금의 홍천군보다 조금 더 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