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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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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실제로는3. 사례4. 여담5. 관련 문서

1. 개요

כִּֽי־שְׁאַל־נָ֭א לְדֹ֣ר רִישֹׁ֑ון וְ֝כֹונֵ֗ן לְחֵ֣קֶר אֲבֹותָֽם׃(원문 성경)
시작은 미약(微弱)하였으나나중은 심히 창대(昌大)하리라 (개역 성경)[1]
처음에는 보잘 것 없겠지만 나중에는 훌륭하게 될 것일세 (공동번역 성서)
자네의 시작은 보잘것없었지만 자네의 앞날은 크게 번창할 것이네. (가톨릭 성경)
Your beginnings will seem humble, so prosperous will your future be. (NIV)
욥기 8장 7절
성경 욥기의 이 문구는 특히 사업가나 수험생 등 도전에 있어 무운・건투를 비는 이들에게서 용두사미의 반대 뜻으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 이 문구만 놓고 보면 비슷한 사자성어로 '대기만성(大器晩成)'이 있다. 기독교 신자들 중에서도 이 말을 조각해서 벽에 걸어두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식으로 좌우명으로 삼은 사례 중 유명한 것이 바로 프랜시스 드레이크. 특히 가게 개업식 단골구절이기도 하다.

사실 이 문구는 절대로 축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2. 실제로는

성경 내용 가운데 이 말을 건넨 화자는 욥의 친구 중 수아 사람인 '빌닷'이라는 사람이다.[2] 이 친구가 욥기 8장 전체에서 욥에게 뭐라뭐라 위로하는 척하면서 은근히 그를 탓하는 말투로 얘기를 한다.

재산과 혈족을 모두 잃고 부스럼병까지 걸려[3] 병상에 눕게 된 욥은 3장에서 자신의 탄생을 저주한다. 4~5장은 엘리바스의 위로를 가장한 조롱이며, 6장부터는 그에 대한 욥의 대답으로 하느님께 매를 맞는 건 차라리 즐거운 일이라 하면서도, 하느님에게는 차라리 나를 죽여주십사 탄식하며 고통을 호소한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 자네들에게 무슨 죄를 지었는지 나무라지만 말고 말해달라"며 자신의 결백을, 자기가 죄를 지어서 병을 얻은 게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는 말이다.

그러던 와중에 빌닷이 조롱하는 말투로 던지는 말이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빌닷이라는 친구는,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주장하며 욥이 받는 고난에 대해 인간적 관점에서 해석한다.
자네 아들들이 그분께 죄를 지었으므로 그분께서 그 죗값을 물으신 것이 분명하네.
욥기 8장 4절, 공동번역성서
빌닷은 데만 사람 엘리바즈, 나아마 사람 소발과 함께 욥을 문병 온 세 친구 중 하나인데, 엘리바즈와 함께 하느님의 섭리를 인본주의의 선두주자인 인과응보의 논리를 펼치며 위로는커녕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으로 사람 속을 은근히 긁는 것이다.[4] 설상가상으로 이 와중에도 욥이 계속 기도를 하자, 욥기 11장에 나올 소발의 충고는 아예 "넌 말이 너무 많아. 입만 나불댄다고 죄가 용서되는 건 아니야."라고 대놓고 빈정대기까지.

하지만 성경 속에서 욥의 고난은 인과응보와는 관계가 없다. 욥기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면 욥이 어떤 자인지, 고난의 원인이 무엇인지 친절하게 나와있다. 욥은 흠 없고, 정직하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미워하면서도 동방에서 으뜸가는 부자였다. 즉,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 바로 그 의로운 부자였다. 게다가 욥은 '등 따시고 배부른 부자들이란 교만하기 마련'이라는 통념적인 편견을 당당하게 깨고, 항상 자녀들이 아무도 모르게 지었을 죄마저 염려하며 자녀의 수대로 번제를 드리는 등 매우 신앙적인 삶의 의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1장 6절에서 갑자기 사탄이 나타난다. 그리고 야비한 습성대로 이간질성 농후한 고자질을 해대어 시작된 고난이다.
사탄이 야훼께 아뢰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느님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당신께서 친히 그와 그의 집과 그의 소유를 울타리로 감싸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주셨고 그의 가축을 땅 위에 번성하게 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이제 손을 들어 그의 모든 소유를 쳐보십시오. 그는 반드시 당신께 면전에서 욕을 할 것입니다."
욥기 1장 9~11절, 공동번역성서
그러니까, 이 대목의 이전 부분까지 함께 연결해서 읽으면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은 말이 된다.
언제까지 그런 투로 말하려는가? 자네 입에서 나오는 말은 마치 바람 같네그려. 하느님께서 바른 것을 틀렸다고 하시겠는가? 전능하신 분께서 옳은 것을 글렀다고 하시겠는가? 자네 아들들이 그분께 죄를 지었으므로 그분께서 그 죗값을 물으신 것이 분명하네. 그러니 이제라도 자네는 하느님을 찾고 전능하신 분께 은총을 빌게나. 자네만 흠이 없고 진실하다면 이제라도 하느님께서는 일어나시어 자네가 떳떳하게 살 곳을 돌려주실 것일세. 처음에는 보잘 것 없겠지만 나중에는 훌륭하게 될 것일세.
욥기 8장 2~7절, 공동번역성서
위의 말은 욥의 세 친구들이 욥에게 한 책망이다. "징징대기 전에 네가 잘못한 것부터 회개하면 잘 될 것이다."하고 비아냥댄 말인 것.[5] 욥이 자신에게는 죄악이 없다고 주장하자 세 친구들은 번갈아 가면서 욥을 책망하기 시작했다. 욥에게 닥친 재앙, 고통받는 원인이 욥의 죄악 때문이라고 세 친구들은 본 것이다. 이는 욥에게 대한 폭력임과 동시에, 신앙적으로 하느님에 대한 신성모독으로 볼 수도 있다.[6] 정작 이렇게 회개 운운하는 친구들은 욥보다 나은 구석이 있을지 의문이라는 점이 포인트. 이게 친구인가, 웬수인가.

이 갑론을박은 욥기 37장까지 이어졌고, 38장에 하느님이 직접 등장하여 욥의 죄악을 밝히게 됐다. 끝장 42장에서 욥이 하느님의 책망을 듣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세 친구와 함께 번제를 드려, 하느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것으로 이야기는 일단락됐다. (더불어, 욥의 세 친구들에게도 꾸짖으셨다.)

42장 10절부터 욥의 인생이 핀 것을 볼 수 있는데, 하느님께서 욥에게 고난이 닥치기 전에 가지고 있던 것의 갑절이나 주었다고 말한다.

3. 사례

실제로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이 창대한 경우는 기업 또는 그 기업의 제품이나 스포츠, 창작물 등지 여러 사례가 있으며, 그 사례가 매우 많기에 따로 서술하지는 않았다.

4. 여담

반대로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미하다는 뜻을 나타내는 표현은 용두사미이다.

5. 관련 문서



[1] 나무위키에서는 보통 기독교에 대한 중립적 입장을 고수하는 취지에서 공동번역 성서를 인용하는 경우가 많으나, 이 문서의 제목 자체가 개역 성경 번역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므로 이를 먼저 표기한다.[2] 욥기 8장 1절 참고.[3] 욥기 2장 1~10절 참고.[4] 해당 대목의 11~15절에서는 아예 대놓고 저주를 하고 있다(…).[5] 비슷한 속담으로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고 한다'가 있다.[6] 이를 두고 기독교 근본주의기복신앙으로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일례로 자주 거론된다. 어찌 보면 문맥을 무시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