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마누에우 누니스 Manoel Nunes |
생년월일 | 1895년 5월 5일 |
사망년월일 | 1977년 5월 31일 |
국적 | 브라질 |
출신지 | 상파울루 |
포지션 | 중앙 공격수, 미드필더 |
신체 | 불명 |
등번호 | -[1] |
소속 구단 | SC 코린치안스 (1913-1915) A.A. 맥켄지 대학교 (1915) SC 코린치안스 (1916-1930) |
국가대표 | 15경기 / 8골 (1917-1922) |
감독 | SC 코린치안스 (1920) SC 코린치안스 (1927) SC 코린치안스 (1937-1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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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의 前 축구인.2. 생애
2.1. 클럽
SC 코린치안스 역사상 가장 오래 뛴 선수이며 히벨리누, 소크라치스 등과 함께 코린치안스 역사상 위대한 선수로 남아 있다.그런데 그의 끈질긴 집념에 어울리는 불같은 성질머리 또한 가지고 있었다. 맥켄지에서 뛸 때 전 소속팀이던 SC 코린치안스와의 경기에선 돈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SC 코린치안스의 도서관에 침입하기도 했으며, 심판을 때려서 18경기 출장정지라는 중징계를 받기도 했다. 1915년엔 SC 코린치안스내의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공식게임을 거의 안 뛰기도 했다. 따라서 이 때 잠시 맥켄지 대학교 소속으로 뛴 것. 그리고 종종 선수 겸 감독으로 뛰기도 했다.
2.2. 국가대표
보통 1919년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대회의 주인공으로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를 꼽는다. 그 이유로는 최종전에서 당대 남미 최강이던 우루과이를 침몰시킨 프리덴라이히의 결승골 때문이다. 그리고 이 활약 덕분에 프리덴라이히는 대회 MVP가 되었다.그러나 최종전 이전에 네쿠가 만든 2골로 인해 2대2의 스코어를 만들어 최종전까지 끌고 간 것이며 최종전에서 2차 연장까지 가는 혈투 끝에 프리덴라이히의 골이 터졌다. 프리덴라이히의 별명인 El Tigre는 네쿠가 없었다면 불리지 못했을 별명. 또한 이 대회에서 네쿠는 4골을 기록하여 프리덴라이히와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2.3. 은퇴 이후
1930년 은퇴 이후 잠시 친정팀 코린치안스의 감독을 맡았다. 그리고 이 동안에도 1년간 머물면서 한 차례 우승을 선사하기도 하였다.3. 플레이 스타일 및 평가
훌륭한 기술과 끈질긴 집념을 보유했고 발이 빨랐다고 전해진다.4. 수상
4.1. 클럽
-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 8회: 1914, 1916, 1922, 1923, 1924, 1928, 1929, 1930(SC 코린치안스)
-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준우승 1회: 1915(맥켄지 대학교)
4.2. 국가대표
-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우승 2회: 1919, 1922
4.3. 개인
-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득점왕 2회: 1914, 1920(SC 코린치안스)
-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득점왕 1회: 1919
4.4. 감독
-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 1회: 1937(SC 코린치안스)
5. 여담
- 1929년 팀의 정원에 동상이 세워졌는데 축구 선수로써 최초로 세워졌다고 한다. 당연히 현역이던 시절이었다.
- 맥켄지에서 뛸 때 자신의 성씨인 누니스로 불리기를 원했는데 그 이유는 코린치안스에서 뛰지 않는 동안에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 안토니우 호키 시타다니, 코린치안스 전 이사는 2001년에 '네쿠, 첫 우상'이라는 네쿠의 평전을 출간했다.
[1]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