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베르투 히벨리누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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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월드컵 우승 멤버 |
호베르투 히벨리누의 기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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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前 축구선수 | ||||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 호베르투 히벨리누 Roberto Rivellino | |||
출생 | 1946년 1월 1일 ([age(1946-01-01)]세) | |||
브라질 합중국 상파울루주 상파울루 | ||||
국적 | [[브라질|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69cm / 체중 74kg | |||
주발 | 왼발 | |||
직업 | 축구 선수 (공격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은퇴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유스 | C.A. 바르셀로나[1] (1962) SC 코린치안스 (1963~1965) | ||
선수 | SC 코린치안스 (1965~1973) 플루미넨시 FC (1973~1978) 알 힐랄 FC (1979~1981) | |||
감독 | 시미즈 S펄스 (1994) | |||
국가대표 | 92경기 26골 (브라질 / 1965~1978) | |||
정보 더 보기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등번호 | SC 코린치안스 - 10번 브라질 대표팀 - 11번, 10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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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특유의 콧수염이 트레이드 마크인 선수였다. 또한 엘리아스 피게로아, 지쿠와 더불어 70년대 남미를 대표하는 축구 선수였으며, 펠레를 잇는 셀레상의 10번였다.[2][3]
2. 선수 시절
2.1. 클럽
히벨리누는 1963년에 SC 코린치안스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하였다. 데뷔하자마자 멋진 모습을 보인 ‘코린치안스 파크의 왕’이라는 별명을 받을 정도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코린치안스는 1950년대에 상파울루를 호령하는 강팀이었지만, 히벨리누가 뛰던 시대는 그렇지 못했는데, 하필 펠레가 이끄는 산투스 FC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1974년에 주립리그 결승에 진출하지만, SE 파우메이라스에게 패했고, 에이스였던 히벨리누는 가장 욕을 먹었고, 결국 플루미넨시 FC로 이적한다. 히벨리누는 플루미넨시에서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리그 2연패를 달성하였고, 말년에는 알 힐랄 FC에서 국왕컵 우승에 공헌하였다.2.2. 국가대표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는 펠레와 토스탕, 제르송이 은퇴하였고, 히벨리누가 에이스로서 브라질을 이끌었으나, 1차 리그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1승 2무로 겨우 2차 리그에 진출하는 바람에 디펜딩 챔피언답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히벨리누는 2골을 넣으며, 아르헨티나와 동독을 겨우잡아냈으나, 토탈 풋볼로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던 요한 크루이프의 네덜란드에게 패해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고, 그제고시 라토와 카지미에시 데이나가 버티는 폴란드에게 패해 4위에 그쳤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도 출전했으나,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의 음모로 결국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고 3위에 그쳤다.
3. 플레이 스타일
히벨리누의 대표적인 프리킥 골 장면. 1974년 월드컵 동독전에서 자이르지뉴가 동독 수비벽 틈에서 엎드리며 만든 틈으로 공을 차넣어 골을 성공시켰다. |
4. 기록
4.1. 대회 기록
- SC 코린치안스
- 토르네이우 리우-상파울루: 1966
- 플루미넨시 FC
-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1975, 1976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 FIFA 월드컵: 1970
4.2. 개인 수상
- 볼라 지 프라타: 1971
- CONMEBOL 올스타팀: 1973
- 월드 사커 올해의 팀: 1971
- FIFA 100
-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
- 발롱도르 드림팀 후보: 2020 (LW 6위)
5. 여담
- 플리 플랩 흔히 엘라스티코라고 불리는 이 기술을 대중화 시킨 인물이 바로 히벨리누이다. 플리 플랩의 창시자라 오해하는 사람들이 다수인데 엄연히 말하면 창시자가 아니고 이 기술을 가장 먼저 사용한 선수는 일본계 브라질인 선수였던 세르지우 에치코이며 에치코가 사용한 플리 플랩을 보고 히벨리누가 그 기술을 대중화 시키면서 이런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선수, 미드필더 5인을 선정했는데, 1970년대 최고의 선수와 미드필더들 중 5위에 이름을 올렸다.
- 특유의 콧수염이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이며 아직까지 콧수염을 유지 중이다.
[1] 클루베 아틀레티코 바르셀로나[2] 사실 그 이전에는 토스탕이 10번을 이어 받을 뻔했으나, 망막박리로 일찍 은퇴했다.[3] 1970년 월드컵에서 히벨리누는 11번을 달고 뛰었다.[4] 이 프리킥은 원자폭탄 킥으로도 불렸고 이것이 히벨리누의 별명이 되었다.[5] 호나우지뉴가 자주 쓰는 그 기술 맞다. 엘라스티코라고 부르기도 한다.[6] 너무 강력해서 골키퍼 손에 맞았는데도 들어갔다.[7] 사우디 아라바이아의 FA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