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7 18:27:40

노팅엄 포레스트 FC/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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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영광의 포레스트 시절3. 부침과 침체4. 기약 없던 챔피언십 시절5. 23년만의 프리미어 리그 복귀

1. 개요

노팅엄 포레스트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비디오 (1989)
파일:NottinghamForestFC_League_Performance.svg.png
노팅엄 포레스트 FC의 역대 순위 변화
노팅엄 포레스트 FC 역사에 대한 문서이다.

2. 영광의 포레스트 시절

1959년에 FA컵을 우승한 것 말고는 거의 족적을 남기지 못하며 1~2부를 오가던 포레스트에 에너지가 충만하고[1] 능력 또한 출중했던 명장 브라이언 클러프 감독이 1974-75 시즌 도중이었던 1975년 1월 취임하게 된다. 브라이언 클러프 감독이 취임하고 나서 치른 여섯 시즌을 요약하면 이렇다.
  • 1974-75 : 2부리그 16위
  • 1975-76 : 2부리그 8위
  • 1976-77 : 2부리그 3위 (승격)
  • 1977-78 : 1부리그 우승 / EFL 컵 우승
  • 1978-79 : 1부리그 2위 / 유러피언 컵 우승 / EFL 컵 우승 / 커뮤니티 쉴드 우승
  • 1979-80 : 1부리그 5위 / 유러피언 컵 우승 / 유러피언 슈퍼컵 우승

정말 게임으로도 이렇게 플레이하기 힘든, 가히 경이로운 스텝업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전성기를 의미하는 '리즈 시절' 이라는 단어를 '노팅엄 포레스트 시절' 이라는 단어로 바꿔도 될 정도다. 이 때문에 현지에서 브라이언 클러프는 스코틀랜드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명장 알렉스 퍼거슨과 비견될만한 잉글랜드의 명장으로 평가받는다.

클러프의 지도 아래 피터 쉴튼, 마틴 오닐, 비브 앤더슨, 존 로버트슨, 이안 보이어, 프랭크 클라크 등이 활약하며 1977년, 풋볼 리그 디비전 1으로 승격하게 됐고, 승격한 그 시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2]

''''''
파일:노팅엄 포레스트 FC 로고(1974~2000, 화이트).svg 노팅엄 포레스트 파일:말뫼 FF 로고(1979, 글자 화이트).svg 말뫼
대진 합계 1차전 2차전 녹아웃 대진 합계 1차전 2차전
파일:리버풀 FC 로고(1968~1987).svg 리버풀 2:0 2:0 (홈) 1:1 (원정) 1라운드 파일:AS 모나코 FC 로고(1962~2002).svg 모나코 1:0 0:0 (홈) 1:0 (원정)
파일:AEK 아테네 FC 로고(1924~1993).svg AEK 아테네 7:2 5:1 (홈) 2:1 (원정) 2라운드 파일:FC 디나모 키이우 로고(1970~1988).svg 디나모 키예프 2:0 2:0 (홈) 0:0 (원정)
파일: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 로고.svg 그라스호퍼 5:2 4:1 (홈) 1:1 (원정) 준준결승 파일:비스와 크라쿠프 로고(1906~현재).svg 비스와 크라쿠프 5:3 4:1 (홈) 1:2 (원정)
파일:1. FC 쾰른 로고.svg 쾰른 4:3 3:3 (홈) 1:0 (원정) 준결승 파일:FK 아우스트리아 빈 로고(1977~1995).svg 아우스트리아 빈 1:0 1:0 (홈) 0:0 (원정)
5승 3무 0패 (18득점 7실점) 합계 성적 4승 3무 1패 (9득점 3실점)
◀ 1977-78 결승 ▶ 1979-80

'''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 화이트.svg
1978-79 유러피언컵 결승
1979년 5월 30일 수요일 20:15 (CEST)
'''
올림피아슈타디온 뮌헨 (뮌헨)
주심: 에리히 리네마이어 (오스트리아)
관중: 68,000명
파일:노팅엄 포레스트 FC 로고(1974~2000, 화이트).svg
파일:trophy_front_full.png
파일:말뫼 FF 로고(1979, 글자 화이트).svg
노팅엄 포레스트 말뫼
1 0
<rowcolor=#000,#fff> 45+1' 트레버 프랜시스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엠블럼.svg
파일:득점 아이콘.sv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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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8 유러피언컵 결승전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1980 유러피언컵 결승전

1978-79 시즌에는 리버풀 FC에 밀리며 리그 2위를 기록했지만, 전 시즌 디비전 1 우승팀 자격으로 처음 출전한 유러피언 컵(지금의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깜짝 우승을 기록하며 유럽 축구계를 놀라게 했다.

''''''
파일:노팅엄 포레스트 FC 로고(1974~2000, 화이트).svg 노팅엄 포레스트 파일:함부르크 SV 로고.svg 함부르크
대진 합계 1차전 2차전 녹아웃 대진 합계 1차전 2차전
파일:외스테르스 IF 로고.svg 외스테르스 3:1 2:0 (홈) 1:1 (원정) 1라운드 파일:크나츠피르드뉘피엘라이이드 발뤼르 로고.svg 발뤼르 5:1 3:0 (원정) 2:1 (홈)
파일:FC 아르제슈 피테슈티 로고.svg 아르제슈 피테슈티 4:1 2:0 (홈) 2:1 (원정) 2라운드 파일:FC 디나모 트빌리시 로고(하얀 배경).svg 디나모 트빌리시 6:3 3:1 (홈) 3:2 (원정)
파일:BFC 디나모 베를린 로고.svg 디나모 베를린 3:2 0:1 (홈) 3:1 (원정) 준준결승 파일:HNK 하이두크 스플리트 로고(1970~1990).svg 하이두크 스플리트 3:3
(원정 다득점)
1:0 (홈) 2:3 (원정)
파일:AFC 아약스 로고(1928~1991).svg 아약스 2:1 2:0 (홈) 0:1 (원정) 준결승 파일:레알 마드리드 CF 로고(1941~1997).svg 레알 마드리드 5:3 0:2 (원정) 5:1 (홈)
5승 1무 2패 (12득점 5실점) 합계 성적 6승 0무 2패 (19득점 10실점)
◀ 1978-79 결승 ▶ 1980-81

'''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 화이트.svg
1979-80 유러피언컵 결승
1980년 5월 28일 수요일 20:30 (CEST)
'''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마드리드)
주심: 안토니우 가리두 (포르투갈)
관중: 51,000명
파일:노팅엄 포레스트 FC 로고(1974~2000, 화이트).svg
파일:trophy_front_full.png
파일:함부르크 SV 로고(투명 배경).svg
노팅엄 포레스트 함부르크
1 0
<rowcolor=#000,#fff> 20' 존 로버트슨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엠블럼.svg
파일:득점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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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 유러피언컵 결승전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1981 유러피언컵 결승전

1979-80시즌엔 리그에서 5위를 기록했지만 전 대회 우승팀 자격으로 출전한 유러피언 컵에서 또 다시 우승을 차지하며 2년 연속 유러피언 컵 우승이라는 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하지만 1980-81 시즌 유러피언 컵에서 CSKA 소피아에게 1라운드 충격의 패배를 당하고 리그에서도 7위에 머물며 이 동화같은 질주는 멈췄다.
파일:노팅엄 포레스트 챔스2연패.jpg
1978-79년 유러피언컵 우승 당시의 모습
이와 같은 연속 우승 기록은 UEFA 챔피언스 리그의 역사에서도 매우 드문 기록이다. 레알 마드리드 CF, AFC 아약스, SL 벤피카, FC 바이에른 뮌헨, AC 밀란,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리버풀 FC말고는 없다. 이 클럽들은 자국에서 최고 수준의 명문으로 최소 수십 회의 자국 리그 우승한 경력이 있는 명문 클럽들이다. 반면, 노팅엄 포레스트는 리그 우승은 단 한 번뿐이었지만 유럽 제패를 두 차례나 이뤄냈고 자국 챔피언보다 대륙 챔피언 경험 횟수가 앞선 유럽 유일의 축구 클럽이다.[3] 그리고 더 재미있는 사실은 노팅엄 포레스트는 1999년에 강등을 당하고 23년만에 다시 22-23 시즌부터 프리미어리그로 돌아올때까지 잉글랜드의 2부 리그인 EFL 챔피언십이나 3부리그인 EFL 리그 1에서[4] 뛰었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 들어서는 리그에서 중위권의 위치에 자리잡는다. 하지만 이따금씩 리그 상위권으로 시즌을 마무리해 UEFA컵에 출전하면서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유럽에 보여주었고, 실제 1983-84 시즌 UEFA 컵에서는 PSV 에인트호번, 셀틱 FC, SK 슈투름 그라츠 등을 연파하고 4강에 진출했다. 잉글랜드가 헤이젤 참사로 유럽 대항전 징계를 받기 직전인 1984-85 시즌에도 UEFA컵에 리그 3위 자격으로 진출하는 등 클러프의 포레스트는 꽤나 롱런했다.

3. 부침과 침체

하지만 1980년대 중후반부턴 영광의 멤버들이 하나 둘 떠났고, 리그컵 4회 우승 외에는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하는 중상위권 팀이 되어갔다. 그래도 스튜어트 피어스, 나이젤 클러프, 데스 워커, 로이 킨 등 젊은 선수들이 차차 등용되어 1987-88시즌, 1988-89 시즌 연속으로 리그 3위를 기록했고, 이후에도 꾸준히 10위권 안에 들어가는 안정적인 전력을 유지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프리미어 리그가 출범한 시즌인 1992-93 시즌에서 22팀 중 꼴찌로 강등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심지어 이 시즌이 브라이언 클러프의 감독 은퇴 시즌이어서 충격은 더 했고, 당시 신예 선수였던 로이 킨브라이언 클러프 감독이 라커룸에서 죽빵을 친 사건은 이 시즌 포레스트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강등 직후 포레스트 전성기의 멤버이자 레이튼 오리엔트에서 9년간 감독을 맡았던 프랭크 클라크[5] 감독을 데려와 팀을 리빌딩하며 포레스트는 한 시즌 만에 프리미어 리그로 올라온다. 승격한 94-95 시즌, 78년의 포레스트처럼 리그 3위를 찍으며[6] 다시 돌풍을 일으켰고, UEFA 컵에서도 8강까지 가며 화려한 복귀를 알렸으나 1996-97 시즌에 또 3년만에 강등되었다. 이후 1997년에 부임한 승격전도사 데이브 바셋이 1시즌만인 1998년에 팀을 다시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시켰으나 1998-99 시즌 중에 감독이 2번이나 바뀌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속에[7] 최하위로 강등되었다. 특히 1999년 2월 6일 맨유전에서 교체투입된 올레 군나르 솔샤르에게 4골을 헌납하며 1-8로 진 것은 포레스트 팬들에게나 리그 팬들에게나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2부 리그에서 구르다가 2004/05 시즌에는 3부 리그인 잉글랜드 리그 1로 강등을 당했고, 2005/06 시즌부터 2007/08 시즌까지 풋볼 리그 1에서 뛰었다. 이는 역대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에서 가장 참혹한 몰락으로 꼽힌다. 역대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중 루마니아CSA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 스코틀랜드셀틱 FC, 세르비아FK 츠르베나 즈베즈다, 프랑스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등이 유럽무대에선 동네북이어도 자국리그에선 여전히 강호로 군림하는 걸 생각하면 최악의 몰락이다. 다만 1990~91년 유러피언컵 우승팀인 FK 츠르베나 즈베즈다(영어이름인 레드스타 베오그라드로 알려진)는 2000년대 중반에 재정문제로 하마터면 4부리그까지 강등당할뻔 했다. 강등당했다면 포레스트보다 더한 몰락이었겠지만 재정 문제가 해결되어서 그대로 1부리그에 남게되었다.

포레스트와 비슷한 팀으로는 바로 이전 맨체스터 시티 FC였는데, 비록 챔피언스리그보단 수준이 낮아도 UEFA 컵위너스컵[8] 우승까지 차지했던 맨시티가 1997-98 시즌에 구단 역사상 최초로 3부리그로 강등당해 유럽 클럽 국제대회 우승팀이 역사상 처음으로 3부리그로 떨어지는 굴욕을 당했었다. 그런데 맨시티는 구단주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을 맞이하면서 2011-12 시즌 리그 우승을 거두고 그 뒤로 줄곧 리그 우승 후보로 포레스트와는 차원이 다른 전력이 되었다.

물론, 다른 사정이 있긴 하지만, 레인저스 FC가 있긴 하다. 항목을 참고하면 알겠지만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인기팀이자 라이벌 셀틱과 달리 챔피언스리그 우승은커녕 결승 진출도 못하던 팀이지만, 그래도 위너스컵 우승을 하기도 하던 팀인데 재정문제로 사라지면서 재창단을 거쳐 4부리그에서 다시 시작하게 되었는데 2015~16시즌은 2부리그인 디비전 1에서 뛰고 있다. 참고로 이 팀은 1972년 유로파 리그 전신 중 하나인 위너스컵을 우승한 팀이다. 그러나 이 팀은 4부리그에서 시작함에도 평균관중 40,000명이라는 후덜덜한 인기를 얻으며 역사상 4부리그 평균 관중 46,324명이었다. 심지어 디비전 3(4부 리그) 개막전에서는 49,118명이라는 전세계 4부 리그 역사상 최다 관중 기록을 세웠을 정도로 여전히 사랑을 굳건히 받고 있다. 이러다보니 4부리그, 3부리그를 압도적으로 우승하며 계속 승격하던 팀이고 1부리그 복귀는 머지않아 문제없으리란 전망을 받고 있기에 대체 언제 1부리그로 승격하고 승격한다고 해도 강등 걱정이 없을지 의문인 포레스트와 차원이 다른 팀이다. 결국 레인저스는 2015~16시즌에 1부리그 승격을 달성해 2016-17 시즌부터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에 재등장했고, 빠르게 예전의 위치를 되찾아 리그 우승과 유로파 리그 준우승 등 과거 명성에 걸맞은 성적을 내는 중이다.

그나마 노팅엄 포레스트를 위한 변명이라면, 위에 나온 팀들은 인기가 많고 전국구급으로 인기가 많은 팀이지만 노팅엄 포레스트는 원래 관중 수도 그다지 많지 않은 스몰 팜 팀이다. 즉, 작은 연고지의 팀으로 리그에서도 전통적인 강팀은 아니었다. 결국, 브라이언 클러프 감독의 지도 아래 슬금슬금 축적해 온 힘을 일거에 폭발시킨 것이다.

4. 기약 없던 챔피언십 시절

2007-08 시즌 3부리그인 리그 원에서 스완지 시티에 이은 2위를 차지하며 3시즌 만에 2부리그인 챔피언십으로 돌아왔다. 2008-09 시즌은 챔피언십에서 초반 13경기에서 1승3무9패에 최하위로 크게 고전하며 재강등 위기에 몰렸다. 결국 2008년 12월 26일 승격을 이끈 콜더우드와 결별하고 더비 카운티를 프리미어리그로 승격시켰던 빌리 데이비스 감독을 선임해 후반기에 반등하며 19위를 기록, 강등권인 22위 노리치 시티에 승점 7점이 앞서 가까스로 1년만의 3부리그 강등을 피했다.

2009-2010 시즌에는 챔피언십리그에서 3위를 기록,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아쉽게도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로의 승격은 실패했다. 플레이오프에서 만났던 팀은 블랙풀 FC이다. 노팅엄 포레스트가 3위, 블랙풀이 6위여서 만난건데 통합 스코어 4-6으로 블랙풀한테 졌다. 어쨌건 한창 유럽 무대를 휩쓸던 전력은 아니더라도 프리미어리그 승격에 도전할만한 여건은 갖춘것 같으니 관심있게 지켜보는것도 좋을 듯 하다.

2010-11시즌에는 시즌 중반 챔피언쉽 2위까지 올라갔고 홈 36경기 무패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종 순위는 챔피언쉽리그 6위로 가까스로 플레이오프로 진출했다. 플레이오프에서 3위인 스완지 시티에게 통합 3-1로 밀려 탈락했다. 전 시즌과 순위가 뒤바뀠으나 결과는 똑같았다.

2011-12 시즌에는 20라운드대에서 강등권인 23위까지 떨어져서 또 3부리그 강등당하는가 했더니 겨우 반등하여 35라운드까지 20위(강등권과는 5점차)로 일단 한시름을 놓게 되었다. 물론 올시즌도 승격은 포기. 결국 최종순위 19위로 마감했다.

2012-13 시즌은 39차전까지 5위로 승격 플레이오프권을 지키고 있다. 승격권과는 승점 10점차. 하지만 42차전까지 7위로 밀려나면서 플레이오프권을 두고 같은 63점으로 6위를 차지한 볼턴 원더러스와 마지막까지 혈투를 벌여야할 판국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8위이던 래스터 시티에게 2:3으로 지면서 레스터 시티가 극적으로 6위가 되었고 볼턴은 7위, 포레스트는 8위로 플레이오프를 치르며 승격희망을 가지게된 레스터 시티를 구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13-14 시즌도 챔피언십리그였다.

2013년에 쿠웨이트 사업가인 파사즈 알 하사위가 구단을 사면서 새로운 아랍인 구단주를 맞이했다.

13-14 시즌은 초반부에 리그 5위를 지키면서 승격희망이 보이긴 하지만 10위까지 승점차가 3점이라 언제라도 바뀔 가능성이 많다. 참고로 6위로 바싹 추격중인 팀이 바로 리즈 유나이티드였으나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10위권 바깥으로 리즈가 떨어져나간 거랑 달리 28차전까지 포레스트는 13승 11무 4패로 꾸준히 5위를 유지하며 플레이오프 승격희망을 두는가 했더니 역시나 추락했다. 41차전까지 리그 10위를 기록했으며 올시즌도 승격은 좌절된 상황같았으나 44차전까지 8위로 올라섰다. 6위 레딩 FC와 승점차가 2점뿐이라 남은 2경기 여부에 따라 마지막 희망인 플레이오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45차전에서 패배하면서 11위로 추락, 남은 1경기를 이겨도 승점 68점으로 6위에 들어가지 못하기에 다음 시즌도 챔피언쉽에 남게되었다.

2014년 새해 시작과 같이 치른 FA컵 64강전에선 프리미어리그 팀인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을 5:0으로 대승하며 기분좋은 승리를 따냈다. 하지만 32강전에선 리그 1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와 안방경기 무재배를 이뤄 2차전 원정경기에서 패하며 탈락했다.

14-15 시즌 13차전까지 5승 7무 1패를 기록하며 6위를 기록,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시즌 중반 순위가 12위까지 떨어지며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을 경질했고, 후임으로 전 볼튼 원더러스 감독 더기 프리드먼을 임명하였다. 36라운드 시점에선 14승 11무 11패, 승점 53점으로 9위를 달리고 있다. 다만 10경기를 남기고 승격 플레이오프권인 6위와의 차이가 9점이 나고 있어 승격 도전은 녹록지 않을 전망.결국 좁히지 못하고 더 승점차가 벌려지면서 45라운드 시점에는 12위에 그쳐 다음 시즌도 챔피언십에 남게되었다.

한편 알 하사위 구단주가 공격적 투자를 감행하고 있지만 그만큼의 소득이 나지 않아 결과적으로 파이낸셜 페어플레이(FFP)를 위배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포레스트는 향후 소득과 지출의 균형을 맞출 때까지 선수 영입이 제한된다.

15-16 시즌은 이 여파인지 22위까지 추락하여 또 3부리그로 강등당하나 했지만 41라운드까지 20위를 유지하고 있다. 강등권인 22위랑 9점 승점차가 있기에 연패하지 않는 한 리그 잔류는 문제없어 보인다. 결국 극적으로 잔류했지만 다음 시즌인 16-17 시즌도 똑같이 40라운드에 20위를 유지하였다. 결국 최종순위는 22위 블랙번과 승점은 동률이지만 골득실차에서 2점차의 21위를 기록함에 따라 강등은 면하게 되었다.

17-18 시즌, 구단주인 알 하사위가 팀을 올림피아코스의 구단주인 에반겔로스 마리나키스에게 매각했고, 팀은 레인저스 FC의 감독이던 마크 워버튼을 새 감독으로 선임했다. 그러나 야심찬 시작과는 달리 리그에서의 계속되는 부진으로 결국 워버튼 감독을 경질하고 코치인 게리 브라질을 임시 감독으로 선임했다. 브라질의 지휘하에 홈 구장인 시티 그라운드에서 맞이한 FA컵 3라운드(64강) 경기에서 아스날을 4-2로 격파하면서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다음 라운드 진출에 성공하였다.

그 후 미들즈브러의 감독이었던 아이토르 카랑카 감독을 선임했다. 겨울 이적시장에 폭풍 영입을 하면서 다시 리빌딩에 들어갔고, 이 여파로 리그는 17위를 기록하며 시즌을 마쳤다. 시즌 최종전인 볼턴 원더러스와의 경기에서 막판에 두 골을 얻어맞으며 역전패를 당했는데, 이 승리로 인해 강등권에 위치해있던 볼턴이 구사일생으로 챔피언십 잔류에 성공하게 됐다.

노츠 카운티가 강등당해서 현재 EFL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 클럽이 되었다.[9]

18-19 시즌은 카랑카 감독이 19년 1월 개인 사정으로 계약을 해지했고, 당시 순위는 플레이오프권인 6위와 승점 4점 차의 7위였다. 남은 시즌은 마틴 오닐 감독을 선임해 진행했고[10] 플레이오프권과 8점 차이인 9위로 시즌을 마쳤다. 입스위치 타운이 리그1으로 강등되면서 더비 카운티와 함께 챔피언십에서 2008년 이후로 강등이나 승격 없이 가장 오래 머무는 구단이 되었다.

19-20 시즌은 오닐 감독을 경질하고 사브리 라무시 감독을 선임했다. 라무시 감독은 프랑스 국가대표 미드필더 출신으로 코트디부아르와 스타드 렌 등의 감독을 역임했다. 11라운드 기준 승점 22점으로 1위와 동승점인 2위를 달리고 있어 출발이 좋다. 45라운드에는 승점 70점으로 5위로 내려왔는데, 플레이오프권 경쟁자인 7위 스완지가 승점 3점 차에 득실차는 5가 부족한 상태라 마지막에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할 가능성도 있다. 46라운드, 스완지가 레딩에게 4-1 승리를 거두고 도리어 포레스트는 스토크 시티에게 1-4로 박살이 나면서 승점차 3, 득실차 5가 하루만에 뒤집히는, 마치 DTD에 비견되는 추락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7위로 내려가면서 승격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이 DTD의 여파가 다 사라지지 않았는지 결국 20-21 시즌에서는 시즌 초반 4연패를 하는 처참한 성적을 내며 강등권으로 떨어졌고, 결국 사브리 라무시 감독을 경질하고 크리스 휴튼 감독을 선임했다. 이후 경기에서는 시즌 첫 승을 거줬지만 이후 계속 3무를 캐면서 현재 8라운드 기준 순위가 위태위태한 상황이다. 그래도 결국 끝끝내 살아남아 잔류를 확정했다.

5. 23년만의 프리미어 리그 복귀

하지만 21-22 시즌 초반 1무 6패로 리그 최하위로 떨어졌고 결국 크리스 휴튼 감독은 경질되었다.[11] 스티븐 리드 감독대행 체제에서 8R 허더즈필드 원정에서 2-0으로 시즌 첫 승리를 거뒀다. 후임으로 스티브 쿠퍼가 선임되었다. 첫 경기에서 밀월에 1-1 무승부를 기록했으나 감독을 바꾼 효과는 있어서 이후로 'B' 이니셜로 시작되는 팀들에게[12] 파죽의 4연승을 거둬[13] 14위로 일단 강등권에서 나오는데 성공했다.

10월 24일 풀럼에 홈에서 0-4로 대패를 당해 상승세가 꺾였으나 29일 QPR 원정에서 종료직전 잭 콜백의 동점골로 1-1 무승부를 거뒀다. 11월에는 5경기 1승4무를 기록했다. 휴튼 경질 후 13경기 1패만을 허용하고 있고 13위로 중위권에 랭크되었다.

12월 들어 피터버러(홈)-스완지(원정)-헐시티(홈)를 상대로 3연승을 거둬 휴튼 경질 후 16경기 9승6무1패를 거뒀으며 승점 34점으로 6위 스토크 시티에 승점 1점이 모자른 7위까지 도약했다. 그러나 박싱데이 기간에 열린 승격 경쟁팀 미들즈브러와 허더즈필드에 연패를 기록하며 상승세가 조금 꺾였다.

한국시간으로 2022년 1월 10일에 열린 아스날 FC와의 FA컵 64강 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두면서 언더독의 반란을 보여줬다. 2017-18 시즌에 이어 또다시 아스날에 굴욕을 안겼다. 이 기세를 이어가 리그에서도 밀월-더비-반즐리를 상대로 3연승을 거뒀다. 28경기를 치른 상황에서 승점 43점으로 7위에 랭크되어 6위 허더즈필드와 승점 1점차다. 그러나 하위권 카디프에 2-1로 발목을 잡혔다.

2월 7일에 열린 지역 라이벌 레스터 시티 FC와의 FA컵 32강 경기에서 4:1 승리를 거두는 기적을 보여줬다. 16강 상대는 허더즈필드 타운 AFC이다. 2월 9일 2위팀 블랙번 로버스 원정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두며 드디어 시즌 처음으로 승격플레이오프 진출권인 6위로 진입했다.[14] 시즌 초 꼴찌까지 추락한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다. 스토크와 프레스턴에 연이어 비기며 9위로 떨어졌으나 브리스틀 시티에 2-0으로 승리하며 승점 51점으로 6위 루튼 타운에 승점 3점이 뒤진 9위로 2월을 마쳤다. 3월 4일 순위경쟁팀인 셰필드 유나이티드 원정은 라이언 예이츠의 버저비터골로 1-1의 귀중한 무승부를 거뒀다.

FA컵 16강에서 허더스필드를 상대로 2:1 승리를 거두는데, 이로서 노팅엄 포레스트는 브라이언 클러프 감독 이후 33년만에 FA컵 8강전에 진출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3월 21일에 열린 FA컵 8강전의 상대팀은 전통의 강호인 리버풀을 만나게 된다. 결국, 1988-89 시즌 FA컵 준결승전에서의 힐스버러 참사 이후 33년만에 FA컵 8강전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고, 디오구 조타에게 극적으로 골을 허용하며 0-1로 아깝게 패배했다.

41라운드 진행중인 가운데 39경기 19승 10무 10패 승점 67점으로 5위이다. 승격 플레이오프 가시권이며 추격을 노려볼수도있는 위치이다.

44라운드 리그 1위 풀럼 원정에서 1:0 값진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로 리그 3위로 올라선 것은 물론이고, 2위 본머스가 스완지 시티와 난타전 끝에 비긴다. 본머스와의 승점차가 3점이기 때문에 남은 본머스와의 맞대결에서 승리시 승격도 바라볼수 있는 위치가 되었다.

그러나 본머스에게 1:0으로 패배하며 다이렉트 승격은 실패하게 되었다. 4위로 추락하여 겨우 플레이오프로 진출했다. 1차전 플레이오프 경기는 셰필드 유나이티드 원정경기를 2-1로 이겼다. 이후 2차전 승부차기에서 3:2로 승리하며 허더즈필드 타운 AFC와 결승에서 붙게 되었다. 그리고, 허더즈필드를 상대로 결승전에서 리바이 콜윌의 자책골과 존 모스폴 티어니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두 번의 오심에 힘입어 1:0으로 승리하면서 무려 23년만에 다시 1부리그인 프리미어리그로 복귀하는데 성공했다.

한편, 노팅엄 포레스트가 23년만에 다시 프리미어리그로 승격 및 복귀를 하면서 2022-23 시즌의 프리미어리그는 노팅엄 포레스트를 포함하여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경험이 있는 잉글랜드 팀 전원이 참가하는 시즌이 되었다.[15] 특히 지역 라이벌 더비 카운티 FC가 승점 21점 삭감의 여파로 EFL 리그 1으로 굴러떨어져 그 어느 때보다 후련한 기분으로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하게 된건 덤.

폭풍 영입을 했으나 한 시즌만에 다시 강등 위기에 처할 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37라운드 홈에서 아스날을 1:0으로 꺾으며 승점 37점을 확보했고, 38라운드 결과와 상관없이 다음 시즌에도 프리미어 리그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크리스마스에 강등권을 차지했으나 강등당하지 않은 첫 사례. 지역 라이벌인 레스터 시티 FC는 18위로 강등되는 운명을 맞이하면서 23-24 시즌에는 PL의 유일한 이스트 미들랜즈 연고 구단이 되었다.

23-24 시즌 감독 교체와 승점 감점 등의 내홍을 겪으며 17위로 겨우 강등을 면했다. 24-25 시즌에는 레스터 시티가 돌아오며 유일한 이스트 미들랜즈 구단이 아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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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무 충만해서 일부에서는 똘끼충만형 감독으로 지칭하기도 했다.[2] 이러한 승격 후 다이렉트 우승은 노팅엄, 입스위치 타운, 리버풀, 에버튼, 토트넘 뿐이다.[3] 다만, 유로파 리그까지 포함을 하자면 세비야 FC가 더 많다.[4] 2005-06 시즌부터 2007-08 시즌 까지.[5]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친정팀에서 선수로 뛰었다.[6] 프리미어 리그 출범 이후 승격팀이 거둔 최고의 성적이다. 같은 성적을 거둔 승격팀으로 93-94 뉴캐슬이 있는데 두 팀이 똑같이 42경기 승점 77점으로 3위를 차지했다.[7] 미키 애덤스 - 론 앳킨슨[8] 1998-99 시즌을 끝으로 폐지.[9] 스토크 시티는 1863년에 창단됐지만 1867년에 재창단되어 1865년에 창단된 포레스트가 더 오래된 게 맞다.[10] 코치로는 로이 킨을 선임하였다.[11] 6패 중 5패가 1점차 패배로 뒷심부족을 노출했다.[12] 반즐리 FC-버밍엄 시티 FC-블랙풀 FC-브리스틀 시티 FC.[13] 브리스틀 원정에서는 경기종료 직전까지 1-0으로 지고 있었으나 추가시간에만 2골을 넣었다.[14] 블랙번은 본머스에 2위를 빼앗겼다.[15] 리버풀 6회, 맨유 3회, 첼시 2회, 포레스트 2회, 빌라 1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