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CCDDD1><colcolor=#000000> 올덴부르크의 대공세자 니콜라우스 폰 올덴부르크 Nikolaus, Erbgroßherzog von Oldenburg | |
이름 | 니콜라우스 프리드리히 빌헬름 폰 올덴부르크 (Nikolaus Friedrich Wilhelm von Oldenburg) |
출생 | 1897년 8월 10일 독일 제국 올덴부르크 대공국 올덴부르크 |
사망 | 1970년 4월 3일 (향년 72세) 서독 니더작센 라슈테데 |
배우자 | 발데크피르몬트의 헬레네 공녀[1] (1921년 결혼 / 1948년 사망) |
아네마리 폰 슈츠바어 게난트 미흘링 (1950년 결혼) | |
자녀 | 안톤귄터, 릭사, 페터, 에일리카, 에이길마어,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알트부르크, 후노, 요한 |
아버지 | 올덴부르크 대공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 |
어머니 |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엘리자베트 알렉산드리네 여공작 |
형제 |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알렉산드리네, 잉게보르크 알릭스[2], 알트부르크[3] |
종교 | 루터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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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올덴부르크 대공국의 작위 요구자. 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의 당주였다. 사실 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의 종가는 홀슈타인고토르프로마노프 가문이지만 그냥 로마노프 왕조라고 불리기 때문에 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이라고 하면 하면 올덴부르크 대공가를 말한다.2. 생애
1897년 8월 10일 독일 제국 산하 올덴부르크 대공국 올덴부르크에서 올덴부르크의 마지막 공작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의 2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위로는 이복누나들인 조피 샤를로테와 마르가레테가 있었고 밑에 동복동생들이 있었으나 이복누나 마르가레테와 쌍둥이 동생들인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와 알렉산드리네가 요절하면서 사실상 1남 3녀 중 유일한 아들이였다.맏이이자 큰 이복누나인 조피 샤를로테[4]와는 18살 차이나 난다. 옛날에 이정도 나이면 모자지간도 가능인데.. 참고로 조피는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의 차남 아이텔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왕자와 결혼했다 1926년 이혼한다.
어린 시절.(1910년)
청년 시절.
1931년 아버지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가 사망하면서 올덴부르크 대공국 작위 요구자가 되었다.
독일의 다른 왕공족들처럼 니콜라우스 역시 나치 독일에 가담하였다.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에 가입하고 SA의 일원이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로는 조용히 살다가 1970년에 사망했다.
3. 가족관계
발데크운트피르몬트 헬레네 공녀와 결혼해서 슬하에 6남 3녀를 두었다. 헬레네의 오빠는 요시아스 추 발데크피르몬트인데 요시아스는 반대로 니콜라우스의 여동생인 알트부르크 폰 올덴부르크 공녀와 결혼했다. 즉 남매가 겹사돈이다. 흥미롭게도 니콜라우스는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의 (사실상) 1남 3녀 중 유일한 아들이였고, 아내 헬레네는 반대로 3남 1녀 중 고명딸이였으며 슬하에 아들이 딸보다 많다.(6남 3녀) 반대로 성별이 바뀐 요시아스와 알트부르크는 슬하에 아들보다 딸이 더 많다.(1남 4녀)
사촌들로는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10세의 왕비인 알렉산드리네와 독일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비 체칠리에[5], 네덜란드의 율리아나 여왕[6], 그리스 왕국의 왕자비 옐레나 블라디미로브나 여대공[7]등이 있다.
다른 독일의 통치가문들의 직계의 대가 많이 끊어졌던것과 달리 여기는 반대로 꽤 번성했다.[8] 독일어권의 통치 가문 중에서는 호엔촐레른 가문, 합스부르크 가문, 발데크피르몬트 가문, 리히텐슈타인 가문,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 니콜라우스의 가문 홀슈타인고토르프 왕조를 포함한 올덴부르크 왕조가 가장 번성했다. 하노버 왕조, 리페 가문은 앞에 가문들보다는 후손이 적지만 그래도 나름 후손들이 꽤 있으며,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가문은 계승권자는 있지만 후손이 적다.
3.1. 자녀
- 장남 안톤 귄터 - 슬하 1남 1녀[9]
- 장녀 릭사 - 말에 떨어져서 사망.
- 차남 페터 - 슬하 3남 1녀[10]
- 차녀 에일리카 - 슬하 2남 2녀, 슈탄데스헤어 중 하나인 라이닝겐 가문으로 시집감.[11]
- 삼남 에길마르 - 자녀 없음.
- 사남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12] - 슬하 1남 2녀[13]
- 삼녀 알트부르크 - 슬하 5남, 뤼디거 폰 에르파 남작과 결혼. 손자는 7명이다.
- 오남 휴노 - 슬하 2녀[14]
- 육남 요한 프리드리히 - 슬하 1남 2녀[15]
현존하는 남계후손은 18명이다. 니콜라우스가 대공세자로 있었을 때 계승자는 니콜라우스 한 명 밖에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많이 늘어났다.
[1] 요시아스 추 발데크피르몬트의 여동생.[2] 올덴부르크 왕조의 수장이자 글뤽스부르크 왕조의 수장인 크리스토프의 외할머니.[3] 요시아스 추 발데크피르몬트의 아내.[4] 아버지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의 첫번째 부인 프로이센의 엘리자베트 안나의 장녀.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와의 부부관계는 좋았으나 엘리자베트 안나가 요절하면서 사별했다. 동복 여동생 마르가레테가 있었지만 어렸을때 요절했다.[5] 외삼촌 프리드리히 프란츠 3세의 자녀들[6] 외삼촌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하인리히의 딸[7] 이모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마리의 딸.[8] 바이에른 왕국, 작센 왕국, 뷔르템베르크 왕국, 바덴 대공국, 헤센 대공국,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국,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국, 작센마이닝겐 공국, 작센알텐부르크 공국, 안할트 공국,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후국,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후국, 로이스게라 후국, 로이스그라이츠 후국. 참 많다.(...)[9] 장남 크리스티안 - 슬하 3남 1녀.[10] 장남 슬하 3녀, 장녀 슬하 2남 1녀, 차남 슬하 3남, 삼남 미혼.[11] 제7대 라이닝겐 후작 에미히 카를의 부인으로, 에미히 카를은 루이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의 처형인 마리아 키릴로브나 여대공의 아들이기도 하다. 사족으로 장남 카를 에미히는 로마노프 가문의 수장을 자칭하고 있다.[12] 프로이센 왕실 수장이었던 루이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의 사위다. 루이 페르디난트의 첫째딸인 마리 체칠리에와 결혼했다가 이후 이혼한다.[13] 장남 파울 블라디미르 올덴부르크 슬하 4남 1녀.[14] 장녀가 독일을 위한 대안(AfD) 당의 현 부대표 중 한 명인 베아트릭스 폰 슈토르흐이다.[15] 딸들 중 한 명인 아일리카는 오토 폰 합스부르크의 차남인 게오르크 폰 합스부르크의 부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