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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왕국의 2,3대 국왕과 남유다 왕국을 통치한 왕가에 대한 정보2. 상세
다윗 왕조에 대해서는 사무엘기, 열왕기, 역대기에 등장하며 지금은 소실된 것으로 여겨지는 역대지략에도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1]3. 외교
- 북이스라엘 왕국
대체적으로 사이가 나빴다. 오므리 왕조 시기에 일시적으로 사이가 좋긴 했지만 대체적으로는 서로 치고받는 사이.
- 아람, 모압, 암몬, 에돔
북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대체적으로 서로 치고받는 사이였고 일시적으로 이들을 제압하던 시기가 있기도 했지만 그 기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 아시리아, 신바빌로니아, 이집트
이스라엘-유다의 국력으로는 맞설 수 없는 국가들인지라 유다 말기에는 이들에게 돌아가며 치였다. 특히 이집트의 경우 유다의 중흥을 꾀하던 요시야를 죽여서 유다의 운명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다만 아시리아와는 아시리아가 성장하던 시기부터 친선과 적대를 반복하였는데 요아스(친선)-히즈키야(적대)-므나쎄(친선)-아몬(친선)-요시야(적대) 순이다.
4. 역사
4.1. 사무엘기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사무엘기에서 사울을 대신할 다른 이스라엘 왕을 세울 임무를 받은 선지자 사무엘이 유다 지파의 이새의 집안 출신의 다윗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사무엘은 그에게 기름부음을 주었고 이후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치며 큰 활약을 하고 사울의 사위까지 되다가 그 때문에 안 그래도 자기 다음 왕은 다른 집안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들어 불안해 하던 사울의 눈 밖에 나고 말았다.이 때문에 다윗은 사울을 피해 도망쳐 다녀야 했고 그러다가 사울 말년에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죽자(자살) 다윗은 유다 부족의 왕으로 추대되었고 이후 사울의 아들이자 이스라엘의 왕이 된 이스보셋과 싸워 이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본격적으로 다윗 왕조가 시작된다.
허나 다윗의 재위기는 순탄하지 않았다. 일단 이스보셋까지 물리치고 왕이 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외침이 3번이나 벌어지는 일이 벌어지고 이 와중에 다윗은 부하의 아내를 NTR 하였으며 이 때문에 성경의 표현에 따르면 하나님의 경고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경고 그대로 다윗 집안에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어서 다윗의 자식들끼리 심하게 불화가 일어나 반란이 일어나고 이후에는 또 반란이 터지고 역병이 돌았다. 거기다 말년에는 다윗 자신은 부하들에게 짐짝 취급받는 신세가 되었고 후계자를 정해두기만 하고 공표하지 않아 사후 쿠데타까지 일어난다.
4.2. 열왕기, 역대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윗이 후계자를 잘 골랐다는 것이고 그 후계자는 바로 솔로몬이었다. 성경에 의하면 솔로몬은 소 1000마리를 바쳐 하나님의 환심을 샀으며 이에 하나님이 소원을 말해보라 하니 솔로몬은 그저 나라를 잘 다스리고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원한다고 답해 더욱 환심을 사서 하나님은 솔로몬이 원한 것은 물론 말하지도 않았던 부귀영화까지 내려주었으며 그 때문인지 솔로몬의 재위기는 이스라엘의 번영기였다.문제는 솔로몬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차츰 쇠락해져갔다는 것. 결국에는 우상을 숭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자 결국 하나님이 나라를 반쪽내버려 반만 네 아들에게 줄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결국 솔로몬 사후에 10지파가 르호보암에 반발하여 독립하는 것으로 진짜로 그 예언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렇게 분열한 두 왕국 중 다윗 왕조가 다스린 나라가 바로 유다 왕국이다.
결국 르호보암 대부터는 10지파 중에 유다 지파, 벤야민 지파만 다윗 왕조의 통치를 받게 되고 나머지 존속기간 내내 이스라엘 왕국, 모압, 암몬, 에돔 등에게 돌아가며 고생하게 된다. 그래도 초창기에는 이스라엘 왕국이 틈만나면 왕조교체가 일어나 혼란기였던 반면 유다 왕국은 아비얌과 아사로 이어지는 안정기를 구가하며 잘 지냈지만 이스라엘 왕국에서 오므리 왕조가 시작되며 쭈구리 신세가 된다.
오므리 왕조 등장 후 한동안 다윗 왕조는 혼란을 겪는데 여호사밧(참패)-여호람(형제 학살)-아하시야(시해)를 시작으로 해서 기어이 아하시야 이후 6~7년간 오므리 왕조의 아달리야가 다윗 왕조를 무너뜨리고 자기가 여왕이 되어 일시적으로 다윗 왕조는 멸망했다. 심지어 아달리야는 다윗 왕조의 일원들을 싸그리 잡아죽인 바람에 다윗 왕조는 이대로 소멸할 뻔 했지만 대제사장인 여호야다가 아달리야의 손자이자 역시 다윗 왕조의 일원인 요아스를 숨겨 빼돌린 덕에 몰살은 피할 수 있었다.
이후 아달리야가 재위한지 7년째 되는 해에 여호야다를 중심으로 하여 쿠데타가 벌어져 아달리야는 죽임을 당하고 요아스가 즉위하여 다시 다윗 왕조가 들어서지만 이후에도 한동안 요아스(시해)-아마샤(시해)-우찌야(나병) 등 불운 콤보가 터진다.
그래도 우찌야 시기부터는 다시 안정기에 접어들고[2] 뒤를 이은 요담도 그런대로 통치를 잘 했다.
이후 왕위를 아하스로 넘어가게 되는데 아하스 재위 시절에 북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리고 이 시기는 아시리아가 강성해지던 시기였기에 아하스는 친아시리아적 행보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아들인 히즈키야 대에 바뀌어 히즈키야는 아버지와는 정반대 행보를 보였고 그 결과 아시리아의 침공을 받게 되는데 성경에서는 아시리아군이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유다 왕국이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결국 므나쎄 대에서는 다시 친아시리아 행보를 보이고 다행히 이 시기가 아시리아의 마지막 전성기였던지라 므나쎄 치세에서 유다 왕국은 다시금 그런대로 회복되게 되고[3] 손자인 요시야 대에 이르러서는 모세오경을 재발굴하고[4] 이를 토대로 종교 개혁을 단행하고[5] 북왕국쪽으로 일부 영토를 수복하는 등 다시금 강성해진다. 그런데...
요시야가 이집트의 파라오인 네코 2세와의 충돌에서 죽어버리는[6] 바람에 유다 왕국은 나락행 열차를 타기 시작한다. 이후 4명의 왕이 더 있었지만 대게 허수아비 신세나 다름없었고 결국 치드키야 대에 신바빌로니아의 침공을 받고 유다 왕국은 멸망하며 치드키야는 두 눈이 뽑히고 자식들이 몰살당한다.
4.3. 이후
이렇게 다윗 왕조는 멸망했지만 그래도 수백년간 유다 지파를 통치해온 가문이라는 점 때문인지 예수의 양아버지인 나자렛의 요셉이 다윗 왕조의 후손이라고 하는 등 나름대로 좋은 대우를 받는다. 성경에 기록된 족보상으로는 나자렛의 요셉은 여호야긴의 후손이다.5. 번외
에티오피아 제국의 솔로몬 왕조와도 관련이 있는데 솔로몬 왕조가 이름 그대로 자신들이 솔로몬의 후손이라고 자처하였기 때문이다. 다만 신빙성은 그렇게 높지 않다고 여겨지고 있다. 애초에 솔로몬 왕조는 13세기에 등장하여 솔로몬 시기와는 2000년이나 차이가 난다.6. 기타
성경에서 시조인 다윗은 가장 극찬을 받는 왕이지만 어째 다윗을 시작으로 해서 이쪽 왕가도 그렇게까지 마냥 신실하지만은 않은 모습을 보인다. 다윗은 십계명을 어겼고[7] 솔로몬은 우상숭배를 했으며 이후의 임금들도 야훼 잘 믿어서 나라가 흥함-야훼 잘 안믿어서 폭망-다시 야훼 잘 믿어서 나라가 흥함을 반복하며 출애굽기 때부터 그랬지만 다윗 왕조가 다뤄지는 열왕기, 역대기에서도 백성들은 왕이 뭐라고 하든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않았다고 묘사된다. 그래도 모든 왕들이 악하다고 까이는 북이스라엘의 왕들과는 달리 여기서는 잘 믿는 왕도 나오는 편. 다만 반대로 므나쎄의 경우 너무 하나님을 화나게 해서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겠다고 결심하게 만들었으나 요시야가 신실했기에 그나마 요시야 대에 나라가 망하지 않게 했다고. 흥미롭게도 므나쎄의 경우 가장 악한 왕으로 묘사되지만 그 손자인 요시야는 다윗에 비견될만큼의 찬사를 받는다. 심지어 다윗과는 달리 까이지도 않는다.[1] 열왕기와 역대기는 역대 국왕들의 간략한 이야기만 담고 있고 나머지는 역대지략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여서 역대지략에는 자세한 이야기가 실려있을 것으로 보이나 안타깝게도 역대지략은 아무리 늦어도 중세때에 소실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2] 우찌야가 나병에 걸리긴 했지만 그의 재위기간은 52년에 달한다. 당시 나병 환자의 취급을 감안하면 나병에 걸리고도 50년 넘는 재위기간을 가진건 유다 왕국이 그만큼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반증으로 볼 여지도 있다.[3] 성경에서야 므나쎄를 극렬하게 까지만 현대의 시각으로는 별 수는 없었다고 여겨진다.[4] 실제로는 이 때에 편찬하고 모세의 이름을 빌려 공표한 것으로 여겨진다.[5] 현재의 유대교가 이 요시야의 종교 개혁을 토대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고 보기도 한다.[6] 무슨 이유로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7] 대체적으로 성경은 다윗을 극찬하지만 그가 저지른 우리야 사건[8]만은 하나님의 눈 밖에 난 행동이라고 까인다.
[8] 충신이자 공신이나 다름없던 우리야의 처 밧세바를 네토라레하고 뒷탈을 없앤다고 우리야를 일부러 사지로 내몰아 간접적으로 죽여버린 뒤 밧세바와 경혼한 사건, 이 때만은 하나님의 분노가 컸던지 선지자 나단을 통해 칼이 네 집안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며 네 처도 네토라레 당할건데 너는 조용히 했지만 그는 대놓고 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저주를 내렸고 과연 그대로 이뤄졌다. 훗날 복음서에서 그 솔로몬이 밧세바의 아들인데도 밧세바가 다윗의 처가 아닌 우리야의 처로 되어있는걸 보면 후세인들 입장에서도 정말로 쉴드칠 수 없는 범죄로 보인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