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cc0000><colcolor=#fff> 대일본항공 大日本航空 |Dai Nippon Airway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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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명 | 大日本航空株式会社 (대일본항공 주식회사) | |
Dai Nippon Koku Kabushiki Kaisya | ||
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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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 | 주식회사 | |
설립일 | 1938년 12월 1일 ([age(1938-12-01)]주년) | |
해산일 | 1945년 12월 28일 | |
허브 공항 | 후쿠오카제일비행장(福岡第一飛行場) 도쿄비행장(東京飛行場) 경성비행장(京城飛行場) 다이호쿠비행장(臺北飛行場) |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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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대일본항공 여객기내(출처 참조) |
1938년 설립되어 1945년까지 존재했던 일본 제국의 국책 항공사.
2. 역사
2.1. 일본항공수송(1928~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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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만주국의 만주항공(주)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항공망을 구축하고자 독일 루프트한자와 협력하여 1937년 5월 20일 국제항공주식회사(이하 국제항공)를 설립했다. 그런데 동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에서 출발해 만주, 몽골, 신장을 거쳐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그리고 독일까지 간다는 당초 계획은 중화민국 영공 통과가 불가능해짐에 따라 어려워지고 말았다. 그러한 국제정세 속에서 일제 군부는 자신들의 장악력을 보다 높인 대일본항공(주)를 설립하여 국내외 항공수송을 독점하기로 결정했고, 국제항공을 일본항공수송(주)에 합병시키기로 했다. 이에 따라 국제항공은 1938년 4월 인수한 하인켈 He116 기체들을 만주항공으로 넘기고, 1938년 12월 1일 해산하였다.
1938년 11월 7일 열린 일본항공수송(주) 임시주주총회에서는 기존 법인을 11월 30일 해산하고 신법인(대일본항공주식회사)에 합류하는 안건을 승인하였고, 국제항공과의 합병을 결의했다. 그리하여 일본항공수송을 근간으로 대일본항공이 설립되었다.[1]
2.2. 대일본항공(1938~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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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항공 기내 객실승무원(エア・ガール) |
대일본항공주식회사(이하 대일본항공)의 창립총회가 1938년 11월 28일 열려 자본금 2,550만엔, 일본항공수송(주) 회장 오타니 노보루(大谷登)를 회장으로 선임하고, 총무부/영업부/기술부/경리부/동양부/구아부(歐亞部)/해양부 등 7개 부로 조직을 구성하고, 12월 1일부터 영업을 개시하였다. 이와 동시에 국내선을 운항하고 있던 일본해항공(주), 도쿄항공(주), 안도비행연구소, 일본항공수송연구소 등이 항공 사업을 중지하며 일본제국 국내 항공운수는 대일본항공이 독점하에 놓였다.
이듬해인 1939년 3월 7일 제국 내각에서 국제항공운수사업을 대일본항공에 독점시키기로 결정하고 4월 12일 대일본항공주식회사법(쇼와 14년 법률 제84호)을 공포하여 정부에서 3,725만엔을 출자하고 대일본항공(주)의 총자본금은 1억엔으로 증자하였다.
대미개전의 기운이 높아가던 1941년 일본 육군 항공본부는 특설 제13비행대란 명칭으로 대일본항공 구아부장을 부대장으로 삼고, 예하에 대일본항공 기장 등을 중대장으로 2개 중대로 구성된 특설 제13비행대(통칭 바람부대)를 편성했다. 이어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터지자 총동원체제에 돌입하면서 1943년 1월 대일본항공은 일본 육군 담당 제1운영국과 일본 해군 담당 제2운영국으로 나누어져 육해군의 수송기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2.3. 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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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의 모습 |
패전 후인 1945년 8월 16일자로 대일본항공의 제1운영국과 제2운영국이 단일한 운영국으로 통합되었다.
8월 19일 연합국 태평양사령부는 일본 외무성의 항복 사절단을 통해 '8월 24일 18시부로 일체의 일본 국적기의 비행을 금하며, 어길시 격추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전후 복원(일본인의 내지 귀환) 등 종전 처리를 위한 연락 비행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 GHQ는 8월 25일부터 31일까지 연락 비행을 허가하고, 이후 기한을 계속 연장했다. 여기에 육군 약 50명, 해군 약 250명과 함께 대일본항공에서도 약 50명의 조종사가 참가했다. 이때 참여한 대일본항공 승무원들이 이후 일본의 민간항공의 주역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종전 처리를 위한 연락 비행, 속칭 '녹십자 비행'은 GHQ의 갑작스런 지령으로 10월 10일에 중지되었고, 대일본항공은 1945년 10월 31일 마지막 주주총회를 열어 '회사 해산의 건'을 통과시켰다. 정부는 대일본항공주식회사법폐지법률(쇼와 20년 법률 제62호)을 12월 28일 공포하여 법제적으로 대일본항공을 폐지하였다. 이로써 보유 기체 100대, 직원 수 5,000명에 달했던 대일본항공은 17년의 역사를 마치게 되었다.#
대일본항공은 해산, 폐지되었지만 조종사 등 그 임직원들이 1951년 설립된 일본항공의 설립에 관여했다고 한다.
3. 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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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선도(1939년 10월)[2] |
후쿠오카제일비행장이 최대 결절점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