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 |
발생일 | 1980년 11월 19일 |
유형 | 조종사 과실, 기상악화 |
발생 위치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김포국제공항 |
기종 | Boeing 747-2B5B |
운영사 | 대한항공 |
기체 등록번호 | HL7445[1] |
출발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
경유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앵커리지 테드 스티븐스 국제공항 |
도착지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김포 국제공항 |
탑승인원 | 승객: 212명 |
승무원: 14명 | |
사망자 | 승객: 9명 |
승무원: 6명 | |
지상: 1명 | |
부상자 | 승객: 9명 |
승무원: 6명 | |
생존자 | 승객: 203명 |
승무원: 8명 |
사고 8개월 전,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에서 찍힌 사진. |
불시착 후 전소된 기체 잔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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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0년 11월 1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앵커리지를 경유, 김포국제공항으로 도착할 예정이었던 대한항공 015편(보잉 747-2B5B, HL7445)[2]이 김포국제공항에 착륙 도중 시야 불량과 조종사 실수로 언더 슛[3], 랜딩기어가 활주로 바깥쪽 제방에 충돌하면서 중심을 잃고 활주로에 낙착하면서 전소된 사고.
2. 사고
대한항공 015편(이하 KAL015편)은 11월 19일 아침 7시 20분에 김포국제공항에 도착 예정이였다. 당시 시정거리가 800m~1,000m에 불과할 정도로 기상 상태가 나빴으며 악천후를 뚫고 14번 활주로(현 14L)에 착륙 접근 중이던 KAL015편은 조종사 실수로 적정 활공각 이하 고도로 진입하게 된다. 결국 활주로 90m 전방의 제방에 메인 기어가 충돌하였고[4] 그 반동으로 기체가 크게 튀어오르면서 활주로에 처박혔다. 직후 김포공항 활주로 방어용 대공포 진지[5]에 우측 주익이 추가로 충돌하며 우측 주익도 일부 절단되었다고도 한다.제방에 충돌함과 동시에, 메인기어는 모조리 뒤로 꺾이며 동체 하부 화물칸을 헤집어 놓았고 결국 동체로 활주로 위를 길게 미끄러진다. 이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하게 되는데 도착지 공항에서 발생한 사고인만큼 동체에 남아있던 연료가 적었고, 인화성 물질이 없었기 때문에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있어 많은 승무원과 승객이 탈출에 성공했다.
다만 어퍼덱(2층) 탑승인원들 중 상당수가 희생되었는데 화재 발생시 연기로 인한 질식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 당시 양창모 기장은 충분히 탈출할 여유가 있음에도 사고가 자기 책임이라며 승객들을 탈출시키고 문상진 부기장, 김세영 항공기관사와 함께 산화했다.
또한 이른 시간이어서 직원들이 거의 공항에 없어 승객들이 공항청사로 달려갔다고 한다.
이 사고로 탑승인원 총 226명 중 15명이 희생되었고 공항 제방에서 사망한 군 장병 1명을 포함하면 총 16명이 사망하였다.
3. 기타
- KAL015편 탑승 승객들 중 상당수가 일본인이었는데[7] 이 영향 덕분인지 위키백과에 일본어 항목이 있다. 한국어 항목을 제외하면 유일한 외국어 항목이었으나 그 뒤에 영어, 중국어 항목도 추가되었다.
- 이 사고 후 3년 후, 대한항공의 서울-뉴욕 노선인 KE007편에서 큰 사건이 일어난다. 이때 007편 뒤에 따라오던 게 이 때와 같은 015편. 007편이 교신이 안 되고 있을 때 이 항공편을 통해 교신을 시도하기도 했었다. 이 사고 이후에도 로스엔젤레스발 노선 편명으로 쓰긴 했는데 근래에는 앵커리지를 거치지 않는다. 보통 이 편명은 로스앤젤레스행 노선 특별 증편 시기에 사용하는 덕에, 등장했다가 또 사라지는 일이 빈번하다. 현재는 로스엔젤레스행 노선은 서울-로스앤젤레스만 오가는 KE011/012, (KE015/016), KE017/018이 운항 중이다.
- 1995년 전두환 수뢰 및 부정축재 사건의 검찰 공소장에 해당 사건이 등장한다.공소장 내용이 담긴 신문기사
4. 관련 문서
- 항공 사건 사고
- 대한항공
- 보잉 747
- 아시아나항공 214편 착륙 사고: 이 사고와 유사한 언더 슛 사고.[8]
[1] 1.7년밖에 되지 않은 새 비행기였다.[2] 해당 기체는 1979년 3월 23일에 초도 비행을 하였고, 동년 4월 11일에 대한항공으로 인도되었다.[3] under shoot, 오버런의 반대 개념으로 비행기가 활주로에 못 미치고 착륙하는 일.[4] 이때 제방철책에서 근무중이던 군 장병 1명이 메인기어에 치여 사망하였다.[5] 김포를 포함 우리나라 공항들 중 거의 전부가 민군공용이라 군대가 같이 주둔하고 있기에, 대공포가 항상 배치 또는 준비되어 있으며, 청사건물 내부를 제외한 공항 내부시설을 정부(또는 국방부) 허가없이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도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그 대표적 예가 바로 공군기지인 대구공항과 해군/해병대 비행장인 포항공항.[6]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 대한항공 8702편 활주로 이탈 사고, 대한항공 8509편 추락 사고[7] 사실 이 때는 한국인들이 자유롭게 해외에 나갈 수 있게 되기 전이라 대한항공 여객기 탑승자의 대부분은 미국인, 일본인 등 외국인이였다.[8]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 일어난 조종사의 조작 미숙으로 벌어진 사고. 이 사고는 기상문제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