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3 14:05:27

돌아가는 삼각지

최희준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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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피어있는 길
(1967년)
배호
이미자
돌아가는 삼각지
섬마을 선생님
(1968년)
남진
이미자
가슴 아프게
여자의 일생

(1969년)
1967년 최초 녹음본
1. 개요2. 가사3. 여담

1. 개요

파일:삼각지_1994.jpg
실제 삼각지 교차로[2]

가수 배호의 최고 히트곡 중 하나이자 1960년대 트로트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명곡. 1967년에 작곡가 배상태가[3] 작곡하였고, 배호는 이 노래를 신장염 투병 중 발표하였다. 발매 후 20주간 차트 1위를 지키는 대히트를 기록하며 거의 무명 가수나 다름없던 배호를 일약 당대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준 곡. 배호는 이 노래 이후 발표한 '누가 울어' '안개낀 장충단 공원' 또한 히트시키며 스타 가수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돌아가는 삼각지'가 처음 작곡된 것은 1961년이었다고 한다. 작곡가 배상태가 군생활을 하던 중 휴가를 나와 어느 비 오던 날 서울역에서 혼자 술을 먹다가 악상이 떠올라 노래를 만들었다고.

이후 그는 가수 남진, 남일해에게 곡을 가져갔으나 바쁘다며 거절을 당하고, 가수 금호동[4]에겐 구닥다리라는 혹평을 받았다고 한다. 우선 무명가수 김호성이 녹음을 했으나 작곡가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5] 배상태는 궁전캬바레에서 드럼을 치던 자신의 먼 친척 배호를 떠올리고, 마침내 배호에게 곡을 불러줄 것을 부탁한다.

당시 배상태는 배호의 집으로 직접 악보를 들고 찾아갔는데, 배호와 함께 살고 있던 그의 어머니가 '아픈 아이에게 무슨 녹음을 시키냐'며 반대했으나 배호는 악보를 보더니 노래가 좋다며 4시간 동안 연습한 후 의자에 앉아 바로 녹음을 했다고 한다. 이후 대구 KBS에서 처음으로 전파를 타며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6] KBS에서 전국 각지의 방송국을 연결해 노래를 들려주며 이야기를 나누던 '가요 릴레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틀어진 것이 시초였다고 한다.

이후 곡은 크게 히트하였고, 배호는 당대를 풍미한 명가수 중 한 명으로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이를 기리며 지금도 삼각지역 안에는 배호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7] 동상 옆에는 실제 사람 크기의 배호 판넬도 설치되었다.[8] 삼각지 주변에는 이 노래의 가사가 적힌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또한 일대의 길이 '배호길'로 명명되었다. 참고로 동상 근처에는 스피커가 달려 있는지 계속 '돌아가는 삼각지'가 흘러나온다.

배호는 신장염으로 건강이 안 좋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라이브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지금은 남아있지 않지만, 이 노래의 라이브 영상을 확인해 보면 배가 아파서 고개를 숙이며 노래하는 배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원래 이 노래의 '돌아가는 삼각지'란 표현은 연인을 만나지 못하고 그저 같은 장소만 빙글빙글 맴돌다가 돌아간다는 의미였으나, 이 노래가 히트하고 1년 후 삼각지에 진짜로 회전교차로가 설치되면서 결과적으로는 곡 제목이 미래를 예언한 꼴이 되었다.(...) 물론 곡 발표 당시에는 한창 로터리 설치공사를 하는 중이기는 해서 아예 배경이 없는 것은 아니기는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회전교차로는 사라지고 이 노래만이 남아 불려지고 있다.

2.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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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지에 세워져 있는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비

작사가로 이름을 올린 이인선이라는 사람은 배상태의 작사를 몇군데 고치기만 했는데, 배상태가 그냥 노래의 작사가로 등록해주었다고 한다.

가사에 나오는 '삼각지 로타리'는 이후 서울 지하철 6호선 삼각지역 공사로 인해서 1994년에 철거되었다. 다만, 효창동 방면은 경부선철도 등의 이유로 과선교 형태로 남아 있는데, '삼각지역' 문서에도 있지만, 왕복 2차로에 노후화[9]가 심해 서울시에서 과선교로 남은 구간도 철거 후 왕복 4차로 지하차도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3. 여담

1970년에 이 노래와 같은 이름의 '돌아가는 삼각지'라는 영화가 제작됐다. 김희라, 문희, 장동휘 등이 출연했는데 영화의 시작과 끝부분에 이 노래가 나온다.

내일은 미스터트롯에서 류지광이 100인 예심에서 이 노래를 불러서 올 하트를 받고 본선에 진출했다.

1970년 일어난 양구 다방 인질극 사건의 범인이 인질극을 벌이던 도중 이 노래가 담긴 레코드를 요청해서 다방의 전축으로 이 노래를 들었다고 한다.

[1] 1980년까지는 TBC 방송가요대상이라는 이름의 시상식으로 진행됐고 언론통폐합 이후인 1981년부터 KBS 가요대상으로 이름을 바꿔 진행했다.[2] 1994년 철거되기 직전에 찍은 사진이다.[3] 배호의 삼종숙. 즉 배호 아버지의 팔촌형제다. 배호와 작업하기 시작하고 불과 6년 동안 170곡을 작곡해 배호에게 주었다고 한다.[4] 60년대를 풍미한 가수. 당시에는 드문 아웃팅 논란과 간통 등으로 인해 은퇴했다.[5] 김호성이 녹음한 기록에는 'NG'라고 쓰여있다고 한다. 즉 녹음은 했으나 음반으로 제작되지는 못했던 것.[6] 원래는 서울 KBS로 찾아가서 틀어달라고 부탁했으나, 배호가 당시 무명가수였던지라 거절을 당하고 차선책으로 대구 KBS로 찾아가서 방송을 의뢰했다고 한다. 배상태가 대구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대구 KBS 전속가수였던 경력이 있던지라 대구 KBS 국장이 "고향 사람 노래를 안 틀어줄 수 없다"며 틀어준 것.[7] 동상 뒤의 그림은 '돌아가는 삼각지'를 그림으로 표현한 듯 하다.실제 존재하던 삼각지 회전교차로 입체구조물은 저렇게 생겼었다.[8] 그러나 그림이나 판넬이나 동상이나 퀄리티가 영 좋지 않다. 그림은 전문가의 솜씨 같지가 않고, 동상은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광이 번쩍번쩍 나는 게 너무 싼티가 난다. 판넬은 사진과 비슷하게 그린다고 그린 것 같은데 오히려 본인보다 못생겼고, 심지어 동상 근처의 벽에 돌아가는 삼각지를 소개하는 짤막한 안내판이 붙어 있는데 이 안내판은 맞춤법이 틀렸다(...).[9] 1968년에 세워져 2024년 현재 56년째 이용하고 있다. 심지어 바로 아래는 경부선 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