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라슬로[1] 라핀스키 (László Raffinsky) |
생년월일 | 1905년 4월 23일 |
사망년월일 | 1981년 7월 31일 |
국적 | 루마니아 |
출신지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미슈콜츠 |
포지션 | 하프백 |
신체조건 | 불명 |
등번호 | -[2] |
소속팀 | 우니레아 티미쇼아라 (1924-1925) CA 티미쇼아라 (1925-1927) 키네줄 티미쇼아라 (1927-1929) 유벤투스 부쿠레슈티 (1929-1931) 리펜시아 티미쇼아라 (1931-1933) SK 시데니스 (1933-1935) 라피드 부쿠레슈티 (1935-1940) |
국가대표 | 20경기 / 1골 (1929-1938) |
감독 | 프라호바 플로이에슈티 (1944-1945) 미카 브라드 (1950) 프라호바 플로이에슈티 (1953) 치미카 타르나베니 (1954) 아우룰 즐라트나 (1955) 테흐노프리그 크루즈-나포카 (1962-1964) |
1. 개요
루마니아의 전 축구선수.2. 생애
2.1. 선수 생활
2.1.1. 클럽
라핀스키는 1924년부터 그의 축구 커리어를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1927년부터 당시 루마니아의 인기팀 중 하나였던 키네줄 티미쇼아라에서 뛰게 되었다. 하지만 6연속 챔피언을 차지할 정도로 잘 나가던 팀은 그가 오자마자 고꾸라지기 시작했고 아예 1929년에는 재정 위기를 겪게 되었다.그로 인해 친구이자 팀 동료였던 에메릭 포글과 유벤투스 부쿠레슈티로 팀을 옮겼다. 시즌 내내 10골 이하로 팀 실점을 막은 적도 있고, 팀의 첫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포글과는 다르게 그는 유벤투스 부쿠레슈티에서 오래 머무르진 못했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1933년에는 루마니아를 떠나 체코슬로바키아의 SK 시데니스에서 뛰기도 하였다. 선수 생활의 마지막은 유벤투스 부쿠레슈티의 라이벌 라피드 부쿠레슈티에서 보냈고 여기에서 4개의 리그 컵 트로피를 더 들었다.
2.1.2. 루마니아
라핀스키는 1929년 유고슬라비아를 상대로 대표팀에 데뷔하였고, 1930년의 그리스전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골을 넣기도 했다. 이 경기에서 루마니아는 그리스를 8대1로 대파했다.[3]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라핀스키는 초대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었고, 두 경기에 모두 출전하였다. 첫 경기 페루전에서 그는 주장 플라시도 갈린도에게 파울을 당했는데, 이 파울로 인해 갈린도는 월드컵 역사상 첫 퇴장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경기는 3대1로 루마니아가 승리하였다.
월드컵 이후 2년간은 대표팀과 인연을 맺지 못하였고, 다음 대회 본선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그 이후 1937년에서야 다시 대표팀에서 뛰기 시작하였고 1938년 월드컵에 출전하였다. 하지만 복병 쿠바를 만나 재경기 끝에 패배하였고, 라핀스키의 대표팀 경력은 그렇게 끝났다.
2.2. 감독
라핀스키는 그리 알려진 클럽에서 감독을 하지는 않았다. 주로 디비자 2, 3등에서 감독 생활을 했고, 1964년에 감독에서 은퇴하였다.3. 뒷이야기
- 초대 월드컵 출전 당시 그는 하마터면 출전하지 못할 뻔 했다. 그 이유는 구단주가 팀을 오래 비우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4. 수상
4.1. 클럽
- 디비자 A 우승 2회: 1929-30(유벤투스 부쿠레슈티), 1932-33(리펜시아 티미쇼아라)
- 디비자 A 준우승 3회: 1936-37, 1937-38, 1939-40(라피드 부쿠레슈티)
- 쿠파 로므니에이 우승 4회: 1936-37, 1937-38, 1938-39, 1939-40(라피드 부쿠레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