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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Line Battle. 정식 명칭은 아니고, 각종 매체에서 쓰이다가 자리잡은 신조어다. 전열함간의 전투에서 구축한 전선을 뜻하는 Line of Battle이란 용어에서 영향을 받은 듯하나 구체적인 어원은 불명이다. 이러한 전투 형태를 가리키는 정식 명칭은 없지만, 굳이 가리키는 단어를 찾는다면 병사들이 일렬로 선 것을 가리키는 선형진(line)혹은 선형전술(linear tactics) 정도가 있을 따름이다. 서로 합의를 한 듯 양측이 선형진(line)을 유지한 채로 어느 정도의 피해를 감수하고 무기 사정거리 내에서 전면전을 벌이는 형태의 전투를 의미한다. 주로 전열보병, 전열함 간의 전투에서 볼 수 있다.당시 전투 양상은 오로지 화력에 올인하는 전술이였고,[2] 프랑스 혁명전쟁 이후 대규모 상비군 시대가 열렸지만 대다수 유럽국가는 경제력의 한계로 인해 나타난 어쩔 수 없는 전술이었다. 현대에는 총기에 대한 정보가 흔하고 군에 입대하면 실탄 사격 훈련으로 병사 개개인이 총을 어떻게 쏴야하는지 잘 아는 상태이지만, 당시로선 총에 대해서 문외한인 사람이 많았으며 실탄 훈련은 국가 경제력이 받쳐주지 않아 절대 불가능하였다.[3] 게다가 머스킷의 다소 저열한 성능이 더해져 일반 징집병의 유효 사거리는 50m가 최대였다. 그렇기에 가까이 접근하여 적에게 유효한 타격을 주려면 다수의 화력으로 일제사격으로 적을 한방에 꺾는 전술이 효과적이였기에 이러한 전술이 발생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당시 화승총의 명중률은 알려진 것과 다르게 '숙련된 사수'의 경우 충분히 7, 80m내에서의 조준사격과 저격이 가능한 수준이었다.[4] 프랑스의 샤쇠르, 독일의 예거 부대의 경우처럼 숙련된 사수들[5]로 부대로 편성하여 산병전을 벌이기도 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먼저 봉건기사와 용병에 의존하던 체계에서 대규모 상비군 체계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군의 양적 팽창에만 집중하여 병사들 개개인의 자질과 훈련도는 극도로 저하됨으로써 머스킷의 명중률을 충분히 살릴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또한 매 사격 때마다 흑색화약 특성상 연기가 나오는데, 수십 수백 명이 뭉쳐서 쏘면 연막탄 수준이다. 당연히 2번째 사격부터는 연막에 시야가 가려진다.
이는 프랑스 혁명전쟁과 나폴레옹의 영향이 컸다. 당시 대다수의 유럽은 모병제였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전쟁에서 프랑스 혁명정부가 신병을 대거 징집함으로서 그야말로 엄청난 양의 머릿수가 받쳐주기에 계속되는 전쟁을 이겼고, 나폴레옹 역시 국민개병제를 실시함으로서 전 유럽을 정복한 것이였다. 그렇기에 다른 유럽 국가들도 그에 상응하는 병사 수가 필요했기에 징병제를 실시하게 됐다. 다수의 비숙련병 물량이 소수의 정예 숙련병을 압도하면서(총의 특성이다) 생겨난 교리. 문제는 한정된 예산에 머릿수가 늘어나니 개개인에게 들일 돈이 부족해졌고, 이는 대충 한방 쏘고 총검돌격하는 교리로 이어졌다. 여기서 예외인 건 돈지랄의 영국 정도. 영국은 실탄으로 훈련하는 등 사격에 공을 들였고, 덕분에 어지간한 돌격은 사격만으로 쓸어버리는 전공을 세우곤 했다.
2. 실질적 문제
적을 만나게 되면 삶과 죽음이 한순간에 달려있으니, 얼굴은 누렇게 되고 입은 마르며, 손은 떨리고 다리는 힘이 빠져서 배운 기술은 모두 잊어버린다. 화기(火器)는 더욱 일을 그르치니, 하늘을 향해 쏘기도 하고, 총을 쏘면서 머리를 돌려 도망칠 길을 보기도 하고, 탄환을 입에 머금고 조급하게 총을 쏠 준비를 하다가 뱃속으로 삼켜 버리기도 하고, 탄환 넣는 것을 잊기도 하고, 탄환을 먼저 넣고 화약을 나중에 넣기도 하고, 큰 총구에 작은 탄환을 넣어서 기울여 겨눌 때 탄환이 빠져나오기도 하고, 준비가 끝났는데 화승이 땅에 떨어져 습기에 꺼져버리기도 하고, 혹은 약선의 약이 저절로 타버리기도 한다. 열 자루의 총 중에 겨우 예닐곱 자루가 발사되고, 그 중에 두세 발의 탄환이 적중될 뿐이다. 이것들은 수많은 전투 중에 직접 보고 시험해 보아 알게 된 것이다. -『기효신서』 4권 수족편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머스킷의 성능 그 자체에 있었다. 전장식 머스킷의 특성상 아무리 사격에 숙달된 사수라고 해도 머스킷으로는 1분에 2~3발이 한계였다. 게다가 산업혁명 이전의 시대에서 화약과 총기는 매우 값비싼 화기였고, 당연히 사격 훈련에도 막대한 비용이 들어갔다.[6] 군의 질적 향상에 노력하고 싶어도 한계가 있었는데, 이게 어느 정도였냐 하면, 근세 최대이자 최고의 국가였던 프랑스는 막대한 규모인 자국군 병사들의 사격훈련에 사용되는 화약 값을 감당할 수 없어 아예 실사격 훈련을 하지 않았다. 빈 총으로 사격 훈련을 할 때도 부싯돌[7]이 아까워 나무조각을 끼워놓고 했을 정도. 동시대에 실사격 훈련을 마음껏 한 국가는 섬나라라는 특성 덕분에 소수 정예로 육군을 키울 수 있던 데다 해외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초석이 펑펑 나는 인도 시장을 독점한 영국이 유일했다. 이런 상황에서 산개 진형을 운용하고 병사 개개인의 조준 사격 실력만으로 전투를 벌인다는 것은 망상에 가까웠다. 산개 진형의 가장 큰 카운터는 따로 있었는데 병사 개개인이 1~2분 수준의 장전속도로는 기병을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밀집 대형이 아니면 기병한테 다 도륙당하는 일이 빈번했고, 총검으로 방진을 구사해도 엉성하면 박살 나는 건 똑같다. 총검이 없던 때는 파이크병들이 기병들로부터 총병을 보호해줘야 했었다.
그래서 사격에 대한 감도 없는 병사들을 가지고 최대의 화력을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을 찾다보니 나온 것이 마치 팔랑크스를 재현하듯 밀집대형을 지어(또한 전장식이어서 장전 시간도 필요했으므로) 일정한 화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일제사격을 하여 명중 확률을 올리는 것이었고, 이러다 보니 병사의 수에 승패가 갈리게 되고, 이렇게 되니 또 이기기 위해 병력을 늘리고, 병사 수가 늘어나니 훈련비용은 더 감당이 안 되는 악순환을 통해 병졸 수와 확률적 명중률에 의존하는 라인배틀이 정착되게 되었다. 물론 실전에서는 몇 번 쏘고 한쪽 병사들이 자신들의 피해에 겁을 먹으면 다른 쪽이 착검돌격을 해서 백병전으로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옆에 서있는 전우들이 우수수 총 맞아 죽어가고 있는데 적이 다시 장전을 하고 자신을 조준한다면 그 자리에서 버티고 서 있는 게 더 이상한 것이다. 필연적으로 몇몇 병사는 공포에 질려 도주하게 되는데 병사 한 둘이 도주하기 시작하면 다른 병사들도 우루루 도주하기 시작하고 결국 와해된 전열에 적들이 돌격해서 완전히 마무리 짓는 게 일반적인 전투 전개 양상이었다. 결국 라인배틀은 어느 쪽 전열보병이 더 심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도망치는 병사 없이 더 끈질기게 버티는가가 핵심 요소였다. 따라서 장교들은 병사들에게 전열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 전투 중 도주 시 무조건 사형같은 엄격한 군율을 세우고 도주한 병사를 본보기로 혹독하게 고문하다 처형하는 일이 제법 있었다.
라인 배틀 방식은 19세기 중후반 퍼커션캡의 발전으로 드물게 자행되면서 반작용으로 동시에 참호가 발전한다.[8] 그러다 20세기 초에 이르러서 기관총 같은 신무기의 확산으로 밀집대형으로 더 이상 버텨낼 수가 없게 되면서 사장되었다.
3. 다른 매체
라이플이 주력이 되기 전인 미국 독립전쟁, 나폴레옹 전쟁 등에서 이러한 양상을 볼 수 있으며, 이는 게임 코삭시리즈와 엠파이어: 토탈 워, 그리고 나폴레옹: 토탈 워, Holdfast: Nations At War, 어쌔신 크리드 3[9]에 잘 나오고 있다.흔히 말하는 라인배틀의 더욱 자세한 양상에 대해서는 전열보병 문서 참고.
[1] 라인 배틀의 대명사인 전열보병과 전열함의 전열을 보여주는 대표 적인 사례. 상단은 영화 배리 린든의 한 장면이고, 하단은 코펜하겐 해전(1801)을 묘사한 그림이다.[2] 이는 전열보병 항목에서 더욱 자세히 설명하니 참고.[3] 영국과 프랑스 제외.[4] 조선 시대 우리 조상들이 화승총의 높은 명중률에 강한 인상을 받아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의미에서 '조총'이라고 불렀다는 걸 생각해보자. 명중률이 그렇게 안 좋다면 수많은 근대의 사냥꾼들이 어떻게 그걸로 사냥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나선정벌이 가능했던 것도 조총 덕분이었다.[5] 샤쇠르,예거는 대개 사냥꾼 출신들을 부르는 말로, 아예 이름부터가 해당 언어로 사냥꾼 부대라는 의미다. 우리말로는 엽병이라 부른다.[6] 현대군도 사격훈련 한번 하는데 엄청난 물자를 요구한다. 군필자 중 행정병이라면 더욱 공감할 것이다.[7] 자세한 건 플린트락 참조.[8] 사실상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참호 돌격전술의 형태는 이미 19세기 때 등장한 전투 형태이다. 대표적인 예로 떠오르는 전쟁이 프로이센-프랑스 전쟁과 남북 전쟁, 슐레스비히 전쟁이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슐레스비히 전쟁 때는 라인 배틀이 전혀 발생되지 않았고 규모는 작지만 1차대전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참호전이 더 많이 발생되었다.[9] 배경이 독립전쟁이다 보니 벙커힐 전투 시퀸스나 몬머스 전투 시퀀스에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