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7 01:20:59

라진구역

{{{#!wiki style="margin:-12px -0px"<tablebordercolor=#e40001>
파일:북한 국장_White.svg
}}}
{{{#!wiki style="color: #fff; margin: -0px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구역
시인민위
라진구역
선봉구역
}}}}}}}}}

[[북한|]][[틀:국기|]][[틀:국기|]] 라선시구역
{{{#!wiki style="margin: -5px -10px; display: inline-table"
<tablebordercolor=#fff,#1f2023>
파일:라선시 라진구역 위치.svg
라진구역
羅津區域
Rajin District
}}}
<colbgcolor=#e40001><colcolor=#ffffff> 구역 소재지 미상
광역행정구역 라선시
하위 행정구역 15 2
면적 미상
인구 미상
인구 밀도 미상
구역 당 위원장

파일:조선로동당 로고타입.svg
박영길
최고 인민회의
<colbgcolor=#e40001><colcolor=#ffffff> 라진

파일:조선로동당 로고타입.svg
신영철 (초선)
동명

파일:조선로동당 로고타입.svg
최영보 (초선)
창평

파일:조선로동당 로고타입.svg
한정수 (초선)
지역번호 085, 086
1. 개요2. 상세3. 역사4. 인근 행정구역5. 교통편6. 하위 행정구역7. 행정 구역의 변화

[clearfix]

1. 개요

라선시 산하의 구역. 라진항을 갖춘 항구도시이다. 나진이라는 이름은 벌처럼 넓은 나루라는 뜻의 벌나루를 한자로 나진(羅津)으로 나타낸 것에서 유래되었다. 상세한 면적은 불명이지만 대략 500㎢ 정도로 추정된다.

과거 라진구역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2015년 11~12월경 조선중앙TV 및 대외선전사이트 '내나라' 등 다수의 북한 매체에서 라진지구로 밝혔다. 지금까지 북한 매체에서 라진구역을 언급한 바가 없으므로, 2012년 선봉지구 설치 당시에 동급으로 라진지구가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본격적으로 쓰인 것은 2014년 1월 23일 조선중앙통신의 "제40차 정일봉상 전국청소년학생체육경기대회 빙상경기" 기사가 처음이었다.[1] 2019년 신흥샘물의 포장지에서 발견되는 주소에도 '라선시 라진지구 신흥1동'이라는 주소가 있었다. #

그러나 2020년 11월 27일 "내 삶의 보금자리, 사회주의 그 품 떠나 우린 못살아"라는 제목의 로동신문 기사에서 라진구역이 등장하고, 뒤이어 30일 로동신문이 라선시 큰물피해복구 보도에서 선봉구역을 언급된 것으로 보아 구역으로 전환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후 12월 8일 로동신문에서도 라선시 후창고급중학교 개건을 보도하면서 소재지를 라진구역으로 밝힘에 따라 라선시의 지구들이 타 도시들과 동일한 구역 체제로 전환된 것이 명확해졌다. 2021년 1월 22일 함경북도, 량강도, 라선시군민연합대회 보도에서도 박영길을 라진구역당위원회 책임비서로 소개하였다. 2020년 11월 28일자 로동신문 기사에서 "지난 10월 216사단 922건설려단 라선시련대 라진구역대대에서 양수장건설에 필요한 집수정을 만들 때였다."라는 기록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구역으로의 전환 시점은 정확히 2020년 10월인 것으로 보인다.[2]

2. 상세

2015년~2018년 기준 북한에 설치된 것으로 알려진 '지구'급 행정구역으로는 평안남도 득장지구(북창군에서 분리), 함경남도 금호지구(신포시에서 분리)와 라선시 산하의 선봉지구 및 본 지구가 있다. 라진지구와 선봉지구는 시 산하에 편제되어 있으므로 여타 직할시 및 시의 구역과 동급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원래는 경흥군 신안면(新安面)이라는 한숨 나오는 최북단의 어촌이었지만, 만주국이 건설되고 소련군을 막을 최북단의 부동항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점점 스케일이 커지기 시작했다. 일본과 만주국을 잇는 최단거리에 위치한 탓에 종단항이 들어섰고, 일본인의 손에 이룩된 것이긴 하지만 나진은 한국 최초의 계획도시였다. 1934년 신안면이 나진읍으로 승격되었으며, 읍으로 승격된 지 불과 2년 만1936년에 나진부(府, 오늘날의 시(市))로 승격되는 초고속 성장을 하였다.[3] 러시아 연해주블라디보스토크만주에 가깝기 때문에 교역에도 유리했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서도 냉전 시기 동안 태평양으로 뻗을 수 있는 해군기지는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했기 때문에 점점 커지게 된었다.

나선지구에 송전탑을 짓고있으며, 중국이 전력을 직접 공급할 것으로 보인다.#

3. 역사

이는 라진이 가장 북단에 위치한 부동항이며, 앞바다에 위치한 2개의 섬이 천연 방파제 구실을 하고, 항 내부가 깊어서 대형 선박이 출입하기 쉽기 때문에 동만주의 외항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 이 점이 나진-선봉 일대가 경제특구로 지정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1993년까지는 함경북도에 소속되어 있었다. 8.15 광복 당시 명호역, 라진역, 웅라역 정도만 커버했던 작은 도시였던 나진시(당시 면적 137㎢)는 지금은 후창역부터 관곡역에 이르는 나름대로 넓이가 좀 되는 구역으로 성장했다. 라진시였을 때인 1973년에는 직할시급 행정구역이 아님에도 이례적으로 3개 구역(남산구역, 신흥구역, 관해구역)이 설치되기도 했다. (다만 라진시의 구역제는 이듬해 바로 폐지되었다.) 본래는 구 부령군 관해면과 삼해면에 이르는 지역까지 커버했었지만 1993년 경제특구로 승격됨에 따라서 거의 시 면적의 절반을 청진시에 넘겨주면서 지금의 크기가 되었다.

청진시, 김책시와 함께 함경북도의 3대 항구 중 하나로 있다가 1993년에 자유경제무역지대로 지정됨에 따라 라진-선봉시로 개편되면서 직할시가 되었다. 이후 2000년에 명칭이 라선직할시로 변경되었다. 그러다가 2004년 일반시로 격하됨에 따라서 다시 함경북도 소속으로 들어갔다가 2010년에 라선시로 승격되면서 라진구역이 부활된 것. 뭐 그렇다고 청진시에 넘겨주었던 구 라진시의 1/3 가량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의 라진구역의 크기는 생각보다 그렇게 크지는 않다.

이렇게 자유경제무역지대로 부상하면서 (비록 자유경제무역지대 자체는 북한의 완전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 라진구역과 선봉군에 사는 사람들은 북한에서 두 번째로 잘 사는 사람들이 되었다. 남포시를 제치고!

4. 인근 행정구역

은덕군 선봉구역
청진시 라진구역 동 해
동 해

함경북도 소속  라선시 소속

5. 교통편

철도 평라선  후창역 명호역 라진역
함북선  관곡역 웅라역 라진역
라진항선  라진역 라진항역
도로 7번 국도  온성군 - 선봉군 - 관곡동 - 라진시 - 유현동 - 후창리 - 청진시 - 부산광역시

6. 하위 행정구역

15동 2리로 이루어져 있다.
라진구역의 행정구역
 관곡동 남산동 동명동 송평동 신안동 신해동 신흥동 안주동
 안화동 역전동 유현동 지경동 창평동 청계동 해방동
 무창리 후창리

7. 행정 구역의 변화

광복 이전의 나진시 지도 (일본어) (링크짤림)

광복 당시 나진은 80개 동으로 이루어졌다.

기록 순서는 구 시/군 - 구 읍/면 - 현재의 읍/동/리/로동자구 순서.
  • 구 나진시 지역
    • 나진시
      • 남산동
      • 동명동
      • 신안동
      • 신해동
      • 신흥동
      • 안주동
      • 안화동
      • 역전동
      • 유현동
      • 지경동
      • 창평동
      • 청계동
  • 구 경흥군 지역
    • 풍해면
      • 관곡동
      • 송평동
      • 무창리
      • 후창리


[1] "고급중학교부문에서는 라선시 라진지구 청계고급중학교 남녀선수들이, 초급중학교부문에서는 라선시 라진지구 역전초급중학교 남자선수들과 라진초급중학교 녀자선수들이, 소학교부문에서는 황해북도 사리원시 대성소학교 남자선수들과 함경남도 함흥시 흥덕구역 흥덕소학교 녀자선수들이 각각 종합 1등을 하였다."[2] '라진지구'나 '선봉지구'가 등장한 마지막 기사는 각각 2020년 9월 21일과 27일이었다. 이런 점을 볼 때 10월에 전환된 것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북한의 매체는 행정구역이 변경되었을 경우 과거의 이야기를 다룰 때 과거의 행정구역을 쓰되, 라진지구 백학동(당시)와 같이 (당시)를 넣어 사용한다.[3] 종단항 선정 과정에서 청진과 웅기(라진시 선봉군 일부지역) 등이 라진과 경합했고, 이 때문에 한반도 역사상 최초의 땅 투기 열풍이 불었다. 일제에 의해 이식된 자본주의와 양적 성장의 결과물이었다. 당연히 라진에다 땅을 사 놓은 사람들은 대박을 쳤고, 청진과 웅기에다 땅을 사 놓은 사람들은 쪽박을 쳤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