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만인 더럼 주교이자 노르만 왕조의 윌리엄 2세의 영향력 있는 대신이였다. 그는 노르망디에 위치한 바이외의 한 사제에게서 태어났으며 별명인 플램버드는 자극적인, 집어삼키는 불꽃 혹은 횃불을 드는 자라는 뜻인데 라눌프의 성격을 잘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라눌프는 정복자 윌리엄 1세 때부터 경력이 시작되었는데 1086년에 둠스데이 북 집필과 왕의 인장을 관리하는 일도 해왔을거라고 한다. 윌리엄 1세의 승하 후에 왕위를 계승한 윌리엄 2세도 섬겼으며 왕의 인장 관리도 계속하였고 또한 왕국의 재정 관리도 맡았으며 공석이 된 16개의 주교구와 수도원을 관리하였다. 이처럼 그가 지닌 많은 의무들로 인해 사실상 최초의 영국 총리로 여겨지기도 한다. 윌리엄 2세의 통치 시기에 라눌프는 런던 최초의 석조 다리 건설과 웨스트민스터 궁전 건설을 감독했다. 그에 따른 보상으로 더럼 주교직을 포상으로 받았다. 윌리엄 2세의 승하 후에 왕위를 계승한 헨리 1세에 의해 런던 탑에 수감되었으나 나중에 탈옥에 성공하면서 최초로 런던 탑에서 탈옥에 성공한 자가 되었다. 그렇게 윌리엄 1세의 장남이자 윌리엄 2세와 헨리 1세의 큰형인 노르망디 공작 로베르 2세와 함께 노르망디 공작령으로 망명하였다. 그렇게 라눌프는 로베르의 수석 고문이 되었고 로베르의 잉글랜드 침공을 보좌해 헨리 1세를 왕좌로부터 끌어내리려고 했지만 결국 두 형제는 화해하고 전쟁을 중단한다. 나중에 라눌프는 복직하고 노르망디에서 계속 몇 년을 보낸 이후 정치계에서 은퇴를 하였으며 가끔 공개 석상에 모습을 나타나고는 했다. 그는 교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으며 평의회에 참가해 자신의 직권을 지키기 위해 힘을 썼다.